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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147화 (147/161)

147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전장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

다섯만 따로 움직이게 되자 연사구의 말문이 열렸다. 가장 궁금한 것.

“왜 그랬냐?”

“그럴 일이 있었다.”

“……?”

이 넷에게 감출 건 없다. 또 알려야 될 내용도 많고.

다만 오대세가 일은 잠시 갈등이 일었다.

‘당 조장이 괜찮을까?’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알게 될 일.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내가 알리는 게 낫다.’

그리고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게 최선이리라.

무윤의 긴 설명이 끝나자 모두의 뇌리에 격정의 광풍이 몰아쳤다.

한동안 멍했던 진서연이 황급히 나섰다. 먼저 물어야 할 걸 까먹었다.

“내상은 괜찮아요?”

“며칠 다스리면 됩니다.”

“그러고 마인들을 상대했는데요?”

“다른 기운을 썼어요. 아시잖아요.”

중단전 기운을 썼다는 얘기.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렀다.

“어쩐지! 다행이네요.”

당서하의 굳은 시선이 무윤을 향했다. 오대세가 정황을 설명하던 모습에서 느낀 게 있다.

“넌 사실이라고 보는 거지?”

“예. 제 주변에 그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둘이 일치했으니까요.”

“잘 아는 사람? 누군데?”

“당시 공야의숙에 있던 분입니다. 더 말씀드릴 수 없는 이유는 이해하시겠죠?”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근데 네가 믿는 사람이겠지?”

“평생 같이할 분입니다.”

“……!”

이러면 더 물을 게 없다. 당서하는 가슴이 턱 하니 막히고 눈은 저절로 감겨 버렸다.

‘하! 역시 사실이었나.

오라버니의 죽음 이후, 평생을 멸마단원으로 살기로 작심했다. 세상의 악으로 규정한 마공을 없애기 위해서. 그래서 오늘처럼 온몸을 불살라 싸워 왔는데.

‘가문에서 마공 연구라니!’

처음 소문이 돌았을 땐 가볍게 웃어넘겼다. 마인을 상대하려면 일정 부분 필요한 일이라, 거대 가문 어디나 하는 그 정도로 여겼으니까.

물론 소문을 듣고 나서는 혹시나 하는 걱정이 들긴 했다. 특히 연인인 부대주 팽종호가 아버지 일로 근심하는 걸 알고부터는.

그런데 아니길 바랐던 그 일이 오늘에서야 실체를 드러냈다.

마인을 막기 위한 차원을 넘어선 연구. 그건 곧 무공으로서 마공이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가문이 인정한 꼴.

그녀에겐 삶의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득한 어둠이 눈가를 덮쳐 왔다.

모두의 아련한 시선이 그녀를 감싸 안을 때, 연사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툭 내뱉었다. 안으로 곪을 상처는 빨리 짜내야 한다는 게 자신의 지론이니까.

“일부 잘못을 가지고 전체를 규정하지 말아요. 또 그 정도 스스로 해결 못 할 당문이면 이제껏 이어 오지도 못했어요. 안 그래요?”

“……그래도 삼십 년을 감춰 왔잖아.”

“아니! 당문이 무슨 불가나 도가 문파도 아니고, 그 정도 문파에 어떻게 허물이 없어요? 그리고 소림이나 무당은 뭐 마냥 깨끗한 줄 알아요?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하오문에 있는 거 죄다 떠들어 대면 세상이 뒤집힌다니까! 그러니까 쓸데없는 잡생각 집어치워 버리라고요! 게다가 당 조장이 잘못한 것도 없잖아요!”

이럴 땐 말을 꺼낸 무윤도 나서야 한다. 연사구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는 이죽거렸다.

“사구야! 난 정말 궁금해.”

“뭐가?”

“맨날 쓸데없는 소리만 씨불이다 꼭 이럴 때 보면 현자가 따로 없다니까. 네 머릿속 한번 뜯어 봤으면 좋겠어.”

“뭐라는 거야! 인마! 난 매번 맞는 소리만 했어! 듣는 새끼가 꼬아서 들은 거지.”

“네 말투가 꼬아서 듣게 만드는 거 몰라? 그래, 말 나온 김에 그거 좀 고치자. 그럼 학사라고 해도 믿을 거야. 어때? 나 따라 해 볼래?”

하후진이 껴들었다.

“아서라. 그 늙은이 말투 배웠다간 더 꼬이게 들린다.”

진서연도 거들었다.

“그건 맞네요. 무조건 반대.”

“진 조장까지 이러실 겁니까?”

“유선 언니도 매번 그랬는데요 뭘.”

“……!”

한참 쓸데없는 실랑이가 오갈 즈음, 당서하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입가엔 어느새 잊어버렸던 싱그러운 미소가 들어앉았다. 아직 가슴은 묵직하지만 이런 친구들 걱정을 덜어 주는 게 우선이다.

“됐어. 그만해. 하여간 사구 놈 말, 묘하게 설득되긴 해.”

“묘하게는 무슨! 내 말이 다 맞으니까 그런 거지.”

당서하는 화두를 돌렸다. 모두에게 시급한 현안은 따로 있다.

“근데 혈교가 정말 그 정도일까? 난 좀 의아해. 혈천대는 언제나 중원 침략의 선봉이었어. 정예 중의 정예란 말이지. 근데 그런 천여 명을 쓰고 버릴 패 정도로 여긴다? 그건 좀…….”

윤자엽이 해 준 말이 있다.

-혈교는 거대하고 은밀한 세력일세. 보인 것보다 감춘 게 더 많을 게야. 게다가 교주에겐 교의 장로급도 모르는 세력이 있는 게 확실하네. 그래서 우리도 교주 눈 밖에 안 나려고 매번 고심했던 거고.

-천마교와 비교하면 어떤가?

-천마교야 혈교만큼 알진 못하네만, 둘이 싸운다면 난 혈교 쪽이 이긴다고 보네.

-그 정도란 말인가?

-내가 련주께 들은 게 있는데, 이번에 혈교가 움직인 건 본격적이 중원 침공 목적이 아니라, 이 기회에 내부 반대파를 정리할 목적이 더 크다고 했네. 혈천대 천 명은 물론, 앞으로 중원에 들어올 무력대 몇 개가 사라지는 건 우습게 본다는 게지. 이제 내 말뜻 짐작하겠나?

-……그럼 본격적인 침공은 언제쯤?

-그리 멀지 않을 걸세. 련주는 혈교 내부가 정리되면 바로 움직일 거라 봤네.

-……!

무윤이 전면에 나서기로 작심한 가장 큰 이유 또한 이 말 때문이다.

‘그렇게 빨리 움직인다면 배후에 숨어서 대처하긴 어렵다.’

싸움에서 이기는 게 목적이면 배후에 있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윤이 가장 원하는 건 호남 중남부에서의 전쟁, 그 자체를 막는 것.

사전에 도발을 막자면 상대에게 이쪽의 힘을 보여야 한다.

‘먹잇감이 아닌 걸 확실히 알려야지. 그러자면 우리 편을 꽉 틀어쥐는 게 먼저다.’

당장 나서기로 결심한 이유가 이것이다. 호남중서부를 아우를 시간이 필요하니까.

한편 고민을 거듭하던 연사구의 말문이 열렸다. 우선 무윤의 의도부터 정확히 파악할 때.

“어디까지 챙길 거야? 호남 전부?”

“북쪽은 상관없지. 중남부만.”

“가만있자, 그럼 중부에선 형산하고 사파 뇌도문, 남쪽은 하후가, 이 셋이 핵심인데 하후가야 소가주 일로 얼추 해결됐고. 형산은?”

“유진을 전하고 가르치다 보면 내 편이 되겠지.”

“응? 너 도백파 무공도 다 알아?”

“아니, 살펴보기만 했지.”

“아! 네 지도 방식으로 봐주려고?”

“그거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잖아.”

그 수련법 효과를 가장 많이 본 게 연사구다.

“크크! 당연하지. 그 맛을 보고 나면 장문인보다 네 말이 더 먹힐 거다.”

“다음은 뇌도문이고.”

호남 전체 사파 중엔 북쪽의 비천문 다음이고, 중부에선 최대인 곳이 뇌도문이다. 알려진 건 형산과 엇비슷한 규모.

“거긴 내가 알아볼게. 그리고 또?”

“내 소문은 적당히 조율해. 갓 화경 정도에다 스승님이 물려준 내력 때문에 그렇게 된 걸로.”

“그래야지. 참! 도백 유진은 언제 알릴 거야? 시기에 따라서 써먹을 방법이 달라지는데.”

“바로 하자.”

“지금? ……하긴 싸움이 커졌는데 끌 일이 아니네.”

몇 가지 논의가 더 진행된 후, 무윤은 다음 일정을 알렸다.

“일은 이 정도면 됐고. 난 당분간 뇌양에 가 있을게.”

“왜?”

“남쪽으로 간 마인들이 거기로 올라올지 모르잖아. 걱정돼서 안 되겠어.”

거기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다. 삶의 큰 방향 하나를 추가했으니까.

연사구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반대할 수가 없는 일.

“가긴 가야지. 근데 이런 대형 사고를 치고 사라지면 사람들이 누굴 찾아올까?”

“너.”

“나 고생 엄청 하겠지?”

“높은 사람도 올 거야. 너 인맥 쌓는 거 좋아하잖아.”

“뒤치다꺼리도 다 해야 하고. 정보도 여기저기서 엄청 쏟아질 텐데 잠도 잘 못 자겠지?”

무윤은 눈을 멀뚱멀뚱 떴다. 놈의 의도가 안 읽힌다.

“그래서?”

연사구의 시선이 다른 세 사람을 향했다. 이 말을 하려고 뜸을 들였다.

“나, 잠은 자고 싶은데, 도와줄 거죠?”

세 사람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하후진이 선수를 쳤다.

“난 그런 거 잘 못 하잖아. 있어 봤자 도움이 안 돼.”

“무윤을 따라다니라는 게 단주님 지시야. 알지?”

“저도요. 천 공자한테 배울 것도 남았고.”

결국 연사구 혼자만 남았다.

형주 하오문 지부.

장문인 건수의 눈이 커다래졌다.

“벌써 갔단 말인가?”

“마인들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그래도 뇌양이야 백 리 길 좀 넘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금방 올 겁니다.”

“허! 그것참! 하면 우리 일은 차후에 논의해야겠구먼.”

“아뇨. 저보고 말 전해 달라고 하던데, 도백 유진의 주인은 이제 형산이라고, 잘 써 달랍니다.”

반문이 절로 튀어나오는 말.

“뭐라! 그게 정말인가?”

“무공 몇 개는 직접 가르칠 게 있다고 돌아오면 바로 들르겠답니다. 세상에 알리는 것도 그때 논의하자던데요.”

“……!”

장문인 건수가 후다닥 나가고 난 후, 척마단 독고운양이 들어왔다.

“혹 내게 남긴 말은 없던가?”

“왜 없겠습니까. 본가 일이 급해서 단주님도, 도왕 어른도 못 뵙고 간다고 사과 말씀 전해 달랍니다.”

이런 기회에 확실히 연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진 숙부 독고승을 찾는 게 급선무.

“어쩔 수 없군. 다음에 보세나.”

“예.”

독고운양이 나감과 동시에 숙부 연대유가 쫓아 들어왔다.

“사구야. 무림맹, 사도련 지부장에다 개방, 뇌도문 군사에, 하여간 형주 무가 사람들 다 왔다. 누굴 먼저 만날 게냐?”

연사구는 짜증스럽게 얼굴을 구겼다. 이미 각오한 일.

“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알릴 건 한꺼번에 하고 그다음에 따로 보자고요.”

연대유는 입에 함지박만 한 웃음이 절로 떠올랐다.

“그게 좋겠구나. 크크! 내 이십 년 지부장 생활 중에 이런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나중엔 힘들다고 뭐라 하실걸요.”

“힘 좀 들면 어떠냐. 속이 다 시원한 것을. 크하하하!”

“……!”

호남 하오문 위상이 달라질 일. 또 무윤이 그걸 도와주려고 한 것도 잘 알지만, 연사구 입은 삐죽 나왔다.

‘개새끼! 하여간 귀찮은 건 다 떠맡긴다니까!’

평생 그럴 거 같은 촉 때문에 올라온 짜증이다.

다음 날, 뇌양 외곽 산야.

파파팟! 타탓!

뇌양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다다르자, 넷의 신형이 멈춰 섰다. 백 리 길을 쉬지 않고 달려온 탓에 말문을 여는 당서하의 숨이 한껏 거칠어졌다.

“휴! 다행이네.”

저 멀리 보이는 왁자지껄한 시전의 모습이 도시가 무탈함을 알린다.

“무윤아,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무윤의 고개가 살짝 숙여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속도를 늦추지 않은 미안함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알면 크게 한턱내.”

“그래야죠. 가시죠.”

불안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산길을 내려가길 얼마쯤, 어느새 여유를 찾은 걸음 따라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가 장단을 맞췄다.

사라락!

막 솟아오른 태양이 천천히 숨을 고르자 여릿여릿한 빛이 따스하게 속살거렸다. 굽이굽이 산을 따라 하릴없이 흘러가던 물소리가 찰랑댔다. 무리 지어 핀 꽃향기도 코끝을 간지럽힌다.

바닥에 떨어진 잎사귀와 흙, 작은 돌, 몸을 스치는 나뭇가지, 산야에 흐르는 바람, 그 작은 것 하나하나가 싱그럽게 다가온다.

그간 급박하게 달려온 여정 탓에 스쳐 지나갔던 내음들.

그 고즈넉함에 취한 모두의 입가에 사르르 그윽한 미소가 짙어져 갔다.

그때 꽃잎 향기 가득 담은 바람결 하나가 진서연을 휘감자, 무심코 올린 소맷자락이 하늘을 향했다.

사라락!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 바람이 제 팔인 양 그녀의 손을 허공에 날린 듯했다.

휘릭!

순간 화들짝 놀란 진서연이 급히 손을 거둬들였다.

“어머!”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당서하의 입가를 살짝 비틀었다.

“뭐야! 너 춤추려고 한 거야?”

“아니! 저 그게…….”

“뭐 어때! 우리밖에 없는데 해 봐.”

“아, 아녜요.”

“창피할 게 뭐 있어? 남자인 저놈도 우리 앞에서 매번 추는데.”

“아니! 그냥 바람이 좋아서…….”

그때 무윤의 눈동자가 급격히 떨려 왔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충격.

‘어떻게?’

그 불신의 시선은 서연을 떠나지 못했다.

천마라 불린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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