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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143화 (143/161)

143화

쇄애액! 화라락!

노도와 같은 광풍과 함께 짓쳐 드는 윤자엽의 무복 자락이 거세게 휘날렸다. 물 흐르듯 유려하게 뻗은 검이 정확히 둘 사이를 향했다.

상황이 어찌 될지 몰라 격전장으로 서서히 간격을 좁혀 오다 잡은 천금 같은 기회.

공간을 장악하는 기의 그물 역시, 고기 잡는 어망처럼 다른 그물과 얽히고설키면 쉽게 풀 수 없다. 특히 이렇게 치열하게 서로 밀고 당기면 더 꼬이게 되고 풀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지금이 딱 그 상황.

결국 어망을 잘라 내듯 기의 그물 역시 잘라 내야 한다. 방법은 기의 막을 거두거나, 또는 얽힌 부분의 내력만 잘라 버리거나. 한데 둘 다 엄청난 내력 손실은 물론 그 찰나의 빈틈은 상대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둘 다 그걸 알기에 자신이 다가선 걸 알면서도 물러나지 못한 상황.

한데 쇄도하긴 했으되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게 있다.

‘누굴 공격하지?’

눈 한번 깜짝할 시간만 남았음에도, 한 번의 도약이면 검강을 가득 두른 칼날을 쏘아 낼 수 있는 한 장 거리임에도.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달려들었지만, 칼끝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

당장의 적인 독고승. 아니면 향후 가장 큰 위협이 될지 모를 불가의 무인.

이제 어느 한 곳에 뇌성벽력을 내리꽂아야 한다.

결정을 못 내린 눈동자가 초조하게 좌우로 떨리던 그 순간.

콰앙!

기의 그물을 강제로 뜯어낸 폭음과 함께 무윤의 신형이 뒤를 향했다. 내력 손실을 감수하고 먼저 물러난 상황. 내공 대결에서 밀렸음이 확실했다.

사라락!

이미 강기의 파편 사이로 들어온 윤자엽은 결의에 찬 눈빛을 뿜어냈다.

‘이쪽이다.’

무인의 직감과 본능, 그 찰나의 순간 냉철한 이성이 모두 한곳을 가리켰다.

내상을 감수하고 물러선 불가의 무인, 기의 그물을 부여잡다 순간 내력 공백이 생겨 중심이 무너진 독고승. 그 사이를 섬전처럼 가른 검 끝이 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휘이익! 쇄애액!

이 한 번의 공격에 혼신의 내력을 집중했다. 저 강기의 폭풍에 몸을 들이대면 자신 또한 부상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기의 그물에 발목이 잡힌 지금이 아니면 절대 무너뜨릴 기회가 없는 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심한 내상은 피할 수 있다.’

이후 어떤 상황이 와도 몸을 뺄 정도는 가능하리라. 그 마음 더한 검극의 울림이 한 치의 흘림도 없이 상대를 쏘아 갔다.

슈우욱!

강대한 힘을 용틀임한 검격은 약해진 호신강기를 뚫고 살갗을 뚫어 냈다. 온 힘이 실린 검 끝이 몸 깊숙이 틀어박혔다.

서걱! 쑤욱! 푸욱!

“커억!”

내장 근처까지 옆구리를 쑤셔 댄 칼끝은 엄청난 격통과 동시에 중상임을 알렸다. 숨이 가빠지고 머릿속이 잠시 하얗게 변했지만, 일세를 풍미한 절대자 독고승의 눈동자는 바로 불꽃을 뿜어냈다.

급한 퇴보와 함께 박힌 칼날을 뽑아내고는 들불처럼 진기를 일으켜 내상을 줄여 갔다.

파파팟! 타닥!

잠시 간격을 벌리자, 흉중을 떠난 활화산 같은 분노가 죽은피와 함께 입가를 헤쳤다.

“쿨럭! 이, 이놈이!”

뒤도 안 돌아본 윤자엽의 신형은 다른 목표를 향해 짓쳐 들었다.

‘이번엔 너다.’

칼끝이 전한 감촉은 독고승이 쉽게 회복할 상처가 아님을 알렸다. 또 자신의 내상은 그리 심하지 않아 여유가 있는 상황. 처음엔 어느 한쪽만 공격할 생각이었는데, 스스로 내상을 자초한 무윤까지 처리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어차피 우린 부딪칠 수밖에 없어. 그럴 바엔 지금 끝내는 게 최선.’

그 굳은 결심에 대지를 박차고 벼락같이 쏘아져 나갔다. 내상의 여파를 다스리기 전에 몰아쳐야 한다.

파팟!

단숨에 기세를 끌어올려 검을 쭉 내지르던 찰나, 상대의 눈에 흐르는 무심함이 눈 가득 들어왔다.

순간 등줄기를 시릿하게 만드는 짜르르함이 일말의 불안을 일깨웠다. 긴장과 초조함이 가득해도 모자랄 형국인데.

‘뭐지?’

이미 검격의 안에 몸이 들어온 상황. 게다가 놈은 분명 내력을 끊어 냈다. 그것도 의념에 기를 더한 강기의 그물을. 아무리 화경 중반의 절대자라 하더라도 그 막대한 손실에 몸이 성할 리 없다.

그 확신에 승부를 결한 상태. 윤자엽은 뺨에 주름이 지게 어금니를 악물었다.

‘저건 허세다. 몸은 최악이야.’

불안을 떨쳐 내려고 섬뜩한 미소를 입가에 가득 흘렸다.

‘단번에 끝낸다!’

무인의 직감이 알렸다. 완벽한 공세가 아니더라도 시간을 줘선 안 된다고. 이 한 번의 칼질로 끝내야 한다고.

지금은 자신을 믿어야 할 때. 강맹한 힘을 담은 검에 극한의 의지까지 더했다. 몰아치는 거대한 바람과 함께 검 끝이 휘날리는 순간.

슈우욱!

겹겹이 싸인 강기 사이로 온몸 뒤흔드는 놈의 몸짓이 너울처럼 출렁거렸다.

사라락!

묘하게 흔들리는 몸의 비틀림이 눈앞을 어지럽히는 순간, 기묘한 권파에 전율처럼 다가오는 무형의 진기파동이 무인의 본능을 일깨웠다.

‘뭔가 있다!’

이미 돌풍처럼 회전한 검격의 소용돌이가 강력한 힘과 함께 무더기로 놈의 몸에 내리꽂히는 상황인데, 그 사이에 길을 만들어 타고 오르는 찌릿한 뭔가가 있다.

순간 윤자엽의 눈자위가 움찔거렸다.

‘이건!’

어느새 바람과 함께 다가온 놈의 주먹이 시야에 들어왔다. 들불처럼 거세게 밀어닥친 폭풍과 함께 검강 사이를 헤집고 용틀임하듯 솟아오른 주먹.

슈우욱!

강기에 둘러싸인 검 면을 타고 밀물처럼 쏟아져 오는 기운. 어떤 변화도 없이 일직선으로 공간을 접은 주먹이 대기를 찢어발기는 굉음을 토했다.

쇄애액! 퍼억!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윤자엽의 눈이 부릅떠졌다.

“헉!”

이미 다가온 주먹이 눈앞을 가득 채운 상황. 뇌리를 울린 위험 신호에 몸을 비트는 찰나, 순간 목표를 바꾼 권이 비어 있는 가슴을 강타했다. 찰나를 초월한 빠름.

슈유욱! 퍼억! 빠각! 우둑!

“우욱!”

엄청난 반탄력에 튕기듯이 밀려 난 신형이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쿠쿵! 투둑!

완벽한 수비를 갖추지 않은 모험이 가져다준 결과.

순간의 짧은 정적 후, 누운 채로 거친 기침과 울혈을 토한 이의 가슴이 들썩거렸다.

“쿨럭! 쿠욱! 하아!”

무심한 듯 차가운 무윤의 눈이 잠시 윤자엽을 쓸었다. 가슴을 강타한 주먹에 뼈는 다 부서지고 내장까지 터진 상황. 더 볼 게 없다.

“저쪽도 데리고 오지.”

다가오는 무윤을 보던 독고승의 눈이 파르르 떨려 왔다. 내장까지 건드린 상처 탓에 내력의 절반도 운용할 수 없는 상태.

뭘 어찌해 볼 사이도 없이, 바람 탄 도약과 함께 물 흐르듯 뻗은 권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퍼억! 우둑!

“쿠욱!”

격한 신음과 함께 독고승의 눈자위가 서서히 흐려져 갔다.

주변은 언제 싸움이 있었냐는 듯 고요함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바닥에 누운 채 토해 낸 울혈이 두 절대자의 옷을 검붉게 물들이고 쉴 새 없이 지면을 적셨다. 이미 모든 게 끝난 상황.

긴 숨을 뿜어낸 윤자엽의 입이 나직이 열렸다. 그저 궁금했다.

“하아! 어떻게 된 거지? 내상을 안 입었나?”

그제야 무윤도 적지 않은 울혈을 거칠게 토해 냈다.

“쿨럭! 그럴 리가 있나. 내력에선 내가 도왕에게 밀리는데.”

윤자엽은 물론 독고승의 눈에도 의아함이 가득 서렸다.

“한데 어떻게 그런 움직임이 가능했지?”

보내는 마당에 굳이 감출 이유는 없다.

“가진 힘이 두 가지네. 하나는 멀쩡했지. 내력 없이 쓸 수 있는 기운인데 외공이라 생각하면 될 걸세.”

“허! 외공이라!”

이제 궁금한 걸 물어야 할 때. 짧은 말에 함의를 담았다.

“왜 그랬나?”

윤자엽의 암담한 마음은 시선을 절로 하늘로 향하게 했다. 속 깊은 한숨이 허망함을 더했다.

“후! 처음엔 기회다 싶어 무작정 뛰어들었네. 마지막 순간까지도 누굴 공격할지 못 정했었지.”

“그런데?”

“자네는 중상 같아서 걱정이 덜 됐어. 그래도 판단이 안 섰는데 도왕께서 의외로 내력 공백이 커 보이더군. 해서 공격했는데 적중했지. 그리고 자넬 보니까 기운이 많이 흐트러졌더군. 욕심이 더 생겼어.”

듣고 있던 독고승은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이제야 아까의 의아함이 풀렸다.

“쿨럭! 그냥 물러나도 내상이 심할 텐데 기의 그물을 뜯어내는 순간에 더 힘을 쏟아 당기기에 나도 당황했었지. 그럴 줄은 정말 몰랐거든. 급히 대응하느라 저 친구 공격을 막을 여력이 없었어. 그게 다른 내력이 있어서 그런 게로군.”

무윤은 담담히 말을 풀어 냈다.

“달려오는 이 친구가 갈등하는 게 보이더이다. 해서 그대를 노리게 하려고 모험을 했지요. 운이 좋았소이다.”

“어쨌든 적중했구먼. 바로 자넬 노릴 것도 예상한 거고.”

“그땐 반반이었소. 혹시 몰라 허점을 보인 건데 이 친구가 걸려든 거고. 만약 지공을 펼쳤다면 내상이 심했으니 승부는 몰랐겠지.”

독고승은 허망함 가득 담은 한숨이 그대로 내뱉어졌다.

“허허! 다 자업자득이로군. 자넬 안 노렸으면 나도 이리되지 않았을 것이고, 또 이 친구도 그렇고.”

“그럼 또 어찌 됐을지 나도 궁금하다오. 하나 다 지나간 일. 이젠 잊으시구려.”

“허! 그래야지. 누굴 탓하겠나. 다 우리 선택인 것을.”

윤자엽은 부질없는 질문인 줄 알지만 묻고 싶었다.

“아까 같이하자는 내 제안은 왜 거절했었나?”

“진심이라면 고민했겠지만, 자네 마음엔 진정의 울림이 없었네. 언제든 상황에 따라 변할 거 같았지. 해서 내린 결정이네.”

윤자엽의 눈이 의혹으로 물들었다.

“내 마음을 읽었다고?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마음을 어찌 읽겠나. 심장 울림의 기운만 얼핏 알 뿐이네.”

“근데 어떻게?”

“선우가영에 대해 물을 때 느꼈던 심장 울림과 판이하게 달랐네. 그 색채를 보고 판단한 게지.”

윤자엽의 허망함 가득 담은 실소가 허공에 내뱉어졌다.

“큭큭! 맞네. 그런 마음이었지. 그게 들킬 줄은 정말 몰랐군.”

“다 지나간 일일세.”

윤자엽은 문득 무인으로서 궁금한 게 생겼다.

“어떤 기운이기에 그런 게 가능하지?”

“중단전 내력일세.”

윤자엽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묻는 입술이 파르르 떨려 왔다.

“자네가 중단전 무학을 익혔다고?”

굳이 감출 이유도 없다.

“내가 익힌 게 여휘의 무공이네.”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부릅떠졌다. 윤자엽의 반문이 절로 터져 나왔다.

“여휘의 무공? 그건 전해지지 않았네. 아니 전할 수가 없는 것이야. 한데 어찌?”

“그 길을 가는 방법이 내게 전해졌지.”

“정말인가?”

“내가 이 시점에 거짓말을 왜 하겠나?”

무윤은 적당히 말을 풀어 냈다. 여휘가 남긴 유진이 자신에게 전해진 것으로. 시간도 얼마 없는 둘에게 세세히 설명할 이유가 없다.

한동안 멍했던 윤자엽은 정말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선단으로 가는 우리 길은 어떻다고 보나?”

“의존하지 않으면 그 또한 방법이겠지. 다만 여휘가 갔던 그 끝까지는 어렵다고 보네.”

윤자엽은 문득 청해의 누군가가 떠올랐다. 가는 마당에 언질 정도는 해 주고 싶은 자.

“다른 이는 몰라도 련주는 약에 덜 의존하면서 길을 가고 있지. 현경을 목전에 둔 지금까지 말일세.”

무윤의 눈이 깊어졌다. 이런 세력의 련주면 그 정도이리라 짐작은 했었다. 답을 줄지는 모르지만 묻기로 했다.

“련주가 누군지 알려 줄 수 있는가?”

“미안하네. 썩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신 자인데 좀 그렇군. 다만 혈교에 대해선 알려 주지. 내 원수기도 하니까.”

윤자엽의 설명이 이어지는 내내 무윤의 표정은 깊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럴 만한 내용들이니까.

몇 마디 말이 더 오고 가자,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남길 말이 있는가?”

윤자엽은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없네. 이리 가면 그만인 게지.”

독고승의 허망한 눈빛도 먼 밤하늘을 향했다.

“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더니!”

“……!”

잠시 후, 두 사람을 떠나보낸 발걸음이 묵직하게 돌아섰다.

문득 별빛이 그윽하게 다가오는 밤하늘로 시선이 향했다. 무인으로서, 강호인으로서 서로의 선택으로 벌어진 일.

상념에 잠길 것도 없다.

‘여긴 강호니까.’

그저 앞으로도 계속될 무인의 삶일 뿐이다.

이 길을 가는 누구나 맞닥뜨리는 일.

하지만 털어 낼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윤자엽이 남긴 혈교의 얘기.

‘그 정도라니. 생각 이상이야!’

들은 이후 지금까지 내내 마음을 묵직하게 짓누른다. 그저 나오는 건 한숨뿐.

‘후!’

막 흘러가던 구름이 초승달을 가려 어둠을 짙게 만든다. 떨쳐 낼 수 없는 근심도 점점 그 칙칙함에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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