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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161화 (161/161)

161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무림맹 일행이 떠나자마자 연사구는 눈을 흘겼다.

“야! 너무 대놓고 긁은 거 아냐?”

“속을 모르겠으니 그래 본 거지.”

“그래서? 뭐 좀 알 거 같아?”

“저자들, 군사부에서 반대했으면 이렇게 오지 못했겠지?”

연사구의 눈이 번득였다. 자신도 꺼내려던 말.

“당연하지. 어쨌든 소문 조작에 제갈이 관여한 건 확실해 보여. 근데 그 의도가 헷갈린단 말이지. 저자들 말대로 천마교와 혈교를 흔들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게 있는지.”

아직은 조심스러운 추측.

“청해 그놈들과 선이 닿았다면?”

“솔직히 내 촉도 그렇기는 한데 속셈이 뭔지, 누가 어디까지 관여됐는지 아직 모르잖아. 지금 제갈 전체를 싸잡아 의심하는 건 좀 그래.”

“그건 더 알아봐야지. 하여간 이렇게까지 할 일이 아닌데 저런다는 건, 뭐가 있는 거겠지.”

연사구의 미간이 좁혀졌다. 어쨌든 저들의 태도로 보아 확실히 짐작 가는 게 있다.

“근데 걱정이다. 도천 기록 가지고도 저러는데 회고록 공개는 어떻게든 막으려고 할 텐데. 넌 그만둘 생각 없잖아?”

답은 바로 나왔다.

“없지.”

연사구는 피식 웃음이 흘렀다. 이미 예상했던 반응.

‘이 일엔 물러설 놈이 아니지.’

무림맹, 특히 군사부와는 척을 질 게 빤한 일. 하지만 너무도 잘 안다. 무윤이 이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래도 상대는 무림맹을 대표해 온 자들.

지금은 조언할 때다. 뒷감당은 돼야 하니까.

“이럴 땐 안 부딪치는 게 최고야. 그동안 어디 가 있든가.”

공식적으로 도백 유진과 회고록을 알리기로 한 건 닷새 후.

“여길 떠나는 건 좀 그렇고, 뒷산에 처박혀 있으마.”

“그게 좋겠다. 그 일도 있는데 연락하기도 좋고.”

연사구와 둘이 은밀히 준비하는 게 있다. 형산 발표 자리에서 같이 알릴 일이.

“정리하고 바로 갈게.”

“그래라.”

그날 밤, 하오문 지부 후원.

하늘 높이 흩어진 별빛이 제 빛을 드러낼 즈음.

후원 담 위에 선 이의 무복 자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휘이익!

일체의 움직임 없이 장원 안쪽을 응시하길 잠시, 짐을 꾸려 나오던 무윤이 천천히 다가갔다.

담 위에 모습을 드러낸 채 기운 또한 감추지 않은 자. 얼핏 살핀 것만으로도 초절정 끝인데 이런다는 건.

“절 찾아오셨습니까?”

무심한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잠시 흘렀다.

“월운비영(月雲飛影)이 맞는가? 그리 보이긴 하네만.”

“내려오시지요. 조용히 나눌 이야기 같은데.”

“그러지.”

말이 끝남과 동시, 사뿐히 담을 내려선 신형이 잔잔히 불어온 실바람과 함께 표홀히 땅에 내려섰다.

사라락! 타악!

무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실력이야 이미 짐작했지만, 날린 무복 자락 가득 부드럽게 넘실거리는 건.

‘도기(道氣)!’

은연중에 자신을 알릴 의도가 분명했다.

“도가의 분이시군요.”

“이 걸음은 현천보(玄天步)라 하네. 들어 보았는가?”

현천보는 제운종과 함께 어떤 문파의 대표적인 신법.

“……무당!”

예기치 못한 손님이 지그시 미소 지었다.

“그러네. 난 현무라 하네. 장문 사형께서 날 보내셨지.”

“죄송합니다. 제가 견식이 짧아서 대명을 못 들었습니다.”

“아닐세. 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네. 어디나 조용히 움직일 사람이 필요하잖나. 소싯적에 장문 사형 꼬임에 빠져 여태 이리 살고 있다네.”

“그러셨군요. 한데 저는 왜?”

“중한 얘기라 장문인께서 날 보낸 걸 증명부터 하겠네.”

현무는 소림의 각운을 통해 전달받은 진경 내용을 몇 개 읊조렸다. 은밀히 장문인에게 전한 것이니 이것만큼 무윤이 믿을 수 있는 게 없다.

“더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

“그런가. 아! 우선 귀한 진경을 전해 줘서 고맙다고 언제든 들러 달라 하셨네. 내 보기엔 전할 게 남았다고 하니까 빨리 보고 싶으신 게지. 물론 자네도 궁금하고.”

이러면 더 끌 이유가 없다.

“형산파 발표 자리에 오시면 드리려고 했는데, 가지고 가시겠습니까?”

“오! 여기에 있는가?”

“예.”

“허허! 마음이야 그러고 싶지만, 그때 주시게. 귀한 것일수록 예를 갖춰 받아야지.”

“알겠습니다. 한데 무슨 일로?”

현무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장문인의 명을 받아 묻고 청할 게 있어서 왔네.”

“어떤?”

“자넨 그 도천의 자료가 신빙성이 있다고 보는가? 여휘란 자가 남긴 무공은 없다는 거 말일세.”

“전 확신합니다.”

“그 또한 여러 기록 중의 하나인데, 어찌 그리 여기는가?”

“더 확실한 자료도 있습니다.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기록이죠.”

현무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런 게 있다고? 혹 보여 줄 수 있는가?”

“그러죠. 마침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후, 몇 번이나 내용을 세세히 살핀 현무는 기다란 숨을 몰아쉬었다.

“허허! 이리 자세한 회고록이라니. 자네가 그럴 만하군.”

“한데 그게 왜 궁금하신 건지?”

현무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자네만 알았으면 하네.”

“그러겠습니다.”

“최근에 신강과 청해에서 우리 세작들이 전한 정보가 있네. 여휘의 천마신공이 있는 장소, 그게 담긴 장보도가 돌아다니는데 그 위치가 호북 의창의 북쪽 산 어디라는 게야.”

무윤의 눈이 번득였다.

‘여휘의 무공을 천마신공이라 했다면! 조작 세력 같은데?’

현무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천마교에서 그곳으로 올 움직임이 있다네.”

무윤의 눈이 커다래졌다.

“……진짜로 본다는 말입니까?”

“저들도 가짜라 보는 거 같네. 진짜였다면 우리 세작이 알 정도로 소문나게 두지 않았겠지. 무슨 뜻인지 알겠지?”

진짜라 확신했다면 소수를 보내 은밀히 찾는 게 맞다. 한데 가짜인 걸 알면서 소문이 커지도록 놔둔다는 건, 다른 목적이란 뜻. 바로 떠오르는 게 있다.

“중원으로 들어올 명분입니까?”

“우린 그렇게 본다네. 천마의 유진은 저들의 자존심 아닌가. 그걸 찾으러 가자는 소리가 커지는데 수뇌부가 방관하고 있어. 그 뜻이 뭐겠는가.”

상황이 그렇다면 달리 생각할 게 없다. 혈교와 달리 전혀 움직이지 않던 천마교까지 남하한다면. 그것도 중원의 한가운데인 호북까지.

‘강호 대전!’

이러면 바로 물을 게 생긴다. 신강에 가장 많은 세작을 보내는 집단이 모를 리 없는데.

“무림맹도 알 거 아닙니까?”

“분석이 달라. 전면전 의도는 아니라고 본다네. 매번 그랬듯이 내부 불만 세력을 정리하는 도발 정도에서 그칠 거라는 게지. 또 지금 전쟁 중인 혈교를 돕는 셈이니 그럴 리 없다는 거고.”

“그래도 대비는 해야 할 텐데?”

현무는 속 깊은 한숨을 흘려 냈다.

“이미 대세는 지켜보자는 쪽으로 모였네. 설사 침공하더라도 그때 대응해도 이길 수 있다는 게지.”

“사전에 막을 생각이 없다? 물론 자신감에 그럴 수 있긴 한데, 정말 그것뿐입니까? 혹 전쟁을 바란다거나…….”

잠시 머뭇거리던 현무는 작심한 듯 말을 풀어 냈다.

“천마교가 호북으로 오는 길엔 대부분 구대문파가 위치하지. 우리 무당은 물론 하남에 있는 소림도 지척이고. 한데 서북에서 멀리멀리 떨어진 곳이야 다급할 이유가 없지. 또 자네 말대로 전쟁이 터지면 반사이익도 있을 것이고.”

이럴 땐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야 한다.

“제갈도 그쪽이겠군요?”

“오대세가 모두 같은 입장이네. 다들 멀리 떨어진 것도 있고, 최근 마공 사건 때문에 엄청 공격받고 있는데, 전쟁이 터지면 잠잠해지겠지.”

제갈정현의 속내가 이제야 확실해졌다.

‘내 자료가 퍼져서 중론이 되면 천마교가 준동할 명분이 없어지지. 그걸 막으려는 거야.’

심중이 굳어지자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다.

‘하여간 제갈, 이 새끼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네.’

천 년 전 중원 대 혈전의 시작도, 척고련이 중원을 침공할 것처럼 헛소문을 퍼트린 제갈 놈들 때문이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아쉬움 하나가 가득 올라온다.

‘그때 여휘 말대로 다 죽여 버릴 걸 그랬나.’

그걸 말린 게 자신인데 오늘따라 후회막급이다.

그때 현무의 난처한 눈빛이 무윤을 향했다.

“장문인께선 무림맹이 자네에게 압박을 넣을 거라 하셨지. 해서 발표하지 못할 상황이면 우리가 대신할 테니 자료를 청해 보라고 하셨네. 가능하겠는가?”

무윤은 싱긋 웃음으로 답했다.

“드리겠습니다. 양쪽에서 터트리면 더 효과가 크겠죠.”

“자네도 한다고? 저들이 뭐라 안 하던가?”

“괜찮습니다. 반대하건 말건 회고록까지 다 밝히겠다고 이미 통보했으니까요.”

“허허! 정말 그랬는가? 그러다 미운털이 박히면 어쩌려고?”

이참에 넌지시 무당에 알릴 필요도 있다.

“전 강호에 관심 없습니다. 맘대로 하라고 하시죠.”

미래의 천하제일인이 될지도 모르는 자가 강호에 뜻이 없다니. 현무는 에둘러 물었다.

“그래서 이제껏 감췄던 겐가?”

“스승님 유훈 때문에 잠시 발을 들였을 뿐입니다. 도백 유진을 전하고 한두 개 일만 더 끝내면 침주에서 상인으로 살 겁니다. 물론 절 안 건드린다면.”

무윤이 이제껏 벌어졌던 일과 생각을 풀어 내자, 현무의 질문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길 한참 현무의 심유한 눈빛이 상대를 향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진심이야. 하나! 세상이 자네를 놓아둘지 모르겠군.’

그래도 한 가지 부담은 확실히 덜었다. 세상을 어지럽힐 자는 아닌 게 확실하니. 그 마음 담은 은은한 웃음이 만면에 흘렀다.

“소림 각운이 그러더군. 자네와 이것저것 떠들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무당에 한번 오시게. 좋은 차를 준비해 놓지.”

“알겠습니다. 참! 도천 자료와 회고록 필사본이 수백 권 있습니다. 시간이 급한데 많이 가져가시죠.”

“응? 수백 권이나?”

연사구가 열흘 전부터 형주의 학관 서생들에게 은밀히 필사를 맡겨 놓았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 그게 확실해서 준비했습니다.”

“그런가. 그거 잘됐군. 챙겨 주시게.”

“참! 어떻게 알리실 건지?”

“장문 사형께서 직접 강호에 천명하실 것이네.”

“……!”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말이 딱 맞는 상황. 흐뭇한 미소가 절로 올라온다.

‘내가 발표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지.’

무당은 강호 도문의 종주이자 세인들이 우러러보는 곳. 거기에 소림과 함께 정파의 두 축 중 하나. 그 장문인이 직접 나선다면, 확산 속도는 물론 진위 논란도 현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초 최종 목표도 소림과 무당을 설득해 그들의 이름으로 알리는 것이었는데. 이러면 큰 흐름에서는 해결이나 마찬가지.

‘시간이 문제일 뿐, 악마의 굴레는 벗어 버릴 수 있겠어.’

물론 아직 처리할 게 남아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마무리는 언제나 중요한 법이니까.

나흘 후, 형주 무림맹 지부.

무림맹 호천대주 염수찬의 한숨이 깊어져 갔다.

“제갈 각주, 어쩌시겠소? 아무래도 월운비영은 내일 형산 발표 자리에나 모습을 드러낼 거 같소만.”

첫 만남 이후 무윤은 종적을 감춘 상황.

제갈정현은 착잡한 미소가 떠올랐다. 가장 아쉬운 것.

‘상대가 그자인 줄 알았다면 이리 오진 않았는데.’

당초 협상 상대는 도천의 자료를 가진 연사구. 해서 충분히 압박할 정도의 병력이라 여기고 온 것인데.

‘회고록에다 절대자라니! 하!’

차선책으로 맹의 이름으로 압박하는 것도 종적을 감춰 버렸으니, 사전에 막을 대책은 물 건너갔다.

이제 남은 건.

‘발표 자리에서 막아 보고 안 되면!’

또 다른 방안을 떠올렸다.

‘명분을 만들어서 맹으로 데리고 간다. 회고록엔 각 무가가 불편해할 내용이 많아서 다들 압박하는데 동의할 게야.’

내용 중에 특정 문파를 나쁘게 몰아간 부분은 없다. 다만 그 흐름은 중원 대결전의 상당 부분이 중원 무가 책임으로 인식되게끔 기술되어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싶은 무가는 단 하나도 없을 테니까.

제갈 정현의 묵직한 숨이 심중의 결심을 알렸다.

‘어떻게든! 그리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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