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라 불린 내 친구-150화 (150/161)

150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바라타나티암 심법 수련을 스스로 그만둔다니? 서연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 단계면 이미 바라타나티암 심법의 최고 단계를 넘어선 거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해 보시면 몸이 곧 알 겁니다.”

순간 서연의 표정이 더할 수 없이 환해졌다.

‘이러면 고민할 게 없네.’

무인으로서 심법을 더 파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지만, 타 사문의 무공인 데다 부담을 줄까 봐 안 하려고 했던 건데. 모든 게 깔끔히 해결됐다.

괜히 혼자 속 끓인 시간만 아까울 뿐.

“그럼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잖아요? 휴! 난 또!”

무윤에게는 이제부터가 본론. 서연을 마주한 눈에 한 점 흔들림도 없어야 한다. 또 차분하고 진중한 설명도 물론.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예? 어떤?”

“앞으로 중단전을 혼자 수련하실 수 있겠습니까?”

서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험성이 있다는 건가요? 제가 알기론 중단전만큼 안정적인 게 없다고 들었는데.”

무윤은 허점을 찔러 갔다.

“강호에서 그런 얘길 한 사람들이 누굽니까?”

“그거야 화경의 무인들이 가 보고서 한 소리……. 아!”

“화경에 오른 이후, 그러니까 정기신이 일체된 후에는 중단전 수련을 혼자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근데 진 조장은요?”

서연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그 정도로 위험하나요?”

“제 기준으로 말씀드리죠. 사문의 무학은 총 팔 단계로 나뉩니다. 그중 이 단계가 중단전을 열고 몸과 교류하는 흐름을 만드는 거죠.”

“제가 그 단계군요?”

“예. 근데 여기까진 심결이 필요하지만, 그다음부터는 구결이나 심법이 없습니다. 이후로 축기와 운기, 발경, 정기신의 일체로 이어지는 모든 길은 스스로 열어야 합니다. 물론 저는 선조들의 경험과 가르침이 남아 있어서 여기까지 무사히 온 거고요.”

순간 서연은 복잡한 심사를 가득 담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무윤이 말하는 뜻을 왜 모를까.

‘하! 나한테 지금 사문의 비기를 알려 주겠다고 이러는 거잖아.’

스승이 내력을 전했다고는 하나 이 나이에 무윤을 화경으로 만든 무공, 거기에 지금 익힌 하단전 무공과도 아무런 무리 없이 조화되는 무학. 가히 절대무공을 넘어 천하제일을 다툴 수 있는 천고의 기학.

한데 그런 걸 자신이 위험하다고 스스럼없이 건네려는 자. 또 거기에 사심이 없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시큰한 코와 메어 오는 목은 어쩔 수 없다. 뺨이 저절로 벌겋게 달아오른다. 저며 오는 가슴에, 온몸 가득 전해지는 따스함에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든다.

문득 아까 거친 손을 잡아 주던 류선화의 얼굴이 무윤과 겹쳐진다. 찡해진 가슴이 싸하게 아려 왔다. 그저 떠오르는 생각.

‘좋은 사람들.’

순간 서연은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가슴 한쪽의 또 다른 맥박과 고동은 무인으로서 받아들이라고 충동질하지만, 아우성치지만.

‘안 돼. 거부해야 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 특히 자신은 내재된 내력을 밖으로 표출하는 무인. 이런 대단한 무공이라면 사문 보타문은 물론이고 언제든 경지에 다다른 자들은 알아보게 되리라.

그땐 자신만 다칠 리 없다. 선의로 건넨 무윤은 물론 어쩌면 이 집안까지 위험해진다.

‘그럴 순 없어.’

또 다른 유혹이 더 거세질까 걱정되자, 서연은 지금 이 순간의 생각을 억지로 밀어냈다.

“전 화경이 될 때까지 중단전 무학 포기할래요. 그럼 간단하잖아요. 또 여러 길을 헤매는 것보다 지금 길에 매진하는 게 더 맞는 거 같고.”

무윤의 웃음이 색을 더했다. 빤히 예상됐던 말. 준비한 말이 바로 흘렀다.

“그러세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죠.”

생각보다 너무 쉽게 물러서는 말. 서연은 살짝 토라지고 싶은 마음도 순간 들었지만 싱겁게 웃고 말았다. 잘 해결됐으니까.

“이제 됐네요.”

“그럼 다른 얘기를 해 볼까요?”

“어떤?”

“무학은 됐다고 했고. 그럼 춤은 어때요?”

서연은 눈을 멀뚱멀뚱 떴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

“그게 무슨?”

“중단전을 활용하는 건 무학만이 아니죠. 제 선조 중엔 춤으로 극의를 추구한 분들도 계십니다.”

“그 말씀은?”

“중단전의 춤, 그것도 사문의 규율에 위배됩니까?”

“……그래도 그 정수(精髓)는 같은 거 아닌가요?”

“제 조사께서 분명히 언급하셨습니다. 본인께서 만든 건 무학이 아니라 구도자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길잡이라고. 그게 무공이든 춤이든 심신 수련이든 뭐든 길을 알아서 가라고요. 근데 춤으로 구도하신 분의 가르침도 무공이라고 하실 겁니까?”

서연은 티 한 점 없는 환한 웃음이 절로 올라왔다.

‘어쩐지! 바로 물러난다 했어.’

자신이 거부할 걸 예상 못 했을 리 없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나름 묘수라고 꺼낸 방안일 터. 그 고마운 마음 씀씀이가 활짝 웃게 해 준 것.

그러다 바로 미간이 좁혀졌다.

‘어떡하지?’

저 말대로면 수락해도 문제 될 게 없다. 사문의 법도나 스스로 정한 잣대에도.

하지만 마음은 바로 결정을 알렸다.

‘지금까지 받은 것만도 차고 넘쳐. 더 욕심내는 건 도리가 아니야.’

서연은 그윽한 미소와 함께 정중히 예를 갖췄다. 이런 거절에는 진정을 보여야 하니까.

“마음 써 주시는 거 정말 고마워요. 근데 우리 여기까지 해요. 그게 서로를 위해서 좋아요. 전 천 공자하고 오랫동안 웃으며 보고 싶거든요.”

무윤은 살포시 웃음 지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려도 그럴 거고요.”

“이제 된 거죠?”

“근데 뭘 걱정해서 그러시는지 아는데, 마지막 제안을 드려도 될까요? 그게 아니라고 하시면 더는 얘기 안 하겠습니다.”

“어떤?”

“같이 춤을 한번 춰 보시죠.”

서연의 눈이 커다래졌다. 놀란 이유는 물론 같이 추자는 말. 이제껏 같이 춤춰 본 적이 없으니까. 반문이 절로 나왔다.

“……같이요?”

“물론 떨어져서 각자의 춤을 추면 됩니다. 이유는 해 보시면 아실 거고. 아! 근데 오늘은 말고 다음에 하죠. 한 이삼 일 후에.”

“그건 왜?”

“아직 초감각이 진 조장 몸에 덜 익었어요. 그게 된 후에.”

“……?”

주려는 자와 안 받으려는 자의 줄다리기는 이제 시작이다.

사흘 후, 천가장 정원의 정자.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무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르륵!

옆에 벌러덩 같이 누워 있던 하후진은 눈도 뜨지 않고 읊조렸다.

“누가 또 왔어?”

“그래.”

이곳 뇌양에도 형주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건 이틀 전. 바로 득달같이 달려온 백가장, 함가장 장주는 물론 수많은 사람이 천가장을 들락거렸다.

다만 무윤 일행이 온 건 가족밖에 몰라, 정신이 없는 건 가주 천중서와 소가주 무진뿐.

하후진은 긴 하품을 흘려 냈다.

“후우! 사구 형님 아니면 우리 찾을 사람 없잖아. 더 자.”

“이번엔 날 찾아온 거 같다.”

“응? 무슨 연락이라도 왔나?”

“그건 아닌 거 같고. 하여간 가 봐야겠다.”

“……?”

문을 나서던 무윤은 정원으로 오던 무진과 마주쳤다. 약간은 상기된 표정.

“뇌도문 소문주하고 장로가 왔어. 형 있는 걸 알던데.”

무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의외의 인물들.

“사구 놈한테 들었겠지. 왜 왔대?”

“몰라. 그치들이 나한테 얘기나 하겠어? 그래도 중부 최고 사파 치고는 정중하게 왔더라. 큭큭! 형이 겁나긴 한 모양이지.”

“어디 있어?”

“별실에.”

잠시 후, 별실.

찾아온 이는 뇌도문 소문주와 장로, 그리고 무인 다섯.

호남 중부를 아우르기 위해선 가능한 한 감싸 안아야 할 상대. 물론 아직 겉으로 드러난 정보만 알기에 섣부른 판단을 할 때는 아니다.

무윤은 정중하되 당당하게 예를 갖췄다.

“천가장 대공자 무윤입니다. 제 사정 때문에 본당으로 모시지 못해서 송구합니다.”

뇌도문 장로 장천상은 가벼이 손을 내저었다.

“허허! 아닐세. 소가주에게 사정은 들었네. 쉬러 온 사람에게 갑자기 찾아온 우리가 미안하지.”

“며칠 후면 형주로 갈 예정인데, 연 당주가 얘기 안 하던가요?”

“들었네. 한데 일이 있어서 이리 찾아왔네.”

“무슨 일이신지?”

“일은 우리 소문주하고 얘기 나누시게.”

뇌도문 소문주 장도윤의 눈가가 살짝 떨려 왔다.

‘이런 친구가 절대자라니!’

눈에 보이는 건 막냇동생 같은 또래 청년일 뿐, 하지만 수차례 확인에 여기저기 검증까지 하고 온 자리. 더구나 같이 온 숙부 장천상은 초절정 끝자락. 방금 그가 보낸 전음이 있다.

-나로선 파악이 안 되는구나.

-그럼?

-사실이겠지.

순간 절로 삼켜지는 침음. 하지만 바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난 뇌도문 소문주. 겁먹은 모습으로 무슨 협상을 할까.’

앞으로 어떤 관계가 형성될지 이 자리로 그 절반은 결정되리라. 그러자면 절대자로 대하되 자신 또한 당당해야 하는 건 필수. 처음 작심한 대로 가벼운 웃음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장도윤일세. 참! 그거 아는가? 소문 중에 자네가 반로환동한 노인이란 말이 많다네.”

“제가 스승님 말투를 닮아서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그런가? 난 사실 그 말이 맞았으면 했다네.”

“……왜?”

“구구절절이 말하자니 또 한숨만 나올 거 같고. 이 말로 대신하지. 나도 무인일세. 답이 됐겠지?”

자신보다 어린 친구가 절대자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허무함. 거대 사파의 소가주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게, 또 솔직함을 드러내는 말로 첫 대화를 골랐다.

무윤은 싱긋 미소 지었다.

‘첫인상은 괜찮네.’

하지만 저 말엔 아직도 마땅한 답변을 찾지 못했다. 화두를 돌리는 게 최선.

“처음부터 답하기 어려운 말을 꺼내시는군요. 다음 말도 걱정됩니다만.”

장도윤은 얼굴에 진중함을 가득 실었다. 이제부터 할 말은 그래야 한다.

“이런! 바로 정곡을 찌르는군. 맞네. 사실 다급한 사정이 있어서 이리 왔네.”

“무슨 일입니까?”

“귀주의 용중문을 알겠지?”

용중문은 호남 왼쪽에 위치한, 귀주에서 가장 최고의 무가. 소수민족이 많은 귀주의 특성 때문에 이곳엔 정, 사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문파가 많다. 용중문 또한 그렇고.

“대략 압니다만.”

“저들이 회하(怀化)를 노리고 오는 중이라네.”

회하는 호남 서쪽 끝에 위치해 귀주에 인접한 도시. 바로 짐작되는 게 있다.

‘귀주에서 중원과 교역하는 통로 중 회화가 가장 크지. 거기다 사파가 잡고 있는 곳이고.’

호남 중부 서쪽은 사파가, 우측은 정파의 세가 큰 편이다. 특히 회하는 사파 화검문이 가장 큰 세력이고, 뇌도문과는 사돈지간으로 알려진 곳.

얼추 정황이 그려지지만, 물어야 확실해진다.

“용중문이 왜 움직인 겁니까?”

“호남에서 귀주로 간 마인들을 이용해서 명분으로 삼았네. 이번 마인들은 정, 사 무인으로 위장하지 않았나. 그 틈에 화검문이 귀주를 공격했다는 게지.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속내는 뭡니까?”

“예전부터 회화를 탐냈지. 거길 차지하면 직교역이 가능하니까 얻는 게 대단히 많지. 내가 그 입장이라도 탐이 나긴 할 걸세.”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게 많네요. 용중문이 있는 귀양(貴陽)에서 회하는 근 천 리 길이라 전력으로 오기도 어려울 것이고, 화검문이 공격당하면 귀 파가 도울 걸 빤히 알 텐데.”

“귀주 동쪽 문파들을 설득했네. 주도는 용중문이 하고 병력은 그들로 채웠지.”

“그랬군요.”

“게다가 우리 호남도 정, 사 간에 전쟁 일보 직전 아닌가. 그 틈을 노린 게지. 사실 우리도 화검문에 많은 지원을 할 입장이 아니네. 여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대거 병력을 보내면 상황을 봐서 우릴 노릴 곳도 있을 테니까. 크흠! 사파는 물론 정파도 말일세.”

무윤은 그제야 이들이 온 이유가 짐작이 갔다.

뇌도문 입장에선 절박할 만한 사정이.

천마라 불린 내 친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