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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157화 (157/161)

157화

용중문 육도명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건 천인공노할 짓이지.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한데 그 얘길 갑자기 왜 하는 겐가?”

그때 귀주 측 진영에서 누군가 황급히 달려왔다.

파파팟!

“육 장로님! 잠시 와 보셔야겠습니다.”

“여기 마무리가 안 됐네만.”

“우선 가시죠.”

“……?”

육도명이 진영으로 돌아가자, 뇌도문 장천상은 그동안 참았던 한숨을 한꺼번에 몰아쉬었다.

“허! 전쟁이라! 이젠 피할 수 없겠구먼!”

다급한 화검문주 홍재율의 시선이 무윤을 향했다. 절대자는 무조건 잡아야 할 패니까.

“이보게. 우릴 도와주게. 원하는 건 뭐든 해 주겠네.”

무윤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기다려 보시죠. 뭔가 달라지는 게 있을 겁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린가?”

“오다가 소문을 들었는데 귀주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게 저쪽에 전해진 모양이네요.”

“……?”

연사구와 입을 맞춘 대로 말을 전하자, 두 사람의 입에 함지박만 한 웃음이 걸쳐졌다.

“하하하! 그런 일이 생기다니, 우리에겐 천운이 따로 없구먼!”

“안심하긴 이릅니다. 당한 문파들이야 돌아가고 싶겠지만 다른 덴 이 싸움부터 끝내고 싶을 겁니다. 언제 또 이렇게 병력을 모으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럼 병력부터 뒤로 물리겠네. 저들이 급한 건 시간이니, 우리가 전면전 생각이 없다는 걸 확실히 보이는 게 좋겠어.”

“그러시죠.”

들판 너머 산 능선으로 병력이 이동할 즈음, 무윤은 화검문주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혹시 조금 더 양보하는 건 불가합니까?”

화검문주 홍재율은 묵직한 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협상으로 저들이 받아들일 건 이문 조정뿐일세. 하나 이번 제안도 어렵사리 합의한 것이라 더는 어렵네.”

무윤이 말을 꺼낸 이유가 있다. 닷새 동안 이곳을 살피면서 의아했던 것. 물론 말은 돌려서 해야 한다.

“근데 듣자 하니 귀주와 회하(怀化) 사이에 산채가 많다던데 통행세도 만만치 않겠네요?”

“그 또한 큰 부담이지.”

“그럼 왜 산채를 그냥 둡니까? 거긴 녹림에 속한 곳도 아니던데.”

“귀주와 우리가 적대시하다 보니, 그 사이가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지역이 돼 버렸네. 그 세월이 쌓이다 보니 하나둘 산채가 늘어나 이리된 게지. 휴! 이젠 너무 커 버렸어.”

“어느 한쪽에서만 토벌하면 피해가 커지니까 서로 못 나선 거네요?”

“그렇지. 없앨 맘이야 굴뚝같네만 그러다 언제 귀주가 쳐들어올지 모르니 나설 수 없었지. 저쪽도 그럴 것이고.”

그때 용중문 육도명이 다시 돌아왔다. 하오문도에게서 이미 이쪽까지 말이 전해졌음을 들었다.

“크흠! 일이 복잡하게 되었소.”

“허허! 가 보셔야 하지 않겠소이까?”

“내 본문의 이름을 걸고 솔직히 말하리다. 의견이 두 개로 갈렸소.”

“어떤?”

“아까 제안에 조금 더해 주면 물러나자는 쪽과 그냥 공격해서 승부를 보자는 쪽이오. 어찌하시겠소?”

화검문주 홍재율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이문 조정은 더는 어렵소이다. 뭐 싸우겠다면 우리는 시간을 끌 수밖에 없고.”

“싸우자는 의견이 더 많소. 그리 결정되길 바라시오?”

“아니기에 최대한 끌어낸 게 그 조건이오. 더는 어쩔 수 없소이다.”

“알겠소. 이제 결정이 어찌 나건 원망하지 마시오. 난 최선을 다했으니.”

“우리 입장을 잘 전해 주길 바랄 뿐이오.”

육도명이 굳은 표정으로 물러날 찰나, 무윤이 껴들었다. 전쟁으로 치닫는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패를 꺼낼 때다.

“아까 하던 얘기는 마저 끝내시죠.”

“어떤?”

“최근 호남의 아이들 수백이 실종됐는데, 혹 아십니까?”

“처음 듣는 얘길세.”

무윤은 멸마단 향패를 꺼내 들었다. 직접 갔다고 할 순 없어 생각한 방안.

“이걸 알아보시겠습니까?”

“그건……. 멸마단 대주 패? 그럼 자네가?”

“단주님 부탁으로 일을 돕고 있는데 며칠 전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들을 잡아다가 금기의 마공을 익힌 자가 귀주에 있다고.”

육도명의 눈썹 양 끝이 하늘로 치솟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자리에서 얘길 꺼내는 의도야 빤해 보인다.

“지금 우릴 마인으로 몰아가겠다는 건가?”

“그럴 리가요. 이 짓을 한 자만 가려내자는 겁니다. 또 그래야 귀 측도 당당할 거고.”

“나랑 말장난하자는 겐가? 마인 척살이야 나중에 해도 될 일. 굳이 이 자리에서 논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무윤은 주체할 수 없는 핏빛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온몸에 들불처럼 솟아오른 살기가 심중의 결심을 알렸다.

우우웅!

“전 그자부터 잡아 죽여야겠습니다. 싸움 중에 죽어 버리면 너무 편하게 보내는 거니까요. 그러면 구천에 떠도는 아이들 원혼도 하늘로 올라가지 못할 겁니다.”

찰나의 순간, 서리서리 뻗쳐오른 진득한 살기.

주변 공간을 점하고는 타오르는 들불처럼 세 사람을 휩쓸어 갔다.

샤아아! 샤아아!

부들부들 떨리고 진저리쳐지는 몸이 다시금 앞에 있는 자를 자각하게 했다.

‘헉! 이 정도였나!’

‘역시 절대자!’

‘절대 적으로 돌려선 안 될 자!’

그야말로 순식간에 무더기로 내리꽂히는 강렬함, 그 긴 세월 강호를 행도한 노년의 무인들도 겪어 보지 못했던 무자비한 전율.

육도명은 절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얼굴 또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공포감이 준 빠른 결단.

‘정말 분노했어. 마인부터 추려 내자. 안 그랬다간 전력으로 달려들지 모른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이 입가를 떨게 만들었다.

“크흠! 하면 그자가 누군지 아는가?”

“이제 확인할까 합니다.”

“……어떻게?”

무윤의 시선이 귀주 쪽 진영을 향했다.

“같이 가시죠.”

“……?”

잠시 후, 귀주 진영 무인들이 수군거렸다.

“저자, 왜 여기로 오지?”

“그러게. 혼자 싸울 건 아닐 테고.”

“빤하지! 우릴 겁줘서 물러나게 하려는 게지.”

“크크! 좀 쫄리긴 한데, 그래도 이 쪽수면 무서울 게 없지.”

“그럼! 절대자 뱃가죽이라고 열나게 쑤시면 안 뚫리겠어?”

“혼자만 깝죽대지 않으면 돼. 나설 땐 다 같이 하자고.”

“암! 그래야지.”

들판에 도열한 사천 개의 눈에 칼날이 번득일 즈음, 진영 앞에 다다른 육도명의 고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월운비영(月雲飛影)이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오!”

“물러가란 소리면 됐다고 하시오!”

“다른 얘기외다!”

“그럼 뭡니까?”

“직접 들어 보시오!”

“……?”

호기심 가득한 모두의 눈길이 한곳에 쏠리고, 뒤편에 있던 자들도 옆으로 다가와 포위망처럼 반원 모양의 진이 형성됐다.

사사삭! 사삭!

그때 군중의 힘을 빌린 이죽거림이 새어 나왔다. 물론 고개는 쑥 집어넣은 채로.

“시팔! 화경이 대단하긴 하네. 뭔 소리 하나 싶어 이천 명이 이러고 있으니.”

“크크! 그래도 이게 어디야. 지금 아니면 언제 고개 똑바로 들고 절대자를 보겠나.”

“하긴! 근데 뭔 소릴 지껄이려고 이러는 거지?”

“들어 보자고.”

그 날카로운 시선을 담담히 받아 내며 좌중을 서서히 훑길 한참, 무윤의 고개가 정중히 숙여졌다.

귀주 무인 모두를 적으로 돌일 일이 아니다. 이 기회에 먼저 실력을 보여 물러나게 하려는 의도니까.

“뇌양 천가장의 무윤이라 합니다. 여러분께 부탁드릴 게 있어서 이리 나섰습니다.”

“부탁이라? 그게 뭐요?”

이럴 땐 분노와 애잔함을 실은 신기심의공 기운을 함께해야 설득이 쉽다.

“전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될 악인을 찾고 있습니다.”

“악인?”

“어떤 자인지 들어 보시겠습니까?”

“말해 보시오!”

“아이들 수백을 잡아 가뒀습니다. 그 어린 소년, 소녀들의 피를 마시고 생기를 빨아들여서 말려 죽였습니다. 또 그걸 감추려고 다 불태워 먼지 터럭 하나 이 세상에 남지 않도록 했더군요. 왜 그랬을까요?”

“……흡정마공?”

이제 하늘의 이름으로 단죄할 때.

“그 추악한 악마가 여기 있습니다.”

“헉!”

소스라치게 놀란 눈들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내 옆에 있지 않을까 두려움에 시선은 파들파들 떨렸다.

바로 불신의 반문이 터져 나왔다.

“그게 정말이오?”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요.”

“그럼 누군지 빨리 밝히시오! 정녕 그런 자라면 우리 손으로 찢어 죽일 테니까!”

“여기 있는 건 확실하지만! 누군지는 지금부터 찾아야 합니다.”

용중문 육도명이 황급히 나섰다.

“이보게, 지금 장난하는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어찌 찾는단 말인가?”

“어느 문파 짓인지 압니다.”

“……어디?”

“완산 성월문!”

순간 의혹 가득한 좌중의 시선이 무리 안의 한쪽을 향했다.

“성월문?”

“설마?”

“거기라고?”

그때 쩌렁쩌렁한 고성이 안에서 터져 나왔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 이건 모함이오! 나 낙종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오!”

성월문주 낙종기는 무리를 헤치고 성큼 앞으로 나섰다.

파팟!

분노 가득 찬 눈에 불을 품고는 들끓는 격정을 뿜어냈다.

“대관절 우리 문파와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따위 수작을 부리는 겐가!”

무윤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얼음장 같은 한기가 서렸다.

“아니다?”

“감히 어디서 그런 망발을! 내가 마인으로 보이는가!”

“넌 아니지.”

“뭐라?”

무윤의 손이 성월문 무리 쪽을 향했다.

“마인은 저 안에 있지.”

“이자가 보자 보자 하니까! 우릴 전부 마인으로 몰 참이군! 더는 참을 수 없도다!”

성월문주 낙종기는 사방을 돌아보고는 격노를 터트렸다.

“이자는 증거도 없이 우리 몰아세우고 있소! 그 이유야 빤히 우릴 이간질하려는 술책이고! 이자에게 더 당하고 계시겠소?”

용중문 육도명의 날카로운 시선이 무윤을 향했다. 낙종기의 당당한 표정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쯤 했으면 증거를 꺼내 보게.”

“그러지요.”

말이 끝나기도 전, 바람 탄 몸놀림이 허공을 헤쳐 갔다. 머리 위를 넘어 쏘아진 신형의 목표는 성월문도들.

동시에 악종기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스쳐 갔다. 증거를 내놓으란 말에 무작정 뛰쳐나갔다는 건.

‘없다는 얘기지.’

혹시나 했던 우려가 말끔히 사라져 버린 지금, 거칠 게 없는 노성이 허공을 때렸다.

“저자가 감히! 문도들이여! 저 악도를 처단하라!”

이미 준비하고 있던 자들의 고성이 답했다.

“존명!”

“비도부터 던져!”

“방진을 형성하라!”

아무리 절대자라 하나 그 주변을 둘러싼 건 백오십이 넘는 성월문도와 이천의 무인.

흩어지지 않고 한꺼번에 떼로 달려들면 못 잡을 것도 없다.

지금 형국은 늑대 굴에 홀로 뛰어든 한 마리 사자일 뿐이니까.

육도명의 머릿속은 지끈거렸다.

‘뭐지? 증거도 없이 나섰단 말인가? 아니면?’

그저 의아함이 가득한 눈만 무윤을 좇을 뿐, 어찌할지 모르는 발길은 움직일 줄 몰랐다.

휘리릭!

허공을 내달리는 무윤의 시선은 하늘빛 안광을 번뜩였다.

‘분명 저 안에 있다!’

어제 성월문에서 확인한 건 단 하나.

한 시진 동안 장원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뭐 하나 특이할 게 없었다. 결국 뒤편 숲 쪽으로 떠나려던 찰나.

위이잉!

손목에 찬 팔찌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력을 주입하기 전에는 어떤 반응도 기운도 먼저 보인 적이 없었던 기물인데.

그때 문득 여휘가 남긴 글이 생각났다.

-사악한 기운을 접하면 팔찌 스스로 분노하지. 그때 울림이 있을 텐데 몸에 영향은 없으니 걱정할 건 없느니라.

그 울림이 커지는 쪽으로 다가가자 보인 건, 인위적으로 폐쇄한 흔적이 뚜렷한 지하 동굴. 무너뜨린 시점이 며칠 안 됐음을 알린다.

그 잔해 속을 헤집어 찾아낸 건.

‘화로 속의 재, 잘린 옷자락과 손발톱.’

아이들이 갇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감옥. 옷과 손발톱은 그 돌 틈 깊숙한 곳 사이사이 수없이 끼여 있었다.

하지만 그 흔적뿐이라 추정은 가능해도 확실한 건 하나도 없는 상황.

신기심의공도 살아 있는 생명과 교류하는 기운. 그 죽음의 공간에선 음습한 기운만 느껴질 뿐, 특별히 찾아낸 게 없었다.

그때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팔찌가 떨려 왔다.

마치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하늘 향해 악을 쓰듯, 원성을 토해 내듯 그런 한 서린 울림으로.

그때 자각했다.

‘원혼의 분노, 그 울분이 팔찌에 전해졌어.’

한데 지금도 팔찌가 울린다. 이천 명에게 다가서던 그 순간부터.

게다가 성월문도에게 다가가는 지금 갈수록 거세진다. 화로의 재를 만지던 그때처럼.

우우웅!

그때 저 밑에서 나도 모르게 끓어오른 분노가 한 곳을 향했다. 신기심의공 기운이 알려 줬다.

‘저놈이다!’

한데 거기에 더해진 사실.

‘극마지경(화경)의 고수!’

이러면 일부 전략을 바꿀 필요가 있다.

필요한 전음을 보냄과 동시에, 질주한 몸이 거칠게 바람을 쓸어 갔다.

휘리릭!

천마라 불린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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