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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106화 (106/161)

106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바람 탄 신형에서 시퍼런 권강이 일렁이는 순간.

하후천기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저, 정말이었어!”

뿜어진 채 하늘거리는 빛의 궤적은 그 강대한 위세를 감추지 않았다. 처음 오물거리던 권기가 농밀함을 더해 갈 즈음엔 의아했다.

한데 촌각의 사이, 고주양의 지척에 다다르자 본모습을 드러낸 선명한 강기. 시퍼런 번개가 하늘로 다시 오르듯 용솟음친다. 그 기의 용틀임이 여기까지 무자비한 전율을 뿌려 댄다.

확실한 증거를 두 눈으로 본 지금, 일말의 의심도 머릿속을 휙 떠나 버렸다.

하후천기의 심중엔 오직 한 가지 결심만 남았다.

‘적으로 만들면 안 된다. 절대!’

지금 경지도 그렇지만, 어디까지 갈지 모를 그 이후가 더 무서운 자. 가문 원로들이 떠들던 말이 번득 뇌리를 때렸다.

-크흠! 끌 거 있소이까? 여곽 상단은 빨리 가져옵시다.

-당연하지요. 우리가 가격만 적당히 쳐주면 그자도 좋아할 게요.

순간 온몸의 털이 바짝 서 버렸다.

‘안 돼! 그랬다간!’

여곽 상단 일을 맡아 하는 숙부 하후모인에게 들어서 안다. 무윤이 그 사업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청호방주와 같이 일해 보고 최근에야 안 게 있단다.

-어떤?

-방주는 돈 버는 거엔 정말 관심이 없더구나.

-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럼 사업은 왜 한답니까?

-세상에 보여 주고 싶은 게야. 자기 사업 방식이 가진 자, 못 가진 자 모두 상생할 방법이라는 걸. 그걸 퍼트리는 게 방주의 꿈이지. 수익은 사업의 타당성을 알리는 증명일 뿐이야.

-……정말 그리 보십니까?

-그래. 해서 가문의 논의가 걱정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걸 뺏으려 들면 방주는 절대 참지 않아. 적운문도 그래서 없애려는 건데. 꼭 유념했으면 하는구나.

하후천기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가자마자 막아야 해.’

그게 자신도, 하후가도 살길이다.

한편 하후진은 속 깊은 한숨을 절로 내쉬었다.

‘더 늦기 전에 가문을 나와야겠어.’

지금도 무윤과 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의심을 받는다. 그 때문에 나올 시기를 조율하고 있었는데.

‘저놈이 화경인 게 알려지면 양상이 달라진다.’

이젠 의심이 아니라 자신을 지원하려는 세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서른도 안 된 절대자, 그 친구인 자신의 가치는 누가 봐도 가주 후보로 손색이 없다.

이번 일로 하후천기와 큰 벽은 무너뜨렸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반목하게 된다. 형님 성격상 그럴 수밖에 없어. 하후태 그 새끼는 물론이고.’

무윤을 알아 가면 갈수록 굳어지던 생각이 이젠 결심이 됐다. 물론 이유 중 하나는 자신 때문이고.

‘무인의 삶! 그 길로 가 본다.’

그동안 무윤에게 많이 배우긴 했다. 하지만 명확히 선을 그은 게 있다. 연사구에게 은월청요검을 가르칠 때, 옆에서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몸에 맞춰 무공을 변형하는 무윤의 능력을 확인했으니까.

얼마 후 무윤이 제안했었다.

“진아. 네 천우구환검도 좀 봐줄까?”

“왜?”

“너한테 안 맞는 검식이 꽤 있어. 고치는 건 어렵지 않은데.”

“뭘 바꿔야 하는데?”

“심법도 초식도, 다 손봐야지.”

“……가문 사람들이 보면 차이를 알까?”

“제대로 고치면 그럴 거야. 사실 그 검법 영 아니거든.”

한참을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고친 사실을 알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에 선했으니까.

“아니, 난 됐다.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이유를 아는 무윤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알았다. 근데 언제든 맘 바뀌면 얘기해.”

“그래.”

그때도 지금도 뼈저리게 안다.

‘만약 놈이 바꾼 검을 익혔다면!’

족히 한 단계는 더 올라섰다. 초절정의 벽도 깼을지 모르고.

그럼에도 꾹 참았다. 어떻게든 가문에서 살아남을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생각을 바꿀 때. 가문은 물론 자신을 위해서도, 또 약간이나마 마음을 열게 된 형, 하후천기를 위해서도.

그리고 무윤과 같이하면 된다. 물론 검식도 바꿔 달라고 하고.

한편 설도승의 두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꽉 깨문 어금니에 핏물이 고일 만큼 두려움이 가슴에 물결쳤다.

‘어, 어떻게?’

답을 못 찾은 그 의문만 계속 뇌리를 메아리친다. 이해가 안 된다. 상상이 안 된다. 고작 파락호 이백을 거느린 흑도방주인 놈인데.

광동 하조문을 박살 낼 때는 그나마 기연이라도 얻었겠지 했는데. 그렇게 추측이라도 가능했다.

‘근데 화경이라니?’

발이 땅에 얼어붙고, 온몸에 경련이 인다. 땀이 송골송골하게 맺히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거세게 물결치는 격랑의 주먹엔 푸른 강기가 묵직한 파공성과 함께 세상을 갈라놓듯 휘몰아쳤다.

쇄애애액!

적을 향해 몸부림치며 하늘거리는 강대함. 그 기운이 먹잇감을 찾아갔다.

고주양의 본능이 뇌리를 때렸다. 기다리던 상태라 저 빠름을 일시에 벗어날 방법이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오직.

‘부딪치면서 물러나야 해.’

바랄 건 그뿐. 고주양은 이를 악물었다. 상대를 얕본 후회는 이미 뇌리를 떠났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 상상 이상의 기운이 엄습해 오는 지금은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마지막 한 줌의 내력까지 끌어올렸다. 혼신의 힘을 다한 검극의 울림이 한 치의 흘림도 없는 전신의 힘을 알렸다.

우우웅!

검신에 서린 검기가 응축돼 푸른 강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순간 불안에 떨던 마음이 조금은 안정됐다. 다행히 전력이 실린 강기.

‘이 정도면 피할 수는…….’

그 마음 담긴 검극을 정면으로 쏟아 냈다.

슈우욱!

순간 미증유의 두 힘이 부딪히자 폭풍이 대기를 찢어발겼다.

쾅! 콰쾅! 카아앙!

거대한 파공음과 함께 푸르고 새하얀 빛을 사방에 토해 냈다. 몰아치는 거대한 바람이 귀청을 찢는 굉음과 함께 지켜보던 이들의 시야를 불꽃으로 가득 메웠다.

파파팟! 화라락!

뇌전 같은 짜릿함이 검격을 타고 내려오던 찰나, 고주양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투지를 불태우던 눈은 순식간에 허망함으로 물들었다.

무인의 감각이 절규한 탓이다. 왜 처음부터 도망치지 않았느냐고.

‘그래야 했거늘!’

전율처럼 팔을 타고 온몸으로 흐르는 충격, 기혈의 역류, 무너지는 무릎, 부서진 칼날, 전신을 난도질하는 기의 파편,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오판에 대한 통한의 원성으로 다가온다.

강호의 말을 믿었어야 했다. 강기도 다 같은 강기가 아니라는 걸, 절대자는 더 이상 응축할 수 없는 진정한 강기를 뿜어낸다는 걸.

때늦은 후회가 눈을 질끈 감게 할 즈음, 엄청난 반탄력에 몸이 튕기듯 밀려나 처박혀 버렸다.

파파팍! 쿠웅!

순간 주변은 언제 싸움이 있었냐는 듯 고요함에 빠져들었다.

설도승을 힐끔거린 무윤의 발걸음이 널브러진 자를 향했다.

갈가리 찢긴 경장에 잘려 나간 오른팔, 다 부서진 늑골과 꾸역꾸역 입을 타 넘는 검붉은 피,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렸다.

피거품 속에 허탈한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쿨럭! 커헉!”

“내가 담사운이다. 억울하진 않겠지?”

순간 고주양의 눈이 커다래졌다.

“크윽! 도, 돈을 댄 그놈?”

“그래. 저들의 친구기도 하고.”

허망함과 의문 가득한 입이 열리려던 순간, 생을 다한 몸이 축 늘어졌다.

투욱!

이제 남은 하나, 그에게로 발걸음이 돌려졌다.

터덕! 차착!

설도승은 망연자실한 목소리가 절로 흘렀다. 처음 본 이후 지금까지 그 어떤 해답도 찾지 못했다.

“어, 어떻게?”

“그냥 적을 잘못 만났다고 생각해. 그게 맘 편할 거야.”

그래도 설도승은 무윤에게 남다른 소회를 안겨 주는 인물이다. 적다운 적으로서.

‘적은 때론 나를 키우지. 거기에 딱 맞는 자였어.’

냉철한 이성과 깊은 심기를 가진 자. 이런 그를 상대하느라 차근차근 초석을 다져야 했다. 역설적으로 초반에 가장 도움이 된 자.

설도승은 가장 궁금한 게 있다. 죽는 이 순간에도 지키고 싶은 자존심.

“처음부터 내가 잘못 본 건가?”

“아니, 그땐 날 죽일 수 있었어. 나중엔 널 탓할 필요 없고. 하늘이 내린 운명이라 여겨.”

설도승은 허탈함과 씁쓸함이 한가득 밀려왔다.

‘사람 보는 눈 하난 있다고 자부했거늘.’

그 자신감이 만든 뼈아픈 실수다. 뛰어나 상재(商材)는 몰라도 무인으로선 첫 번째 만남의 직감을 믿었던 그 오판이 결국 오늘 이 자리를 만든 셈.

설도승은 머리를 휘휘 내저었다. 밀물처럼 쏟아 드는 후회를 떨쳐 내려 함이다.

‘누굴 탓할까. 승부에서 진 것을.’

자신도 놈을 죽이려 했다. 능력이 부족해 당할 뿐.

그래도 마지막 물을 게 남았다. 자신이 온 생을 바쳐 이룬 그것.

“적운문은……. 없애야겠지?”

한때나마 적으로 인정했던 자, 사실대로 알리는 게 예우다.

“너와 봉천문주는 야접과 싸우다 죽은 걸로 할 거야. 그럼 이 일로 원한은 없겠지. 이후에 적운문이 스스로 침주에서 물러나 주면 건드릴 생각 없다.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설도승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나마 명맥을 이을 방법을 찾았다.

“부탁 하나만 하지.”

“뭔가?”

“내 동생이나 아들놈 모두 겁이 많아. 처리할 때 감안해 줄 수 있겠나?”

말에 담긴 뜻을 모를 수 없다. 무윤은 진중함을 담아 눈을 마주했다.

“유념하지.”

설도승은 도를 하늘로 세우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거대한 벽인 걸 알지만 자신은 무인. 발버둥이건 무인의 자존심이건 내 모든 걸 검으로 뿜어내야 마지막 후회가 없다.

“가겠네.”

땅을 박차는 동시에 바람을 가르는 검이 주인의 의지 담아 울부짖었다.

파팟! 쇄애액!

호위대의 검을 집어 든 무윤의 진심이 입에 담겼다.

“미안해.”

전력을 다해 적답게 예우해 줄 상황이 아니다. 시간도 없고 서로 싸운 흔적도 남겨야 한다. 묘하게 흔들린 검의 비틀림이 설도승의 눈을 어지럽히던 순간.

샤아아악! 서걱!

“큭!”

섬뜩한 소리와 함께 잘린 목이 바닥을 뒹굴었다.

툭! 투둑!

잠시 후.

봉천문과 야접이 양패구상 한 것으로 전장 조작이 끝날 즈음.

생각을 정리한 당서하의 말문이 열렸다.

“악양 무림맹 지부 쪽으로 가자.”

연사구의 눈이 동그래졌다.

“엥? 동네방네 떠들 일 있어요? 거길 왜 가요?”

“지부에서 단주님 숙소를 근처에 마련해 줬어. 근데 단주님은 지부 안에 계시지. 거기가 비어 있는데 주변이 조용해. 어차피 대주와 단주님께 말씀드려야 하고.”

“아! 무림맹 근처니까 더 안전할 수 있겠네.”

“의원도 무림맹에서 파견 나온 가문 어르신이 있어. 비밀은 걱정 없지.”

하후천기가 의견을 더했다.

“우린 내일 떠날 예정이라 장로님껜 알려야 합니다. 안 그러면 사방을 들쑤실 겁니다.”

“그건 그래야지.”

지금은 가장 최선이라 여겨지는 안. 무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게 좋겠네요. 나머진 가서 논의하시죠.”

그때 당서하의 안색이 약간 어두워졌다. 다섯 중 가장 부상이 심하다.

“근데 나는 걷기가 좀…….”

연사구가 바로 답을 꺼냈다.

“저놈이 업으면 되죠. 가장 편하게 가겠네.”

“그래 볼까, 그럼.”

그때 하후천기가 모두를 향해 정중히 예를 갖췄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을 할 때다.

“나 때문에……. 사과드리겠소. 그리고 고맙소. 이 목숨 빚은 절대 잊지 않으리다.”

당서하의 손이 하후천기의 어깨에 가만히 올라갔다.

터억!

“우린 최선을 다했어. 물론 너도. 그거면 됐다.”

진서연은 지그시 미소 지었다.

“전장이 처음이면 누구나 그래요. 그땐 저도 그랬고.”

연사구도 거들었다. 마지막에 본 게 있다.

“그래도 막판에는 당 조장 구하려고 했잖아요. 그게 어디야. 처음하고 비교하면 완전 딴 사람이지.”

당서하는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자신도 봤다.

“그러게. 그 와중에도 깜짝 놀라긴 했지.”

하후진은 짙은 웃음만 입가에 그득 담아 전했다.

하후천기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동료였던 자들의 수다와 환한 미소, 그 속에 담긴 진정이 가슴을 아려 온다.

파도에 너울거리듯 전해진 따스함은 점차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하후천기는 다른 말이 필요 없음을 알았다. 지금은 그저 이 마음 담은 눈길로 넷을 마주하면 된다.

그러다 문득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또 이런 상황이 오면, 그때도 이럴 수 있을까?’

하후천기는 잘 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자신은 특히 그런 부류인 것도. 온 마음을 열고 스스로를 돌아보다 결론을 내렸다.

‘자신 없어. 하지만 이들이면! 그럴 수 있다.’

지금은 이거면 족했다. 동료가 됐던 소중한 경험, 지금은 그것만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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