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여휘와 정립한 초인의 무공은 삼 단계.
그 일 단계는 완전한 내 몸의 조율. 이를 통해 몸의 움직임 자체가 가진 파괴력으로 최적의 박투(搏鬪)가 가능해진다.
이 단계는 공간의 장악, 삼 단계는 천지 만물과의 교류.
여휘는 일 단계 박투를 펼치고 나면 항상 투덜거리곤 했다.
-참내! 세상에 이렇게 멋대가리 없는 무공도 없을 거야.
-풋! 하긴! 너무 빨라서 그렇지, 자세히 보면 그냥 파락호들 쌈박질이랑 다를 게 없지.
-이거 좀 멋있게 안 될까? 다들 있는 데선 쪽팔리잖아.
-미친 새끼! 가장 최적의 투로를 몸이 찾는 동시에 펼치는 게 초인의 박투인데 그걸 빼면 뭐가 남아?
-…….
초식이란 일절 없고 오직 초감각과 초극의 움직임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한마디로 최고의 몸싸움 기공.
한데 완벽한 일 단계를 구사하려면 중단전의 화경, 체기성강(體氣成罡)에 올라야 한다. 검의 기운이 뭉쳐져 유형화되는 검기성강(劍氣成罡)처럼, 몸의 기운 자체로 강기를 형성할 수 있는 단계. 일반 내력으로 보면 화경의 중반 경지쯤 된다.
한데 아직 거기에 조금 못 미쳐 부족한 게 있다.
‘몸이 만든 호신강기가 완전하지 않아.’
박투술은 상대와 붙어서 싸우는 기술. 강기 공격에 몸을 완전히 보호하려면 일반 호신강기론 부족하다. 이 또한 더 파괴력이 큰 상대의 강기에 깨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신기심의공이 만든 호신강기는 몸과 일체돼, 물처럼 흐르기에 충격에 밀리긴 해도 깨짐이 없다. 즉 부상은 입지만, 몸이 잘리거나 뚫리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 준다. 한데.
‘아직은 계속 쓸 수가 없어.’
다만 공격력은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지금처럼 화경의 무인을 만나면, 상대의 강기에 몸이 다치기 전에 빨리 끝내야 한다. 아니면 물러나거나 초인의 무공 대신 다른 걸 써야 하고.
한데 저자를 상대하려면 꺼낼 수밖에 없다.
그때 방연극의 눈에도 이채가 서렸다.
‘이놈 봐라?’
사실 싸울 일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저 강대한 기운과 살기로 압박해서 사실만 털어놓게 만들 생각이었지. 한데 자신의 기운에 정면으로 부딪쳐 오는 또 다른 강대함에 상대가 화경임을 확신했다.
그 순간 의심에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도인이면서 진신 무공을 숨긴 자. 추적하던 놈들과 한패일 수 있다.
‘그렇다면 마기를 감췄을 터.’
그걸 알아내고자 집요하게 뿌린 기운에 놈이 투기와 살기를 돌려준다. 싸움을 피할 생각이 없다는 뜻.
방연극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아직 마기가 느껴지지 않지만.
‘붙어 보면 바로 알지.’
또 대드는 놈을 그냥 둬 본 적도 없다. 서서히 뽑아낸 도 끝이 상대를 향했다.
스르르!
한편 가주 양주원의 다급한 전음이 양호승을 향했다.
-아버님,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우선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얘기부터 들어 보고…….
-아니! 두고 보자꾸나.
-예? 그러다 저 친구 다치면 어쩌려고요?
-잘 보거라. 저 기운이 안 느껴지느냐?
의아함에 무윤을 살피던 가주의 눈이 급격히 커다래졌다. 그제야 알았다. 천하십대 고수가 들불처럼 피워 내는 기운에 물러섬이 없다는 걸.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어떻게?
-나도 연극이 놈을 상대로 저리는 쉽지 않아.
-그, 그럼?
-적어도 내 수준은 된다는 소리지.
-그, 그게 말이 됩니까? 아버님 경지면……?
양호승은 매섭게 뜬 눈을 꿈틀거렸다.
-지켜보자. 우리가 저 친구를 잘못 봤을 수도 있으니.
-……!
선의로 다가온 줄 알았던 자. 물론 실력을 감추는 건 무인의 기본. 하지만 저 경지면 감춘 게 아니라 속인 거나 마찬가지. 지금은 그 어떤 판단도 내려선 안 될 때다. 보고 듣기 전에는.
무윤은 나서지 않는 두 사람의 의도가 느껴졌다. 물론 왜 그러는지 이해도 가고. 선택도 대안도 없어졌다. 먼저 보이고 설명하는 수밖에.
‘이러면 선공이다.’
박투는 상대와 떨어지면 무용지물. 저런 상대면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특성을 간파한다. 간격을 벌리지 못하게 밀어붙이는 게 최선.
이미 충만한 신기심의공 기운은 거대한 흐름으로 전신을 세차게 휘도는 상태.
생각과 동시에 발끝이 대지를 박찼다. 몸의 비틀림, 다리와 허리의 반동이 합체된 육체의 힘에 초극의 기운이 더해졌다.
파팟!
튀어 나간 몸이 순식간에 상대의 지척에 다다르는 순간, 방연극 몸 주변의 대기가 이지러졌다. 단전에서 솟구친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 나왔다.
화라락!
도신에 서린 기운이 하얀 강기로 변해 서리서리 뻗쳐올랐다.
우우웅!
방연극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흐린 잔상처럼 공간을 접어 쇄도하는 상대. 그 주변 일렁이는 기의 파동이 잘못 보지 않았음을 알린다. 순간 짜릿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흥분이다. 이 순간이 너무 즐거운 무인의 환희다.
다만 의아한 게 있다. 자신의 도강을 봤을 텐데.
‘저 정도 권강으로 달려든다?’
푸른빛을 감싼 오물거림은 분면 권강인데, 주먹을 살짝 감쌀 정도 크기. 강기와 강기의 충돌에선 그 크기와 농밀함에서 승부가 난다. 한데 파악한 기운으론 그 이상도 가능한 자인데.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보면 되는 것을.’
귀원일도 방연극임을 알리는 역류회원도(逆流回圓刀). 그 도 끝에 똬리를 틀고 둥글게 모였던 도광이 용틀임 쳤다.
우우웅!
역류회원도는 태극의 원리를 역으로 치환한 도법.
모든 것을 포용하는 원, 그 안에 한없는 부드러움과 물 흐르듯 끊이지 않는 흐름을 만들고 음과 양을 조화롭게 합친 것이 도가의 검공이라면, 역으로 그 흐름을 원 안에 가두지 않고 밖으로 회오리치게 해 웅혼한 패력을 만드는 도법이다.
그 만년 거악의 장중함 담긴 도가 일격에 하늘을 갈랐다.
쇄애액! 휘리릭!
허공을 뒤흔드는 일도양단의 기세가 달려오는 몸을 파고들었다.
슈우욱!
지척까지 다가온 도강이 시린 빛을 뿌리려던 찰나, 광풍과 함께 일직선으로 짓쳐 들던 신형이 좌우로 흔들렸다.
사락! 스르륵!
순간 광풍이 잦아들었다. 섬전 같은 빠름에도 바람결에 녹아든 몸체의 흐름이 소리를 잡아먹은 탓. 동시에 도 끝을 향해 비스듬히 팔뚝이 짓쳐 들었다.
방연극에 눈이 가늘어졌다. 의도는 눈에 보이는데 의아했다.
‘그 정도 호신강기로 내 도를 흘려 내겠다고?’
직선의 투로를 순간 틀어 내는 움직임은 자신도 놀랄 정도. 하지만 이미 도격 안에 몸을 들이민 형국, 결국 저 내민 팔뚝으로 충격을 줄여야 한다. 한데 아무리 흘린다 한들 속도까지 더해진 도강인데. 중상을 피할 수 없다.
순간 방연극의 눈이 번득였다. 거침없는 놈의 움직임이 알린다.
‘호! 알고서도 저런다? 부딪쳐 보면 알 일.’
변수까지 감안한 패도의 칼날이 팔뚝을 갈라 왔다.
쇄애액!
순간 방연극의 눈에 의아함이 솟구쳤다. 길을 정한 칼날에 놈의 팔뚝이 정면으로 부딪쳐 온다.
‘이놈이 왜?’
사선으로 흘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히려 팔뚝을 들이민 형국. 그렇다고 물러나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자신이 건드렸지만, 상대도 물러서지 않고 달려든 싸움. 분명 싸울 의사를 밝혔다.
‘무인이면 스스로 감당할 일.’
또 상대의 깊은 눈빛이 알린다.
‘뭐가 있으니 저러는 게지.’
의도가 짐작된 이상 먼저 물러날 순 없다. 차디찬 독심이 오히려 더 패도적인 기운을 불렀다. 배려는 승부를 보기 전이나 끝나고 할 일. 지금은 올곧이 무인으로 대할 때.
도에 실린 거대한 경력과 세기, 빠름의 신호가 무윤의 몸 가득 경고를 울리는 순간, 인간의 한계 끝까지 풀어낸 초극의 움직임이 어깨를 비틀었다. 따라 움직인 팔뚝이 찰나에 틀어졌다.
사삭!
순간 방연극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런 움직임이라니!’
물론 도를 피하진 못한다. 하지만 잘릴 위기에서 베어져 너덜거릴 정도로는 바뀔 움직임. 그것만 해도 혀를 내두를 빠름이다.
이제 팔뚝을 짓씹는 도의 파쇄음이 들려올 찰나, 팔뚝 주변에 흐르던 호신강기가 요동쳤다.
우우웅!
순간 도와 맞닥뜨리는 곳 호신강기가 쑥 솟아올랐다. 한 치 정도 살갗에 퍼져 있다가 갑자기 한곳으로 몰려들었다. 마치 팔뚝에서 강기가 겹겹이 쌓이듯 물결치는 강막이 형성됐다.
위이잉! 사라락!
순간 방연극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찌!’
호신강기야 자신도 가능한 기운. 온몸을 둘러싸는 것도, 또 한곳에 집중하는 것도 물론. 하지만 이 찰나의 순간에 저렇게 크고 빠르게 형성하는 건 놀라움 그 자체다.
그때 뿜어진 채 하늘거리던 강대한 두 기운이 맞부딪혔다. 강함에 부딪힌 건 부드러움. 강기의 충돌 치고는 작은 파공성이 대지를 울렸다.
쿠웅! 카캉!
“크윽!”
격한 무윤의 신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육체의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초극의 동작으로 흘려 냈지만 한 자 가까이 되는 강기. 팔이 잘리지 않았을 뿐, 충격은 고스란히 뼛속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이미 각오한 일. 무윤의 두 눈이 활활 불타올랐다.
‘이제 시작이다.’
잠시 왼팔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의 피해를 감수한 이유는 단 하나. 도격을 그대로 내지르는 사이, 팔이 닿을 정도까지 근접했다. 간격을 좁히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당초엔 이럴 생각까진 없었다. 한데 가까이 와서 느낀 상대의 기운이 알렸다.
‘살을 내주지 않고는 다가갈 수 없는 자.’
생각보다 더한 강자, 그 판단이 부른 모험이 다행히 먹혀들었다. 무윤의 번득인 눈이 상대의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이제 초인의 공격을 본격적으로 풀어낼 때.
초인을 만든 육체의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 파동에 떨어 대는 심장, 근육, 혈류가 들끓는다. 이제 뿜어내면 된다.
주먹이 명치로 날아들었다. 순간적인 근육의 수축과 팽창이 만든 힘이 주먹 끝에 집중됐다.
슈우욱!
“헉!”
경악성과 함께 무인의 본능이 몸을 뒤로 날렸다.
파파팟!
무윤도 따라붙었다. 간격이 벌어지는 건 곧 죽음과 마찬가지. 와류가 담긴 주먹을 사방에 휘둘러 댔다.
슈우욱! 휘릭! 휙!
초식도 투로도 익숙한 권로도, 그 모든 걸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오직 초인의 감각, 그것으로 가격하고 때리고 후려치고 잡아채야 한다. 뒤틀린 허리 따라 발도 차올렸다. 손과 발에 뒤이어 어깨, 팔꿈치, 무릎, 심지어 머리까지 가릴 게 없다. 최적, 최단, 최고의 투로가 떠오르는 즉시 몸이 움직일 뿐. 정해진 형태 없는 공격이 동시다발로 방극연을 몰아쳤다.
슈우욱! 쉬익! 캉! 쿵! 쿠쿵!
정신없이 도와 손발을 휘젓는 방극연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광풍처럼 휘몰아쳤다.
‘이런 멍청한 놈.’
상대가 아닌 그 스스로에게 쏟아 내는 자책과 울분이다. 놈의 의도는 명확했다. 자신을 간파했기에 살을 주고 뼈를 노린 선택.
앞뒤 좌우 가릴 것 없이 짓쳐 드는 놈의 타격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눈의 사각에서도 본능처럼 내지르는 권격에 가슴을 쓸어내린 것도 여러 번.
‘박투에 최적화된 놈.’
답은 간격만 벌리면 된다. 몰라서 당했지, 알고선 이리 몰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틈이 없어.’
극한의 도격 한 번만 몸통에 쏘아 낼 수 있어도 전세는 뒤집는다. 한데 그것이 어렵다. 이글거리는 맹수의 눈빛과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특이한 몸놀림은 도를 뿌릴 공간을 허용치 않는다.
물론 뒤로 도망쳤다가 전열을 가다듬을 순 있지만, 자신의 천하십대 고수. 그 자부심이 도저히 용납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양패구상!’
이미 자신은 물론 놈도 서서히 혈흔이 늘어난다. 커다란 반전이 없는 한 어느 하나가 탈진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싸움.
물론 다른 방법도 있다. 자신도 놈처럼 살을 내주면 되니까. 그러면 놈을 죽일 자신도 있다. 하지만 그저 자존심 때문에 벌어진 싸움. 게다가 마기라고는 털끝 하나 없는 게 확실하고.
자책 어린 한숨만 연신 새어 나왔다.
‘후!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그때 전 가주 양호승의 내력 실린 고성이 두 사람을 향했다.
“둘 다 그만! 싸울 사이가 아닐세! 허! 어서 멈추라니까!”
“……!”
실력은 이미 확인했고 막 도착한 연사구에게 급히 사정을 듣고는 바로 나선 상황.
순간 무윤이 한 걸음 물러나자 방연극도 멀찍이 물러섰다.
파팟! 사라락!
천마라 불린 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