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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148화 (148/161)

148화

‘중단전을 열었어! 거기다 초감각까지.’

방금 서연이 춤사위를 막 꺼낼 찰나, 신기심의공 기운이 알려 준 사실. 그녀의 바라타나티암 기운이 심장 언저리에 미약하나마 둥지를 만들었다는 건 중단전을 열었다는 뜻. 또 바람을 느끼고 결을 따라간 동작은 초감각이 부른 행동.

그 이해할 수 없는 충격이 뇌리를 멍하게 만든다.

‘어떻게?’

신기심의공 기준으로 보면 그녀가 이 단계에 올랐음을 뜻한다.

일 단계는 중단전을 여는 것. 이 단계는 중단전과 몸이 흐름을 교류하는 것. 여기까지 가면 오감을 벗어난 초감각과 초극의 동작이 가능해진다.

몇 번을 다시 살폈지만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로 악양에서 그녀의 몸을 살핀 기억을 떠올렸다.

‘바라타나티암 기운이 하단전 내력과 교류했었지.’

원래는 중단전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체기발경(體氣發勁)에 올라야 가능한 것인데, 서연은 그 전에 스스로 길을 찾아 초감각을 꺼냈다. 물론 아주 제한적으로 극한 상황에만 가능했지만.

‘어쨌든 거기까지였는데.’

그때 문득 뇌리를 때리는 생각.

‘아! 혹시!’

여휘는 신강까지 도주하던 그 길에 격한 숨을 다스리려 진경을 읊다가 중단전을 열었다. 자신 또한 그렇게 했고.

그제야 결과론적인 추론이 형성됐다. 세 가지가 맞물린 결과.

‘그녀 또한 백 리를 쉼 없이 내달렸지. 거기에 바라타나티암 기운이 이미 몸에 있었고. 또 모자란 심법에 힘을 더한 건 이 산의 청정한 기운을 느껴서일 거고.’

또다시 온몸에 소름이 쫙 올라왔다.

‘정말 이 정도 천재였다니! 여휘에 비견될 만큼.’

그런데 문제는 마냥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점.

‘아주 미약해서 스스로 중단전을 못 느꼈어.’

이 또한 깨달음의 일종. 그녀가 느꼈다면 상념에 들었어야 했다.

당장 의념을 집중해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모른다.’

며칠, 몇 년, 아니 평생 안 올 수도 있는 자각.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게 없다. 바로 전음을 보냈다.

-바로 좌정해서 바라타나티암 기운을 운기하세요!

영문 모를 말에 진서연은 눈을 껌벅였다. 산길을 가다 난데없이 운기를 하라니.

-왜 그러세요?

-절 믿고 해 보세요. 놀라지도 의아해하지도 말고, 지금 느낌 그대로 심상을 떠올려 보세요.

-……?

무윤은 급히 다른 둘에게도 전음을 보냈다.

-진 조장이 깨달음이 왔어요. 호법을 부탁합니다. 난 도울 게 있어요.

-응? 길 가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설명은 나중에. 어서요!

-……?

서연은 궁금함을 접어 두고 바로 좌정에 들어갔다. 무윤이 이럴 땐 분명 무슨 뜻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믿으라고 했어.’

달리 말하면 자신이 가진 의문도 알고 있다는 뜻. 더 고민할 게 없다.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는 사람이니까.

스윽!

실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만 주억거리던 숲속에 때아닌 광경이 펼쳐졌다.

좌정에 들자마자 발갛게 상기됐던 이마와 볼이 점점 제 색을 찾아갔다. 파르르 떨리던 붉은 입술에 은은함이 흐르고, 촉촉한 눈망울 감싸 안은 눈가도 고요함에 젖어 들었다.

소슬바람이 날을 세워 하얀 살결에 파고들고, 머리카락 몇 개를 휘날렸지만, 무윤이란 믿음, 그 탄탄함에서 출발한 심연의 항해는 점점 그 깊이를 더해 갔다.

우우웅! 위이잉!

심장의 흐름에 맞춰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기를 반복할 즈음, 간질간질한 그 무언가가, 온몸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존재를 하나둘 알리기 시작했다. 혈도를 따라 흐르는 도도한 진기와는 또 다른 그 무엇.

근육, 신경, 장기, 심지어 피부까지 몸 안 곳곳에서 울림으로 다가온다. 하단전 내기처럼 연이어 흐르는 느낌 대신, 떨림의 파동으로 자신을 알리고 서로의 울림을 전해 그 영역을 넓혀 갔다.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둘 자연스레 모인 떨림은 가지 치듯 조금씩 뻗어 나갔다. 온몸 구석구석에서 나온 진동은 공명하듯 면면히 이어져 흐름이 되더니, 서서히 한곳으로 떨림을 중첩시켰다.

거기에 따스함까지 더해진 울림이 심장 주변을 맴돌던 어느 순간, 벅찬 환희의 깨달음이 뇌리에 물결쳤다.

‘아!’

영혼의 메아리처럼 끝없이 가슴을 울리던 떨림이 제집 찾아가듯 한곳으로 몰려들었다. 그 떨림이 뭉쳐 하나의 기운이 되더니 가슴 한쪽 그 어딘가에 자리 잡아 똬리를 틀었다.

그럼에도 흐름은 멈추지 않고 들락날락 온몸을 간지럽혔다.

서연은 그제야 알았다.

‘중단전!’

화경 이전에는 접해 보리라 상상도 못 했던 의념의 공간. 그 존재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기쁨의 탄성이 울림이 되어 가슴 속에 격랑으로 물결쳤다.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흐름은 떠나지 않음을 알렸다. 동시에 온몸 가득히 느껴지는 새로운 감각.

얼마 전 무윤에게 들었던 게 떠올랐다.

‘초감각!’

몰랐던 바람결이 살갗을 스친다. 소리도 달라졌다. 흔들리던 나뭇잎도, 바닥에 쓸리는 낙엽도, 허공에 떠오른 풀잎도. 이전과는 다른 각자의 색과 소리를 알린다.

‘이거구나!’

그때 몸 주변을 흐르는 은은한 기운도 느껴졌다. 몸속 기운과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른 이질감. 바로 깨달았다.

‘천 공자 기운이야.’

가만히 다문 입술과 눈매가 파르르 떨려 왔다. 또 알았다.

‘도와준 거야. 내가 느낄 수 있도록.’

감은 두 눈에서 작은 눈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스륵!

당장이라도 일어나 고마움을 전하고 싶지만, 그래선 안 된다. 이 모든 걸 담아내는 게 진정한 보답.

서연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감정의 격랑을 애써 다스렸다.

그러길 한참, 가벼이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올라오던 미소가 그윽해질 즈음, 감았던 여인의 눈이 사르르 떠졌다.

잠시 후, 서연을 보는 당서하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잘된 거지?”

“……예.”

당서하의 시선이 두 사람을 번 갈았다.

“누가 설명 좀 해 주지? 우리도 쪼끔은 고생했는데.”

진서연의 당황한 눈빛이 갈 곳을 못 찾을 때, 무윤의 무심한 어투가 흘렀다.

“이게 설명이 필요하나요? 딱 봐도 깨달음 뭐 그런 거겠죠.”

“인마! 누가 몰라? 그러니까 왜 그런 거냐고? 참고하려고 묻는 건데 그 정도 못 알려 줘? 나도 저번에 다 깠어. 알지?”

중단전에 대해 알릴 수는 없는 일. 둘러댈 말을 골라냈다.

“아까 산기운에 진 조장이 뭘 느꼈는지 내기가 세차게 떨렸습니다. 그래서 해 보라고 한 건데 다행히 뭘 얻은 모양이네요.”

당서하의 시선이 서연을 향했다.

“그런 거야?”

“예? ……예. 새소리하고 바람 느낌이 너무 좋아서 푹 빠졌는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네요.”

당서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서연과 지낸 시간이 있는데 어색함을 모를 수 없다.

“아무래도 뭐가 있는 거 같긴 한데. 뭐 넘어가 준다. 좋은 일이니까. 이제 가자. 너무 지체했어.”

“……예!”

얼마 후 다시 걸음을 재촉하자마자 서연이 고마움을 전하려던 순간, 무윤의 전음이 앞섰다.

-가서 얘기하시죠. 해 줄 말이 적지 않네요.

사실 해 줄 말이 많아서가 아니라, 어떻게 말할지 결정을 못 했다.

먼 산을 바라보는 무운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설명하지?’

만약 심법대로 길을 갔다면 화경에 이른 이후 중단전을 열었을 테니까 고민할 게 없다.

하지만 서연은 여휘가 그 안에 심어 놓은 중단전 무학의 길을 찾아냈다. 무윤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못 찾아내리라고 여겼던 그것을. 그것도 이렇게 일찍.

‘이럴 줄은 정말 몰랐어.’

고민의 핵심은 서연이 받아들일 보타암의 무공 범위.

바라타나티암 심법이 영흥사 지주 반각과 같이 만들어 보타암에 전해진 것이라 했고, 전인을 찾기 위해 중단전 무학의 길을 넣어 놓았다고 했으니 여기까지는 문제없다.

한데 만약 제대로 설명하고 가르치자면.

‘신기심의공은 아니더라도, 중단전 무학의 길은 알려 줘야 하는데.’

악양에서 중단전 무학이 사문의 무공이라고 알린 게 문제다.

‘진 조장이 어떻게 나올까?’

물론 각자 길을 찾아가는 무학이라 구결로 가르칠 건 없다. 하지만 스스로 길을 찾는 건 여휘와 자신 또한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 수년 후에야 가능했다. 또 그 와중에 위험한 적도 여러 번 있었고.

대략 설명이라도 해 주지 않으면 서연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그 걱정이 만든 고민이다.

문득 만든 놈을 떠올리자 짜증이 확 올라왔다.

‘여휘! 이 새끼 정말! 왜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자신의 여인이 될 이에게 전한다고 나름 신경 쓴 게 화근이다.

물론 애꿎은 여휘에게 성질낼 일이 아닌 건 잘 안다. 서연의 실력을 간과한 자신 책임이니까.

그래도 이 일로 분풀이할 상대는 그놈밖에 없다.

지나치는 들녘 꽃향기가 주변 가득 넘실거렸지만, 답을 못 찾은 심사에 한번 숙여진 고개는 들어질 줄 몰랐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데 서연을 걱정하는 마음에 무윤이 자각하지 못한 게 있다.

지금 그녀가 얻은 건, 천상천하유아독존 고금제일인 여휘의 무공.

세상의 그 어떤 무공과 이걸 비교할 수 있을까.

한데 그걸 서연에게 전하려는 생각, 그에 대해선 그 어떤 고민도 없다. 주저함은 떠올려 보지도 않았다. 그저 서연이 다치지 않게 최대한 알려 주려는 생각뿐이지.

천하제일 무공에다, 자신과 여휘만이 알고 간직했던 것인데. 과거의 추억은 물론, 여휘와 자신이 살아온 그 모든 삶을 상징하는 결정체이자 자긍심인 그것인데. 가장 소중한 것을 남에게 주는 셈인데.

왜 그럴까? 어차피 조금 알려 준다 해도 이후엔 각자 길을 가는 무공이라서? 아니면 유선과의 인연 때문에? 소려의 이모라서? ……그것도 아니면?

무윤은 아직 그 의문을 떠올리지 못했다.

지금 고민은 오직 하나.

사문의 무공이 아니란 이유로 그녀가 거부할까 봐. 그 걱정이 온통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뇌양 천가장, 가주실.

일행들이 인사가 끝나고 나가자 가족들만 남았다.

가주 천중서는 넉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인들은 남쪽 문파 몇 곳을 공격하고 바로 서쪽 귀주로 넘어갔다는구나. 여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요? 다행이네요.”

어머니 류화선의 입꼬리가 한층 더 올라갔다. 방금 인사하고 나간 여인의 자태와 표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서다.

“무윤아, 방금 나간 진 조장 말인데 정말 곱구나. 그렇지?”

말뜻을 모를 수 없다. 엄한 싹은 애초에 잘라야 하는 법.

“어머니, 보타문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알지. 근데 검각 여인들은 혼인해도 된다고 하던데.”

“진 조장은 그런 생각 절대 없으니까 괜한 생각 마세요.”

그래도 류화선의 미간 좁힌 눈에는 묘한 호기심이 사라지질 않았다. 여인의 직감도 없이 꺼낸 얘기가 아니다.

‘아니야. 둘 다 서로를 바라보는 게 그냥 동료가 아녔어.’

말을 나눈 건 짧은 시간이지만, 그사이 오고 간 둘의 눈빛엔 분명 그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안다.

‘부추긴다고 들을 애가 아니지.’

이러면 방향을 바꿔야 할 때.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얘기 나누세요. 우리는 손님들한테 가 볼게요.”

“그러시구려.”

여인들이 다 몰려 나가자, 천중서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몇 달 만에 찾아온 아들인데 아직 그간의 일을 듣지 못했다.

“그동안 어찌 지낸 게야? 별일은 없었고?”

“일이 좀 많았습니다. 드릴 얘기가 많네요.”

악양 여정에서부터 시작된 얘기에 이어 수많은 질문이 쏟아지고 난 뒤, 놀람과 경악이 가져온 정적이 한동안 내실을 휘감았다.

얼마 전 소가주로 정식 취임한 무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휴! 말 그대로 정신이 없네. 형이 화경이란 것도 그렇고, 전쟁이라니.”

무윤이 자신을 드러낼 결심을 했을 때 가장 큰 걱정은 역시 가족이 있는 천가장이었다. 그 때문에 관둘까도 생각했었고.

하지만 발상을 전환하기로 했다.

‘화경의 무인이 있는 게 알려지면 더 안전해진다.’

서른도 안 된 화경의 무인, 그 미래를 생각하면 감히 누가 천가장을 건드릴 수 있을까. 오직 하나면 조심하면 된다.

‘철천지원수, 그런 관계만 없으면 돼. 만약 생기면 먼저 나서면 되고.’

아직 중원에 그런 곳은 없다. 물론 혈교가 신경 쓰이지만.

‘전쟁이면 중원 모두가 혈교의 적. 내게 유독 집중할 이유가 없다.’

그 판단에 내린 결정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준비한 것들이 있다.

“형산에 부탁해서 여기에 지부를 설치할까 해요. 하오문도 인원을 배로 늘릴 생각이고.”

무진은 확신에 가득한 웃음을 흘려 냈다.

“우리 주변에 절대자 집안을 건드릴 곳이 어디 있어? 혈교야 먼 곳에 있고 전쟁 중에 굳이 우리만 그럴 리도 없는데.”

“만사 불여튼튼이다. 해서 나쁠 건 없지.”

“하긴! 그거야 그렇지. 그러자고.”

남자들의 논의가 깊어질 무렵, 여인들의 얘기도 무르익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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