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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116화 (116/161)

116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멸마단임을 밝힌 당서하의 지시 아래 전장 정리는 일사천리로 마무리됐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네 사람의 신분은 소상히 밝혔다. 무윤은 그저 동행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고.

당서하의 시선이 주변을 둘렀다.

“다른 마인이 있을지 몰라요. 빨리 움직이죠.”

청한 표국 대표두 황세웅의 고개가 깊숙이 숙여졌다. 작은 표국의 대표두인 자신은 절정 중반이라 나서지 못한 미안함까지 담겼다.

“정말 감사드리오. 표국은 물론 여기 모두가 큰 은혜를 입었소이다.”

“멸마단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괘념치 마세요.”

“그렇다 해도 목숨을 구해 준 분들인데, 장사(長沙)에 가신다니 거기서 식사 대접이라도 했으면 합니다만.”

“마음만 받을게요. 우린 가자마자 무림맹 지부도 들러야 하고 따로 일도 있어서.”

대표두 황세웅으로선 반드시 자리를 해야 했다. 고마움은 물론 강호의 예의 또한 그렇고. 특히 넷에 대해 안 이상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일보다 저 나이에 초절정인 게 알려지면 강호가 떠들썩해진다. 무조건 인연을 만들어야 해.’

표국을 알릴 이만 한 기회도 없고. 다행히 명분이 있다.

“허! 이런 은혜를 입고 그냥 보내면 강호에서 우릴 어찌 보겠습니까? 작은 표국이 예의도 없다고 손가락질할 텐데,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장사에 며칠 머무는 걸 이미 알린 상황. 다들 있는 데서 거절하는 건 곧 무시를 뜻한다. 의도는 빤히 알지만, 강호의 법도상 뺄 수 없는 자리.

당서하는 가볍게 한숨을 흘렸다.

‘갈 수밖에 없어. 그렇기는 한데.’

거절하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그냥 한 끼 식사 자리가 아니지’

그 자리에서 언급된 말들은 공식적으로 강호에 퍼진다. 곧 넷 모두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는 뜻. 그 시선이 선망과 동경만일 수 없다. 질투와 시기를 넘어 특히 적에겐 제거 일 순위가 된다.

물론 무인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각오한 숙명이고, 자신은 꺼릴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드러내고 싶은 명예욕 또한 있고.

하지만 걱정되는 이가 있다.

‘사구나 서연이도 길을 정했으니 상관없고. 진이 저놈이 문젠데.’

가문을 나오고 무인으로 살아 보겠다고는 했지만, 딱 보면 안다.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저 여린 놈이 버텨 낼 수 있을까?’

동료라면 도와주고 응원해 주면 그만인데, 동생이라 여긴 누나의 걱정이다.

어쨌든 수락해야 할 상황.

“알겠어요. 그렇게 하죠.”

“감사합니다.”

일행은 서둘러 장사로 향했다.

그날 오후, 서문세가 가주실.

군사 서문신유의 급보를 받은 가주 서문헌은 기다란 한숨을 토했다.

“허! 호령산 쪽은 분명 살폈거늘 어떻게?”

“탈주한 후에야 수면 약이 발동한 게 확실합니다. 며칠 거기 쓰러져 있다가 마침 그때 큰 소리가 나서 깬 모양입니다.”

실험체는 세 곳에 분산돼 있었다. 그걸 한곳에 모아 없애려다 이동 중 마차 안에서 양중건이 갑자기 발작하는 바람에 여섯을 놓친 상황. 과한 수면 약을 먹인 것이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켰다.

“그보다 저들이 여섯 전부 태운 게 확실한가?”

“예. 죽은 산적들과 함께 태운 걸 다 같이 봤답니다.”

“한데 삼십칠 호는 발작하면 초절정 초입 가지곤 어림도 없는데 어찌 잡았다던가?”

삼십칠 호는 양중건을 뜻한다.

“다른 마인들을 처리하고 숲에서 동시에 공격했답니다. 넷 다 초절정급이라 가능했을 겁니다.”

“허! 그것참! 저들에게 고맙다고 해야겠군. 태워서 말끔히 정리해 줬으니.”

“무림맹 지부에 보고한 것에도 용모파기나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이제 의숙 일은 잊어버리셔도 됩니다.”

가주 서문헌의 눈가에 깊은 회한이 스쳐 갔다.

“그래야지. 참 오랜 세월이었어. 시원섭섭하구먼.”

광마인 일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서문가에서는.

같은 시각, 장사 하오문 지부.

곧 있을 전체 회의에 앞서, 지역 대표 지부장 일곱이 먼저 모였다. 주요 의제를 정리하기 위한 사전 협의.

사실 모든 결정은 이 자리에 나는 것이나 마찬가지.

막 도착한 안휘 지부장 장중만이 분위기를 띄웠다. 좋은 이야깃거리가 있으니까.

“허허! 안녕하셨소이까? 참, 소식은 들었소?”

하남 지부장 매규평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무림맹 지부에 들렀다 온 일행보다 먼저 온 자들이 이미 떠들어 댔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소. 오시기 전에 이미 장사 바닥이 그 얘기로 시끌벅적합니다. 어디 좀 들어 봅시다.”

“정말 죽다 살았소. 사구하고 친구들 아니었으면 난 이 자리에 못 왔소이다.”

장중만은 한참 동안 장황하게 떠들어 댔다. 오늘 가장 민감한 현안과도 엮여 있는 일. 사구를 돕기로 작정한 이상 바람잡이를 자임했다.

얼마 후, 뽑기로 선발된 회의 주관자 파운걸이 주위를 둘렀다.

“첫 안건은 은월청요검 진위 확인입니다만, 이 정도면 넘어가는 게 어떨지? 사실 여기서 초식만 보고 판별할 실력은 아무도 없잖습니까? 솔직히 요식 행위였지요.”

“크크! 그럽시다. 사구 그놈 경지가 우리보다 높은데 눈 가리고 아웅 하면 어찌 알겠소.”

“동의하오. 진본이 아니면 사구가 어떻게 초절정에 올랐을까.”

파운걸은 다음 주제를 꺼내 들었다.

“다음은 전체 회의 시, 연 당주의 시연, 그리고 지도 비무인데 혹 이견 있으신 분?”

“그것도 넘어갑시다. 다 빤한 얘긴데 빨리 현안으로 가지요.”

“동의하오.”

파운걸의 표정은 물론 모두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져 갔다.

“그럼. 은월청요검으론 마지막 안건입니다. 은월단 창설 여부와 그 방안인데 우선 제안자인 연 지부장 얘기부터 듣겠습니다.”

그때 연대광은 난처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허! 먼저 양해 말씀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왜 그러시오? 아직 정리가 안 되셨소이까?”

“그게 아니라 사구 이놈, 아니 연 당주가 자기 안이 있다고 먼저 발표하게 해 달라고 해서.”

“……어떤 내용입니까?”

“죄송합니다. 저도 모릅니다.”

“아니! 그 중차대한 일을 아버지한테도 말 안 했단 말입니까? 그럴 리가!”

연대광은 성난 콧김을 감추지 않았다.

“하! 회의 석상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방금 전에 와서 그러는데 정말 확 패 주고 싶었습니다. 대략이라도 알려 달라고 해도 입도 뻥끗 안 하니 내참!”

“사실이군요?”

“아니면 제가 왜 이러겠습니까? 휴!”

“……?”

잠시 후.

연단에 올라선 연사구는 넙죽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헤벌쭉 웃어 댔다.

“헤헤! 다들 놀라셨죠?”

연대광이 발끈해 벌떡 일어났다.

탁!

“이놈이! 감히 이 자리가 어디라고 그렇게 웃어! 당장 사과드리지 못할까!”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아까 찾아와 부탁할 때는 안광이 형형하게 빛나기에 망설이다 허락한 건데, 갑자기 죽도록 패 주고 싶은 놈으로 바뀌게 생겼으니.

연사구는 환한 웃음은 거두지 않을 채 담담히 말문을 열었다. 첫 웃음도 이미 작정하고 벌인 일.

“죄송합니다. 근데 너무 형식적인 건 우리하고 안 맞지 않아요?”

“크크! 이놈아! 그래서 그리 웃은 게야?”

“예. 꼭 정파 새끼들 따라 하는 거 같아서 전 몸이 막 뒤틀려요. 그냥 저 편한 이대로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몇 사람이 피식 웃어 댔다.

“오냐, 그래라. 내용이 문제지, 우리한테 형식이 뭐가 중요해.”

“그래, 이놈아. 어디 네 맘대로 해 보거라.”

“근데 헛소리면 몇 대 맞을 각오는 하고.”

연사구는 가져온 서류를 잽싸게 돌렸다.

“이거 보시면서 제 말씀 들으시면 됩니다.”

“응? ‘아인(牙人) 기반 상거래 정보 사업’. 이게 뭐냐?”

연인 유빈이 생각했던 사업의 확장판인 셈. 이제 확신에 찬 웃음에 더해 불꽃같은 정광을 내보일 때다.

“보시는 내용 그대로, 중개상인 아인을 직접 고용해서 개인 장사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입니다.”

“아인을 직접 고용해? 우리 하오문이?”

“처음엔 그러다가 차츰 우리 조직원들이 하게 해야죠.”

한동안 술렁대던 좌중에서 광동 지부장 염화성의 눈이 반짝였다.

‘허! 이놈 보게. 나랑 생각이 비슷해.’

해상과 육상 교역이 교차하는 광동의 특성상 중개 거래 비중이 높다. 해서 자신도 유사한 안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본이 없어 머리에만 넣어 뒀었다.

“허허! 나도 이 생각을 하고 있었지. 앞으로 꽤 괜찮은 사업이 될 게야. 에고! 근데 난 자본이 없어서.”

“에이! 염 숙부님. 뒷장도 마저 보셔야죠.”

“응? 뒤에 뭐가……. 헉! 은자 삼십만 냥!”

사방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뭐! 처음 시작하는 열 지역에 순서대로 삼만 냥씩 빌려준다고?”

“아니! 연 지부장, 정말 이런 거금이 있단 말씀이시오?”

눈이 휘둥그레진 건 연대광도 마찬가지. 다시 벌떡 일어나서 연신 사방에 손을 내저어 댔다.

탁! 휙! 휙!

“아니 무슨 말씀을! 전 그런 돈 없습니다. 다들 오시니 대접한다고 쌈짓돈 다 꺼낸 게 천 냥 조금 넘어요. 정말입니다. 못 믿겠으면 금고라도 보여 드릴까요?”

“아니 그럼 이 돈은 어디서?”

연사구는 지부장 모두에게 시선을 째려 댔다.

“아니! 왜 다 안 읽으시고 그러세요? 거기 있잖아요!”

글을 유심히 보던 이들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가만! 아인에게 거래 직전 보증용 선금을 먼저 받는다? 그렇지, 이건 당연하지.”

“근데 처음엔 개인당 평균 두 냥 정도인데, 일 년 후 거래가 커지고 신용이 생기면 평균 열다섯 냥에, 인원이 목표대로 이만 명이 되면?”

“우와! 보증금 들어온 것만 삼십만 냥이네.”

“응? 근데 이건 사업 시작 후 일 년, 그것도 잘돼야 생기는 건데? 그럼 처음엔 어떻게 시작해?”

“그러게. 응? 가만 이게 뭐야? 먼저 침주 하후 전장에서 삼십만 냥 차입! 이게 가능해? 거기서 이 큰돈을 왜 빌려줘?”

연사구은 티 나게 큰 한숨을 쉬어 보였다.

“제 담보 다 내주는 대신 그렇게 해 주기로 했어요.”

연대광이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야! 이 새끼야! 너한테 그런 담보가 어디 있어? 악양예관은 고작 칠만 냥인데 이십삼만 냥은 뭐냐고!”

“여곽 상단 지분 이할! 그거 오십 년 치 환산하면 딱 이십오만 냥 나와요. 그거 다 걸기로 했어요.”

“뭐! 이 우라질 새끼가 그게 어떤 돈인데! 그리고 네 지분은 일 할이잖아!”

“아버지. 아들이 우리 문을 위해 일 좀 하겠다는데 그 정도 못 밀어줘요? 그리고 말 나온 김에! 그거 다 제가 벌어 준 거잖아요! 아녜요?”

“아니……. 그래도 인마! 이건 아니지!”

“뭐가요?”

“……하여간! 아닌 건 아닌 거야!”

“아버지, 그냥 돈 다 날릴까 봐 겁난다고 하세요.”

“그게 그 얘기지!”

“어쨌든 그건 됐고. 서류나 다 보시고 말씀하시죠.”

“……?”

한참 동안 부자간의 말싸움이 오고 갈 때쯤, 다른 이들이 수군거렸다.

“뭐야? 그럼 어쨌든 삼십만 냥 있는 거잖아?”

“우와! 사구가 그런 부자였단 말이야? 정말 놀랐네.”

“근데 광동 지부장님. 이 사업 정말 괜찮습니까?”

광동 지부장 염화성은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이거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합니다. 제가 돈이 없어서 못 했지, 십 년을 넘게 고민한 사업이에요.”

그제야 초롱초롱해진 눈빛들이 서류로 뚫어지게 향했다.

그러길 한참, 가장 빠르게 읽어 내려가던 염화성의 눈이 서서히 부릅떠지다, 갑자기 내실이 떠나갈 듯 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이거였구나! 그래 이거면 누가 시비를 걸까! 이러면 되겠어. 큭큭큭!”

모두의 놀란 시선이 한곳에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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