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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100화 (100/161)

100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무윤의 눈이 깊어졌다.

‘어디까지 알리지?’

고민은 어디까지 진실을 알릴지, 그것이다.

처음 보타문에 불경을 전할 때 스님으로 둘러대는 게 자연스러워 했던 거짓말. 그 때문에 심법을 전할 때도 그랬고.

물론 이 의문은 간단히 둘러댈 수 있다.

‘스님이 스승님 친구라고 하면 그만이긴 하지.’

한데 비무를 통해 알게 된 사실. 그걸 제대로 전하자면 중단전 무학에 대해서도 알려야 하는데, 그 설명이 문제다.

스님이 구결만을 찾았다는 말이 의심을 부른다.

‘심법에 감춰진 의미는 구결만으로 알 수 없어. 설명하다 보면 의심할 거야.’

스님에 대해선 대충 둘러대려고 했는데 의문을 가진 이상, 에둘러 알린다 해도 천재인 서연이라면 반드시 의심하게 된다.

그건 곧 심법과 자신에 대한 불신이 될 것이고.

잠시 고민하던 무윤은 답을 내렸다. 서연의 걱정은 사문의 무공을 벗어나는지의 여부.

‘큰 틀에선 사실대로 알리자.’

또 이젠 딸 소려의 이모인 여인, 불가피한 걸 빼고는 속이고 싶지도 않다.

무윤의 전음이 서연을 향했다. 맨 먼저 그녀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부터.

-심법은 불가의 것이 맞습니다. 바라타나티암 불무에 맞춰 만든 것도. 다만 제가 거짓말을 한 게 있습니다.

-어떤?

-제 스승님은 스님이 아니고 도인이십니다.

-그럼 연 당주가 말한 그분?

-예, 처음 만났을 때 도인이 전한 불경이라고 하면 의아할 거 같아서 그리 둘러댔습니다. 다른 의도는 없었지만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럼 심법은 어떻게?

이제부턴 지어내야 한다. 물론 최소한으로.

-천 년 전 광동 영흥사에 있던 겁니다. 당시 보타암을 설립하셨던 혜정 신니께서 가져가셨고 제 사조님께도 전해진 거죠.

-기록이 그런가요?

-예, 나중에 보여 드리겠습니다.

진서연은 속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윤도 믿지만, 기록까지 있다면 더 의심할 게 없다.

-휴! 다행이네요. 사문의 법도가 지엄한지라 물을 수밖에 없었어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어쨌든 저도 거짓말을 했으니까요.

-이제 그건 됐고. 그 동작은 어떻게 된 건지?

-그 전에 아실 게 있는데, 그 심법엔 본래 취지가 따로 있습니다.

-……어떤?

-중단전에서 시작하는 무학, 그 길로 가기 위한 심법입니다.

서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시작이 중단전?’

지금 무학 이론에서 중단전을 여는 건 정기신(精氣神)의 일체, 곧 화경 이후 가능한 경지로 본다.

특이한 기공 일부를 제외하고는 정설로 굳어진 내용. 또 그것도 완숙의 경지에서나 가능한 일.

의아할 수밖에 없다.

-이 심법을 떠나서 그런 게 가능한가요? 전 금시초문이라.

-가능합니다.

-어떻게 확신하시는지?

이걸 밝혀야 다음 얘기가 된다. 이젠 믿을 수 있는 여인.

-제가 익혔으니까요.

서연은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서 버렸다. 두 눈엔 의심 대신 황당함과 놀람만 가득했다. 거짓을 말할 이는 아니니까.

‘그럼?’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무윤의 경지. 그 답이 저 말에 있음을 직감했다.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자 멍해졌던 눈에 서서히 빛이 감돌았다.

‘내, 외공을 같이 쓴다던 게, 이걸 돌려 말한 것이었어.’

거기에 하단전 내력이 경지보다 작아 보인 것까지.

순간 다른 의아함이 가득 올라온다. 강호 역사상 이런 무학이 있었다고는 들어 보지 못했다.

‘조사님은 천 년 전 분이라고 했어. 근데 이런 대단한 무공이 어떻게 그동안 안 알려졌지?’

수많은 의문이 쏟아지는 지금, 솔직한 질문을 던졌다.

-하! 너무 놀라서 뭐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과거엔 내, 외공을 동시 수련하는 연구가 많았습니다. 그 한 갈래가 몸 자체를 하나의 단전으로 만드는 건데, 그걸 중단전으로 완성한 무공이라 보시면 됩니다.

-천 년 전 조사님이 만드신 건가요?

-예.

-근데 그런 대단한 무공이 지금까지 이어졌는데 세상은 왜 모를까요?

-맞는 체질이 거의 없었죠. 그래서 다른 무학으로 사문을 이어 오면서 명맥만 이은 겁니다. 기록에 보면 천 년 동안 익힌 분이 서너 분밖에 안 되더군요.

서연은 가벼운 질투를 말 속에 담았다.

-그런 대단한 걸 얻으셨다니 축하드려요.

-운이라고 해야죠.

-운은 물론이고 노력과 실력도 있겠죠.

무윤은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전인을 찾기 어려워서 다른 방안을 고심하다 만든 게 저 심법입니다. 하단전부터 운용해서 길을 찾도록. 그걸 불무와 연결하다가 영흥사 반각 스님과 같이 만들게 된 거고, 그중 여인 부분만 남아 전해진 겁니다.

서연의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처음 말씀을 안 해 주신 건?

-두 가지. 사문의 비전과 엮인 일이라 자세히 알리기도 그랬고, 진 소저가 그 길을 찾을 거라곤 생각 못 했으니까요.

가벼운 웃음이 서연의 입가에 흘렀다.

-제가 잘한 건가요?

-천재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죠.

-어쨌든 칭찬이네요. 고마워요.

-일정 경지 전까지는 몸만 좋아지고 하단전 내력과 교류하지 못하는데, 그 길을 찾으셨더군요. 그래서 위급 상황에 나온 겁니다.

-그럼 문제없다는 건가요?

무윤은 한마디로 정의했다.

-기연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 정도 가치인가요?

-곧 아시게 될 겁니다.

-……!

이후로도 세세한 내용이 오고 가고 마무리될 즈음, 서연의 발갛게 상기된 뺨이 가볍지 않은 흥분을 알렸다.

우선 무인으로서 찾아온 환희와 안도감.

‘내력 충돌이 없다니 정말 다행이야.’

내, 외공을 동시에 익히기 어려운 건 효율도 문제지만 심법이 충돌하는 경우도 많아서다. 한데 완전히 내력에 녹아드는 기운이면 걱정할 게 없다.

무공으로서의 가치야 새삼 떠올릴 필요도 없고.

무윤에 대한 고마움도 다시 가슴을 저며 왔다. 정중히 표하려던 감사의 표시를 거절하며 해 준 말.

-공짜로 준 거 아니잖아요. 소려한테 보여 주려면 열심히 해야 할 겁니다.

그 말에 그저 환하게 웃고 말았다.

이럴 때 말은 필요 없다. 온 마음 다한 그 미소의 진정을 알 사람이니까.

한데 흥분한 서연은 한 가지 생각은 떠올리지 못했다.

같은 뿌리를 둔 무공을 배우는 사이, 이걸 사형제라 한다.

물론 둘 사이에서만.

같은 시각, 악양 시내 침주 하후가의 숙소.

떠날 여장을 꾸리느라 모두의 손이 분주할 즈음.

하후진은 소가주 하후천기에게 다가갔다.

“잠시 다녀올까 합니다. 출발 전에 오겠습니다.”

“어디 가려는 게냐?”

“연 조장 일이 궁금해서…….”

잠시 고민하던 하후천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같이 가자.”

“예? ……같이 말입니까?”

“왜? 내가 가면 안 되느냐?”

“그, 그건 아닌데…….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예관으로 가는 내내 하후진은 하후천기를 힐끔거렸다.

‘무슨 생각일까?’

무윤만큼은 아니지만 연사구도 꺼려 하긴 마찬가지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 가는 게 없다.

그래도 입가엔 옅은 미소가 흘렀다.

‘이렇게 만나다 보면 조금씩 달라지겠지.’

하후진의 소망은 가문과 무윤이 함께하는 것. 그걸 향한 소가주의 작은 걸음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한편 앞서 걷는 하후천기의 눈가엔 씁쓸함이 사라지질 않았다.

‘이렇게 돼 버리다니.’

자의로 내디딘 걸음이지만 실상은 타의나 마찬가지다.

이전 반 시진 동안 몰려온 이들이 한 말은 한결같았다.

-자넨 저 친구 잘 알겠군그래.

-……알긴 하네만.

-나 좀 소개해 주게.

-……왜?

-이 사람,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나. 이제 신룡의 칭호가 붙을 자 아닌가. 게다가 전대의 고수와 아는 사이고. 눈도장이라도 찍어 놔야지.

그렇게 찾아온 이만 수십 명.

격세지감이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그제야 알았다.

‘이젠 하오문의 일개 조장이 아니야. 당분간 강호의 모든 이목이 쏠리고 신성으로 불릴 자.’

침주 최고 무가의 소가주인 자신이, 한순간 거간꾼이 돼 버렸다.

그 분노와 무력감에 앞서 닥친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사이가 나쁜 걸 알면 큰일이다.’

그걸 불식시키기 위한 걸음이 즐거울 리 없다.

같은 시각, 봉천문 문주실.

세 사람의 굳은 표정이 대화의 분위기를 대변했다.

봉천문주 고주양은 설도승을 힐끔거리고는 탄식을 터트렸다.

“그놈 실력만 제대로 알았다면 일이 이리되진 않았을 텐데. 그것참!”

적운문주 설도승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놈이 초절정일 줄이야.’

그래도 협상 자리에선 실수를 자인해선 안 된다.

“작정하고 감춘 걸 어쩌겠습니까. 침주에선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쉬워서 해 본 소리네. 상황이 이리됐으니.”

“이제라도 알았으니 대책을 세우시죠.”

봉천문주 고주양은 다른 한 사람을 티 나게 힐끔거렸다.

“어쨌든 핵심은 잔금 이전에 놈을 죽이는 건데, 허! 자네와 난 이목이 너무 쏠려 있어서 문제란 말이지.”

야접(夜蝶)의 부련주 요화곤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우리보고 처리하라는 게요?”

“크흠! 뭐 여러 방안을 모색해 봐야 하지 않겠소.”

“못 할 것도 없소만, 그럼 조건이 달라져야겠지.”

“어떤?”

“우리에게 넘길 때 받을 양도 대금을 낮춰 준다면 생각해 보겠소.”

봉천문이 인수하고 일 년 후, 야접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상단에 넘기는 계약이 있다.

야접은 매음굴을 넘어서 기루로 세력을 넓히는 게 숙원 사업.

하지만 기루는 지역 정, 사, 흑도가 장악한 시장. 암묵적으로 정해진 그 선을 넘는 순간, 야접은 모두와 적이 돼 버린다.

그 한계를 우회적으로 뛰어넘을 방법 중 하나가 기녀 교육관 인수.

우선 상단을 앞세우면 문제가 없고, 차후 이를 기반으로 기루 인수를 할 속셈.

언젠가는 드러나겠지만 그땐 더 넓히지 않겠다는 정도로 합의하면 된다.

또 예관의 퇴기는 물론 자질이 떨어지는 일부 기녀 수련생을 매음굴로 보낼 기회도 생기고.

그 교두보가 중원에서 가장 큰 악양 예관이다.

한편 고주양은 악양의 매음굴 하나를 인수받기로, 설도승은 침주에 매음굴을 만들어 공동 운영하기로 합의한 상황.

고주양은 눈살을 찌푸렸다.

“얼마나 깎잔 말이오?”

“만 냥이면 어떻소?”

“허! 말도 안 되는 소리. 없던 얘기로 합시다. 그놈은 내가 알아서 하겠소.”

“뭐, 알아서 하신다면야.”

그때 설도승의 눈에 찰나의 섬광이 스쳐 갔다. 작정하고 있던 패를 요화곤에게 툭 던졌다.

“이만 냥에 한 명 더! 어떻습니까?”

“……무슨 소리요?”

“돈을 댄 놈이 같이 왔더군요. 그놈까지 같이 죽여야 뒤끝이 없습니다.”

“그럼 두 놈을 처리하는 대신 이만 냥을 깎아 주겠다?”

“그 돈은 제가 부담하지요.”

부련주 요화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설도승. 이럴 인간이 아닌데. 뭔가 있다.’

근 반년 가까이 논의된 일이다. 그 와중에 설도승이 어떤 자인지 파악도 했고. 슬쩍 운을 뗐다.

“호! 그놈이 누구기에 설 문주께서 이러실까?”

다시 이런 실수를 안 하려면 정확히 알려야 한다. 어차피 무윤이 죽으면 오만 냥은 안 갚아도 되니까.

“담사운이란 놈인데 침주에서 제법 큰 사업을 하오. 연사구와 친해서 돈을 빌려줬을 게요.”

“그럼 어차피 죽여야 할 놈이네. 그럽시다.”

“근데 아셔야 할 게 있소.”

“뭐요?”

“놈이 알려진 건 초절정 초반인데 아마 감춘 게 더 있을 게요.”

“큭큭! 설 문주, 정확히 알려 준 건 좋은데 어째 무시하는 것처럼 들리네. 우리가 조용히 처리 못 할 거 같소?”

“머리가 더 무서운 놈이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외다.”

요화곤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혔다.

‘일거양득이지. 어차피 손쓰려고 했는데.’

강호 전반에 세를 가진 야접의 숙원이자 열망.

‘절대무공! 그것만 있다면.’

온갖 모멸과 멸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매음굴 사업. 아무리 돈을 벌고 세력을 넓혀도 손가락질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절대자가 나오면, 그 누구도 우릴 업신여기지 못한다.’

마침 총단의 무사에다, 최고수인 장로 염이규까지 와있는 상황.

이 논의가 끝나면 바로 움직일 생각이었는데 돈까지 줄이면 금상첨화.

요화곤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끌 거 있겠소. 바로 처리하리다.”

“당장 말이오? 이목이 있을 텐데 며칠 지나서 하는 게…….”

“돈 가진 놈이 왔다는데 바로 잔금을 지불하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게요. 걱정 마시오. 은밀히 처리할 테니.”

“……!”

나가는 요화곤의 걸음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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