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말 꺼낸 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도인이 연사구란 자에게 무공을 준 것부터 이상하다는 거지.”
“어째서?”
“연사구는 예전에 친구들을 패고 침주로 쫓겨 간 자라 하더군. 근데 도인이 하오문을 대표하는 무공을 그런 몰상식한 자에게 줬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에이! 그것만으로 의심하는 건 좀 아니지. 친분 때문에 줄 수도 있는데.”
“이 사람아. 딱 한 번 봤다 하지 않았나.”
“……자질이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뭐, 그건 그렇다 치세. 한데 지금까지 나온 얘기는 전부 하오문 안에서 나온 주장뿐이네. 그 도인도 은월청요검도.”
“그게 뭐?”
“자네도 알겠지만 하오문은 갈수록 세가 줄어들고 있지 않나.”
“그러지. 이젠 개방하고 강호 양대 정보 조직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니까.”
“근데 그걸 깰 방법이 뭐겠어?”
“뭐니 뭐니 해도 개방처럼, 아니 예전 하오문처럼 단일 조직이 되는 게 최고겠지.”
“그래. 근데 무가들 압박이 장난이 아니잖나. 그래서 방안을 생각하다 이번 일을 터트렸다는 게야. 절대무공이 확인됐으니 그걸 나눈다는 핑계로 단일 조직을 만들려고.”
“나 참! 그게 뭐가 어때서? 하오문 입장에서야 그럴 수 있는 게지.”
“문제는 그런 명분 때문에 강호에 엉터리 소문을 뿌렸다는 거지.”
“이 사람아! 그게 엉터리란 증거가 어디 있나?”
“아니란 증거도 없으니 말이 나오는 게지.”
“내 듣기로는 곧 은월청요검 시연이 있다고 했어. 그럼 그딴 헛소문은 없어질 거야.”
“그렇지가 않지.”
“응? 어째서?”
“지금 은월청요검으로도 초절정은 가네. 근데 자기들만 모인 자리에서 시연한다는 데 진짜 절대무공인지 어떻게 믿겠나.”
“……외부 고수를 초빙 안 한단 말인가?”
“안 하니까 이런 소문이 도는 게야.”
“에이! 하오문도 이 소문을 들으면 초빙하겠지.”
“지켜보자고. 안 그러면 이 소문이 맞는 거겠지.”
“난 아닌 거 같은데.”
“우리 내기할까?”
“좋지. 하자고.”
듣고 있다 솟구치는 화를 참지 못한 연사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우! 이 거지새끼들이 정말!”
“역시 개방인가?”
모를 수 없다. 이 대도시 장사 저잣거리에 삽시간에 소문을 퍼트릴 곳이면.
“빤하잖아. 우리 회의 끝난 지 두 시진도 안 됐는데.”
“열 받지 마라. 예상 못 한 것도 아닌데.”
“휴! 그렇기는 한데, 막상 들으니까 욱하네.”
“그보다 어떡할 거야? 저 헛소릴 깨자면 고수를 초빙해야 하는데 올 사람이 없잖아.”
하오문이 뭉치는 걸 좋아할 정, 사 무가는 단 하나도 없다. 더구나 이번 회의는 그걸 세상에 천명하는 자리. 참석 자체도 눈총을 받을 짓이다. 즉 초빙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
머리를 굴리던 연사구는 바로 누가 떠올랐다.
“방 어르신한테 부탁해 볼까?”
“……들어 줄 거 같기는 한데, 이미 정, 사 양쪽에 찍힌 분이잖아. 그분도 곤란해지고 너희도 더 미운털 박힐 거야.”
“비천문은 더 그렇겠지?”
“내가 가주면 무조건 거절한다. 빚은 다른 걸로 갚겠다고 할 거고.”
“휴! 뭐 좋은 방법 없나.”
“생각해 보자고. 아직 시간 있으니까.”
* * *
얼마 후, 장사 하오문 지부.
돌아와서도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머릴 싸맬 즈음, 양사준이 술을 싸 들고 찾아왔다.
“사구야! 오랜만인데 한잔해야지?”
“다음에. 나 지금 머리 아파요.”
“야! 예전에 그 잔머린 다 어디 팔아먹었대? 무슨 일인데 그렇게 죽을상이야?”
“몰라도 돼요.”
“이거 왜 이래! 나도 한때는 너보다 머리 잘 굴렸어.”
“사고 쪽으론 그랬지.”
“말이나 해 봐. 혹시 알아. 사고 치면 해결될지.”
쫓아낼 생각에 연사구가 떠들어 대자마자, 양사준이 키득거렸다.
“크크! 난 또 뭐라고. 야! 연사구도 이제 한물갔네. 그딴 일에 머릴 싸매다니.”
“뭐라는 거야 지금! 이게 어디 쉽게 풀릴 일이에요? 헛소리할 거면 빨리 꺼져요!”
“헛소리 아니면?”
“개소리겠지.”
“듣고 아니라고 하면 바로 꺼져 주지.”
“……해 봐요.”
“개소리 아니면 뭐 해 줄래?”
“아우! 꺼내나 봐요. 뭔데 큰소리야?”
“다른 판을 벌이면 되지.”
“어떤?”
“나랑 비무!”
“……?”
잠시 후.
연사구에게 불려 온 넷 모두의 황당함이 가라앉을 즈음, 진서연의 깊어진 눈이 양사준을 향했다. 난데없이 자신에게 한 이야기는 쉽게 답할 게 아니다.
“말씀하신 뜻은 알겠는데, 바로 결정하기 쉽지 않네요.”
“강요할 생각 없소. 사구 이놈 고민 때문에 생각난 거고 그쪽 입장도 이해하니까.”
당서하는 의아한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공개 비무로 사람들을 모으자는 그쪽 의견, 묘안 같아요. 근데 왜 하필 서연이죠? 은월청요검 진위를 가리는 거면 사구랑 하는 게 더 나을 텐데.”
“두 가지. 여기 거지새끼들은 사구와 내가 친한 걸 잘 압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짜고 했다고 할 겁니다.”
“그럴 수 있겠네요. 다른 건?”
“솔직히 얘기해도 되겠소?”
“그래야 할 자리잖아요.”
“저잣거리 나가 보면 알겠지만, 넷 중에 진 조장 얘기가 가장 많소이다. 아주 압도적으로. 얘기가 나가면 무인이건 아니건 남자 새끼들은 다 몰려올 거요.”
“……!”
진서연의 고민이 깊어지자 연사구는 눈을 찡긋거렸다.
“진 조장. 그냥 내가 할게요. 입장 아는데 괜히 말 꺼내서 미안해요.”
상대는 흑룡, 그것도 여덟 중 상위권에 거론되는 자. 나이도 그녀보다 네 살 위. 물론 서연이 지더라도 걸어온 싸움을 회피할 무인이 아닌 건 안다. 하지만 소검후를 포기했어도 아직 보타문 최고의 기재라 불리고 있기에, 사문의 젊은 무인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존재한다. 그런 그녀라 주저하는 것이리라.
당서하가 슬며시 나섰다. 객관적인 전력상 부족하지만, 자신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
“내가 하지 뭐. 난 가문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그래도 당문인데?”
“나야 가문에서 미는 사람도 아닌데 뭘. 상관없어.”
그때 결정을 내린 진서연의 시선이 양사준을 마주했다. 진중함 속에 담긴 정광이 무인의 투기를 알렸다.
“하겠어요. 이유야 어쨌든 무인으로 제게 요청하신 건데 거절할 수 없죠.”
사실 고민이 길어진 이유는 따로 있다. 소검후를 포기한 순간부터, 승패에 따른 사문의 명예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무인 자체로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족쇄였으니까. 한데.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라 바라타나티암 초감각이 나올 수밖에 없어.’
심법의 실체를 알게 된 지 근 두 달, 이제 초극의 감각은 몸과 일체화됐다. 물론 초기 단계라 극히 위험한 경우에만 발동하지만 뗄 수 없게 돼 버린 상황.
고민은 이것이다. 아무리 바라타나티암 심법이 사문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이라지만.
‘나만이 펼칠 수 있는 사문의 무공. 언젠가 어르신들도 알 수밖에 없어.’
사문에 알릴 수도 없는 심법. 그 효과를 어떻게 설명할지 아직 답을 못 찾았는데, 수많은 무인 앞에서 그걸 보일 게 빤한 상황.
그 때문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정을 내렸다.
‘문도로서 내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데 더 고민할 게 없어.’
양사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하겠습니까?”
“예.”
“전 최선을 다할 겁니다. 사구를 돕는 것과 이건 별개니까요.”
“당연한 말을 왜 하시죠?”
“……!”
사파 흑룡과 정파 신성의 대결이 확정됐다.
얼마 후, 하후진은 논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양사준을 몰래 쫓아갔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 거짓말,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
“아뇨. 이젠 알 거 같습니다. 그 말 듣고 생각해 보니 제가 멍청했더군요.”
“그래? 어떻게?”
“그 말 하는 순간 제 눈을 보고 아셨겠죠. 분노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걸.”
“큭큭! 멍청이는 아니네. 그래. 그 어떤 명분이 있더라도 어릴 때 당한 폭력은 악과 분노로 평생 남기 마련이야. 나도 그랬으니까. 근데 그걸 미화하려고 했으니 티가 안 나고 배겨? 뭐 어쨌든 알았으면 됐고. 궁금한 게 뭔데?”
“이제 흑룡이 됐는데. ……그쪽은 떨쳐 버렸습니까?”
양사준은 야릇함이 담긴 미소와 함께 휙 돌아섰다. 칠 년 만에 집에 돌아왔다.
“이제 알아보려고. 그동안 노력했는데 어떤지 나도 궁금하거든.”
“……!”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 * *
다음 날, 장사 저잣거리 객잔.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니까. 흑룡 양사준하고 보타문 진서연이 어제 객잔에서 말썽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때 싸우기로 결정했대.”
“야! 이거 볼만하겠는데.”
“승부야 빤하지. 양사준은 몇 년 전에 초절정에 오른 데다 실전 경험도 풍부하잖아. 내 장담하는 데 삼십 초안에 끝날 걸세.”
“크흠! 그건 당연하고 내 말은 다른 뜻이네.”
“크크! 알지 왜 모르겠나. 다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많지.”
“그럴 수밖에. 진 소저를 본 사람 모두 입에 게거품을 물고 떠드는데 안 궁금하면 그게 남자겠어.”
“하여간 아무나 와도 된다니까 가 보자고. 참! 그 전에 연사구와 당문 소저도 겨룬다고 했네.”
“둘이야 친한 사이라 대충 겨룰 텐데 볼 게 있겠나.”
“그러겠지. 하여간 같이 가 보세나.”
“그러자고.”‘
한편 객잔 삼층에서 듣고 있던 개방의 모관평은 벌컥 술을 들이켰다. 성난 눈썹은 하늘로 치솟았다.
“시팔! 하필 광견, 그 새끼가 초를 칠 줄이야.”
서문진성의 입가엔 비릿한 웃음이 짙어졌다.
“크크! 너 속 좀 쓰리겠다. 실컷 대가리 굴려서 짜낸 계획인데 엉망이 돼 버렸으니.”
“야! 넌 뭐가 좋다고 웃어? 하오문도 그렇지만 사구 새끼 좆되라고 한 거였는데.”
“처음부터 얘기했잖아. 그 정도는 너무 약하다고.”
모관평은 감이 왔다.
“너희 쪽은 잘됐구나? 그치?”
“물론. 얘기 다 끝났다.”
“정말? 무림맹이 나서기로 한 거야?”
“아버님이 직접 손쓰셨는데 당연하지. 참! 사도련도 나설 모양이더라. 그쪽도 싫은 건 마찬가지겠지.”
모관평의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앓던 이가 쏙 빠지는 기분.
“큭큭!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구경만 할걸. 괜히 힘만 뺐어.”
“어디 떠들지 마라. 사구 귀에 들어가면 또 뭔 수작을 할지 몰라.”
“당연하지. 그 새끼 도와줄 일 있냐. 아직도 그때 맞은 거 생각하면, 아우!”
팔 년 전 연사구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던 둘. 바로 서문진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얘긴 그만하자고 했지!”
“아! 미안. 실수.”
“하여간 이번에 기 좀 죽여 놓고 조용해지면 기회를 보자고.”
“그래. 참! 이젠 공식 참석도 아닌데 슬쩍 가도 되겠지?”
“크크! 그럼! 그놈 우거지상 쓰는 걸 안 볼 수 있나.”
“그래, 같이 가자고.”
* * *
사흘 후, 하오문 전체 회합과 비무가 열리는 날.
하오문 지부로 향하던 서문진성의 눈이 커다래졌다.
‘응? 저분들은!’
대로 맞은편에서 오는 무리는 수십이지만 누군지 한눈에 확 들어왔다.
“아니! 남궁 분들 아니십니까?”
“오! 자네 진철이군. 오랜만이네. 잘 지냈나?”
천하제일 남궁의 장로와 소가주 등 낯익은 얼굴 몇과 호위 무인들.
서문진성은 바로 떠오르는 게 있다.
‘아! 오대세가 회합.’
이 년마다 열리는 오대세가 회합이 이번엔 사천 당문에서 열린다. 서로 인사가 오고 가고 얼마 후, 서문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데 회합 날짜는 많이 남았는데 왜 벌써?”
“긴 여정이라 여유 있게 출발했지. 유람도 할 겸 해서.”
“그러셨군요.”
“근데 어디 가는 길인가?”
“예. 오늘 볼만한 비무가 있어서…….”
“아! 오면서 듣자 하니 흑룡 양사준이 비무를 한다던데 거길 가는 모양이지.”
“예.”
“상대가 누군가?”
“보타문의 진서연 소저라고…….”
순간 뒤편에 있던 자의 신형이 한순간에 무리를 뚫었다.
휙!
“지금 서연이라고 했나?”
“……?”
남궁사현의 황망한 시선은 뚫어지게 서문진성을 향했다. 놀람과 의아함이 가득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