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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98화 (98/161)

98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

한순간 흐른 정적이 모인 수백 무인의 놀람을 대변했다.

적운문 대주가 쓰러지고 나머지 한 명은 발이 땅에 얼어붙었다. 싸울 의지를 잃어버린 자.

연사구 또한 이미 검을 거둔 상태. 심문할 자 하나는 있는 게 좋다.

누군가의 입에서 멍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초절정!”

“허! 맞네.”

“이럴 수가!”

호남 정사 대전을 마무리하는 자리. 모인 수백의 군웅 중 초절정만도 수십이다. 한데 그런 초고수들도 경악하는 이유.

“……하오문도가?”

“……저 나이에?”

아까 논쟁 중에 모두 들었다. 하오문도이고 서른둘인 걸.

“가만! 혹시 저 검식이 뭔지 아나?”

“하오문의 은월청요검 같네. 몇 번 본 적이 있어.”

“뭐? 그럼 다른 사문이 없다는 거잖아?”

“그렇다고 봐야지.”

“허! 그런 검식으로 저기까지 갔다니 대단하구먼.”

“그뿐인가, 이제 서른 초반이야. 난 여기 모인 거대 가문에도 저 나이에 초절정은 못 들어 봤네.”

“나도. 빨라야 삼십 후반이거늘.”

강호 거대 무가를 기준으로 통상 기재로 인정하는 연령이 있다. 절정은 이십 중반, 초절정은 마흔 초반 이전에 올랐을 때, 대략 열 명 중 한두 명꼴.

천재라 불리는 기준은 절정 이십 초반, 초절정 삼십 후반. 가문마다 이런 천재는 한 손가락 안에 꼽는다. 이들이 다음 대 강호를 이끌어 나갈 동량들.

그 천재 중에서 또 신성으로 꼽히는 이들이 있다.

스물 전에 절정, 서른 중반 이전에 초절정, 강호를 통틀어도 수십에 지나지 않는 이들. 강호 대표 가문에도 하나 있으면 다행이라 할 정도. 그래서 미래의 절대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 수가 절대자와 비슷하고 가장 앞선 이들이기에.

한데 신성에 절대 꿀리지 않는 경지를 보여 준 자. 그런 이가 하오문도라는 사실이 좌중을 경악하게 한다.

그간 강호의 역사가 말해 준다. 도중에 죽거나 부상당하는 이를 제외하고, 대략 신성의 절반이 절대자 반열에 오른다. 또 벽을 못 넘어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경지까진 거의 간다.

그렇기에 주시하고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게 신성인데.

복잡 미묘한 여러 시선이 연사구를 향했다.

두 진영의 부군사는 동시에 쓰러진 주성곤에게 신형을 날렸다.

파팟! 휘릭!

일 검에 양단된 몸에서 흘러나온 비도, 그게 같다면 다른 증명이 필요 없다. 속이려던 것이 증거가 돼 버린 상황.

터억!

두 비도를 높이 쳐든 독고윤극의 시선이 좌중을 훑었다.

“같은 비도요. 저들이 모략한 게 맞소이다.”

좌중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 역시 그런 거였나!”

“근데 왜 그랬을까?”

“빤하지. 침주에서 서로 앙숙이었다는데.”

“하긴!”

봉천문주 고주양은 씁쓸함 속에서도 한 가지는 다행스러웠다.

‘적운문주를 못 나오게 하길 잘했어.’

문주 설도승이 없어야 우발적 사건으로 보이기 좋아서 합의한 일. 한데 계략이 드러난 지금도 저 넷의 범죄로 몰기 좋다. 살아남은 한 놈이야 사전 계획을 모르고.

예관 인수야 차후 다른 방안을 찾아도 된다. 모두의 시선이 쏠릴 땐 피하고 보는 게 상책.

‘여긴 이 정도로 끝내면 다른 여파는 없다.’

잠시 후, 적운문 넷의 우발적 모략으로 일은 일단락됐다.

한편 한순간 허옇게 변했던 서문진성의 안색도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갔다. 경악 대신 울분과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든 탓이다.

‘벽을 넘었다니.’

문득 떠올리기 싫은 과거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천한 하오문도가 절정을 넘어 자신을 앞섰다는 사실.

같이 수학(受學)하는 내내 그 모멸감이 쌓여 울화가 돼 버렸다. 그 적의가 놈을 궁지에 몰게 한 것인데.

칠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다. 이젠 그 더러운 기분을 영영 떨쳐 버릴 기회였는데, 오히려 더 쌓이게 된.

그 참을 수 없는 격한 분노에 이어 후회가 밀려들었다.

‘내 실수다. 그때 확실히 끝냈어야 했는데.’

하나 지금은 뜨겁게 요동치는 피를 달래야 할 때. 당시 분한 마음에 급히 나섰기에 놈에게 틈을 줬다. 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절대 급하게 해선 안 된다.

자신은 오대세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가문의 직계. 쓸 방법이야 널리고 널렸다.

‘장사(長沙)에 오기만 해라. 그때는 꼭!’

자신을 철저히 감추면서 놈을 망가트릴 방법, 그것들이 머리에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편 하후가 소가주 하후천기의 심사도 착잡해졌다.

‘저놈도 초절정이라!’

서른다섯인 자신은 절정 상. 한데 무윤만 해도 그런데 하오문도인 저놈까지.

이복동생 하후진에게 절로 시선이 옮겨졌다.

‘이놈도 절정 상인데.’

문득 가주인 아버지 하후종인이 떠나기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진이도 조만간 악양으로 보내마.

-예? 그놈까지 왜?

-너 때문에 보내는 게다. 형제간에 터놓고 얘기해 보라고.

-……무슨 얘기를?

-넌 진이를 의심하지 않느냐? 무윤 그놈과 무슨 일을 꾸밀지 모른다고. 아니더냐?

-없진 않습니다.

-진이는 가문에 욕심도, 네게 적의 또한 없다고 본다. 하나 이 또한 내 생각일 뿐, 해서 직접 확인하라는 게다.

-그건 소자 생각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끌어안을 생각도 했었고. 한데 긁어 부스럼 같아서…….

-조용히 있는 애를 가문 일에 참여시키면 오히려 없던 욕심도 생긴다?

-그럴 거 같습니다만.

-네 말도 일리 있다. 다만 다른 쪽도 봤으면 하는구나.

-어떤?

-무윤이란 놈 말이다. 언젠가는 적인지 아군인지 정해야 할 게다. 한데 정말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놈이야. 해서 이러는 게다. 넌 어차피 그놈과 직접 상대해 봤자 서로 멀어지기만 할 게야. 그 다리를 진이로 풀어 보라는 게다.

-…….

한데 지난 두 달의 대화는 형식적인 선에서 그쳐 버렸다. 몇 번 맘을 먹었다가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그 탓에 오히려 그 오랜 세월 쌓인 벽이 거대한 것만 절감했을 뿐.

이번에도 묻는 입은 그렇게 열렸다.

“넌 알고 있었느냐?”

“예, 미리 말씀 못 드린 건…….”

“됐다. 무인의 경지는 남에게 떠들 일이 아니지.”

“죄송합니다.”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혼자 힘인 게냐?”

“……사운이가 도왔습니다.”

침주에선 아직 무윤을 담사운으로 안다. 일부 측근 빼고는.

“너 또한?”

“예.”

하후천기는 처음으로 솔직하게 물었다. 물론 두리뭉실하게.

“내가 어찌했으면 하느냐?”

하후진은 이런 질문이 언젠가 오리라 예상했었다. 그 답 또한 준비해 뒀고.

“다가가기 어려우시면, 그냥 지켜보시지요. 가문과 부딪칠 생각은 없는 놈이니까요.”

둘 중에 누가 바뀌지 않는 한 물과 기름인 사이. 그래서 내린 답이다.

하후천기는 말이 나온 김에 의중을 떠보기로 했다.

가문에선 무윤의 여곽 상단과 협력이 아니라 아예 사업을 가져오자는 의견이 점차 커 가고 있다. 가주가 일언지하에 잘라 지금은 수면 아래에 있긴 하지만.

“여곽 상단 사업이 계속 커지다 보니 가문에선 말들이 많다. 알고 있느냐?”

“분위기는 느꼈습니다.”

“만약 그게 공론이 된다면? 어찌 보느냐?”

“사운이를 다 알지 못하지만, 저라면 절대 그런 짓은 안 합니다.”

“놈이 뛰어난 건 인정해. 하나 아직 어리고 혼자나 마찬가지다. 우리 가문이 그 정도 감당 못 할까?”

이 질문엔 진중함을 담아 시선을 맞춰야 한다.

“가문의 사람으로 말씀드리죠. 사운이를 죽일 자신이 있다면 그러셔도 됩니다. 한데 그게 아니면 생각도, 시작도 안 하는 게 정답입니다.”

“가문이 작심하면 화경도 죽이지 못하란 법이 없다.”

“가문 사람도 죽겠지요. 아주 많이.”

“…….”

하후천기의 고민만 더 깊어져 갔다.

한편 두 부군사는 연사구에게 바짝 다가갔다. 이미 둘이 같이 듣기로 합의한 상태. 독고윤극의 시선이 빛을 더했다.

“혐의는 벗었으니 이제 자네 차례일세.”

“기록은 침주에 있습니다. 내용 먼저 알려 드리고 서류는 차후 보내 드리죠.”

“머릿속에 다 있는가?”

“다 기억합니다.”

“그럼 회담부터 끝내고 따로 보세나.”

그때 서문가의 군사 서문신유가 나섰다.

“허허! 그런 일이면 다 같이 들어야 하지 않겠소?”

사파 비천문의 군사 우원룡도 거들었다.

“우리도 자격이 있는 거 같소만.”

연사구가 선수를 쳤다. 이미 무윤과 말은 다 나눈 상태.

“뭐 그렇다면 여기서 다 말씀드리죠. 서류는 두 분께 넘겨드리고.”

“그게 좋겠구먼.”

잠시 후.

초롱초롱해진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쏠릴 즈음, 연사구의 고개가 넙죽 숙여졌다.

“제 결백을 이렇게 증명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비천문의 군사 우원룡이 나섰다.

“그 전에 궁금한 게 있네.”

“말씀하시지요.”

“은야문이 어떻게 여휘와 척고련과 일을 상세히 알지? 다른 기록엔 분명 적으로 기록돼 있는데.”

“적이 맞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 후에 척고련에서 중원의 주요 정보 단체들을 신강으로 다 불러들였는데 그때 작성된 것입니다.”

“불러들였다? 어째서?”

“척고련이 이겼으니 중원에 온갖 기괴한 소문이 돈 모양입니다. 해서 정보 단체들이 직접 와서 보고 사실대로 전하라고 했답니다.”

“그럼 그때 신강에서 보고 들은 내용이란 말인가?”

“약 석 달간 그곳에 있었던 기록과 이후 돌아와서 강호 상황을 정리한 것까지 두 가지입니다.”

무윤이 전음을 보내면 연사구는 들은 그대로 읊어 댔다. 근 반 시진 가까이 이어진 설명이 끝날 즈음.

“……해서 이미 여휘는 은거했고 그 무공 또한 전할 수 없어 사라졌답니다. 대신 초대 천마라 불리는 야율겸이 무륜이 남긴 무상여의공에 마공을 더해서 천마신공을 만든 거고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질문이 빗발쳤다. 다른 기록에 없던 내용이 상당수라 그럴 수밖에 없다.

“하면 여휘의 무공은 전해지지 않았다?”

“말씀드렸듯이 초인의 무공은 구결로 전할 수 없다 했습니다.”

“한데 아까 그 이름이 뭐라고 했지?”

“신기심의공(身起心意功)이라 했습니다.”

“몸으로 시작해 뜻을 이룬다. 그 뜻 같은데.”

“기록엔 이름만 있습니다.”

“마공 또한 선우진이란 마의와 야율겸이 처음 만든 것이고?”

“예, 당시 척고련엔 마공이 없었고 수십 년 후에 그 둘이 만든 걸 마공이라 처음 불렀답니다.”

좌중의 모든 무인이 허탈한 한숨과 함께 술렁거렸다.

“허! 그럼 신기심의공은 사라졌다는 말 아닌가!”

“그 이름을 혹 들은 적이 있는가?”

“아니, 금시초문일세.”

“허! 기록이 다 다르니 도대체 뭘 믿어야 할지, 에잉!”

그때 연사구의 마지막 말이 이어졌다.

“이제 마지막 내용만 말씀드리면 끝입니다.”

“그래, 뭔가?”

“당시 전쟁 중에 수많은 절대무공이 척고련으로 흘러 들어갔는데, 무륜이 당시 중원을 대표할 몇 분에게 전부 돌려줬답니다.”

“허허! 그걸 어찌 믿겠나? 그냥 하는 소리였겠지.”

그때 잠시 망설이던 연사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걸 확 질러 버려? 아우! 내 입이 방정이지. 왜 그런 말을 꺼내 가지고서는.’

무윤에게 내용을 듣다가 자신이 꺼낸 안이 있다. 하오문 입지를 올릴 생각에 문득 떠오른 것. 한데 그걸 떠들어 대는 순간.

‘난리가 난단 말이지. 하오문은 물론이고 나는 특히.’

무윤은 자신에게 결정을 맡겼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연사구의 눈에 더할 수 없는 열기가 서렸다.

‘시팔! 그래, 질러. 까짓것, 죽기밖에 더 하겠어!’

매번 오던 촉도 이번엔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위기(危機)란 두 글자도 위험과 기회가 합쳐진 말. 위기 속에 곧 기회가 있다.

결정을 내렸다.

“내용은 다 알려 드렸는데 제가 더할 게 있습니다.”

“뭔가?”

“당시 그 무공을 전해 받은 분의 후인이 몇 년 전 제게 찾아오셨습니다.”

“뭐라? 그래서?”

“저희 하오문의 은월청요검도 그간 내려오면서 내용이 훼손됐는데 그걸 아시고 제게 원본을 주셨습니다.”

“그, 그럼 자네가 초절정에 오른 게?”

“예, 다 그분이 전해 주신 덕이죠.”

좌중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 무렵, 뒤편에 있던 무윤은 씁쓰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 이 새끼, 정말 질렀어.’

멍해진 눈빛만 한동안 허공을 가득 헤맸다.

이 일의 여파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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