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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93화 (93/161)

93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반 시진 후, 악양 외곽 숲속.

나유양의 눈이 커다래졌다. 상상도 못 한 얘기엔 그럴 수밖에 없다.

“정말 내 도법과 비슷한 게 있단 말이오?”

“사문의 것은 아니나 전해진 도법이 있소. 한데 어제 그대 것과 유사한 점이 너무 많았소이다. 해서 묻는 거외다.”

나유양은 마른침이 꿀꺽 삼켜졌다.

‘혹시?’

염왕귀랑도를 배우기 전 그의 사부는 다른 절대마공과 함께 선택권을 줬었다.

“유양아, 이 도법은 이제껏 배운 마공과는 좀 다르단다.”

“어떤 게?”

“말했듯이 염왕귀랑도는 천마신공과 함께 천 년을 이어 온 절대의 마공이다. 그 오랜 세월 조금씩 개량, 발전됐지만 근간 심법의 초반부는 천 년 전 원형이 거의 전해져 왔느니라.”

“원형이라 하시면?”

“당시 만들어진 심법 상당수엔 도가진결이 섞여 있다. 마공의 부작용을 그리 해결한 게지. 해서 소주천까지는 선기(仙氣)와 마기가 동시에 올라올 터인데 마기만 단전에 쌓고 선기는 흘려 내면 되느니라.”

나유양은 의아했다.

천 년을 이어 오며 발전한 마공.

지금 교내엔 처음부터 마기만을 쌓아 절대지경에 이를 수 있는 무공이 더 많다. 과거 무공에 비해 진도도 훨씬 빠르고.

그동안 극마지경에 이른 절대자도 이쪽이 훨씬 많다.

“사부님은 왜 이걸 선택하셨는지?”

“허허! 꿈이 컸던 게지. 극마(화경)를 넘어 탈마지경(현경)에 가까이 간 분은 과거 이 방식이 훨씬 많았단다. 그땐 젊을 때라 자신이 있었지.”

“하면 전 어느 길을 가는 게?”

당시 사부의 경지는 극마 직전 단계였다.

“난 극마지경은 거의 포기 상태였다. 십여 년 넘게 진척이 없었으니까. 한데 최근에야 길을 찾았느니라.”

“어떤?”

“극마 또한 화경처럼 정기신(精氣神)의 일체가 그 화두지. 해서 최근 서고의 도가 심결을 살피다 그 길을 엿보게 됐단다.”

“심법의 기초가 그러니 극에 이르자면 도가의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꼭 그렇지는 않다. 자질의 차이가 더 크니까. 어쨌든 그러다 우연히 이 도법의 원류가 담긴 진결 일부를 찾았단다.”

“원류요?”

“이 도법은 처음부터 마공이 아니라 만하적운도법(晩霞積雲刀)이란 무공이더구나. 그 기반에 마공을 더한 것이지.”

“그게 서고에 있습니까?”

“아니다. 근간이 된 진결만 일부 있더구나. 만약 네가 이걸 선택한다면 향후 그 도법을 찾아보거라. 큰 도움이 될 게다.”

나유양은 주저 없이 염왕귀랑도를 선택했다. 자신 또한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싶은 무인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경지는 과거 사부처럼 극마의 전 단계. 이번 여정 중에도 도가의 진결을 여기저기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만하적운도법은 그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지 못했는데.

묻는 입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혹 그 도법 이름이?”

“만하적운도법이라오.”

“……확실합니까?”

“아시는 게로군요?”

“오래전 기록에서 듣긴 했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무윤은 여휘의 글을 보기 전후의 생각이 달라졌다.

이전엔 내 무공이 어찌 변했고 마공을 분석할 목적이 강했다면, 지금은 천마교 전체를 알아보고 판단을 내리기 위함이다.

그러자면 이 둘을 확실히 엮어야 할 때. 또 조작을 위해서도.

“구결을 거의 기억하오만 일부 맞춰 보시겠소?”

“……그래도 되겠습니까?”

“주해도 아닌 구결인데 괜찮소. 게다가 본문의 것도 아니고 제자 놈도 그냥 재미 삼아 본 것이라 그냥 두면 사라질 것인데.”

“그럼 부탁드리지요.”

“초식 하나 불러 주시겠소?”

“삼초식은 흑운만개라 하오만.”

“여기엔 운연천령이라 하는데 구결은 고횡서령∼∼.”

그렇게 시작된 대조는 몇 초식을 넘어 근 전반부 구결을 훑을 때까지 계속됐다.

지켜보던 야율혁의 눈도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천마서고에도 없는 귀한 자료를 가진 자, 거기에 그걸 스스럼없이 풀어 내는 이유까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이유가 있을 텐데?’

잠시 후, 나유양은 격한 숨을 감추지 못했다.

“뿌리가 같은 게 틀림없소이다.”

무윤은 여기서 끝낼 게 아니다. 이제 천마교를 알아보고 손댈 마음을 먹은 이상 확실히 옭아매야 한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전해진 무공도 더 있소만.”

두 천마교도의 눈이 의혹과 불신으로 가득 찼다.

‘어떻게 그걸? 그리고 왜 알려 주지?’

우연히 가지고 있던 도법이 일치해서 꺼낸 말이 아니다.

의도가 있음을 버젓이 드러낸다.

나유양의 눈이 깊어졌다.

“하실 말씀이 있는 듯하오만.”

개방 섭고량에게 했던 말 그대로 풀어 낼 때.

“난 일인전승으로 천 년을 내려온 도문의 계승자요.”

“천 년을? 하면?”

“천 년 전 조사께서 여휘, 무륜과 각별하셨소. 해서 무륜께서 만드신 도가 무공을 전해 받으신 거고.”

“그, 그게 정말이오?”

“또한 무륜 그분이 남긴 회고록 사본도 있소. 아주 상세한 기록이지.”

야율혁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해오가 남긴 기록이 바로 떠올랐다.

‘초기 절대무공 대부분을 만드신 분. 거기에 여휘 그분의 무공까지 같이.’

가슴이 격랑으로 요동쳤다.

야율혁은 터질 것 같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 일의 여파는 교는 물론.

‘소교주 경쟁에 엄청난 변수가 될지 모른다.’

이제 돌아가면 일 년 내에 벌어질 소교주 선정. 이복형 야율담과 생사를 건 승부는 불가피한 상황.

‘진정하자. 사실 확인이 먼저.’

해오의 기록 중 무윤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다. 또 교에 있는 기록에도 지워 버린 그것.

“너무 충격적인 말씀이라 쉬이 믿기지 않는군요.”

“뭐든 물어보게.”

“죄송하지만 마후에 대해 말씀 안 드린 게 있습니다.”

“뭔가?”

“해오께서 마후께 뭘 드렸는지 적어 놓으셨습니다.”

“무륜 그분의 기록엔 없네. 그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하나 사조님께서 언급하신 건 있네.”

“어떤?”

“빙정과 천잠사, 천설청옥이네.”

야율혁의 눈이 또 커다래졌다. 기록과 일치하는 건 물론 더 아는 게 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혹 만든 게 뭔지도 아십니까?”

“아네. 하나 말할 수 없네. 만든 분 뜻이 그러하니.”

“우리 교엔 소중한 겁니다.”

무윤은 단호히 고개 저었다.

“천마교가 관심 가질 게 아니네. 무기도 아니고 인연으로 전한 선물일 뿐, 다른 의미는 없는 것이네. 또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

이후 천 년 전 사실에 대한 수많은 문답이 오고 간 후, 두 천마교도는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우선 야율혁이 확신한 게 있다.

‘무륜 님 기록이 맞다. 아니고서는 이 모든 게 설명이 안 돼.’

해오의 회고록, 거기에 과거 천 년 전 다른 기록과도 거의 일치한다.

게다가 차이 난 부분은 무륜의 기록이 더 정확하고 세밀했다. 거기에 맞춰 모든 기록을 종합하면 앞뒤도 맞아떨어지고.

의심은 접어도 된다. 이제 궁금한 것.

‘왜 이런 얘길 해 주는 걸까? 무륜께서 만든 무공도 있다고 했고. 또 다른 건 뭐가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문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무윤의 시선이 두 사람을 번갈았다.

이제 본격적인 천마교 계획을 시작할 때.

“왜 이런 얘기를 꺼냈는지 궁금하시겠지요?”

“듣고 싶소이다.”

“난 도가의 연을 이을 게 있어 잠시 나왔을 뿐, 곧 세상과 연을 끊을 생각이라오.”

“아주 떠나신단 말입니까?”

“그렇소. 해서 제자 놈에게 짐을 넘겨야 하는데 일이 엄중하다 보니 그대들과 같이 풀어 갔으면 해서 한 말이오.”

“사안이 이런데 제자분 혼자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좀 더 계시는 것이.”

“이런! 내 말을 오해하셨구려.”

“그게 무슨?”

이럴 땐 티 나게 한숨도 쉬어야 한다.

“허! 내 이런 말은 뭐하지만, 제자가 아니라 원수 같은 놈이오. 기껏 키워 놨더니 세상일은 나 몰라라 하고 제 하고픈 것만 헤집고 다니는 놈이지.”

“그럼?”

“그대들과 옭아매려는 게요. 그래도 생각은 있는 놈이라 엮이면 풀기는 하거든. 그 이유라오.”

“이러면 대놓고 묻겠소. 그대 제자 역량이 되겠소이까?”

“되는 만큼만 갖다 쓰시오. 아닌 건 어쩌겠소. 다만 전하지 않은 건 없소이다. 그건 걱정 마시오.”

“그럼 무공도 전부?”

“머리는 좋다오. 잔머리가 섞여서 그렇지. 아! 미리 말하지만, 골치는 좀 아플 게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라.”

잠시 고민하던 야율혁은 눈을 빛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자분과 어찌하면 될지?”

“짐작하겠지만 조작한 자들은 거대한 세력일 게요. 오래전부터 그대들 교는 물론 정파에도 사람을 심었을 것이고.”

“이젠 그보다 더 있다고 봐야겠지요.”

“나나 제자는 세상에 관여하고 싶지 않소. 하나 강호를 뿌리째 흔들려는 놈들을 좌시할 수도 없지. 해서 이 일에 한해선 같이 움직였으면 하는데.”

“구체적인 방안이라도?”

“조작이란 진실을 모를 때 생기는 법. 내겐 진실이 담긴 기록이 있으니 이걸 주요 강호 문파에 알릴까 하오. 하면 속지 않을 것이고 놈들 계획은 큰 차질을 빚겠지.”

“그럼 교에 이걸 전하자는 말씀입니까?”

“나야 그대 교를 모르니 방법은 그대들이 찾아야겠지. 필요한 건 제자 놈이 도와드릴 게요.”

야율혁은 물어야 할 게 남았다.

“이제 도사께서 가진 기록은 믿습니다. 한데 아까 무륜께서 만든 무공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대들 교에선 사라질 걸로 보셔서, 도가 기반 무공은 조사께 전하셨다 하셨네.”

“거, 거의 다 말씀입니까?”

“거의가 아니라 전부라 하셨네. 확인이 필요하면 언제든 물어보시게.”

그때 눈이 번득인 나유양의 전음이 야율혁을 향했다.

그 또한 소교주 경쟁에서 야율혁을 지지한다. 하지만 그 세가 현격히 부족한 상황.

-이공자, 교의 절대마공 중 이 할에 아직도 그분께 들어 있네. 초고수 중에 그걸 익힌 자는 근 삼 할이 넘고. 받아 올 수 있다면 어찌 되는지 알겠지?

-그만한 패가 없겠죠. 필요에 따라 중도 세력은 물론 저쪽 편도 끌어들일 수 있을 테니까.

-어떻게든 얻어야 하네. 무조건!

-……줄까요?

-두드려야 열리는 법이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

잠시 생각하던 야율혁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무륜 님 기록과 상관없이 먼저 얘길 꺼냈어.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다.’

결심을 굳힌 이상 털어놓아야 한다. 이런 도인을 설득하자면 정공법이 낫다.

“혹 제게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디 쓰려는 겐가? 순수한 도가 무공인데.”

“소교주 경쟁에서 세가 불리합니다. 목숨을 건 싸움이지요.”

“도움이 되는가?”

“아주 큽니다.”

야율혁은 교내 상황에 대해 개략적으로 알렸다. 소교주 경쟁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히.

무윤의 눈이 깊어졌다.

‘본론을 꺼낼 때.’

이미 단주 각운에게서 대략 듣고 세운 계획이 있다. 이럴 땐 한참을 심각하게 고심하는 티를 빼놓으면 안 된다.

“허! 조사님께선 어떤 일이 있어도 그대 교에는 넘기지 말라 하셨네. 악용될까 봐 그리 당부하셨지.”

“바, 방법이 없겠습니까?”

고심 어린 표정 그대로 진중히 말문을 열었다.

“그럼 이리하면 어떻겠나.”

“어떻게?”

“무공을 넘기진 못하지만, 같이 연구하고 일부 전하는 거야 뜻을 거역하는 게 아니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지만 무륜 그분의 무공은 구결과 주해만으론 그 진의에 다다르기 어렵네. 당시 개개인에 맞춘 구결들이 많으니까.”

“그건 압니다만”

“내 제자 놈도 그 오의를 다 깨쳤네. 해서 교에 데리고 가서 직접 가르치도록 하게. 그게 훨씬 자네에게 도움도 될 것이고.”

야율혁의 눈이 커다래졌다. 도인이 마인을 가르치다니. 황당함 그 자체인 말이다.

“도인이데 그래도 될는지?”

“그놈은 도인이 될 싹수가 글러 먹었어. 전해만 줬을 뿐 계승시키지 않았네. 물론 알려지는 건 그러니 역용하면 될 것이고.”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대신 조작에 대해선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하시게. 그럼 놈은 내가 설득하지.”

“그러겠습니다. 약속드리죠.”

이후 세밀한 대화가 더 오고 간 후.

무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가 보겠소이다.”

“더는 안 오시는 겁니까?”

“우린 여기까지가 좋소이다.”

나유양은 정중히 예를 갖췄다.

“원하는 도를 꼭 이루시기 바라오이다.”

“고맙소. 잘들 돌아가시구려.”

세 번째 계획도 시작됐다.

거기에 천마교에 갈 준비까지.

이제 진실의 조작, 그 씨앗은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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