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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151화 (151/161)

151화

뇌도문의 고민.

‘형산이 봉문을 깼으니 뒤가 불안해진 거야.’

물론 정파인 형산이 명분도 없이 직접 뇌도문을 공격하진 못한다. 하지만 귀주 최고 무가 용중문이 움직인 이상 뇌도문은 대규모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

한데 만약 피해가 커지면, 이 틈을 이용해 형산의 속가는 물론 사파까지 무조건 발톱을 드러낸다. 특히 이전의 형산이라면 뒤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할 건 당연지사.

그 우려에 고민하다 연사구에게서 뭔가 들었을 게 분명했다. 그 눈치 빠른 놈이 외부 전쟁에 공조하자는 걸 먼저 떠들었을 리는 없고.

‘내가 형산에 발언권이 있다는 것만 흘렸겠지.’

이제 협상을 시작할 때.

“사정은 대략 알겠습니다. 근데 절 찾아오신 이유는?”

“이번 용중문 일을 어찌 보는가?”

“몇 마디 말로 어찌 파악하겠습니까? 다만 문파 간의 다툼이라면 전 관여할 생각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죠.”

“아닐세. 이 싸움은 누가 이기건 문파를 넘어서 지역 싸움으로 번질 수밖에 없네.”

“어째서요?”

“솔직히 말하지. 만약 불리해지면 우리도 살고 봐야지 않겠나. 그땐 모든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네. 예하 관련 문파는 물론 거래 상단까지 압박해야겠지. 아니 끌어들일 수 있는 덴 어디든 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

“안 그러셨으면 합니다.”

“이건 전쟁일세. 최악의 상황도 생각할 수밖에 없네. 아니 그런가?”

“제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형산은 자넬 은인으로 천명했네. 또 하오문 연 당주가 슬쩍 알려 주더군. 형산은 자네 청을 거절하지 못할 일이 있다고.”

역시 짐작대로다.

“그래서요?”

“이번 일은 정, 사를 떠나 귀주가 호남을 공격한 일. 두 가지를 부탁하네. 하나는 형산에서 회하(怀化)는 호남의 것이라고 천명해 주게. 당장 나서진 않더라도 우리가 무너지면 나선다는 엄포를 해 달라는 걸세.”

“다른 건?”

“형산의 속가가 우리 뒤를 공격 못 하게 해 주게. 이 부탁을 하러 왔네.”

뇌도문의 의도는 명확히 읽힌다. 하지만 들은 몇 가지만으로 두 지역의 전쟁 상황을 분석하고 예단하는 건 심각한 오류에 직면할 수 있다.

‘형주에 가서 정보를 더 듣고 판단한다.’

다만 첫 번째 제안은 무윤도 하려고 했던 것. 마다할 이유가 없다.

‘우선 이것만 푼다.’

상대방이 먼저 요청한 이상 협상을 주도할 때.

“듣자마자 모든 걸 답하기는 어렵군요.”

“시간이 필요한가? 오늘은 기다릴 수 있네.”

“다른 건 그렇고, 첫 번째 안은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제안을 드릴까 합니다.”

“어떤?”

“저도 호남 중남부만큼은 전쟁을 막고 싶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남부 하후가, 여기 형산과 귀 문파, 그리고 저. 이렇게 넷이 공동으로 선언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순간 장도윤의 눈이 번득였다. 뇌도문 입장에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

‘이러면 더 바랄 게 없지!’

형산은 물론 하후가에다 무윤 자신까지 언급한 상황. 사실 두 제안 중 후자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첫 번째만 어떻게든 끌어내려고 버릴 패로 꺼냈을 뿐. 한데 원했던 것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 주다니.

‘이러면 용중문에겐 정말 큰 압박이 된다.’

하지만 평상시라면 몰라도, 귀주 용중문이 쳐들어오는 지금 다른 곳이 동조할지가 의문이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저런 말을 꺼낼 리 없지.’

다급한 상황이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게 지금 가능하겠나? 내용 조율에도 시간이 걸릴 텐데.”

“내용은 외부의 침약에 서로 공조한다. 이런 선언이면 족하다고 봅니다. 급한데 언제 모이고 서류를 만들고 하겠습니까?”

“우리야 환영이네만 자네가 두 곳을 설득할 수 있겠나?”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믿어도 되겠나? 중한 일이라 대놓고 물을 수밖에 없군.”

“저 말고 저들의 공식 발표를 믿으시죠. 수일 안에 답을 드리겠습니다.”

잠시 혼란스러운 정신을 추스른 장도윤의 눈에 강렬한 안광이 쏘아졌다. 절대자가 저렇게 단호하게 얘기할 정도면.

‘자신 있다는 거겠지.’

정, 사의 대표 무가에다 절대자까지 포함된 단체의 그런 선언이면 이보다 더한 우군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협상 자리. 흥분에 들뜬 가슴을 진정시켜야 한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그만한 대가를 각오해야겠지.’

물론 지금 상황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풀고 볼 일. 다만 그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열기 서린 눈빛에서 진중한 목소리가 흘렀다.

“우선 묻고 싶군. 아무리 선언이라 하나 정, 사 연합은 작은 일이 아니지. 나중에 자네 발목을 잡을 수도 있네. 그런데도 굳이 나서는 이유가 혹 있는가? 물론 우릴 위해서는 아닐 테고.”

“호남을 위해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난 오늘 솔직하게 말했다고 생각하네.”

이럴 땐 지금 눈빛 그대로 시선을 마주할 뿐이다.

“저도 그랬습니다. 못 믿으시면 더 대화할 이유가 없겠죠.”

장도윤은 판단을 내렸다.

‘이것만으론 우리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다른 속내야 더 살펴보면 될 것이고.’

본격적인 협상은 이제부터.

“알겠네. 당연히 원하는 것도 있겠지?”

“예.”

“말해 보게.”

요구 조건을 꺼낼 때다.

“혹시 제가 침주에서 어떤 사업을 하는지 아십니까?”

“물론! 이번에 세세히 듣고 정말 놀랐지. 고리대도 그렇고 정말 획기적인 사업이 많더군.”

“과찬이십니다.”

“아닐세. 그렇지 않아도 자세히 묻고 싶었지. 한데 그 얘기는 왜?”

“호남 중부와 거래하는 우리 물량의 절반은 귀문의 표국이 담당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정파 표국이 담당하고.”

“우리 뇌정 표국이? 난 금시초문이네만.”

“여기 뇌양까진 침주의 성우 표국이 담당하고 그 후에 뇌정에 넘깁니다.”

“아! 그 건이었군.”

“이번에 침주 적운문 사업도 불가피하게 가져오게 돼서 물량이 대폭 늘어날 겁니다.”

“그래? 그거 서로 잘됐구먼.”

“거기에 최근 은(銀) 채굴량이 두 배 가까이 늘어서 운송량도 많아질 겁니다.”

“은이라! 표사를 확충해야겠군.”

“그 정도면 거점 하나 늘리는 것도 괜찮지 않습니까?”

“거점? 어디……. 아! 여기 뇌양에?”

“그게 제 조건입니다. 대신 일거리가 부족하면 제가 책임지지요.”

연이어 꺼낸 얘기의 핵심은 하나. 장도윤은 빤히 짐작되지만, 확인차 물었다.

“자네 가문의 안전 때문인가?”

“제 아버님은 종이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장원을 둘러보면 아시겠지만, 무가가 아니라 상가나 마찬가지죠.”

장도윤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한쪽이 손해를 보는 일방적인 거래가 아니다. 이럴 땐 진정을 보이는 게 최선.

“무슨 말인지 알겠네. 이 일은 내가 직접 챙기지.”

“감사합니다.”

“다른 건?”

“사업 얘기를 조금 더 해 볼까요?”

“나야 좋지.”

남부와 중부 교역 얘기는 물론 침주 사업에 대한 질문과 토론이 한동안 오고 간 후.

“오늘은 이 정도 하고 나머진 형주에 가서 논의하시죠.”

“하하! 그러세.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자넬 찾아올 걸 그랬어. 참! 형주엔 언제 올 텐가?”

“일이 좀 남았습니다. 늦지 않게 가지요.”

“알겠네.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리겠네.”

“예.”

얼마 후, 형주로 돌아가는 길.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뇌도문 장로 장천상은 조카에게 물었다.

“소문주, 어찌 보는가?”

이미 문파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장도윤은 군사(軍師)까지 겸직한 지혜로운 조카. 그렇기에 이번 협상도 맡긴 것이고. 그런 그의 의견이 궁금했다.

장도윤은 긴 한숨과 함께 복잡한 심사를 담아냈다.

“한동안 끌려다니게 생겼습니다. 뭐 그리 나쁠 것도 없긴 한데 기분이 썩 좋진 않네요.”

조카가 무인보다는 군사로서 자부심이 더 큰 걸 안다. 이젠 숙부로서 물을 때.

“허허! 자존심이 상한 게냐?”

“왜 아니겠습니까. 무인으로 생각하고 협상을 주도하려고 했는데 완전히 당한 꼴인데.”

조카의 자존심을 챙겨 주는 게 우선이다.

“꼭 그리 볼 것도 아니지. 따지면 우리가 얻은 게 더 많지 않느냐?”

“운이 좋았지요.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달랐으니까. 논의 내내 무인보다는 상인으로서 열정을 더 드러내기에, 처음엔 뒤에 뭐가 있겠지 했는데 결국 제가 알아본 게 맞더군요.”

“어떤?”

“그 친구 꿈이 서로 경쟁하지만, 그로 인해 시장이 더 커지고 먹을 게 많아지는 구조. 그런 상생의 사업을 만드는 건데 이제껏 그래 왔습니다. 고리대도 그에 맞게 뜯어고치고 기존 업체와 경쟁하지 않는 신규 사업 위주로 커 왔죠. 아! 적운문 사업이야 그 자리를 차지한 거니 예외고.”

장천상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그렇다 해도 무인으로 세력을 키울 생각이 전혀 없을까? 절대자가 나서면 웬만한 무가 하나 세우는 건 어렵지 않아. 난 솔직히 걱정이구나.”

“보인 건 아니지만 그 속이야 어찌 알겠습니까? 이제부터 예의 주시해야죠.”

“어떻게?”

“형산은 물론 같은 침주에 있는 하후가라고 저 친구를 견제 안 하겠습니까? 또 반대로 끌어들이려고 할 수도 있고. 그걸 살펴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장천상은 그래도 묻고 싶었다. 누구보다 총명한 조카니까.

“네 생각은 어떠냐?”

“간웅(姦雄) 같지는 않습니다. 아니 전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어째서 그리 본 게냐?”

장도윤의 눈이 다시없이 빛났다.

“천가장주도 그렇고 그 가족들 얼굴 보셨습니까?”

“……자세히 못 봤다만.”

“가족 그 누구도 그 친구를 절대자나 무인으로 보는 시선이 없더군요. 그냥 물가에 내놓은 자식 보는 딱 그 표정이었지. 아시잖습니까? 세상에 최고로 속이기 어려운 게 가족이라는 거.”

“허허! 그리 볼 수도 있겠구나.”

“그런 자를 만날 땐 진정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의심은 돌아서서 하면 되고요.”

“……!”

흥분에 호기심이 더해진 장도윤의 눈빛은 점점 더 빛을 더해 갔다. 그중 지금 가장 궁금한 것.

‘무인으론 어떤 모습일까? ……곧 알게 되겠지.’

천가장 별실.

무윤 일행 넷이 모였다.

하후진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역시 호남도 비껴갈 수 없는 건가?”

짧은 정적 후에 당서하의 묵직한 말문이 열렸다.

“귀주 대표라 할 수 있는 용중문이 나서서 회화(怀化)에 인접한 무가들을 설득했다며? 그런 상황이면 심각한 게 맞지.”

“그렇게 보세요?”

“중요한 건 이거야. 자기들이 벌인 판이라 용중문은 모두가 공감할 정도로 불리하지 않는 한 물러서자고 할 수 없다는 거. 그랬다간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니까. 어떻게든 형세 판단이 될 때까지 싸움은 불가피해.”

“휴! 그러겠네요.”

“그뿐이야? 전쟁은 시작한 쪽이 물러선다고 끝나는 게 아니잖아. 이후엔 호남에서 공격할 공산이 높아. 원한을 갚는 건 물론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하니까. 결국 규모의 문제지, 시작과 동시에 상호 전쟁은 피할 수 없어. 그 전에 막는다면 모를까.”

진서연의 궁금한 시선이 무윤을 향했다. 호남 중남부에선 전쟁을 막고자 하는 의지를 아니까.

“그 선언만으로 될까요?”

“어려울 겁니다. 확전을 막는 정도지.”

“그럼?”

“일단 형주로 가서 상황을 봐야죠. 내일 일찍 출발해야겠습니다.”

당서하는 아쉬움 가득한 한숨을 흘려냈다.

“에고! 며칠 푹 쉬니까 정말 좋았는데. 이제 또 시작이네.”

그때 무윤의 전음이 서연을 향했다.

-좀 있다 따로 보시죠.

-……예.

가기 전에 할 일.

춤을 춰야 한다.

무학이 아닌 삶 그 자체가 담긴 춤을.

천마라 불린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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