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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139화 (139/161)

139화

사도련 지부 회의실.

무윤과 둘만 남자, 단주 독고운양의 설명이 시작됐다. 물론 필요한 부분만 추려 내서.

“단 열흘 사이에 남부, 북부 가릴 것 없이 스무 곳 가까운 중소 문파에서 분쟁이 일어났지. 원인은 다 동일하네. 누군가 문파를 습격하고는 사라져 버렸지. 또 대부분 피해만 크게 입히고 멸문시킨 곳은 없어. 그러니 우선 같은 지역의 적들을 의심하게 되니 싸움이 커지고 있다네.”

“마인들 짓입니까?”

“확실하네. 우리는 물론 정, 사 거대 무가들이 조사하다가 몇 놈을 잡았는데 수세에 몰리니까 전부 마기를 드러냈지.”

“그럼 배후는?”

“이번에 동원된 수만 어림잡아 오백이 넘네. 이렇게 대규모로 은밀하게 움직일 데야 혈교밖에 더 있겠나. 천마교야 이런 술수 자체를 싫어하는 놈들이고. 또 심증을 굳힐 것도 몇 개 있고.”

바로 의아함이 올라온다. 물론 짐작 가는 바도 있지만.

“마인 짓임을 알렸는데도 싸움이 커진단 말입니까?”

“이유는 두 가지네. 시작은 그놈들이었어도 그간 정, 사 간에 곪은 게 터지기 시작한 게지. 그건 누구나 예견한 일 아닌가.”

“다른 건?”

독고운양의 눈이 번득였다.

“놈들에게서 마기가 안 느껴지네. 정파에 간 놈들은 사파 기운, 사파에는 정파 기운을 뿌리면서 공격해 대니 다들 처음엔 속는 게지. 급하게 사방에 다 알렸지만 잘 믿지도 않고, 이미 저들과 상관없이 정, 사 간 싸움으로 번져 버린 게고.”

무윤의 눈이 깊어졌다.

‘그 약이 맞겠어. 먹은 동안에는 마기도 안 드러나고 밖으로 기운이 뿜어 나오니까.’

배후도 혈교가 확실해 보인다. 소문 조작 세력이 의심되긴 하지만, 수천 리 떨어진 여기에 이 정도 일을 꾸미자면 보통 인력과 세력으론 어림도 없는 일.

‘그 세력이 같이했을 수는 있어도 단독으로 이런 일은 못 벌인다.’

이제 궁금한 건 척마단주가 여기 있는 것.

“단주께서 여기 계시는 건?”

“놈들이 호남으로 넘어왔지.”

짐작은 했지만 기다란 한숨이 절로 흐를 수밖에 없다.

잠시 생각하다 또 의아한 게 생겼다.

‘이런 일이면 바로 정파와 공조해도 될 텐데 왜?’

몇 가지 추정은 되지만 확실한 게 없다. 에둘러 묻는 수밖에.

“정파엔 언제 알리실 겁니까?”

이것도 둘러대야 할 사안.

“아직 불확실한 게 많네. 좀 더 상황을 봐야지.”

그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주님, 잠시 들어갔으면 합니다.”

마인의 심문을 담당한 부단주 고방홍. 이보다 급한 일은 없다.

“들어와라.”

고방홍은 급히 전음을 보냈다.

-환혼단이 먹혀들었습니다.

환혼단은 이지를 흩트려 정보를 캐내는 데 쓰는 환단.

-그럼?

-놈들의 위치를 아는 거 같은데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반 시진 안에 다 털어 낼 수 있습니다.

독고운양의 눈이 번득였다.

-위치를 안다? 틀림없겠지?

-예, 확실합니다.

-놈이 잡힌 걸 저들이 알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시간을 더 줄이도록. 그리고 숙부님께도 알리고.

-예.

고방홍이 나가자 독고운양은 가벼운 실소를 흘렸다.

‘괜한 일을 벌였어.’

마인에게서 정보만 알아내면 무윤은 필요 없는 존재. 얘기를 중단할까 하다가 문득 생각이 달라졌다.

처음엔 며칠 마인을 찾는 데 써먹을 생각뿐이었는데, 신분을 복권했는데도 흑도방주를 계속한다는 건 정파에 치우친 놈이 아니란 뜻.

‘이런 놈이면 좋게 끝내서 나쁠 게 없다.’

어차피 바로 움직이고 나면 세상이 다 알 일. 조금 먼저 알리고 인연을 만드는 게 낫다.

“아직 정파에 못 알린 건 여러 이유가 있지. 정황이 불확실한 건 물론이고 놈들이 정, 사 간 분쟁을 만들다 보니 오해할 소지도 많고.”

“그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또 사전에 막기는 늦었네. 놈들은 크게 세 부대로 이동했는데 남, 북, 그리고 여기 중앙인 형주 쪽으로 움직였지. 호남에 들어온 게 벌써 이삼 일 됐으니 오늘 움직인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순간 무윤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마인들은 강서에서 대도시, 거대 문파가 아닌 소규모 도시에 작은 문파를 노렸다.

‘혹시 뇌양에도?’

침주야 하후가가 있으니 큰 걱정이 없지만, 본가 천가장이 있는 뇌양은 마인들이 들이닥치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게 없다.

“죄송합니다. 제 본가가 뇌양이라 당장 가 봐야겠습니다.”

독고운양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맴돌았다. 이미 예상했던 반응.

“말릴 생각은 없네만 내 말을 듣고 판단하는 게 좋을 걸세.”

“무슨 말씀인지?”

“뇌양이면 여기 중부로 온 놈들이 움직여야 하는데, 저들은 지금 여기 형주 부근 어딘가에 몰려 있네.”

“그걸 어떻게?”

“강서(江西)에서 여기까지 그놈들을 쫓아왔는데, 형주로 들어오기 전에 잡을 뻔했다가 놓쳐 버렸지. 해서 외곽에 정보원들을 깔아 놨는데 빠져나간 흔적이 없어.”

“……확신하십니까?”

“여기로 온 놈들 수가 근 이백이네. 한둘이면 몰라도 다는 못 빠져나갔어.”

“혹시 어떤 자들이 왔는지 아십니까?”

독고운양의 눈가에 더할 수 없는 열기가 서렸다.

“혈천대주가 있는 건 확실하네. 탁조경이라고 들어 봤나?”

무윤의 눈이 커다래질 수밖에 없다. 혈교에 대해 세세히는 모르지만, 익히 들어 본 이름들.

“혈천대라면 중원 공략을 총괄하는 부대 아닙니까? 그 대주가 탁조경이고.”

“맞네. 이번 일도 저들이 주도한 게지. 어떤가? 그런 자들을 잡을 기회면 이럴 만하지 않나?”

의아함이 앞설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단독으로 안 해도 될 텐데.

“정파와 같이 공조하시는 건?”

독고운양은 불꽃같은 정광과 함께 타오르는 숨결을 내던졌다. 분노와 원한에 더해진 무인의 투기와 열망이 가득 찬 눈빛.

“이제껏 탁조경, 그놈과 혈천대에 당한 내 단원이 백이 넘는다네. 근데 이번엔 확실히 기회를 잡았지. 자네 같으면 이걸 남과 나누겠나?”

물론 이면엔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이 또한 사실.

1온몸을 휘감은 폭풍의 기세가 무인의 심정을 알린다.

‘평생의 숙적, 그런 자겠어.’

혈교는 무윤 또한 치를 떨게 하는 놈들인 데다, 뇌양에 가는 걸 사전에 막을 방법이라 도울 일이긴 한다.

하지만 순간순간 말을 돌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감추는 게 있는 거 같은데.’

그때 부단주 고방홍의 목소리가 밖에서 울렸다.

“단주님, 준비됐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온 독고운양의 시선이 무윤을 향했다.

“아까 얘기는 없던 게 돼 버렸고. 아! 이 부근에 다른 지원 세력이 있는지 살펴봐 주시게. 혹 발견하면 지부에 알려 주고.”

“알겠습니다.”

척마단이 떠남과 동시에 무윤도 저잣거리를 내달렸다.

파파팟!

잠시 후, 하오문 지부.

설명이 끝나자마자 밖으로 나갔던 연사구가 다시 들어왔다.

“연락은 다 돌렸어. 뇌양에는 가장 빠른 전서구로 보냈고.”

“고맙다.”

연사구는 밖에서 추가로 들은 걸 알렸다.

“척마단 말고 독고가 무인도 백여 명이 왔더라.”

당서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강서의 지존 격인 독고가야. 자기 안방이 털렸는데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겠어. 우리 당문이라도 그랬을 거야.”

그때 연사구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쫓아갈 거지?”

“그래야지.”

“상황 보고 신중하게 나서라. 척마단주가 뭔가 숨긴 거 같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려. 여차하면 그냥 튀어 버리든가.”

“알았다.”

당서하의 시선이 무윤을 향했다.

“우린 무림맹 지부에 알릴게.”

“그쪽은 당장 움직이지 못하겠죠?”

“그럼, 상황 파악도 안 됐는데. 준비하자면 시간 걸려.”

“참! 형산에도 알려 주세요. 간 곳이 형산 북쪽 어디 같으니까.”

“알았어. 조심하고.”

“예.”

북쪽을 향한 신형이 바람을 갈랐다.

파파팟!

세 시진 후, 형산 북쪽의 산야.

이백여 명의 혈천대, 따로 떨어져 있는 일행 스무 명 모두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수많은 무인이 운집했지만 무거운 침묵만이 소슬한 바람과 같이했다. 오직 황량한 들판을 날아다니는 새소리만 정적을 깨울 즈음.

혈천대주 탁조경은 묵직한 숨을 흘려 냈다.

“아무래도 정찰 조장이 잡힌 모양이오.”

척마단과 독고가의 포위망이 정확히 이곳을 향해 좁혀 오고 있었다.

스무 명 일행을 이끄는 윤자엽은 진중함을 담아 시선을 마주했다. 지금은 그래야 할 때.

“어쩌시겠습니까?”

“여기서 갈라집시다. 이 정도면 약속은 지킨 거 같고, 그쪽에도 좋을 거 같은데.”

혈천대가 강서를 뒤흔드는 사이, 윤자엽은 사야홀 총단을 급습했다. 마단 자료를 빼내고 선우가 사람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거기까지 공조하는 게 혈천대주 탁조경과의 원래 약속. 한데 척마단의 추적이 생각보다 빨라 여기까지 같이 오게 된 것.

청해에 근거지를 둔 상도련(常道聯)의 부련주, 윤자엽의 시선이 일행을 향했다. 사야홀과 격전 후 남은 무인은 십여 명, 거기에 탈출시킨 선우가 열 명 중 여인과 아이가 다섯.

고민할 필요도 없는 답이 내려졌다.

‘따로 가는 게 최선이다.’

쫓아오는 독고가엔 분명 화경의 무인인 사야홀주 독고승이 있다고 봐야 한다. 감추긴 했지만, 자신도 화경의 무인. 하지만 십 년 전에 벽을 넘은 그와는 급 자체가 다르다.

‘그자만 피한다면 문제없지.’

소수가 뒤따라오는 정도야 언제든 조용히 처리할 수 있으니까.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서로에게 좋겠습니다. 하면 어디로 가실 건지?”

“우린 남쪽으로 가서, 척마단과 형산파를 교란시키고 그 틈을 노려 흩어질 작정이오.”

“그럼 우린 북쪽으로 가겠습니다. 청해에서 다시 뵙기를.”

혈천대주 탁조경의 눈이 다시없이 빛났다. 교는 모르게 이번 일을 같이한 이유가 있다.

“그럽시다. 아! 가거든 련주에게 전해 주시오. 이걸로 빚은 다 갚았노라고.”

“그리 전하지요. 그럼.”

어둠이 여릿여릿 내리는 사이로 두 무리가 스며들었다.

사사삭!

한편 인근 숲속에 있던 무윤의 시선은 양쪽을 번갈았다.

내기로 막을 친 상태라 말은 듣지 못한 상태, 어느 쪽을 따라갈지 잠시 갈등이 일었다.

한데 시선은 자꾸 북쪽으로 더 치우친다.

‘어린아이와 여인이 왜 있지? 거기다 화경급 무인이라?’

고민은 길지 않았다. 혈천대가 사라진 쪽으로 내달리는 척마단이 보였으니까.

사라락!

잠시 후, 간격을 두고 일행을 쫓던 무윤은 문득 손목에 두른 팔찌에 시선이 갔다. 마인들을 상대할 때 쓰라고 여휘가 준 선물.

피식 웃음이 흐른다.

‘이걸 얻자마자 마인을 보게 되네.’

물론 당장 실전에서 전력으로 꺼내긴 무리다. 며칠 노력한 걸로는 적은 양만 무리 없이 끌어낼 정도니까. 또 혼자 있는 경우가 아니면 사용해서도 안 되고.

‘이걸 제대로 쓰면 어떻게 될까?’

문득 분노의 초극기를 처음 꺼냈을 때가 떠올랐다. 조심스러워 미세한 내력만으로 불러들였음에도 그 충격은 지금도 뇌리에 생생했다.

서서히 등줄기를 타고 찌릿찌릿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전신을 휘돌아 무자비한 전율과 흥분을 안기던 순간. 바로 내력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 짧은 시간 온몸을 타고 오르는 열기는 의지와 상관없이 가슴 저 밑에 있던 한 서린 분노를 들끓게 했으니까.

허탈한 웃음이 절로 올라왔었다.

‘초극기가 이렇게 대단할 줄이야.’

초인의 무공 삼 단계에 올라야 가질 수 있는 기운. 일 단계를 완성하고 나름 자부심이 컸는데, 바로 초라함을 느낄 정도였으니.

그래도 덕분에 투지는 끓어올랐다. 저 앞의 목표가 더 선명하게 다가온 셈이니까.

그 마음 담긴 신형이 더욱 굳세게 바람을 갈랐다.

휘이익!

한데 조심스럽게 일행을 따라가며 살피길 한참, 의아함에 조금씩 커지던 눈이 어느 순간 세차게 떨려 왔다.

‘이건!’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다가오는 상대의 기운.

공포나 두려움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의구심, 그 자체다.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여휘와 자신만이 가졌던 기운. 물론 차이점도 확연히 느껴지지만.

‘중단전이 근간인 내력!’

일행을 이끄는 자,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천마라 불린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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