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수록, 운정각에 모인 좌중의 눈빛이 한층 더 타올랐다. 이 결과에 따라 도백의 유진을 얻을 수 있을지 판가름 나니까.
무윤과 열띤 논쟁을 주고받던 선청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무당과 화산은 물론 거대 도가 문파는 전부 세속의 사업에 관여하지 않소이다. 한데 우리는 계속해도 상관없단 말이오?”
선청의 의지 또한 세속 사업은 전부 속가에 넘기는 것, 한데 당연히 그걸 요구할 줄 알았던 무윤이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무윤은 좌중을 향한 눈에 빛을 더했다.
“유진이 전해진다면 형산은 무당을 바라보고 가실 겁니까?”
“무당은 가장 올곧이 도가의 길을 가고 있으니 그게 옳지 않겠소?”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수행을 통해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추구하는 도라면 그게 최선이지요. 한데 지금껏 귀 파는 교단 도가가 아닌 현실에 참여하는 민중 도가의 색채를 띠어 왔습니다. 그 길이 잘못됐다고 여기시는지요?”
도가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수행을 통해 신선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교단 도교와 현실에 참여해 도를 전하는 걸 중점으로 하는 민중 도교로. 이제껏 형산이 걸어온 길은 민중 도교다. 물론 제대로는 아니었지만.
선청은 나직이 도호를 흘려 냈다.
“무량수불! 그러고자 했으나 현실이 이러하오. 청정도량이어야 할 곳에 욕심과 탐욕이 번지더이다. 도백의 유진과 상관없이 난 그 고리를 끊자고 주장하고 있소. 그대는 생각이 다른 게요?”
“전 귀 파가 도가로서 당당하면 그만이라, 어느 쪽을 강권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삼백 년을 걸어온 길인데 그 안에 어찌 허물만 있겠습니까? 분명 여러분만의 장점이 있을 텐데, 그걸 먼저 찾아보는 게 순서 같아서 드린 말씀입니다.”
“사업은 곧 이익이 목표고 그건 경쟁을 통해 얻어지는데, 그 안에 어찌 정당한 경쟁만 있겠소? 도인이 할 게 아니라 보오.”
“제가 침주에서 벌인 사업들 알고 계시지요?”
“어! 그러네. 크크! 그 고집도 가끔 쓸 만하군그래.”
정막이 흘렀던 공간에 활력이 넘칠 그때, 일반 무인을 대표하는 장로 추풍원이 급히 나섰다.
“내가 하나 묻고 싶네만.”
“말씀하시지요.”
“앞으로 도가의 제자만 받는 논의가 진행 중이네. 그대 생각은 어떤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추풍원은 가슴이 턱 하니 막혀 왔다.
‘허! 아니라 할 줄 알았는데.’
직접 사업을 계속한다면 자신들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도 그걸 주로 담당하니까. 한데 그걸 주장한 무윤이라 이 자리에서 반대 의견을 낼 줄 알고 나선 것인데.
분노와 울화가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허! 유진을 받으려면 우린 제자를 받지 마라, 이 소리군. 아니 바로 나가라는 뜻인가?”
“장로께선 형산의 무인이 아니십니까?”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지?”
“도인의 복색을 하진 않으셨으나, 형산이 추구하는 도경을 읽으시고 도를 구하시고 선인(仙人)의 길을 찾지 않으십니까?”
“그거야 당연히…….”
“저도 도복을 입지 않았지만 그리하는데, 그럼 저는 도인이 아닌 겁니까? 제 스승님은 평생 도복을 입고 사신 도인이셨지요. 한데 제게 무공은 물론 도경의 참뜻까지 물려주셨습니다. 제가 부족해 매일 도경을 읊어 대도 아직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할 뿐. 그럼 이런 제가 도인입니까? 아닙니까? 도인이신 제 스승님의 제자가 아닌 겁니까?”
추풍원은 막힌 속이 탁 풀리자 멋쩍은 웃음을 그대로 흘렸다.
“허허! 도를 추구하는 자는 도인이지. 암! 그렇고말고.”
“그럼 장로님 역시 도인이시네요.”
“어리석은 질문에 좋은 답을 주셨네. 고마우이.”
이제 마지막 말을 전할 때. 무윤은 다시 한번 좌중을 돌아봤다. 한 사람, 한 사람 천천히 눈을 맞추고서. 그러고는 진중한 표정에 그윽한 미소를 담았다.
“스승님이 매번 해 주신 말씀이 문득 생각나네요. 알을 직접 깨고 나오면 창천을 훨훨 날아오르는 새가 되지만, 남이 깨 주면 제 힘껏 날아갈 날개는 갖지 못한다고 매번 그러셨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
이제 건천의 움직임을 유도할 때.
“전 이틀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 부디 귀 파에 좋은 일이 있길 바랍니다.”
장문인 건수가 급히 나섰다.
“이 귀한 걸 들고 혼자 움직인단 말인가? 위험하네. 여기 머무르시게. 아니면 제자들을 붙여 줄 테니 같이 움직이거나.”
“유진은 형산을 믿고 놓고 가겠습니다.”
“그, 그리하겠는가?”
“가지고 갈까요?”
“아, 아닐세. 형산을 믿으시게. 몰래 숨기는 것보다 함을 봉인하고 여기서 모두가 지키는 게 가장 안전할 걸세. 한데 어디 있을 겐가? 혹 연락할 일이 있을지 모르는데.”
“형산을 아직 못 둘러봐서 오늘은 천주봉, 내일은 연화봉 쪽에 있을 겁니다.”
“허허! 그러시게. 괜히 오악 중 가장 수려한 곳으로 불리는 게 아니지. 볼만할 걸세.”
“그럼 전 이만.”
이제 밑밥은 다 뿌렸다. 형산은 물론 건천에게도.
* * *
다음 날, 형산 천주봉.
골짜기에서부터 계속되는 개울, 폭포의 물소리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 부근, 수려한 산세 속에 운무에 휩싸인 칠십이 개 봉우리가 눈 가득 들어왔다.
하늘을 찌르는 고목과 기괴한 절벽들이 즐비한 산야를 둘러보길 한참, 산 아래에서 쇠붙이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캉! 카앙!
산바람 타고 전해지는 기운은 대여섯 명. 의구심이 바로 올라온다.
‘무슨 일이지? 건천이 아닌가?’
건천이 광기가 남았다 해도 일을 크게 벌일 바보는 아니다. 혼자나 소수를 대동해서 은밀히 처리해야 할 일이니까.
‘가 보자.’
바람을 가른 신형이 산 아래로 내달렸다.
휘이익!
잠시 후, 천주봉 골짜기.
“선청! 네 이놈! 감히 내게 칼을 들다니!”
“이 죄는 후에 달게 받겠습니다. 우선 돌아가십시오! 사숙!”
“내 그자를 만나 물어볼 게 있다 하지 않았느냐! 한데 감히 내 발길을 막아서!”
“장문인 명을 잊으셨습니까? 그 누구도 산문 밖을 나서지 말라 하셨습니다.”
“긴한 일이라 나중에 알린다 하지 않았느냐?”
“죄송합니다. 제겐 은인을 보호하라는 장문인 명이 우선입니다.”
“이놈이 그래도!”
“사숙! 은인께서 이 일을 알면 유진을 건네겠습니까? 부디 돌아가 주십시오!”
일대제자 넷을 바라보는 건천의 눈에 섬뜩한 광망이 일었다. 참을 수 없는 격한 분노가 입술을 짓씹게 했다.
‘감히 내게 맞서다니! 이게 다 그놈 때문이다.’
자신을 따르는 사제 건도와 은밀히 나선 걸음. 제자들은 전부 산문 안에 있을 줄 알고 신속히 내달리다, 길목에 있던 제자들과 마주쳐 버렸다.
‘장문 사제가 나 몰래 인원을 뺐을 줄이야.’
그걸 예상 못 한 실책이다. 이제 방법은 하나뿐.
‘우선 제압하고 놈부터 처리한다. 놈만 없어지면 장문인도 내 말을 따를 터.’
사제 건도에게 전음을 보낸 후, 은밀히 내면의 기운을 끌어올릴 찰나, 떨리는 대기의 파동이 귓전을 울렸다.
파라락! 팟팟!
순간 마주한 제자 뒤편에서 갑자기 나타난 신형에 건천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런! 놈이다.’
한데 공간을 접듯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자의 손끝이 몰려 있는 제자 넷을 향했다.
사라락!
팟! 투둑! 툭! 투욱!
“으윽!”
“헉!”
“크윽!”
“헛! 우욱!”
허공에 손끝이 흩뿌려졌다 싶은 순간, 선청을 비롯한 일대제자 넷의 몸이 축 늘어져 내렸다.
턱! 터억! 투욱!
넷 다 정신을 잃었는지 다시 확인한 무윤의 시선이 천천히 건천을 향했다.
“조용히 올 줄 알았는데 실망입니다.”
건천과 건도의 놀란 눈이 파르르 떨렸다. 두 가지 의혹이 머리를 휘저었다.
‘왜? 어떻게…….’
자기편이라 할 수 있는 제자들을 제압한 것, 또 찰나의 순간에 초절정 넷을 쓰러트린 섬전과 같은 움직임. 아무리 기습이었다고 하나 자신들 또한 쉽지 않은 일.
건천의 눈매가 길게 찢어졌다.
‘초절정 중반이 아니라 상은 족히 됐어.’
문득 사제 건도와 같이 온 게 천만다행이라 여겨졌다. 혼자 제압은 가능해도 저 경지에 놈이 도망치면 놓칠 수도 있었다.
안도와 동시에 굳은 결심 하나가 입술을 짓씹게 했다.
‘무서운 놈이다. 반드시 죽여야 해!’
그때 건도의 의아한 음성이 무윤을 향했다.
“제자들은 왜 그리 한 것이냐?”
“못 볼 꼴을 보느니 이게 낫지요.”
“뭐라?”
“아무리 그래도 사숙들인데 사파 종자하고 이딴 짓을 하는 걸 알면 참담하지 않겠습니까?”
“……사파 종자? 무슨 소리냐?”
무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두 장로의 표정이 알려 준다.
‘같이 온 게 아니다.’
의아한 시선은 바로 숲속을 향했다.
“거기! 그만 나오지 그래.”
잠시 후, 양손을 휘젓는 자가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입가엔 복잡 미묘한 미소가 사르르 흘렀다.
“이봐, 왜 불러내서 일을 만드나? 난 남악(南岳)의 경치를 즐기러 왔을 뿐인데.”
“……어떻게 믿지?”
“저 두 도사 표정을 보면 모르겠나?”
“……!”
그때 나타난 이의 눈이 번득였다.
“참! 근데 내가 사파인 건 어떻게 알았지? 궁금해서 튈 수가 있어야 말이지.”
“……!”
뭔지 모르지만 일이 꼬인 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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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지난번에 자세히 들었소만.”
“그 사업이 잘못됐다고 보십니까?”
“무슨 소리! 그로 인해 많은 백성이 더 잘살게 됐거늘.”
“귀 파의 사업도 그런 방향으로 가면 어떨까요?”
“그거야 그대의 역량 때문에 그리된 것인데, 우리 같은 도인이 어찌 따라 하겠소?”
무윤은 좌중을 다시 둘러보고는 눈에 빛을 더했다. 이 말을 위해 그간의 논쟁을 해 온 것이니.
“쉽지 않을 겁니다. 한데 무당을 따라가는 길 또한 쉬울까요? 아시겠지만 무당 또한 천 년 가까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지금 모습이 됐습니다. 보이는 겉모습만 좇는다고 귀 파가 무당처럼 될 거라 보십니까?”
“그거야…….”
“이참에 그동안 쌓인 허물은 다 갖다 버리고 쳐다보기도 싫은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만큼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장점부터 먼저 살펴보시지요. 삼백 년의 전통, 그 안엔 분명 무당이 갖지 못한 그 무언가가 있지 않겠습니까?”
다들 마단 사건으로 봉문에 처한 이후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삼백 년의 전통, 그 한마디에 가슴에 한 가닥 불이 당겨졌다.
누군가의 입에서 열기 가득한 음성이 흘렀다.
“염치없는 질문이오만, 그대는 뭐라 생각하시오?”
“우선 귀 파의 의기라 생각합니다.”
“……의기라? 어떤?”
“몇 달 전 악양에서 마단 사건이 생겼을 때, 전 여기 다섯 제자분이 그 역경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똑똑히 봤습니다. 도인은 물론 무인으로서 의기와 협을 내세우고, 사형제와 귀 파를 위해 목숨까지 내걸었던 그 모습 말입니다.”
순간 좌중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무윤은 신기심의공을 더해 웅혼한 음성을 흘려 냈다.
“전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고 떨려 옵니다. 도인이나 무인을 떠나서 그렇게 당당한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
이제 쐐기를 박을 때다.
“사실 전 무당에 유진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한데 그 모습을 보고 고민하게 된 겁니다. 형산에 이런 청정함과 의기가 있다면 유진을 전할 가치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모두의 열기 어린 시선이 다섯 사람을 향할 즈음,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 대사형이 원래 그런 분이라오! 하하!”
“암! 가끔 고집을 부려서 그렇지, 딴건 최고지!”
“이 사람아! 그 고집에 사숙들한테 대든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