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너는... 쿨럭. 시발 쓰레기 새끼야... 좆같은... 쿨럭. 구제불능의 이기적인...... 더러운 박쥐새끼.”
누군가 자신에게 쉼 없이 욕을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똑같이 맞받아치며 욕을 할 수도 있고,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라며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욕을 듣는 수혁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욕을 하는 남성의 몸의 절반이 뜯겨져나갔기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좀 한다고 문제될 거 있나.
그가 그토록 들고 다니던 무기 엑스칼리버도 반토막 난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자신의 몸이 절반이나 없어도 끈질기게 살아있는 이유는 그간 쌓아올린 치열한 단련의 흔적이었다.
검성(劍城) 최지헌.
지구에서 가장 검을 잘 쓰는 사내
지금은 몸의 절반이 없어져 죽어가는 신세다.
“할 말은 그게 다인가?”
“뭐? 다냐고? 시발 당연히 아니지! 쿨럭. 쿨럭. 너 때문에 비비안도 죽었고, 이현 누나도 죽었고, 젠킨스도 죽었고, 죄다 죽었어!!! 허무하게... 너 빼고는...”
“글쎄... 난 동의 못하겠는데.”
“뭐?!”
고개를 젓는 수혁의 부정에 최지헌의 입에서 격렬한 피가 터져 나왔다.
“비비안의 마력량으로 거울여왕의 환상마법을 깨트리며 함께 폭사할 수 있었고, 박이현의 스피드로 거인 오보그의 이목을 사로잡아준 덕에 오보그를 죽일 수 있었지. 물론 박이현이 거인의 손에 깔려죽은 것도 있었지만, 그리고 어그로를 끈 젠킨스의 탱킹덕분에 무한에 가까운 키메라 웨이브를 버티다 키메라킹인 오즈보르까지 죽일 수 있었지. 도대체 어느 부분이 허무한 죽음이라는 거지? 전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거 같은데... 그리고 너까지. 네 덕에 용왕 코드러스까지 이렇게 잡았지. 잘했다. 검성.”
수혁의 뒤로 이빨 하나하나가 몸보다 큰 거대한 붉은 용이 목이 잘린 채 쓰러져있었다.
잘린 목에서 용암처럼 시뻘건 붉은 피가 흐르며 그의 발밑을 적셨다.
모두들 각자 최선을 다했기에 지구의 운명을 건 탑을 정복했는데 왜 저렇게 불만인지 모르겠다.
“푸흡... 시발. 전부 살 수 있었어... 잘난 네가 조금만 더 움직였다면 말이지... 네가 마력량도, 스킬도, 무기도 전부 뛰어난데 왜 죽을 때까지 움직여주지 않았냐! 쿨럭.”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이었다. 게다가 혹시나 모를 변수를 대비해야 하는 걸 탑의 정상에 오른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나보군.”
“재수 없는 새끼. 지밖에 모르는 새끼.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그거 들고 내 눈에서 어서 꺼져버려.”
손에 들려있는 코드러스의 심장, 무한의 마나를 얻을 수 있다는 드래곤하트를 검성에게 줄까 생각해봤다.
그러나 팔, 다리도 없이 다 죽어가는 그가 드래곤하트를 먹고 살아난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트롤의 피를 들이부어도 잘린 팔 다리가 돋아나기 전에 죽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이 흡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그를 뒤로하고 수혁은 발걸음을 옮겼다.
코드러스를 잡자 이 뜨거운 용암 대지를 벗어날 수 있는 포탈이 열렸다.
으적. 으적.
코드러스의 심장을 씹자 농축된 용의 피가 그의 입 안으로 들어왔다.
인간과 다른 한계를 잴 수 없는 강대한 마력량이 수혁의 몸으로 쏟아졌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마력량 만으로도 육체의 붕괴를 일으키겠지만 수혁은 달랐다.
상대방의 피를 일정이상 빨면 능력을 오롯이 흡수하는 것.
그것은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한 수혁 그만의 권능이었다.
최악의 흡혈귀, 노스페라투를 죽이고 얻은 그 권능덕분에 지금껏 살 수 있었다.
‘봉인이 풀리기 전에 죽일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노스페라투의 심장을 찌르고 그의 피를 뒤집어쓰며 사실상 흡혈귀와 같은 존재로 변해버린 그는 지구의 악명 높은 수배자 중 하나였다.
비록 그가 나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헌터들만 잡아먹었다고 하나 그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를 노리는 헌터들이 늘어났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 때문에 전 세계의 헌터들이 그를 잡기 위해 안달이 나있었다.
그런 그에게 동료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탑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태평양 한 가운데에 뜬금없이 생긴 탑에는 지구의 운명이 걸려있었다.
탑을 정복하지 못하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메시지를 모두 받게 되었고, 가장 강한 헌터들이 탑으로 모여들었다.
결국 강자로 꼽힌 수혁 역시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이 탑에 올랐고 결국 살아남은 건 그뿐이었다.
그래도 동료들이라고 그들을 잡아먹지는 못(?)했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잡생각이 많아졌군.”
포탈을 통과하자 마치 우주선에서 보는 풍경처럼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푸르른 지구의 모습이 보였다.
유리창 옆에 백색의 화면에 여러 글자가 떠올랐다.
[AWP-121행성의 발전 프로세스 결과를 확인합니다.]
[마력포화량 100%, 마력감응력 100%, 마력응용력 100% ......]
[시험을 통과하신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마지막 최종 절차로 개별인증 부탁드립니다.]
바닥에서 손바닥을 올려놓을 동그란 하얀 기둥이 5개가 올라왔다.
수혁이 손을 올려놓자 화면에 글귀가 바뀌었다.
[3%... 5%... 17%...... 20%...... 인증을 치루기 위한 진화인자가 부족합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인증을 치루기 위한 진화인자가 부족합니다. 시험을 통과하신 분들은 개별인증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긴 나밖에 없는데?”
그가 보고 있던 화면에서 위험을 알리는 경보음이 울렸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인증을 치루기 위한 진화인자가 부족합니다. 인증이 완료되지 않는 경우 진화부적합으로 판단되어 소거절차에 들어갑니다. 다시 한 번...]
“이런 시발.”
수혁이 다급히 포탈을 빠져나가 이미 죽은 최지헌을 어깨에 짊어지고 왔다.
하나 남은 최지헌의 손을 기둥 위에 올려놓았다.
[20%... 25%... 30%...... 인증을 치루기 위한 진화인자가 부족합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인증을 치루기 위한 진화인자가 부족합니다.]
“... 진화인자가 대체 뭔데? 사람이 더 필요해?”
허탈한 수혁에게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화면에서 울린 경보음은 점점 커져갔다.
[진화인자 부족으로 AWP-121행성은 발전 부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소거 절차에 들어갑니다. 5... 4... 3... 2... 1...]
굉음과 함께 저항할 수 없는 막대한 에너지가 수혁의 몸을 덮쳤다.
그의 눈앞이 온통 새하얗게 변하며 곧 의식이 없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