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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126화 (126/161)

126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무윤의 깊어 가는 눈이 점점 더 색을 더했다. 착각일까 싶어 몇 번을 더 살폈지만.

‘확실해.’

일체의 사기(邪氣)도 없이 청아하고 순수한 도가의 선단, 하지만 그 특이한 향은 분명 악양 동굴에서 느꼈던 기운과 동일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남궁의 인물 모두 세세히 살폈지만 같은 기운은 없다.

‘저자만 그렇다는 건데.’

이제 남궁사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때. 바로 물어볼 사람이 옆에 있다. 진서연.

‘멸마단의 같은 대에 있었으니 잘 알겠지.’

그때 문득 예전에 연사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남궁사현이 침주에 왜 왔는지 물었을 때.

‘꽃을 찾아온 나비라고 했었지.’

눈이 깊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보통 사이가 아니란 뜻. 갈등이 일 수밖에 없다.

‘감춰야 하나? 아니면?’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제 동료이자 친구, 또 딸 소려의 이모인 여인. 거기에 아까 비무처럼 모든 일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

‘둘이 어떤 사이인지 모르지만……. 알리는 게 맞다.’

무윤은 조심스레 화두를 꺼내 들었다.

-저자를 잘 아십니까?

-그런 편이죠. 같은 대에 오래 있었으니까요. 근데 그건 왜?

-어떤 자입니까? 가능한 한 자세히 알려 주세요.

진서연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남궁사현이 비무에 나선 건 분명 자신과 관련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승부는 막 시작될 상황. 이 시점에 왜 저런 질문을 할까.

-저, 왜 그러시는지?

작정한 이상 말 돌릴 이유가 없다.

-저자, 악양 동굴에서 싸웠던 자들과 아주 유사한 기운을 풍깁니다.

한순간 여인의 눈이 멍해졌다.

‘이게 무슨?’

황당함의 극치란 게 있다면 이런 말이리라. 귀로 정확히 들었고 뜻도 모를 수 없지만, 상상은 물론 꿈속에서도 벌어질 수 없는 일. 그 어떤 질문도 답변도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이란 자체를 할 수 없으니까. 이럴 땐 반문밖에 답이 없다.

-그게 무슨 소리죠?

-그때 수장이었던 자가 풍기는 묘한 기운이 있었는데, 저자의 혈류 속에서 똑같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선기의 일종 같은데, 틀림없습니다.

-……선기라면 비슷한 기운도 많은데 혹시 잘못, 아니 착각하신 건 아닌지?

이럴 땐 상대의 눈에 진실을 투영시켜야 한다. 그 어떤 색도 없는 투명함으로.

-확신이 없었으면 제가 말을 꺼냈겠습니까? 그것도 진 조장님과 가까운 분으로 알고 있는데.

진서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렇게 말할 정도면.’

게다가 진정을 담은 저 눈빛을 모를 수 없다. 또 무윤이 기운을 얼마나 잘 파악하는지도 알고. 멀찍이 떨어져서도 자신의 운기 흐름은 물론 강, 약까지 파악하는 무윤인데.

서늘한 냉기와 함께 사지가 떨려 왔다. 그래도 파르르 떨리는 입을 열어야 했다. 물어야 하니까.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무윤의 세세한 설명이 이어지던 어느 순간, 서연의 온몸이 벼락 친 것처럼 들썩였다. 그제야 생각났다. 침주에 찾아와서 남궁사현이 했던 말이.

-아버님 일에 흑막이 있는 거 같다. 돌아가신 것도 그 전의 일도.

-난 그곳에 가면 못 돌아올지 모른다. 만약 네가 생각을 바꿔 준다면 난 안 갈 생각이다.

그 기억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떠올려 이리저리 섞어 보다가 어느 순간 조합이 이뤄졌다.

‘아주 멀리라고 했어. 그게 만약 청해라면? 또 돌아오지 못한다는 건 거기 있어야 할 상황이란 거고, 그럴 이유가……. 혹 부친이 살아 계신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이 쏟아지길 한참,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얘길 해야 해. 전부!’

그래야 해답을 찾아갈 수 있다. 자신과 동료는 물론 남궁사현을 위해서도.

잠시 후, 진서연의 설명이 끝나자 무윤의 눈이 더할 수 없이 번득였다.

‘확실히 뭔가 있다. 그 아버지란 자가 공야의숙과 엮여 있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상대는 천하제일 남궁의 직계. 함부로 건드릴 자가 아니다. 또 몰래 족친다 해도 들은 성격으로 보면 쉽게 털어놓을 자도 아니고.

‘게다가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를 범할 수도 있지.’

저자가 눈치를 채면 오히려 놀란 뱀이 숨어 버릴 수 있다.

무윤은 한동안 고민 끝에 판단을 내렸다.

‘지금은 지켜보는 게 상책이다.’

서연 또한 비슷한 생각이라 비무 후에 더 논의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단 서연은 다른 한 가지 결심도 섰다.

‘비무가 끝나면, 그때 일을 슬쩍 물어봐야겠어.’

그래야 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니까.

캉! 콰앙! 콰쾅!

남궁의 직계들만이 익히는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劍)이 연사구를 휩쓸어 갔다. 광활한 창궁처럼 거칠게 압도하는 강한 힘이 단상에 휘몰아쳤다. 푸른 검기가 묵직한 파공성과 함께 세상을 갈라놓듯 연달아 쏘아졌다.

슈우욱! 쇄애액!

반면 은월청요검은 방어에 있어선 최강의 검식. 그 근간은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 있다. 연사구는 발끝과 방향, 무게중심, 무릎 각도, 어깨와 팔의 움직임, 허리의 비틀림을 주시하면서 우직하고 강력하게 맥을 끊는 일 검을 연달아 구사했다.

슈욱! 사락!

쾅! 콰쾅! 카캉!

좌중의 시선은 점점 흥미를 더해 갔다.

“야! 이건 완전히 창과 방패의 싸움이구먼.”

“그러게. 검기는 서로 비슷한 수준 같고.”

“허! 창궁무애검! 역시 명불허전이야!”

“이 사람아! 그걸 막아 내는 저 은월청요검은 또 어떻고.”

“하긴! 남궁의 검에다 신룡이 펼치는데도 저리 굳건히 막는 걸 보면 인정할 만해.”

“허허! 그래도 남궁일세. 보게나. 연사구가 조금씩 밀리지 않는가.”

“하긴 오십 초가 지났으니 이제 차이 날 때도 됐지.”

연사구는 속으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내력이 엄청 늘었어. 그 선단이란 걸 처먹어서 그런가?’

푸른 검기가 묵직한 파공성과 함께 세상을 갈라놓듯 연달아 쏘아졌다.

슈우욱! 쇄액!

중검의 묘용이 가득 실린 창궁무애검인 건 익히 알았지만, 예전과 비교도 안 되는 내력까지 더해지자 마치 천 근의 무게가 짓누르듯 충격이 밀려온다. 게다가 검기가 갈수록 그 색을 더한다는 건 아직도 내력이 충만하다는 증거.

하지만 확신에 찬 연사구의 눈빛은 처음과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버틴단 말이지. 내가, 은월청요검이.’

막연한 기대와 바람이 아닌, 수십 초의 공방이 증명한 자신감의 발로다. 한데 아쉬운 건 반쪽만이라는 점.

‘공격할 틈은 도저히 못 찾겠어.’

중검의 묵직함에 더해진 빠름은 남궁사현에게 연이은 연환초식을 가능케 했다. 그 공격을 하나하나 쪼개 막을 수 있어야 은월청요검의 공격 절초, 쾌의 극을 펼칠 수 있는데 그 간극이 보이질 않는다.

연사구는 입술을 악다물었다. 섬뜩한 광망이 더해진 눈은 활활 타올랐다. 의지에 더한 염원을 불태웠다.

‘기회는 온다. 한 번은! 꼭 한 번은……. 그때를 기다린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단 한 번의 공격 성공! 그것이면 놈을 이길 수 있다.

그 마음 담은 발끝이 단상을 쓸어 갔다. 연신 검을 튕겨 내고 흘리면서도 느린 전진은 계속됐다.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천하제일 남궁의 검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음을 보이고 싶은, 하오문 대표로서의 의지와 투혼이 담긴 걸음이다.

단상 위엔 너울거리듯 사방을 울리는 기의 파동이 휘몰아쳤다. 두 검기가 부딪힐 때마다 커다란 폭발음에 이어 진한 울림이 공기를 때려 댔다.

우우웅! 캉! 카앙! 콰쾅!

남궁사현의 복잡 미묘한 시선이 연사구를 쓸었다. 우선 놀라움과 불신, 의혹.

‘그때와 비교가 안 되게 성장했어. 나만큼이나.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스승도 없는 놈인데.’

이어 아쉬움이 찾아들었다. 목표는 그냥 이기는 게 아니기에.

‘압도적인 차이로 놈을 부숴 버려야 하는데.’

이대로 공방이 계속되면 분명 자신의 승리는 당연지사. 막기에 급급한 놈인 데다 곧 내력이 바닥나면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백여 초가 넘어가고 온 힘을 다 쏟아 낸 상태에서 승리는 곧 자신의 패배다. 남궁의 검에다 신룡 맨 앞에 선 자신인데.

이러면 고민이 된다.

‘강기로 승부를 봐야 하나?’

아버지의 심득과 늘어난 내력이 가져다준 절대의 힘.

오늘은 자신을 최대한 과시해야 할 자리. 검기만으로 승부를 내고 강기는 마지막에 슬쩍 보일 생각이었다. 그래야 월등한 차이임에도 상대를 배려하는 대협의 모습을 각인시킬 수 있으니까. 한데 늘어난 놈의 실력 탓에 차질이 생겨 버렸다.

‘어떡하지?’

아직 강기의 수발이 원활한 경지가 아니라 역공을 당할 여지도 있다. 그렇게 고민이 깊어질 즈음, 연사구의 느려진 발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눈이 번득였다.

‘내력이 거의 소진됐어. 이러면!’

순간 입가엔 섬뜩한 미소가 사르르 흘렀다. 강기의 세기 조절까진 어려운 상태.

‘강기에 다치거나 죽어도 날 탓하지 마라. 나도 어쩔 수 없으니까.’

생각도 동시에 유유히 신형을 뒤로 물렸다.

사사삭!

의아한 좌중이 수군거렸다.

“응? 밀어붙이다 왜 물러났지?”

“허! 아쉬워라. 곧 끝낼 기회였는데.”

“그러게. 승부도 안 났는데 봐주는 것도 아닐 테고.”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무슨 이유……? 헉! 저건!”

좌중의 눈이 모두 휘둥그레졌다.

“저건 강기 아닌가?”

“헉! 정말이네. 어떻게?”

높게 치켜든 검 끝에서 하얗게 흘러나온 빛이 너울거렸다. 하늘로 뿜어져 하늘거리는 강대한 기운 주변으로 무형의 진기파동이 만발했다.

우우웅! 우웅!

강기의 발현은 곧 최소 초절정 중반임을 뜻한다.

“벌써 거기까지 올랐단 말인가!”

“그러겠지. 그게 아니면 어찌 저러겠나.”

“허! 놀랍군. 놀라워!”

남궁이 모인 곳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 저 아이가 언제?”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틀어박혀 수련만 하더니 그새 한 단계 올랐군요.”

“가문의 홍복이올시다. 서른여섯에 강기라니. 허허!”

반면 표정이 굳어지는 남궁의 인물도 여럿 있었다. 소가주 남궁명은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형님! 이제 발톱을 드러내는 게요?’

무림맹에서 돌아온 이후 남궁사현의 은밀한 움직임은 이미 포착했다. 그 웅크린 짐승이 언제 포효할지 예의 주시하고 있었는데.

남궁명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어디 해 봅시다. 대신 숙부처럼 되어도 날 원망하지 마시구려. 자업자득이니.’

검 끝을 중천으로 세운 남궁사현의 묵직한 음성이 흘렀다.

“이제 끝내지.”

“…….”

남궁사현의 진각이 단상을 박찼다.

파팟!

하늘로 치솟을 듯 강대한 기운은 그 위세를 감추지 않았다. 거대한 바람처럼 사방으로 퍼진 원형의 기파가 연사구를 향했다.

슈우욱! 쇄애액!

뿜어진 채 스스로 울음을 지어 내던 강대한 기운이 몸부림치자, 검기와 비교할 수조차 없는 강기의 폭풍이 엄습해 들었다.

휘이익!

동시에 땅을 박찬 연사구의 신형도 화살처럼 튕겨져 나갔다.

파파팟!

남궁사현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감돌았다.

‘와 주면 고맙지.’

이미 한 장 이내로 간격이 좁아진 상황. 반경이 좁아지면 변수도 준다. 지척까지 올곧이 짓쳐 드는 상대라면 온 힘 다해 쏟아 내면 된다. 검기 따위야 강기로 부숴 버리면 그만이다.

승부를 결정지으려는 검이 광대한 기운 담아 허공에 힘차게 뿌려졌다.

슈우욱!

동시에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린 연사구의 검도 허공을 갈랐다.

쇄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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