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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남해의 아름다운 섬 가리도.
풍부한 해산물과 좋은 낚시 포인트로 인해 관광객들이 꾸준히 들어오는 곳이다.
홍영기는 주말을 맞이해 부모님과 함께 할아버지가 사는 가리도에 방문했다.
조그마한 모래사장도 있어 부지런히 헤엄도 치고 통발에 잡힌 해산물들을 먹으며 가족들과 잘 즐기고 있었다.
게이트 침공이 터지기 전까지는.
“도... 도망쳐-!!! 빨리!!!”
군데군데 찢어진 낚시조끼를 입은 박씨가 횟집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창백해보이는 박씨의 모습에 같이 배를 타고 왔던 사람들이 의아한 얼굴을 보였다.
횟집에는 홍영기와 그의 부모님도 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같이 온 김씨는?”
“김씨는 죽었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녀! 빨리 배를 타고 도망가야혀.”
“그게 뭔 소리여. 시방.”
“괴...괴물! 괴물들이 나타났다니까!”
횡설수설하며 몸을 떠는 모습에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만 살폈다.
“일단 이것 좀 드세요. 저 형사입니다. 사람이 죽었다는게 무슨 말이죠?”
홍영기의 아버지가 박씨에게 다가가 물잔을 건넸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킨 박씨가 모터를 단 것처럼 말을 쏟아냈다.
“내가 김씨하고 저기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는데, 웬 벌거벗은 처음 보는 애들이 막 뛰어 오는 거라. 근디 가까이 오니까 막 달려들어 가지고 김씨를 물어뜯고 했다니까!”
“애들이요?”
“그니까 덩치는 애들만한데 피부가 자글자글하고 막 방사능에 오염된 것처럼 찌인-한 녹색이여. 아 글쎄. 그놈들이 낚시꾼들을 죄다 습격해서 막 죽인다니까!”
“···사건이 일어난 현장 위치 좀 알려주시겠어요?”
뒤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홍영기의 어머니가 접근해 아버지의 옆구리를 찔렀다.
“여보. 지금 혼자 가려고? 우리는 어떡하고?”
“일단 아버지 댁에 가있어. 나 대한민국 형사야. 검거율 1위. 파출소도 없는 조그만 섬에 내가 가서 상황파악을 해봐야지. 그래야 지원이라도 요청하고. 응? 가는 김에 낚시하러 나가신 아버지도 데려올게.”
우람한 자신의 팔뚝을 들어 올리며 자랑한 아버지가 홍영기에게 말했다.
“영기야. 나 없는 동안 네가 엄마 잘 지키고 있어야 한다?”
“네. 아버지.”
“형사양반. 혼자서 되겠수? 우리도 같이 갑시다. 김씨가 우리랑 친분이 좀 있는데 이렇게 갈 수는 없지.”
“감사합니다. 나머지 분들은 일단 항구로 돌아가셔서 배가 다시 올 시간까지 잠시 기다려주세요.”
“아이고... 도망쳐야 한다니까...”
“걱정 마세요. 이 조그만 섬에 범인들은 도망 못 갈 테니 제가 잡아오겠습니다.”
박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낚시꾼 3명이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모습이 홍영기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이었다.
섬을 떠날 마지막 배편이 올 때까지 다들 돌아오지 않았다.
겁에 질린 박씨를 비롯한 관광객들은 모두 배를 타고 돌아갔다.
집에서 꼬박 하루를 기다려도 오지 않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문에 홍영기의 어머니 역시 인내심을 잃었다.
“네 아빠 찾으러 가야겠다.”
그녀가 들고 온 것은 부엌칼과 창고에서 꺼내온 낫이었다.
형사의 와이프답게 터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들고 있어라.”
“네...”
“예전에도 있었어. 무슨 깡패니 뭐니 해가지고 집에 찾아왔는데 이 엄마가 칼로 다 쫓아냈어. 네 아빠만큼 덩치도 큰 녀석이 뭐가 무섭다고. 쫄지마.”
“...”
덜덜 떨리며 진정되지 않던 심장은 낫의 차가운 감촉에도 멈출 기미가 없었다.
***
부르르르르. 탈. 탈. 탈.
수혁의 요트가 벌써 4번째 섬에 도착했다.
경험치 좀 얻었던 첫 번째 섬과 달리 주민들도 없을 만큼 너무 작은 섬으로 갔더니 배고픈 고블린들끼리 동족상잔이 일어난 상태였다.
몇 없는 고블린들을 처리했으나 여전히 레벨업도 못한 상태였다.
“에라이. 또 허탕이네.”
심지어 게이트마저도 없었다.
마치 몬스터만 내뱉고 사라진 것처럼.
결국 너무 작은 섬 대신 규모가 좀 있는 섬으로 요트를 움직였다.
그곳의 주민들에게 경험치를 좀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육지에 비하면 충분히 독점할 가능성이 컸다.
총으로 몬스터를 잡아도 경험치는 오르지 않는다.
즉 그가 볼 때에는 육지에서 군인들에게 죽는 몬스터들은 경험치도 없이 헛되게 죽어갔다.
혼란을 막기 위해 그저 열심히 일하는 군인들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아니라면 지금의 사회는 발전된 모습을 잃어버리고 원시시대로 되돌아 갈테니까.
군인들이 도시와 외부를 통제하는 초창기 시대였다.
아직은 혼자서 설치고 다닐 수 없는 수혁이 바다로 나온 이유였다.
그럼에도 그처럼 초반 성장을 달리는 자들이 있었다.
대체로 초반에는 군인이나 경찰 출신이 많았지만 그 중에 민간인들도 여럿 존재했다.
“대한민국을 구해낸 7인의 영웅들이였나?”
각 지역마다 활동하며 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각성자들이 지금쯤 그처럼 부지런히 고블린들을 잡아 죽이고 있을 것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여러 사건으로 인해 죽긴 하지만 혼란을 수습했다는 업적은 확실했다.
“전남하고 경남쪽이면... 비스트였나? 광폭화 스킬을 가지고 있었던... 언젠간 마주칠 수도 있겠군.”
몬스터들을 앞에 두곤 절대 도망가지 않던 각성자, 비스트.
특유의 광폭화 스킬로 사람들에게 영웅 칭호를 얻었던 자였다.
결국 고삐 없이 싸우다 빨리 죽긴 하지만 영웅들의 이름과 얼굴은 각성 초반의 수혁에게는 귀감이 되었다.
빌런이 된 이후에는 그런 영웅들 몇에게 쫓기기도 하고 직접 죽이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생각 끝에 그의 배가 가리도에 도착했다.
배를 정박하고 내리자 항구에는 고블린과 주민들의 시체가 뒤엉킨 상태였다.
치열한 싸움이 있었는지 두 눈조차 감지 못한 주민들이 제법 있었다.
시체들을 살피던 수혁은 고블린들이 죽어나간 상태를 보고 눈에 이채를 띠었다.
“···괴력으로 통째로 잡아 뜯은 흔적이군. 스킬을 얻은 각성자가 벌써 있나?”
현재의 각성자 수준으로 몬스터를 통째로 잡아뜯을만한 능력치를 가진 자는 없었다.
이 정도의 수준은 스킬이나 특성을 가져야 가능했다.
고블린 주변에 흘러 말라붙은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입에 넣었다.
“퉤퉤퉤. 에이씨. 상했네.”
혹시 경험치가 될까 싶어 맛보았는데 꽝이었다.
경쟁자가 나타난 만큼 수혁도 부지런히 섬을 돌아다녀야 할 판이었다.
각성자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며 사냥을 하기 위해 발을 뗐다.
부르르릉.
항구 주변에 쓰러져있던 스쿠터를 타고는 섬을 둘러싼 도로로 몰았다.
누군가 도망치다 놓고 간 듯 키가 그대로 꽂혀있었다.
해안도로를 한참 달리던 스쿠터를 급히 멈춰 세웠다.
귀를 기울이자 해안가 모래사장 쪽에서 비명과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몽둥이를 손에 들고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영기야!!! 빨리 도와줘!!! 크윽.”
“으으...”
한 남성이 고블린 떼에게 둘러싸인 뒤 공격받고 있었다.
애타게 부르는 외침에도 홍영기는 겁에 질린 채 몸만 떨었다.
“항구에서 한 것처럼 싸우라고!!!”
“그...그게... 몸이... 안 움직여져요...”
“야 임마-!!! 아-악!!!”
결국 고블린들의 집중공격을 버티지 못한 남성은 온 몸이 피범벅이 되며 쓰러졌다.
그를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홍영기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쓰레기야...“
어머니와 같이 길을 나서다 고블린떼와 마주했을 때에도 그랬다.
”도망쳐-! 영기야!”
“흑... 흑...”
용감하게 부엌칼을 휘두르던 어머니와 달리 그는 겁쟁이였다.
눈물, 콧물을 질질 짜고는 넘어지고, 얼굴과 손이 흙투성이가 되면서도 뛰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항구에서는 고블린들과 주민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다.
고블린들에게 둘러싸인 뒤 자신을 비웃는 괴물들의 웃음이 머리에 계속 맴돌았다.
손톱으로 마구 찌르고 자신을 씹고 즐기는 모습에 죽음이 가까워지는 순간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어느새 고블린들은 모두 죽어있고 상처는 전부 없어졌으며 눈앞에 레벨 업을 했다는 이상한 문구도 떠다녔다.
어리둥절한 그에게 다가온 남성이 마구 침을 튀겼다.
“너... 너 정말 잘 싸우네. 나하고 같이 다니자. 서로를 지켜주는 거야.”
캠핑하러 왔다가 섬에 갇혔다는 둥, 무술 유단자라는 등, 혼자 남은 영기에게 의지가 될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존재마저도 죽어버렸다.
무기력한 자신 때문에.
또다시 고블린들에게 둘러싸였다.
침을 질질 흘리며 한낱 먹잇감으로만 날 바라본다.
이번에는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
고블린들이 나를 마구 물어뜯는다.
“크아아아-!!!”
“흐음... 무식하지만 야성적이군. 그리고 서툴러.”
모래사장을 내다보는 언덕 위에서 수혁은 홍영기가 고블린들을 잡아 통째로 뜯어버리는 모습을 바라봤다.
고블린의 손톱을 악력으로 박살내고 주먹으로 머리통을 으깬다.
뒤로 껑충 뛰어올라 달라붙은 녀석은 곧장 뛰어올라 등으로 떨어지며 쥐포로 만들었다.
주먹으로, 답답하면 손톱으로, 손을 못쓸 땐 이빨로, 고블린들을 죽이는 모습은 한 마리의 야수와 같았다.
고블린들을 모두 죽이고도 성이 안 풀리는지 혼자 땅을 주먹으로 때리고 괴성을 지르는 중이었다.
“지랄 발광을 하는구나.”
수혁이 다가가자 희번득한 눈알을 돌리더니 곧장 돌진해왔다.
몸만 슬쩍 움직여 발만 살짝 걸자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형편없는 모습에 혀를 찼다.
“쯧쯧. 임마. 정신차려.”
“크아아아-!!!”
예로부터 미친놈은 매가 약이다.
또다시 양손을 뻗은 채 다가오는 홍영기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퍽.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홍영기가 모래에 처박히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너무 세게 때렸나?”
또다시 기억을 잃었다.
자신을 물어뜯던 고블린들의 끔직한 악취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저번과 달리 눈을 뜨자 모래사장에 처박혀있었다.
“으으윽... 퉤퉵. 피가...?”
겨우 몸을 일으키는데 머리에서 떨어진 피가 모래를 적시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상처가 다 안 나았나 보다.
“일어났냐.”
깜짝 놀란 홍영기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급하게 돌렸는지 순간 핑하며 어지러웠다.
처음 보는 남성이 캠핑이라도 온 것처럼 의자에 앉아 버너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누구...세요?”
“저승사자.”
“네?!”
“너 죽었어.”
“지... 진짜요?”
울상을 짓는 홍영기의 모습에 수혁이 피식 웃었다.
“덩치는 곰보다도 큰 놈이. 농담이지. 이리 와서 앉아라. 많이 다쳤네.”
쭈뼛거리며 다가온 홍영기는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버너 속 물이 끓는 걸 바라보았다.
수혁은 곧장 라면 3개를 뜯어 스프와 면을 집어넣었다.
곧장 매콤한 냄새가 풍겼으나 주변엔 고블린의 너저분한 피와 살점이 지저분하게 즐비했다.
나무젓가락을 건내자 홍영기는 고개를 저었다.
수혁의 아무렇지도 않게 라면을 먹는 모습에 메말라 갈라진 입을 열었다.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후루룹. 뭐가.”
“저놈들이요. 저놈들이 우리 부모님하고 사람들을... 112나 119도 통화가 안 되고 배도 안 오고...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요?”
“...너 몇 살이냐?”
“...19이요.”
“어쩐지 나약한 소리를 한다더니 아직은 덜 여물었구나.”
“네?”
입맛이 떨어진 듯 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세상이 변했다. 나약한 자들은 살아갈 수 없어. 그렇게 계속 징징댈 거면 지금 선택해라. 당장 네 부모님 곁으로 보내주마.”
“아니... 그...”
수혁은 더 이상 빌런이 아니다.
그렇기에 훗날 비스트로 유명세를 떨치는 저 어린 존재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삶을 포기한다면 겸사겸사 비스트의 특성도 가져가고.
“고통도 못 느끼게 죽여주마.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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