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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게이트
게이트 앞에서 수혁이 스마트폰을 켰다.
현재 국내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였다.
속보로 뜬 뉴스에서는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계속해서 내보냈다.
[국민여러분.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하여 군과 경이 합동하여 괴생명체들을 몰아내고 있으니 안심하시길 바라며, 안전한 집에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괴생명체들을 목격시 즉각 112와 119에 신고하시고...]
인터넷 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는 실시간으로 군인들이 고블린을 총으로 쏴 죽이는 모습도 보였다.
[따다다다당. 따다다다당. right side! right side!]
소총을 든 외국 군인들이 적극적으로 고블린들을 소탕했다.
도심지 곳곳 주택가 사이에 출몰한 고블린들과 방검복으로 무장을 한 경찰들이 육탄전을 벌이는 영상도 있었다.
영상을 돌려보던 수혁이 이내 스마트폰을 껐다.
지금이야 맨몸으로 던지는 고블린들이 총으로 소탕이 가능했지만 점점 갑주를 입고 더 강하고 빠른 몬스터들이 출몰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마력까지 갖춘 몬스터들은 총으로 저지할 뿐 죽일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심지에서 탱크와 미사일을 함부로 쏠 수 없으니 결국 순차적으로 각성자들에게 맡기는 시기가 올 것이었다.
다만, 아직은 초반이라 여러 가지 체계가 정립되지 못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수혁은 성장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게이트로 들어갔다.
게이트 내부는 눅눅하고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동굴이었다.
그러나 어둠은 그에게 아무런 장벽이 되지 못했다.
[최초로 노비스 등급 게이트에 진입했습니다. 혜택이 주어집니다.]
게이트를 통과한 수혁의 발밑에 무늬가 없는 은색의 반지와 한 손 크기의 나침반 하나가 빛이 나며 놓여졌다.
[용기 있는 자를 위한 반지 : 마력 +1]
[Lv.0 등급(슈퍼 노비스)
- 신체 : 7 + ?? + (1)
- 마력 : 6 + ?? + (1)
- 종합전투력 : 13 + ?? + (2)
- 경험치 : 104/1000 ]
[모험가의 나침반 : 마력을 주입하면 게이트의 탈출 방향을 알려준다.]
나침반에는 붉은색의 바늘 말고는 그 어떠한 표시도 없었다.
그가 받은 나침반이 탈출 방향을 안내해 준다는 얘기는 곧 게이트의 최종 목적지인 보스룸을 가리킨다는 뜻이었다.
탈출과 죽음의 위기가 동시에 존재하는 아이러니한 말이었다.
그러나 수혁이 고블린 따위에 겁먹을 일은 없었다.
나침반을 손에 든 수혁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세 갈래 길이라... 누가 고블린 게이트 아니랄까봐 복잡하게 얽힌 지형이군. 나침반이 나와서 시간 낭비할 일은 없겠네.”
마력을 주입하자 바늘이 빙글빙글 돌더니 이내 한 쪽을 가리켰다.
바늘이 이끄는 대로 수혁은 가장 오른쪽 통로로 향했다.
한참을 걷던 수혁이 걸음을 멈추더니 통로의 오른쪽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끼에엑?!”
동굴의 벽과 같은 보호색으로 위장했던 고블린이 뒷목이 잡히며 비명을 질렀다.
자신이 왜 걸렸는지 모르는 고블린은 곧 목덜미로 들어오는 수혁의 송곳 같은 치아에 피를 헌납했다.
“씁. 동굴 고블린도 맛이 비슷하군.”
삐쩍 마른 고블린의 시체를 뒤로 던진 그의 앞에 숨기를 포기한 고블린들이 벽에서 떨어졌다.
그의 앞길을 막아선 고블린들이 겁을 주고자 괴성을 질렀다.
어둠 속에서 퇴화된 회백색의 눈이 크게 뜨였다.
“케에에엑-!!!”
“시끄럽다.”
스르릉.
양손으로 검을 꺼내든 수혁이 무릎을 살짝 굽힌 뒤 어깨까지 수평으로 올려 앞으로 겨눴다.
잔챙이들을 빨리 처리하고 보스룸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탓. 서걱. 탓. 서걱. 탓. 서걱.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블린들이 죽어나갔다.
찌르고 베어내도 동굴 내부에서 고블린들이 끝없이 나타났다.
일반적인 각성자들이라면 최소한 10인 이상 파티를 꾸려 차례차례로 공략해 나갔을 텐데 그는 거침이 없었다.
아무리 고블린의 숫자가 많아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토끼 무리는 아무리 뭉쳐도 결코 사자를 이길 수 없다.
전투가 끝나고 너저분한 통로에서 서있는 것은 수혁 한 명 뿐이었다.
곧바로 자신의 그림자를 이용해 동굴 고블린의 피를 모두 흡수했다.
[위장 및 동화 능력을 얻었습니다.]
주변 환경에 맞추어 피부색을 변화시키는 동굴 고블린의 특성을 얻었다.
자고로 특성이란 얻으면 얻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죽은 고블린들이 그림자에 빨려가더니 어느새 지저분했던 통로가 말끔해졌다.
“나쁘지 않군.”
다시 나침반을 손에 든 수혁이 붉은 바늘이 이끄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 뒤에는 똑같은 전투의 반복이었다.
한차례의 동굴 고블린을 물리치고, 다시 지나가고, 싸우고, 다시 걷고.
그 사이에 늘어난 건 경험치와 능력치 각각 1이었다.
[Lv.0 등급(슈퍼 노비스)
- 신체 : 8 + ?? + (1)
- 마력 : 7 + ?? + (1)
- 종합전투력 : 15 + ?? + (2)
- 경험치 : 228/1000 ]
나침반이 마침내 동굴의 가장 마지막인 보스룸까지 안내하자 더욱 거세게 바늘이 흔들렸다.
맨 처음엔 벽인 줄 알았지만 돌로 만들어진 투박한 입구에 그나마 나무로 된 손잡이가 붙어있어 문이라는 걸 알아볼 정도였다.
나침반을 집어넣은 수혁이 거침없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
지나쳤던 통로 여러 개를 합쳐놓을 만한 크기의 원형 동공이 그를 맞이했다.
동공의 가운데에 앉아 무엇인지 모를 뼈다귀를 씹어 먹던 존재가 수혁의 등장을 알아차렸다.
“크르르르르...”
자리에서 일어난 존재는 성인 여성 키 높이의 동굴 고블린이었다.
다른 녀석들보다 조금 더 커다란 동굴 고블린의 손에는 두툼한 흑갈색의 나무몽둥이가 들려있었다.
“고블린 전사가 나올 줄 알았더니 족장이네.”
일반 고블린에 비해 갑옷과 무기를 든 고블린 전사와 달리 족장은 갑옷도 없는 몬스터였다.
그러나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나 무장이 없어도 무시할 수 없는 몬스터였다.
그렇다고 수혁에게 긴장감을 줄 수준은 아니었다.
“이제 좀 쉬게 죽어라.”
계속 된 전투로 피로감이 쌓인 수혁이 성큼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고블린 족장이 자신의 몽둥이를 거세게 휘두르며 검에 맞부딪쳤다.
뽀각.
“으음? 내구성이 다했네?”
너무 많은 적을 베어내느라 내구성이 다한 고블린 전사의 검이 몽둥이와 부딪치자 검신이 부러졌다.
손잡이만 남은 검을 수혁이 바라보자 고블린 족장이 음흉한 웃음소리를 지었다.
“끅끅끅끅끅. 캬아악. 캬아악.”
“... 신났구만.”
기세가 오른 고블린 족장이 풀쩍 뛰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부-웅.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흑색 몽둥이에 담긴 힘을 짐작케 했다.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던 고블린 족장은 곧 새로운 먹잇감을 맛 볼 생각에 흥분했다.
턱.
수혁의 오른손이 고블린 족장이 휘두른 몽둥이를 통째로 잡았다.
이어서 왼쪽 손날로 곧장 몽둥이를 잡고 있던 손을 잘라냈다.
“께에엑!”
“시끄럽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고블린 족장의 잘린 팔뚝을 꺾으며 뒤로 이동한 수혁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콰득.
질긴 피부였지만 송곳니는 거침없이 뚫고 들어갔다.
목덜미를 물고 피를 빨자 고블린 족장은 몸을 부르르 떨다 미라처럼 말라버렸다.
[분노 시 힘이 미약하게 더 증가합니다.]
고블린 족장의 특성을 얻었다.
[최초로 노비스 등급 게이트를 공략했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추가 능력치가 1씩 증가합니다.]
[고블린 족장의 제법 단단한 몽둥이 : 신체 +2]
최초 게이트 공략 보상인 추가 능력치에 부러진 검 대신 족장이 쓰던 몽둥이를 얻었다.
촉감이 쇠처럼 단단하고 묵직해서 제법 쓸만해보였다.
레벨을 올리지 못했지만 제법 능력치를 쏠쏠하게 올렸다.
레벨 1을 올릴 때마다 능력치가 랜덤하게 오르는 것을 생각한다면 굉장히 빠른 성장이었다.
[Lv.0 등급(슈퍼 노비스)
- 신체 : 9 + ?? + (2)
- 마력 : 8 + ?? + (1)
- 종합전투력 : 17 + ?? + (3)
- 경험치 : 278/1000 ]
“게이트를 혼자 독점했는데도 경험치가 이렇게 부족하네.”
더 강해진 육체와 마력이었지만 전성기에 부족하면 아직 많이 부족했다.
남들보다 월등한 성장이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비록 약한 몬스터였지만 지속된 전투에 정신적인 피로감을 느낀 그가 탈출용 포탈로 향하려다 멈칫했다.
족장이 죽고 나자 허공에 균열이 생기며 탈출용 포탈이 나타났다.
문제는 푸른색의 탈출포탈 옆에 붉은 색의 처음 보는 포탈도 같이 생겨났다.
낯선 포탈의 등장에 수혁이 다가가 손을 접촉했다.
[슈퍼 노비스 등급의 게이트에 입장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자신을 위해 따로 마련된 게이트로 보였다.
노골적인 멘트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들어 와보라 이거지?”
그와 동시에 궁금증도 생겼다.
어느 정도의 난이도에 어떤 보상이 쥐어질지.
성장이 고픈 수혁은 고민을 끝내고 붉은 색 게이트로 들어갔다.
게이트 내부의 풍경은 방금 전에 깬 고블린이 잔뜩 나온 게이트와 똑같았다.
[최초로 슈퍼 노비스 등급의 게이트에 입장하였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단독으로 깨기 어려운 난이도입니다. 탈출용 스크롤을 제공합니다.]
[탈출용 스크롤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스크롤을 쓰지 않으면 추가 보상이라니. 너무 노골적인 유혹이잖아.”
묘한 기대감에 휩싸인 수혁은 몽둥이를 굳게 쥐어 잡고 나침반을 꺼내들었다.
빙글빙글 돌던 나침반이 곧 가운데 통로를 가리켰다.
통로를 지나가는 그의 앞길을 두툼한 근육질의 고블린들이 가로 막았다.
동굴 벽에 숨어있던 전과 달리 노골적으로 통로를 막고 무리 지어있는 형태였다.
게다가 피부와 눈동자가 피처럼 붉었다.
“홉고블린?!”
홉고블린은 일반 고블린에서 좀 더 진화한 형태로 하나하나가 고블린 족장과 맞먹었다.
슈퍼 노비스 등급이라더니 노비스 등급의 보스급 몬스터가 이곳에선 필드몬스터였다.
능력치가 일반 각성자보다 월등한 수혁에게도 제법 긴장감을 가질 만한 난이도였다.
뾰족한 손톱을 휘두르던 고블린들과 달리 묵직한 주먹을 쥔 홉고블린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꾸웨엑!”
수혁은 제일 먼저 주먹을 들고 오는 홉고블린의 머리통을 야구 타자처럼 있는 힘껏 쳤다.
깡!
마치 쇠와 부딪치는 경쾌한 소리였다.
단단한 몽둥이라더니 흑색 몽둥이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대신 홉고블린의 머리통은 찌그러진 냄비처럼 움푹 파이며 그대로 쓰러졌다.
홉고블린의 머리통에서 느껴지는 반발력이 상당했다.
“제법 단단하네.”
머리통과 몽둥이를 동시에 칭찬한 뒤 연이어 몽둥이를 휘둘렀다.
깡.깡. 깡.깡.깡. 깡.깡.깡.깡. 깡.깡.
어딘가 익숙한 애국박자가 들렸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흥이 오를 법한 소리였지만 몽둥이를 휘두르는 수혁의 미간이 조금씩 찌푸러졌다.
전성기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지금 수혁은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깡!
“꾸웨에엑-!”
“스물하나, 스물...둘.”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홉고블린이 또다시 쓰러졌다.
몇 마리의 홉고블린을 사냥하는지 숫자를 세어보던 수혁은 아직 통로에 꽉 찬 적들을 확인하고 메마른 입술을 혀로 할짝댔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니 갈증이 심하게 났다.
결국 몽둥이를 땅에 집어던진 수혁이 맨몸으로 홉고블린을 태클로 넘어트린 다음 그대로 몸을 포갠 뒤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았다.
홉고블린들이 다가와 수혁을 주먹으로 때리고 끌어당기며 동료의 몸에서 떨어트리려 애썼지만 피를 빠는 걸 멈추지 않았다.
“쿠웨엑! 쿠웩!”
당황한 홉고블린들 사이에서 피를 다 빤 수혁이 그대로 일어섰다.
미소 지으며 벌린 입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와 함께 홉고블린의 붉은 피가 턱으로 줄줄 흘렀다.
“시원~하네.”
서로 마주본 홉고블린의 입에서 겁에 질린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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