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도가무공을 제대로 익힌 마인이라니. 뜨악한 표정이 절로 올라온다. 한데 다른 이도 아닌 방연극의 입에서 나온 말.
‘잘못 볼 분이 아닌데.’
그냥 절대자도 아닌, 강호 십대 고수에 그 이름을 올린 자다. 화경에 오른 지도 십 년이 훌쩍 넘었고.
방연극의 말이 이어졌다. 알아듣게 하자면 자신의 얘기도 살짝 꺼내야 한다.
“내가 남몰래 보살피던 이들이 있다. 알겠지만 나야 적이 많은 몸이라 감춰야 했지. 한데 몇 년 전 갑자기 사라져서 추적하다 보니 청해로 갔더구나. 해서 그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다.”
양사준이 껴들었다.
“못 찾았다면서요?”
“그래. 한데 그렇게 추적하다가 그 엉터리 도인 놈들을 만났지.”
“그놈들 짓이요?”
“지금은 짐작뿐이다. 어쨌든 간신히 꼬리를 잡아 놈들과 한번 부딪쳤는데 중과 부족이라 물러날 수밖에 없었어. 그 후 놈들은 사라져 버렸고. 더 찾을 수 없어서 돌아온 게야.”
“너무 속상해하지 마쇼. 나랑 다시 가 봅시다. 참! 근데 그게 이놈과 무슨 상관입니까?”
“중원으로 오면서 소문을 들었지. 어떤 도인이 하오문에 천 년 전 무공을 건넸다고. 그게 미심쩍었어.”
“에이! 세상에 도인이 한둘입니까. 너무 짜 맞추는 거 아녜요?”
그때 방연극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둘을 번갈았다.
“어디 그런지 들어 봐라.”
“해 봐요.”
“놈들의 도가무공도 최근 게 아니다. 아주 오래전 것일 게야.”
“확실해요?”
“이놈아! 이 사부가 안 싸운 도가 문파가 있더냐?”
“그건 그러네.”
“또 마인이 도가무공을 왜 익혔을까? 나도 자세히 봐야 마인인 걸 알 정도로.”
“……중원을 노린다 이거요?”
“아니고선 그럴 이유가 있을까?”
“그것도 그러네.”
“또 내 추적을 따돌릴 정도로 은밀한 건 절대 작은 세력이 아니란 뜻이고.”
양사준의 의아한 시선이 연사구를 향했다.
“사구야. 어째 사부 말이 허무맹랑한 거 같지는 않다. 살펴보는 게 좋지 않겠어? 요즘 너희도 단일 조직을 만드니 뭐니 말들이 많던데.”
연사구는 단호히 고개 저었다.
“절대 아녜요. 단일 조직은 아버지하고 제 생각이지, 밖에서 누가 왈가왈부한 게 아니라고요.”
“그래도 은월청요검이 생겨서 그런 거잖아?”
“아우! 그것도 세상에 떠든 건 제 생각이에요.”
“정말 너 혼자 생각이냐?”
“그렇다니까요.”
그때 방연극의 시선에 칼날 같은 빛이 스쳐 갔다. 이제 이 모든 의심의 핵심을 꺼내 들 때.
“네 주변에 도인이 있다 들었다. 마인에게 진언을 읊은 자 말이다. 혹 그자가 부추긴 건 아니고?”
“뭐야! 지금 그 새끼를 의심해서 그런 거예요?”
“마인을 척살한 건 세상이 칭송할 일인데 같이해 놓고 그놈만 쏙 빠졌더구나. 그럴 이유가 뭘까? 세상에 드러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게냐?”
연사구의 커다란 콧방귀가 사방에 울렸다. 손도 커다랗게 휘휘 내저었다.
“참 내! 난 또 뭐라고. 그놈은 절대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그럼 내가 그놈을 봐도 문제없겠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방연극이 보면 무윤의 경지를 알아챈다.
“내 말 듣는 놈이 아닌데요.”
“허! 말 몇 마디 나누면 되는데 그게 어렵다고?”
“하여간 놈은 아녜요.”
방연극은 또 확인할 게 있었다.
“그렇다 쳐도 그 도인과는 상관있겠지?”
순간 연사구의 몸이 움찔거렸다. 예상치 못한 질문.
“……아닌데요.”
“허! 이놈이 누굴 속이려 들어! 몸이 답을 했거늘!”
“…….”
“천 년 전 무공을 가진 자라면 분명 저들에 대해 아는 게 있을 게야. 제자쯤 될 테니 난 꼭 봐야겠다. 그놈 어디 있느냐?”
“……어디 갔는데.”
천하십대 고수의 눈썹이 매섭게 휘날렸다.
“하오문도니 잘 알겠지. 강호에서 내가 어찌 불리는지.”
“그, 그거야…….”
방연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악!
“하오문 지부로 가서 예전처럼 몇 놈 물어뜯어 줄까? 마침 많이 모였다고 하던데. 그리해 줄까?”
이젠 어쩔 수 없다.
“아, 아니. 어르신 그건 아니죠. 제가 불러올게요.”
“그럴 거 뭐 있어. 가면 되지. 어디 있느냐? 지부에?”
“어디 갔어요. 제가 데리고 온다니까요.”
“그러니까 어디?”
연사구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무윤인 마인 치료 때문에 지금 비천문에 있는데.’
쉽게 판단이 안 선다. 무윤과 먼저 만나 논의하는 게 최선인데 방연극은 비천문 전 문주와 친구 사이.
‘지금 알리면 바로 쫓아갈 거고, 둘러대자니 어차피 알게 된단 말이지. 그땐 속였다고 난리 칠 텐데. 저 영감 성질에 대충 넘어갈 리도 없고.’
그때 방연극이 성큼 앞서 걸어갔다.
“아무래도 하오문 지부부터 가야겠구나.”
“아니! 어르신 잠깐만!”
“광견은 한번 돌면 물어뜯기 전엔 못 멈춘다.”
이젠 어쩔 수 없다. 연사구는 콧김만 마구 뿜어졌다.
“아우! 뭔 일이 이렇게 꼬이지. 에라! 모르겠다! 그놈 지금 비천문에 있어요. 이제 됐어요?”
방연극의 눈이 커다래졌다. 칠 년 만에 찾아가는 친구 집에 그놈이 갔다니.
“……왜?”
“제가 떠들 일이 아니에요. 가 보면 압니다.”
순간 촌각의 고민도 없이 방연극의 신형이 먼저 허공을 갈랐다.
파라락!
흠칫 놀란 양사준의 시선이 연사구를 향했다. 이미 점처럼 작아져 버린 사부를 말리긴 늦은 상황. 이러면 먼저 물을 게 있다.
“그놈, 안 좋은 일로 가문에 갔어?”
질문의 요지야 빤한 일.
“아뇨. 형님네 도와준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근데 뭘 도와줬다는 거야?”
“가면서 얘기해요.”
한데 몇 걸음 걷다 양중건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말도 없이 양사준의 발이 대지를 박찼다.
파파팟!
연사구의 눈이 멍해졌다.
“어! 형님! 같이 가요! ……뭐야! 말이나 해 주고 가든가. 참내! 완전 그 사부의 그 제자네.”
그때 급히 쫓아갈 거 같던 걸음이 도리어 느릿해졌다.
‘빨리 가 봤자 그 새끼 잔소리만 더 듣지. 늦는 게 최고다.’
털레털레 바닥을 쓸어 대는 걸음엔 어느새 여유가 가득 담겼다.
터덕! 터덕!
* * *
비천문 내원 깊숙한 곳.
마인 양중건을 숨겨 둔 지하 동공에서 네 사람이 걸어 나왔다. 치료를 마친 무윤과 비천문 세 사람.
세가 내에서도 철저한 보안이 요구되는 사안. 당분간 전 가주 양호승과 가주, 약당 장로 셋만 알고 있기로 했다.
치료 방안을 숙의하고 약당 장로가 돌아가자, 가주 양주원의 시선이 무윤을 향했다. 양중건은 자신에게도 친동생 같았던 이.
“정말 고맙네. 자네 진언과 기운 덕분에 한결 좋아졌어.”
“도움이 돼서 다행입니다.”
무윤을 바라보는 양주원의 눈에 호기심이 짙어져만 갔다. 아버지에게 들었을 땐 반신반의했었다. 무공은 물론 치료 성과까지. 하지만 치료 내내 지켜보고 대화까지 한 이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인연을 만들어서 나쁠 게 없는 자.’
그 마음이 담긴 부드러운 말이 흘렀다.
“그나저나 동생도 구해 주고 이리 도와주는데 가만있을 수 없지. 혹 필요하거나 도울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게.”
이러면 뺄 이유가 없다. 비천문에도 나쁠 게 없는 제안이니까.
“한 가지 있긴 합니다.”
“뭔가? 말해 보게.”
“하오문 친구 일을 좀 도와주고 싶어서요.”
양주원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흘렀다.
“아까 사구 그놈하고 친구라고 했지?”
“……놈을 아십니까?”
“허허! 잘 알지. 내겐 밉다가도 고맙고 또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 놈일세.”
“……무슨 말씀이신지?”
“사구가 내 골칫거리 아들놈과 어릴 때부터 친했네. 같이 사고 칠 땐 미운 놈이고, 엇나가는 놈을 잡아 줄 땐 고맙고, 또 쫓겨날 땐 도와주지 못해 미안했지. 한데 그땐 나설 수 없었네. 그럼 서문가와 더 안 좋아졌을 테니까.”
“그러셨군요.”
“참! 도와달라는 건 뭐지?”
무윤이 하오문 상황과 아인(牙人)에 대해 상세히 알리고 요청 사항을 꺼내자, 가주 양주원은 한참 고개를 갸웃거렸다. 속뜻이 헤아려지지가 않았다.
“우리 입장에서 아인 사업을 검토해 달라? 왜? 사업은 하오문이 한다면서?”
“하오문은 정보 제공과 중개만 엮어 주지, 직접 상거래에 나서진 않습니다. 안 그러면 상단은 물론 개인 행상과도 마찰이 생기니까요.”
“그러겠지.”
“비천문도 여러 상거래가 많잖습니까. 거기에 그 정보가 쓸 만한지 냉정하게 평가해 달라는 겁니다.”
유심히 듣고 있던 전 가주 양호승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몇 년 세상을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게 있다. 거기에 가주의 경험까지 더해졌고.
“허허! 자네는 우리가 평가해 보면 그 정보를 쓸 거라 보는 게군.”
“예, 서로가 이익이니까요.”
“면밀히 따져야겠지만 나도 그럴 거 같네. 요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내 눈으로 봤으니.”
이럴 땐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물론 다른 속셈도 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우리가 참여하면 서문가가 훼방 놓기 어려워지겠지.”
“사실 그 이유가 큽니다.”
양호승의 시선이 가주를 향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순간 가주의 눈이 번득였다.
“손해가 나더라도 마지막 이유면 하고 싶네요. 아! 그냥 해 본 소립니다. 철저하게 검토하라 이르겠습니다.”
“허허! 그러시게.”
그때 담을 타 넘은 광풍이 세 사람에게 짓쳐 들었다.
쇄애액!
“여기 있었구나!”
전 가주 양호승의 눈이 커다래졌다. 손자와 떠난 지 칠 년 만에 불쑥 담 넘어 찾아온 친구.
“아니! 자네!”
쇄도하던 속도가 줄지 않았음에도 환영처럼 흐른 몸은 사뿐히 대지를 내려 밟았다.
사사삭! 타악!
상대의 경지를 알려 주는 그야말로 표홀한 신법. 순간 짜릿한 감각이 무윤의 등줄기를 훑고 내려갔다. 더 살필 것도 없다.
‘강자!’
바람이 몰고 온 기세가 사방에 흩어졌음에도, 전신에 두른 기운만으로 살갗을 아리는 자. 일부러 꺼내지 않았어도 무리의 이치 가득 담은 진기가 몸 주변을 일렁이는 자.
그런 자가 섬뜩한 칼날 같은 안광으로 전신을 훑어 대자, 무윤은 직감했다.
‘날 알아봤다.’
본능이 내린 경고에 몸의 기운이 반응한 걸 바로 알아챘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감추고 자시고 할 시간도 없었다. 한데 의아했다. 그런 자의 시선이 절대 곱지 않다. 아니 적의라 표현할 정도로 눈알이 이글거린다.
‘누구지?’
하지만 의문에 앞서 몸이 경고했다. 전신에 둘러진 기세를 도파에 흘려 자신에게 집중하는 건 분명 공격의 의지. 거리도 단숨에 짓쳐 들 수 있는 석 장. 위기감이 신기심의공에 불을 당겼다.
화라락!
순식간에 일어난 경력에 무형의 진기파동이 몸 주변에 넘실거렸다. 들불처럼 일어난 초감각이 서리서리 뻗쳐 온몸의 투기를 일깨웠다.
위이잉! 우우웅!
준비는 끝났다. 이어 날카롭게 벼려진 안광이 상대의 전신을 훑었다. 한데 신기심의공으로도 완전히 읽히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내력으론 날 넘어선 경지!’
모든 걸 다 끌어내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대. 분명 양호승이 아는 인물인데 물어볼 틈이 없다. 지금은 모든 정신을 한 곳에 쏟아야 한다. 아주 찰나의 순간, 시선 한 번 돌림에도 생사가 갈릴 수 있기에.
순간 온몸을 휘감은 무인의 직감이 결단을 내렸다. 단 한 수에도 생사가 갈릴 수 있는 상황. 이대로 있다가 저 발이 움직이면 감당할 수 없다. 방법은 오직 하나.
‘꺼낸다. 초인의 무공.’
여휘를 고금제일인의 반열에 올려 준 천하제일 무공.
아직 외부엔 한 번도 드러내지 않은 신기심의공의 정수.
하지만 문제는.
‘아직 완전하지 않아. 그래도!’
꺼낼 수밖에 없다. 상대는 그래야 할 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