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다음 날 아침, 형주 하오문 지부.
연사구는 무릎을 탁 하고 내리쳤다.
“아!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왜? 들은 게 있어?”
“너 형산에 올라간 사이에 강서에서 사고가 줄줄이 터졌어. 중소 정, 사 문파 여러 곳이 갑자기 싸웠다는 거야. 근데 이상했지. 한두 곳도 아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곳에서 동시에 그랬다는 게.”
강서(江西)는 이곳 호남의 오른쪽에 위치한 곳.
“싸운 이유는?”
“아직 몰라. 막 들어온 소식이라 더 알아봐야지. 근데 그게 마인들 짓일 수도 있겠어.”
바로 드는 의문이 있다.
“한두 군데면 몰라도 여러 곳인데 그게 다 마인 짓일까? 그러자면 못해도 수백이 와야 하는데.”
“그렇기는 한데, 들어 보니까 처음 공격한 건 누군지 잘 모른다고 하더라고. 그 후엔 서로를 의심해서 싸움이 커진 거고. 의심할 만해.”
하오문 정보로는 더 판단할 게 없다.
“사도련 지부로 가야겠다. 들어 보면 알겠지.”
“그래? 나도 같이 가자.”
“너도?”
“척마단주 만난다며? 그 정도 인물이면 알아 두는 게 좋지.”
“좀 찜찜한데. 날 보는 눈빛이 곱지만은 않았거든. 너도 가면 뒤끝이 있을지 몰라.”
잠시 생각하던 연사구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거야 너니까 그런 거지. 설마 척마단주가 하오문까지 그러겠어.”
“친한 걸 알면 장담은 못 하지.”
“급하게 보자고 했다며? 그 정도 정보를 얻자면 감수해야지.”
“너 무슨 배짱이냐?”
연사구는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이번 일 장난이 아닐 거라는 촉이 온다. 무조건 가 볼 거야.”
“또 그 촉이냐?”
“생각해 봐. 강서에 난리가 났는데 척마단주가 왜 여기 있겠어? 분명 뭔가 있어.”
“……!”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거라 틀렸으면 좋겠지만.
‘저놈 촉은 이럴 땐 잘 맞지. 내 생각도 그렇고.’
들은 것만으로도 보통 일은 아니니까.
* * *
잠시 후, 사도련 지부로 가는 길.
“참! 형산은 어떻게 됐어?”
“조만간 결정하기로 했다.”
“잘될 거 같아?”
“생각보다는 괜찮더라. 건네주고 같이할 만해.”
“역시 건천 그자가 문제였나?”
“지도자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지. 인마! 너도 잘해! 그 꼴 나지 말고.”
“이 염병할 새끼가! 비교할 사람이 없어서 그딴 새끼를 거론해! 너 죽고 싶지?”
“그러니까 잘하란 소리지.”
“걱정 붙들어 매시라고. 참! 건천은 어떻게 될 거 같아? 단전만 부수고 넘겼다며?”
“공론화한다고 했으니 파문까진 당연한 수순인데, 마무리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하긴! 그래도 사부인데 고민이 많겠지. 그럴 바엔 확 죽여 버리지 그랬냐?”
“혼자 왔으면 그랬는데, 제자들이 살린 셈이지.”
그때 저 멀리서 두 여인이 달려왔다. 궁금한 당서하의 말문이 먼저 열렸다.
“생각보다 일찍 내려왔네. 형산은 어떻게 됐어?”
“잘 진행 중입니다. 근데 여긴 왜?”
당서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림맹 지부에 다녀오는 길인데 강서에서 정, 사 간에 싸움이 난 모양이야.”
“들었습니다. 근데 마인 얘기는 없었습니까?”
“마인? 그런 얘기는 전혀 없었는데.”
강서는 사도련 총단은 물론 사파의 종주 격인 독고가가 자리한 곳. 그 어느 곳보다 사파의 위세가 큰 지역이라, 정보의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며칠 전 일이면 더욱이.
세세히 들어 봐도 하오문이 아는 정도뿐. 정보를 종합하던 무윤의 미간이 좁혀졌다.
‘강서에 있던 마인들이 호남으로 넘어왔다면? 그럼 여기서도?’
그렇게 생각이 많아질 즈음, 문득 중심 거리를 유유히 걸어가는 중년인을 보던 눈이 번득였다. 격한 신기심의공 반응이 알려 준 사실.
‘마인!’
무윤의 전음이 동시에 세 사람을 향했다.
-마인입니다. 진 조장 우측 뒤 십여 장 떨어져 있는 자.
-뭐? 마인?
-예.
당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무윤이라도 이 사람 많은 곳에서, 그것도 거리가 십여 장인데 마기를 감췄을 마인을 단번에 알아보다니.
-저렇게 떨어져 있는데 확실해?
-진 조장을 보고 흠칫하던 순간에 색정(色情) 담긴 마기가 확 뿜어졌어요. 아니면 저도 몰랐습니다.
당서하는 바로 실소가 올라왔다.
-참내! 마인 주제에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하여간 서연이 덕분에 한 건 하게 생겼네. 바로 잡아 버릴까?
-생각 좀 해 보죠. 저 정도 마기면 초절정급이라 아는 게 많을 거 같은데, 바로 잡을지, 아니면 추적할지.
-헉! 그 정도면? ……고민되네.
연사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 정도 급이면 아무래도 이번 일과 관련이 있겠어.
-미행해야겠지?
-그러자고. 마인이 여기서 혼자 움직일 리 없잖아. 혹시 모르니까 주변도 살펴봐.
-그러고 있……. 잠시만!
-……왜 그래? 마인이 또 있어?
급히 주변을 세밀히 살피던 무윤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져 갔다.
-마인이 아니라 사파 무인 열 정도가 저자 주변에 있어. 척마단 같다.
-그래? 근데 미행 치고는 숫자가 너무 많은데. 혹시?
-주변을 계속 조여 오는 게 아무래도 잡을 모양이다.
연사구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정보를 더 알아내려면 주도권을 잡는 게 최고.
-확실한 거지?
-거의.
-그런 거면 우리가 먼저 잡아야지. 그래야 얻을 게 많아진다.
-그게 좋겠지.
척마단주의 말속에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도 있어서 고민은 길지 않았다.
파팟!
단호하고 거침없는 신형이 시전 좌판 위를 날아 순식간에 공간을 좁혀 갔다.
쉬이익!
눈 몇 번 깜짝할 사이, 질주한 몸 그대로 상대의 지척까지 다다른 순간. 무윤을 발견한 척마단 무인들의 다급한 고성이 터져 나왔다.
“헛! 다른 자가 있다. 어서 움직여!”
“놈부터 잡아라!”
십여 명의 무인이 동시에 사방에서 달려들려는 찰나, 바람 탄 가속 그대로 꿈틀거린 주먹이 마인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슈우욱!
놀란 마인의 경악성이 터지기도 전, 짧게 울린 권풍이 목덜미를 스쳐 갔다.
퍼퍽!
“커억!”
팟! 파팟! 툭! 툭!
연이은 무윤의 점혈이 마인의 몸 이곳저곳을 두드린 후, 앞서 달려온 무인의 눈썹이 매섭게 휘날렸다. 며칠을 공들였던 마인을 눈앞에서 가로챈 자. 수하들을 사방에 두르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자넨 누군가?”
“마침 척마단주님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같이 가시죠.”
“……?”
동행 아닌 동행이 한동안 이루어졌다.
* * *
잠시 후, 사도련 지부 안.
미묘한 심사를 알리듯 척마단주 독고운양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일이 꼬였어.’
우연히 기회에 마인 한 놈을 파악하고 미행했지만, 다른 마인들과 접촉이 없어 잡기로 결심하고 나선 걸음인데, 하필 그때 무윤에게 걸려 버리다니.
‘간부급이라 놈들의 위치를 알 만한 놈인데.’
강서를 공격한 건 물론, 절대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될 곳을 혼란의 틈에 털어 간 자들.
그런 자들을 찾을 기회를 넘겨주거나 공유할 순 없다.
한데 같이 온 자들은 멸마단에 하오문. 고민은 길지 않았다.
‘명분을 만들어 보내 버리면 된다.’
그 전에 먼저 물을 게 있다.
“마인인 건 어떻게 알았나? 십여 장이나 떨어져 있었다던데.”
진서연 때문인 걸 알려야 경계심을 낮출 것이다.
“저자가 진 조장을 봤을 때 마기가 뿜어지더군요. 아마 색마공도 같이 익혔을 겁니다.”
독고운양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자신도 놀랄 정도의 미모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다일 수 없다.
“거기다 자네 기운까지 더해진 거고?”
“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때.
“다 잡은 고기를 자네가 채 간 건 알겠지?”
“다 잡을 뻔했던 고기죠.”
“부인하지 않겠네. 대신 자네도 인정하게. 지금은 우리 손에 있는 것도.”
“건네드린 겁니다만.”
“우리도 자네에게 건넨 거나 마찬가지지. 피장파장일세.”
억지지만 다 틀린 말도 아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지금은 명분을 세우기 위한 거짓말이 필요할 때. 정보를 넘겨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흘간 먼저 조사하겠네. 그 후에 자네에겐 알려 주지. 물론 자네 친구들에게 알리는 건 알아서 하고.”
“마인은 어쩌실 겁니까?”
“그건 사흘 후에 논의하지. 뭘 아는 놈인지 알아야 결정할 거 아닌가.”
“공정한 거래 같진 않네요.”
“이보게. 저 무림맹 여인들과 하오문도는 나서지 않았어. 고로 당사자는 자네뿐이지. 그런 자넨 개인이고 우린 척마단인데 이 정도면 공정하다고 할 수 있지.”
“제가 개인이 아니면 달라지겠군요.”
독고운양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자네에 대해 알아봤지. 뇌양 천가장의 장자, 그리고 침주 흑도방주. 참 특이한 이력이더군그래. 어느 신분으로 사도련, 척마단과 거래할 텐가? 난 둘 다 신경이 안 쓰이는데.”
전혀 쓸 생각이 없었던 패가 이럴 땐 도움이 된다. 품에서 멸마단주 각운이 준 향패를 가만히 들이밀었다.
“이거면 어떻습니까?”
내민 패를 한동안 물끄러미 보던 독고운양은 섬뜩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농락당한 기분이 불쾌감을 넘어 적의로 번진다.
“크크! 멸마단 대주급 향패라! 자네 정말 대단하구먼. 다시 봐야겠어. 날 가지고 장난칠 생각을 다 하고 말이야.”
“그런 적 없습니다만.”
“오! 그래? 그럼 처음부터 멸마단이라고 왜 안 밝혔지?”
“전 멸마단원이 아닙니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물론.”
“……뭔 소리지? 그럼 이 패는 뭐고?”
“안 받으려고 했더니 주신 분이 쓰든지 버리든지 맘대로 하라고 그냥 떠맡기신 겁니다. 차마 면전에서 거절할 수 없어 가지고만 있었죠.”
“대주급 향패를 주면서 그럴 자라? 각운인가?”
“예, 근데 거래를 그리하신다니 그냥 꺼내 본 겁니다. 아! 물론 저도 정말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랬다가 그분이 알면 제대로 코가 꿰여서요.”
독고운양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그거참 재밌는 놈일세.’
정, 사 양쪽에 발을 담근 것도 그렇고, 척마단주인 자신 앞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농 짓거리를 하는 놈. 호기심이 점점 커져만 갔다.
또 멸마단주 각운이 대주급 향패를 저런 식으로 줄 정도에다, 오늘 정황을 보면, 마인을 판별하는 능력도 탁월한 자.
가문은 물론 사도련 전체에 위기가 닥친 지금, 다소 위험이 있더라도 써먹어야 할 놈이다.
부드럽게 말을 흘렸다.
“안 쓰고 싶다? 내가 어떡하면 그러겠나?”
“우선 알려 주실 수 있는 것부터 부탁드립니다. 그 후에 다시 논의하시죠.”
“좋네. 단, 조건이 있어.”
“뭡니까?”
독고운양은 약간의 족쇄를 달아 두기로 했다.
“우리도 이 향패와 비슷한 게 있는데 그걸 사흘 동안 주겠네. 어떤가?”
“그동안은 척마단 입장에서 도우란 말씀입니까?”
“딱 사흘일세. 물론 마인을 상대하는 일에만 한정하고.”
여기서 또 엮일 수는 없다.
“패 없이 그냥 하겠습니다. 일은 약속드리죠.”
장난친 놈에게 그냥 물러나긴 자존심이 상한다.
“난 줘야 자넬 믿겠네. 물론 버리는 건 자네 맘이고.”
“……!”
무윤의 눈이 서서히 깊어져 갔다.
‘이상해. 내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래 봤자 작은 도움인데. 이 정도로 끌어당길 이유가 있나?’
범 아가리를 열어 보자면 소굴로 들어가야 한다.
“상황부터 알려 주시죠.”
“그러지.”
두 사람은 따로 회의실로 향했다.
천마라 불린 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