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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158화 (158/161)

158화

허공을 가르는 신형에 대기가 이지러졌다.

쉬이익!

순식간에 무리 사이로 접어들 찰나, 성월문 장로 낙교천은 불안을 떨쳐 버리려는 듯 악을 바락 썼다.

“그래 봤자 놈은 하나야! 물러서지 말고 공격해라!”

“…….”

하지만 어떤 대답도, 먼저 나서는 자도 없다. 무인이면 누구나 아니까.

‘시팔! 화경인데 공격은 무슨! 먼저 나서면 무조건 뒈지지.’

절대고수를 상대할 때의 불문율.

‘무조건 뭉쳐서 버틴다. 그게 살길이지.’

공격 명령은 뭉개 버렸지만, 살기 위한 움직임은 신속했다.

파팟! 타탓! 휘릭!

“합진!”

“빨리 붙으란 말이야! 이 새끼야!”

“간격을 좁혀!”

일사불란한 백오십이 진영 중앙에 방진을 형성하자, 나머지 무인들은 뒤로 물러났다.

사사삭!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지만, 우선 강 건너 불구경부터 할 때. 절대자의 무위를 보는 건 평생 있을 까 말까 한 기회니까.

또 정중히 예의를 갖췄던 걸로 봐서 적이라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때 조밀한 간격 사이로 짓쳐 드는 몸놀림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저길 파고든다고?”

“못 들었어? 저자 별호가 왜 월운비영(月雲飛影)인지.”

“왜?”

“주먹만 써서 순식간에 백오십 마인을 쓰러트렸는데, 달빛에 날아다니는 그림자만 보였다고 하더군.”

“크크! 그래? 그런 이 한낮에는 어떻게 보일까?”

“보면 알겠지.”

모두의 날카로워진 눈빛이 활활 타오를 즈음.

백색 무복 자락이 칼날에 스칠 듯 가까이 휘날렸다. 어스름 하얀빛 서린 주먹이 햇살을 가르던 순간.

나비의 날갯짓처럼 흐느적거리던 권격이 중첩된 칼날 사이를 파고들었다.

슈우욱! 쇄애액!

팍!

“컥!”

열 가운데 있던 무인 하나가 땅을 뒹굴었다.

투욱!

옆에 있던 자의 몸은 허공에 붕 띄워졌다가 뒷덜미를 낚아챈 힘에 땅에 처박혔다.

휘릭! 쿠웅!

“크윽!”

팍팍! 퍽!

“크악!”

“케엑!”

연이어 하얀빛을 감싼 주먹이 무리 사이에 너울거렸다.

슈우욱! 쇄애액! 빠각! 퍼억!

“우욱!”

“켁!”

바람 탄 몸놀림이 칼날 사이 공간을 자유롭게 누비자, 볼품없이 나자빠지는 자가 하나둘 늘어났다.

툭! 투욱! 털썩!

사지를 뻗고 땅에 박혀 버린 자, 바닥을 나뒹구는 자, 입에서 왈칵 피 분수를 쏟아 내는 자, 반탄력에 밀려나 처박히는 자, 거친 기침과 함께 울혈을 토하는 자.

앞선 무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자, 장로 낙교천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 막아라!”

하지만 물 흐르듯 무리 사이를 헤집는 신형엔 거칠 것이 없었다.

휘리릭! 사사삭!

허공엔 마치 소맷자락이 날아다니듯 주변을 휩쓸었다. 잔상이 빛에 반짝일 때마다 여기저기서 연이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퍽! 파팍! 빡!

“크윽!”

“캑!”

“우욱!”

부드럽고 빠른 손이 수십 개의 잔영과 함께 휘날렸다.

휘리릭! 사삭!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무사들을 쫓았다. 그렇게 한 줄기 바람이 앞선 무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물러서라는 명령이 없었어도 본능이 시킨 뒷걸음질은 물결처럼 번져 나갔다.

이천 명의 눈은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부릅떠졌다.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다.

“저, 저게……!”

“이, 이게 말이 돼?”

“저게 사람이야?”

“벌써 몇 명째야?”

“서른 명이 넘었어!”

“보, 보게. 성월문 놈들 다 넋이 나갔어.”

“이러면 다 저 꼴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지.”

용중문 대주 탁염의 떨리는 시선이 육도명을 향했다.

“장로님! ……어떻게?”

“……지켜보세나. 죽이진 않고 있으니.”

“……!”

뼈가 부러지고 바닥에 널브러져 토악질을 해 대도, 축 늘어진 자는 단 하나도 없다. 적으로 규정할 선은 넘지 않은 상황.

육도명의 착잡한 시선은 뚫어지게 한곳을 향했다. 선명한 칼날이 간발의 차이로 몸을 휘감길 수십 차례. 하지만 유유한 흐름엔 거칠 것이 없다.

‘허! 주변 흐름에 일체화하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한 움직임이거늘! 저래서 절대자란 건가?’

바람의 흐름 따라 그저 휘젓는 모양새인데, 그 손길 한 번에 한 명씩 바닥을 쓸어 간다. 그 안에 숨은 힘은 가히 바위를 부술 듯 강맹할 건 당연지사.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몸놀림에, 폭풍과 같은 기의 파동과 흙먼지가 해일처럼 무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어느새 쓰러진 자는 칠십 가까이, 남은 성월문도는 이미 겁에 질려 전의를 상실한 상황.

놀란 가슴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또다시 떠오른 의문이 육도명의 시선을 힐끔거리게 했다.

‘정말 저자가 그런 마인일까?’

무윤이 성월문을 공격하기 전 보낸 전음이 있다. 극마지경의 마인이 성월문도 사이에 숨어 있다고. 또 그게 누군지도.

-정말 저자가 맞는가?

-잠시 후면 드러날 일 아닙니까?

이런 속임으로 무윤이 얻을 게 없다. 우선 믿고 볼 일.

-뭘 어찌하면 되겠나?

-언제 빠져나갈지 모르니까, 절 잡는다는 핑계로 사방을 둘러싸시죠.

-알겠네.

그렇게 귀주 무가 대표들에게 전음을 보내고 지켜보면서도 전적으로 믿진 못했는데. 남몰래 주시하던 성월문주 낙종기의 초조한 시선이 자꾸 마인이란 자를 향한다. 가면 갈수록 더.

‘문도들이 다 나자빠지고 있는데 저런다는 건!’

의구심이 확신으로 바뀌자 모든 대표에게 전음을 보냈다.

-성월문에 마인이 있는 게 확실하네.

-……그리 보십니까?

-은밀히 주변을 둘러싸되 신중해야 하네. 천 공자 말로는 극마지경의 고수로 보인다 했으니.

-헉! 그게 정말입니까?

-문도들에겐 그냥 천 공자를 잡는다고 하시게. 놀란 기색이 보이면 눈치챌 걸세.

-알겠소이다.

그때 주변을 살피던 잠혈노군 녹문기는 착잡한 미소를 그대로 흘려 냈다.

‘크크! 어쩐지!’

자신 쪽을 힐끔거리는 육도명과 갑자기 긴장과 불안이 더해진 귀주 대표들. 또 이곳으로 조여 오는 포위망.

자신의 존재를 알아챈 게 분명했다.

짜증으로 더 가늘어진 눈은 허공에 혼자 날뛰는 불청객을 향했다. 이젠 확신이 돼 버린 추정.

‘저놈이 알렸어.’

좁혀졌던 미간이 더 조밀해졌다. 도망갈 방안에 집중해야 할 때지만, 정말 궁금했다. 너무나.

‘날 어떻게 찾아냈지?’

순간 허공을 거침없이 누비던 신형이 돌연 방향을 틀어 대지에 발을 디뎠다.

휘릭! 터억!

급격히 마인의 기운이 달라졌다는 건.

‘눈치챘어.’

이러면 더 위장할 필요가 없다. 둔중한 일 보의 진각이 앞을 향했다. 의아함 가득한 시선을 피하지 않는 자에게로.

쿠웅! 휘리릭!

무리의 이치를 가득 품은 백색 안광이 마인의 전신을 훑어 댔다.

사아아!

그렇게 말없이 주시하길 잠시,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심사가 무윤의 입가를 스쳐 갔다.

“널 갈기갈기 찢어발겨야 아이들 원혼이 편해지겠지?”

“이런! 찢어 버리다니. 이 몸에 원기가 남아 있거늘. 더 아파할 걸세.”

무윤은 흘릴 수 있는 가장 섬뜩한 미소를 입가에 담았다. 가슴의 한기를 그대로 담아 주저리주저리 씹어뱉었다.

“흡혈 마인이 그런 것도 모르나? 손발톱부터 뽑고 손 마디마디는 하나씩 잘라 내고, 살은 아주 얇게 포를 떠서 파 들어가다 내장까지 다 발라내면 한 서린 원기는 아주 편하게 하늘로 가는 법인데.”

녹문기는 귀찮은 듯 손을 내저었다.

“그거야 능력 되면 알아서 하고. 근데 날 어떻게 찾아냈지? 나름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다른 귀주 무인 때문에 상세히 답할 일. 성월문이 마인을 도왔다는 걸 알려야 하니까.

“성월문 내원 숲속 동굴에 흔적이 그대로 있다고 하던데. 뒤처리를 깔끔하게 했어야지.”

짜증 섞인 분노의 시선이 문주 낙종기를 스쳐 갔다. 어이없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후! 머저리한테 맡긴 내 실수군.”

이제 귀주 무인들에게 경고할 시점.

“나도 하나 묻지. 극마지경인 놈이 그 촌구석에 왜 숨어 있었지?”

“내 맘이지.”

스스로 마인임을 시인하는 말.

절로 부릅뜬 두 눈이 모두의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격앙된 목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뭐야! 정말 마인이었어?”

“허! 자기 입으로 털어놨는데 사실이겠지.”

“그럼 아이들을 죽인 것도?”

“당연하지. 한데 방금 극마지경이라 하지 않았나?”

극마지경은 화경의 경지.

“헉! 그러고 보니!”

준비하고 있던 용중문 육도명의 고성이 사방에 울렸다.

“모두 물러서서 포위망을 구축하시오!”

“허! 극마지경 마인이라니 그리합시다!”

“성월문도는 따로 포위합시다!”

“당연히 그래야지. 문주도 당장 포박하시오!”

포위망은 더욱 조밀해진 상황. 한데 잠혈노군 녹문기의 알 수 없는 미소는 더욱 짙어져 갔다.

‘간격을 더 벌려 주면 고맙지.’

겹겹이 둘러싸되 무인들은 십여 장 너머로 물러섰다.

물론 극마지경의 고수라도 이천 무인의 포위망을 뚫는 건 장담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이제껏 수많은 위험에서 자신을 구해 준 비기가 있다.

‘암혈지둔공(巖穴地遁功)이면 빠져나갈 수 있다.’

땅을 뚫고 들어가 도망은 물론, 며칠이고 기식대법으로 땅속에 숨어 있을 수 있는 구명절초. 이미 무른 땅까지 파악해 둔 상황.

자신이 잠혈노군인 걸 모르는 이상, 적절히 대응할 놈도 없다.

이제 궁금증을 풀기만 하면 끝.

‘내 기운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지금까지 들은 걸로 보면 놈은 분명 여기 와서 자신을 확인했다.

천마교도였던 시절, 교도의 아이들을 몰래 잡아 흡혈하다가 들키고 도망 다닌 지 어언 이십 년.

자신의 혈수마연공은 금기의 마공답게 극강의 무공이지만, 외부로 뻗치는 기운 탓에 쉽게 노출된다.

그 마기를 철저히 감춰야 천마교 추적에서 완전히 벗어나기에, 지난 삼 년 성월문에서 그 노력을 했던 것인데. 수십 장 떨어진 거리에서도 놈이 알아봤으니.

“망자(亡者)의 기운은 물론 사기(邪氣)까지 다 털어 냈다 여겼거늘, 어떻게 알았지?”

무윤은 기도 안 찬 실소가 절로 흘렀다.

“그 짓을 해 놓고 다 털어 내길 바란다? 하! 할 말이 없네.”

“특이한 기공을 익혔나?”

받았던 말을 그대로 돌려줄 때.

“능력 되면 알아보든가.”

“……!”

절대자 간의 싸움이 예고되자 이천의 무인은 삼십 장 너머로 훌쩍 물러섰다. 동그란 원형으로 사방을 에워싸고는 서로 수군거렸다.

“야!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그러게.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누가 이길까?”

“그래도 천 대협이 유리하겠지. 우리가 있는데.”

“하긴! 저 마인 새끼야 이겨 봤자 다음엔 우리가 있는데 초조하겠지.”

사천 개의 초롱초롱한 눈이 반짝일 즈음, 녹문기의 도가 먼저 하늘로 향했다.

쉬익!

금세 시린 칼날이 섬뜩한 핏빛 도강을 우려내자, 폭풍과 같은 기의 파동이 해일처럼 허공을 휩쓸었다.

우우웅! 위이잉!

허공을 가득 메운 검붉은 강기가 바람 소리를 더해 회오리쳤다.

휘이잉! 화라락!

한데 중첩된 힘이 실린 도광이 번뜩이며 포효하는 순간, 무윤의 차가운 눈매가 살짝 흔들렸다.

‘응? 왜?’

서로의 간격은 십 장 정도. 한데 짓쳐 들기도 전에 극성으로 끌어올린 강기의 정수를 뿜어내다니.

의아함에 바라보던 순간, 녹문기의 도강이 향한 곳이 답을 알렸다.

슈우욱! 쾅! 콰쾅!

솟구친 도강이 내리찍힌 곳은 바로 앞의 대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진 신형에서 카랑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못다 한 승부는 다음에 하자꾸나! 크크!”

“……!”

순간 섬전처럼 내달리며 쏘아낸 무윤의 권강이 구덩이를 헤집었다.

쿠쿵! 콰앙!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이미 땅속 깊숙이 놈은 사라져 버렸다.

그때 연사구의 고성이 좌중에 울렸다. 누군지 감이 왔다. 천마교는 물론 강호 전체의 공적으로 올라 있는 극마의 마인.

“잠혈노군 녹문기다! 지둔술로 저렇게 도망갈 놈은 그 새끼뿐이야!”

“……!”

순간 멍해진 머리엔 분노와 허탈함이 동시에 밀어닥쳤다. 독 안에 몰아넣은 줄 알았던 쥐였는데, 갑자기 닭 쫓던 개 신세가 돼 버렸으니.

하지만 이내 머리를 휘저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땅속에 있어도 심장은 뛰기 마련, 확신할 순 없지만 신기심의공 기운으로 찾아볼 여지는 있다.

바로 대지에 기운을 흘려 살피려던 찰나.

뇌도문 소문주 장도윤이 소리쳤다.

“포기하긴 이르네!”

“……?”

급히 달려온 양쪽 대표들과 논의하길 한참, 고개를 끄덕인 이들이 각자 진영으로 돌아갔다.

아직 쥐 몰이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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