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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144화 (144/161)

144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형산파 운정각.

탁!

자리를 박찬 장문인 건수의 온몸이 벼락 친 것처럼 들썩였다.

“뭐라! 산문이 공격당했단 말이냐?”

“예! 문주님. 일류와 절정급 서른 명 정도가 산발적으로 공격하다 지금은 퇴각했는데, 사특한 기운이 넘실 대는 게 사파가 확실합니다.”

놀란 건허의 질문이 이어졌다.

“어딘지 알겠느냐?”

“확인 못 했습니다. 밤인 데다 바로 도주하는 바람에. 또 아무래도 유인하는 모양새라 제 판단으로 쫓지 않았습니다. 송구합니다.”

“아니다. 정문으로 쳐들어온 자들이 그 정도면 계략이 있다고 판단하는 게 옳지. 잘했다.”

그때 장로 건도의 눈이 번득였다.

“척마단주 그자가 유진에 관심이 많았소, 혹시?”

“허! 그럼 사도련과 독고가?”

모인 장로 모두 끓어오르는 분기를 참지 못했다. 넘실넘실 솟구치는 기운엔 살의까지 뿜어져 나왔다.

죽은 선운이 적은 서신을 통해, 의원 장동백을 이용해 마단을 뿌린 배후가 그들이라 의심하고 있는 상황.

“이자들이 대체 우리와 무슨 원수를 졌기에 이리 나온단 말인가!”

“허! 술수도 모자라 이제 대놓고 공격까지!”

확신으로 다가오는 의심.

“이건 분명 도백 유진을 노린 게요. 그게 아니고서야 강서에 있는 자들이 이리 나올 리가 없잖소?”

“어쨌든 대책부터 세웁시다. 저들이 아니더라도 이 시점에 이럴 이유야 유진밖에 없겠지.”

한동안의 숙의가 이루어지고 난 후, 장문인 건수는 분노 가득 찬 눈에 불을 품었다.

“유진은 조사동으로 옮기고 건허 사형께서 맡아 주시오. 산문 안 경비는 건도가, 어린 제자들은 건영이 챙겨 주시게. 난 일대제자 오십을 데리고 저들을 쫓겠네.”

건허가 급히 나섰다.

“무슨 소린가? 장문인께선 안에 계셔야지. 내가 나가겠네.”

“아니오이다. 지금은 유진이 가장 중하오. 사형께서 그 중책을 맡으셔야 하오이다.”

“그래도…….”

장문인 건수는 좌중을 돌아보고는 뜨겁게 달궈진 숨을 뿜어냈다. 산문까지 공격당한 초유의 사태. 단호한 형산의 모습을 보일 때라 여겨 나섰다.

“더 이상 형산이 농락당하는 꼴은 두고 볼 수 없소. 장문인으로서 당연히 나서야 할 때라 내린 결정이오.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건허 사형께서 뒤를 맡아 주시오.”

“……!”

반 시진 후, 형산파 북쪽 산야.

척마단주 독고운양의 굳어진 시선이 전방의 능선 여기저기를 쓸어 갔다. 어둠을 약간이나마 밀어낸 달빛에 남쪽으로 내달리는 흐린 잔상들이 보인다.

쫓는 척마단과 독고가, 산개해서 쫓기는 마인 수백의 신형들.

한데 그 앞 너머에 있는 건 형산파. 이제 반 각이면 닿을 거리.

‘작정하고 이곳으로 왔어.’

그 의도 또한 모를 수가 없다. 즉시 옆에 있던 부단주 고방홍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네가 형산에 가서 알리게. 마기를 숨긴 놈들이라 오해하기 십상이야. 또 저들이 미리 뭔 짓을 했을지도 모르고.”

“알겠습니다.”

그때 능선 앞쪽에서 대원의 고성이 들려왔다.

“단주님! 우리 선발대와 형산파가 부딪친 모양입니다!”

“……!”

다급한 신형이 어두운 밤하늘을 갈랐다.

파파팟! 휘이익!

발단이 오해건 뭐건 상관없다. 일단 정, 사 간에 사상자가 생기는 그 순간, 모든 게 끝이다. 잘잘못을 따지는 건 엄한 허공에 개 짖는 소리일 뿐. 무조건 그 전에 막아야 한다.

잠시 후, 형산파와 척마단 선발대가 대치한 구릉.

휘리릭!

전력을 다해 달려오던 독고운양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저놈이 왜?’

좌우 양쪽을 번갈아 가며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는 자. 하오문도라던 그놈이다.

연사구의 시선이 이번엔 형산을 향했다. 일대제자의 대사형인 선청에게로.

“아우! 정말 아니라니까요!”

“정말 그자들이 마인이란 말인가?”

“그렇다니까요! 몇 번을 말씀드려요!”

“마기는 전혀 안 느껴졌는데.”

연사구는 마지막 패를 꺼내 들었다.

“제 말은 그렇다 쳐도 무윤이 말은 믿으시죠?”

“천 공자도 그리 말했는가?”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한 때.

“그 새끼, 아니 그놈이 파악한 거예요. 이제 됐죠?”

“……천 공자는 같이 안 왔는가?”

“금방 올 거예요. 이제 칼은 그만 내리시죠. 아! 저기 척마단주도 오셨네.”

“……!”

양쪽에 사상자가 있는지 살피던 독고운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 선발대 대주로부터 전음으로 들었다. 싸우기 일보 직전 달려든 넷으로 인해 이리된 것을.

‘다행이군.’

이제 자신이 나서야 할 때.

“형산의 장문인께서 직접 나오셨구려.”

사정을 알았다 해도, 장문인 건수의 달갑지 않은 눈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솔직한 마음은 연사구가 조금만 늦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 컸다.

‘그러면 선발대 몇은 손을 봤을 텐데.’

건수는 매서운 시선을 담아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제 형산에 왔다 들었는데 어찌 말을 안 하셨소?”

“말할 분위기가 아니더이다. 아실 텐데.”

“……달리 전할 수도 있었소이다.”

“그럴 여유가 없었소.”

“시간이 있었으면 하셨소?”

독고운양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말꼬리 잡아 봤자 감정의 골만 깊어질 뿐.

“지금은 혈교 놈들 잡는 게 급선무. 그 얘기만 합시다.”

독고운양이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자, 잠시 고민하던 장문인 건수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인을 잡는 건 당연한 일. 하나 그대들과 공조할 순 없소. 우린 따로 알아서 하리다.”

“이보시오, 장문인. 내 말을 어찌 들은 게요? 지금 잡지 못하면 저들은 호남 중부로 퍼질 텐데. 그땐 어쩌려고 이러시는 게요?”

“형산은 최선을 다할 것이오. 그대들도 그러면 될 것이고.”

“허! 강서 사람인 우리가 이리 나서는데, 화급한 호남의 일이거늘 정녕 이러실 게요!”

서로의 갑론을박이 끝없이 이어질 즈음, 짜증 섞인 연사구의 전음이 선청을 향했다.

-심정이야 알겠는데 그래도 지금은 협력할 때 아녜요?

-후! 마단을 뿌린 사도련 핵심이 독고가일세. 어찌 저들과 함께하겠나. 미안하지만 나도 내키지 않네.

-그러니까 부딪치지 않고 각자 역할 분담할 방법이 없냐고요? 여기 지형을 잘 아시니까 생각 좀 해 보세요. 뭐 예를 들면 한곳에 유인하고 서로 반대편에서 협공할 수 있는 곳이나…….

순간 선청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아! 그런 곳이 있네. 회하곡! 거기면 마인들을 가둘 수 있네. 지금 상황이면 그쪽으로 몰기도 쉽고, 협곡 양쪽을 따로 맡으면 모는 동안에 부딪칠 이유도 없지.

-그거 잘됐네요. 그럼 말씀하세요.

-내가?

-그럼 누가 해요?

-내가 얘기하면 저쪽에서 수긍할까?

-……그럼?

-크흠! 이럴 땐 제삼자가 나서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

결국 한동안 고민하던 연사구가 앞으로 나섰다.

“두 분! 이렇게 하시면 어떨까요?”

“……?”

선청에게 들은 대로 회하곡 주변 지형을 설명하고는 말을 이었다.

“형산은 뒤쪽 협곡으로 먼저 가시면 되고, 척마단은 지금처럼 마인을 쫓으면 그만입니다. 어때요?”

각자 내부 논의를 하던 두 수장의 고개가 일단 끄덕여졌다.

“우리 형산은 먼저 회화곡으로 질러가지. 뒤쪽 협곡을 맡겠네.”

“우린 이대로 그쪽으로 몰아가겠소.”

마인을 골짜기 안으로 모는 것까진 합의가 됐다. 그렇게 각자 목표한 곳으로 출발하기 직전, 양쪽 수장의 꺼림칙한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아직 서로 합의하지 못한 것. 하지만 누구건 먼저 말을 꺼내면 불리해질 사안. 잠시 망설이던 두 사람은 결국 아무 말 없이 신형을 날렸다.

휘리릭! 휘릭!

이제 남은 건 연사구 일행 넷뿐. 양쪽을 번갈아 보던 당서하의 미간이 좁혀졌다.

‘잘되긴 했는데. 마인을 협곡에 몰고 나서가 진짜 문제지.’

협곡에 마인을 가둔 이후 먼저 공격하는 쪽이 피해가 클 건 자명한 일. 서로가 발을 빼다 보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녀의 시선은 이번엔 연사구를 향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일을 한 그이지만 걱정이 앞선다.

‘부담도 크겠지.’

다른 일도 아닌 정, 사 간의 날 선 갈등에 중재자로서 나선 상황.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책임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지금은 칭찬부터 해야 할 때.

“사구야, 너 큰 거 한 건 했다.”

연사구에겐 마냥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소리. 그동안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었다.

“휴! 그러게요. 급해서 나서긴 했는데 잘한 건지 정말 모르겠네. 정, 사 공조란 게 뒤끝이 좋은 적이 없는데.”

그때 하후진의 손이 연사구의 어깨에 올라갔다.

척!

“형님은 최선을 다했어요. 거기다 감이 안 좋다고 빨리 와서 저 둘이 여기서 안 싸운 거고.”

“알지. 아는데 그래도 영 찜찜하네.”

진서연이 활짝 핀 웃음으로 거들었다.

“가서 또 중재하면 되죠. 이제 두 분 다 연 당주 말이라면 흘려듣지 못하잖아요.”

연사구는 문득 또 하나 그럴 수 있는 놈이 떠올랐다.

“근데 이 새낀 어딘 간 거죠? 코빼기도 안 보이네.”

“……?”

같은 시각.

한동안 내상을 다스린 무윤의 걸음이 남쪽을 향했다.

부러질 듯 휘청거리는 나뭇가지 사이를 헤치는 신형이 속도를 더해 갔다.

사사삭! 휘이익!

바람이 거칠게 귓가를 쓸어 댔지만 무윤의 상념은 더욱 깊어져 갔다. 최근 벌어진 모든 상황을 종합한 결론.

‘강호의 대격전, 그 서막이겠지.’

우선 오대세가와 사야홀의 일.

‘둘 다 너무나 큰 기둥인데.’

구대문파와 함께 정파의 양 기둥 중 하나인 오대세가, 거기에 사파의 지존 격인 독고가까지. 또 이들이 주축인 무림맹과 사도련. 이 일의 여파가 어디까지 갈지 예측이 안 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발등의 불이 있다. 윤자엽이 죽기 전 알려 준 내용 중 하나.

-혈천대 주력은 서북쪽으로 갔다 들었네. 여길 공격한 건 그쪽을 지원하지 말라는 경고 차원일 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

-전쟁이군.

-그러네.

근 칠천 리 떨어진 여기까지 혈천대가 왔을 시간이면.

‘서북쪽은 이미 전란에 휩싸였겠어.’

이미 지역 내 정, 사 간 싸움은 남동쪽을 제외한 중원 전 지역에 퍼졌다고 봐야 한다. 거기에 혈교의 도발까지. 이 정도면 중원 전체의 정, 사 대전은 물론 혈교의 중원 침공이 내일 당장 일어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복잡한 심사가 한동안 마음을 착잡하게 할 즈음, 먼 하늘을 바라보는 눈이 더할 수 없이 빛났다. 어찌 보면 수십 년 주기로 벌어지는 강호의 대혼란이 이번에도 역시 도래했을 뿐이다.

‘어차피 쌓인 건 터질 수밖에 없지. 내가 강호 전체를 걱정할 이유도 없고. 하지만! 지켜야 할 건 있지.’

자신과 여휘를 악마로 만들었던 소문 조작은 지금 계획대로 밀고 나가면 된다. 걱정은 오직 하나.

‘무인 간의 싸움이야 커지건 말건, 내 주변만 안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일반인까지 번지는 전쟁이 여기까지 확산되면 누구 할 것 없이 다칠 수밖에 없어.’

자신과 지인들의 터전인 이곳 호남 중남부가 전쟁터가 되는 것,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물론 모든 게 불확실하고, 또 상황이 닥쳐 봐야 알겠지만, 이전 계획에서 변경할 것 하나는 확실해졌다.

혼란의 전장을 주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

‘직접 나서야겠어.’

바뀔 건 그 하나뿐이지만.

그 어느 것보다 큰 결심에다 닥칠 변화 또한 작지 않다.

천마라 불린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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