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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83화 (83/161)

83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당서하는 놀란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싸우겠다고? 피하는 게 아니라?’

무윤이 보낸 전음은 황당함 그 자체다. 상대가 이미 죽일 마음을 먹은 건 자신도 느껴진다. 한데 초고수가 셋임을 그 스스로 알렸으면서 그런 결정이라니.

반문이 절로 나왔다.

-천마교도야 부상이라 별 도움도 안 돼. 그럼 빠지면서 도망치는 게 최선이잖아?

무윤은 두 여인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기도 하다.

-초고수가 셋이라 흩어지면 두 분이 더 위험합니다. 대신 공격하면 셋은 저한테 몰릴 수밖에 없어요. 그게 최선의 방어라고 봅니다.

-좋아, 그렇다고 쳐. 근데 네가 파악한 것도 그렇고, 나유양과 야율혁을 저렇게 만든 자들이야.

-감춘 게 더 있습니다.

당서하의 매몰찬 전음이 휘몰아쳤다.

-야! 나도 짐작은 해. 그래도 저 정도 상대로 그러려면 우리 단주님도 쉽지 않다고!

-단주님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하여간 안 돼! 도망치는 걸로 해.

무윤의 시선이 두 여인을 번갈았다. 이럴 땐 진중함을 담아 시선을 맞춰야 한다.

-정말 감춘 게 있습니다.

-아우! 이게 정말!

-아시잖아요. 내 몸 무지 아끼는 거. 저 죽기 싫습니다.

-……너 정말 괜찮겠어?

-믿어 보세요.

당서하는 그래도 확인차 다시 물을 게 있다.

-저자들이 정말 조작했을까?

-전 그렇다고 봅니다. 아니, 확신합니다.

-휴! 알았다.

이제 전략을 전해야 할 때.

-두 분은 제 뒤에 있다가…….

-이게 정말! 우리가 애야? 너 할 거 알았으니까 나머진 알아서 해!

-그래도 저 셋은…….

-다 안다고! 우린 뭐 목숨 안 아까운 줄 알아?

-그래도 조심…….

-야! 자꾸 그러면 먼저 나선다!

-……알겠습니다.

말려서 될 여인이 아니다. 또 수많은 실전 경험이 있는 무인. 더 걱정하면 무시가 된다.

‘믿자. 멸마단 무인인데.’

무윤의 전음이 끝나자 진서연의 시선이 당서하를 향했다.

몇 번이나 생각을 곱씹어도 판단이 안 선다.

-언니, 정말 이게 최선일까요?

-휴! 나도 솔직히 헷갈려. 근데 알잖아? 저 인간이 언제 허튼소리 하던?

-……믿어야겠네요.

당서하는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묵직한 숨을 내쉬었다. 흉중에 품은 결심을 그대로 흘렸다. 그래도 눈은 찡긋거렸다.

-뭔가 있으니 저러는 거겠지. 대신 넌 내 뒤에 있어. 알았지?

진서연은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를 입 가득 담아냈다. 언니의 걱정을 덜어 주려면 그래야 한다.

-제 걱정은 마세요. 저 사실 많이 늘었는데.

-그래? 너 얼굴도 그렇고 진짜 무슨 기연이라도 얻은 거야?

-얻은 게 있긴 해요. 인연이 준 귀한 선물이.

진서연은 무윤을 바라보는 눈 가득 불꽃을 담았다.

‘믿을게요. 그리고 도울 수 있다면 꼭!’

무윤에 대한 신뢰, 그리고 바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그 둘이 만든 불타오르는 무인의 정광이다.

무윤의 시선이 나유양을 향했다. 이미 여덟 또한 준비한 상태라 감출 이유가 없다.

“괜찮겠소?”

“마인에게 그런 말은 실례라오.”

“……!”

사사삭!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곱이 무윤 일행을 둘러쌌다. 수장 와야타의 신형은 야율혁와 나유양을 향했다.

먼저 숫자를 줄일 전략.

무윤의 눈이 깊어졌다.

생사를 건 싸움에 여유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고수라도.

더구나 감추고 상대할 이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선공과 기선 제압을 양보한 이유. 각개격파야 쉽지만 시간이 문제다.

‘넷은 오래 못 버텨. 속전속결로 끝낸다.’

그러자면 한곳에 모아야 한다. 그리고 꺼내야 한다.

이제껏 실전에선 전력으로 꺼내 본 적 없는 미증유의 힘. 그 무엇도 부숴 버릴 기의 응집체.

그것으로 처절하게 부숴야 한다.

그 결정이 만든 구도다. 다행히 상대도 의도대로 따라와 줬고.

일곱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내기에 울리는 칼, 거기에 더한 진득한 살기가 대기를 경직시켰다.

도랑 따라 작게 흐르는 물소리, 살랑이며 불어오는 산바람 소리도 그 속에 파묻혀 버릴 즈음.

일 보의 진각이 대지를 쓸어 내자 바람 탄 신형이 내달렸다.

사라락!

두 팔이 허공을 날았다.

은은한 바람이 살랑이듯 유유히 뻗은 손, 한데 일곱에 다가가던 순간 미풍 같던 바람 소리가 돌변했다. 그 바람 탄 소맷자락도 허공을 뒤흔들었다.

휘리릭! 화락!

동시에 무수한 검영이 공간을 죄어 왔다. 폭풍 같은 검세, 격랑 가득 담은 도세의 흩날림이 새까맣게 어둠에 녹아들었다.

슈우욱! 쇄애액!

그때 와야타의 동생 와호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급했어. 아니면 자신감이 넘치거나.’

피해도 모자랄 판에 칼날의 폭풍 속으로 달려드는 자. 그 격랑 속 기운은 설사 웬만한 강기를 만나더라도 겨룰 만한 기의 집합체다.

싸움 전 형 와야타가 보낸 전음이 있다.

-나도 무시 못 할 놈이다. 내가 올 때까지 막기만 해라. 절대 흩어지지 말고 방어만 하란 말이다. 알겠느냐?

-예.

낭인들이 섞인 일곱이라 따로 진을 수련한 건 없다. 하지만 합격진은 무인의 기본. 다수가 고수 하나를 상대할 때, 특히 수비 시엔 철칙이 있다. 와야타가 강조한 그것.

‘흩어지면 당한다.’

반대로 고수는 진의 허점을 찾고 그 틈을 노려 대형을 흩트린다. 그 후 각개격파가 최선이니까.

일대다의 싸움은 그 밀집과 와해에서 승부가 갈린다.

한데 원거리의 유리함을 포기하고 먼저 기의 폭풍으로 달려온다.

와호야는 나머지 여섯에게 전음을 보냈다.

-자리만 지켜라. 절대 나서지 말고.

-예!

벼린 날 겹겹이 쌓인 검기의 파도를 유려한 손날이 헤쳐 갔다.

순간 일곱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찾아들었다.

대형의 중심으로 날아드는 덴 그럴 수밖에 없다. 이자만 처리하면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다.

샤아악!

무윤의 눈이 깊어졌다.

경계 대상인 와야타가 나유양과 야율혁에게 간 지금.

‘한 번에 깨야 한다.’

합격진의 최대 약점은 그 중심이 무너질 때. 그 혼란의 시기에 결정적 기회가 온다. 중심으로 들어간 이유가 그것이다. 완벽하다 여긴 진을 일거에 무너뜨리기 위해.

이번 목표는 수를 줄이는 것, 절정급 무인이 목표다. 아무리 화경의 강기라도 합격진을 이룬 초절정 상인 자들까지 일격에 쓰러트릴 순 없다.

날카롭게 벼려진 하늘빛 안광이 모인 칼날 일곱을 훑었다.

휘이익!

날린 신형 그대로 폭발적인 기운이 주변에 세찬 바람을 불렀다.

우우웅!

빠름만 담았던 권이 순식간에 시퍼런 빛으로 휩싸였다.

일곱의 얼굴이 굳어졌다.

‘강기!’

역시 예상대로 강자다. 하지만 강기 또한 예상의 범주에 있던 것.

와호야의 눈이 번득였다.

‘간격만 벌리면 돼.’

강기에 정면으로 부딪칠 바보는 없다. 대형을 유지한 채 조금씩 물러나면서 검기로 충격을 줄이면 된다.

부족하면 자신과 사제도 강기를 뽑아내면 된다. 응집은 약하지만 그것으로 일부 상쇄는 되니까.

지금은 버티기만 하면 된다.

‘형님이 곧 온다. 놈도 강기를 계속 뽑을 순 없어.’

한데 무게중심을 뒤로 옮기고 내력을 집중하던 그 순간, 일곱의 눈이 부릅떠졌다.

경악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헉!”

“저, 저건!”

“가, 강기가!”

손끝에 일렁인 것도 잠시, 시퍼렇게 맺혀 있던 권강이 둘둘 말리더니 손을 벗어나려는 듯 용틀임 쳤다.

우우웅! 가가강!

거칠게 압도하는 힘, 그 안에서 용틀임 치던 응축된 기의 파동. 밖으로 뿜어질 듯 치솟는 강대한 기운은 그 위세를 감추지 않았다.

와호야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미 예상했던 강기, 한데 그 외엔 예상을 초월해 버렸다.

‘저, 저런 크기라니!’

간신히 뽑아내는 자신의 강기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눈가를 아른거리는 권강의 이지러짐은 근 한 장에 가깝다.

크기만이 아니다. 시퍼런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빛깔, 벼린 칼 사이사이를 해일처럼 휩쓰는 기의 파동.

그 기운이 일곱 칼날이 모인 곳으로 몸부림친다.

와호야는 꽉 깨문 어금니에 핏물이 고일 만큼 두려움이 가슴에 물결쳤다.

뇌리를 가득 채운 두 글자.

‘화경!’

그게 아니고서야 저런 강기를 드러낼 수 없다.

생각과 동시에 본능의 두려움이 입을 열었다.

“퇴진! 어서!”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말이 끝나기도 전, 시퍼런 기의 물결이 칼날의 폭풍 속을 뚫어 갔다. 처음 보인 미려한 강기에 마음을 놓은 탓이다.

슈우욱! 샤야악!

엄청난 경파로 대기를 울린 권강이 칼이 모인 중심에 부딪치는 순간, 귀청을 찢는 폭음과 함께 권강에 부서진 기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쾅! 콰쾅! 쿠쿵!

뇌전처럼 쏘아진 파편이 무복 자락을 뚫고 피육까지 탐했다.

“크아악!”

“커억!”

“쿠욱!”

사방으로 겹겹이 쌓인 바람은 폭풍이 됐다. 응축된 기운이 한 번에 밀려 나자 그 울림은 텅 빈 대기를 들썩여 절벽까지 울림을 전했다.

휘이익! 화라락! 휘릭!

순간 접전을 벌이던 다른 셋 또한 충격에 놀라 간격을 벌렸다.

파탁! 파팟!

와야타의 놀란 두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보진 못했지만 소리가 전한 충격은 실체를 가늠케 한다.

‘설마 화경?’

이미 바닥에 널브러진 낭인 셋은 더 볼 것도 없다. 울혈에 흘러내린 피, 기괴하게 꺾인 팔다리, 다 부서진 늑골과 피거품 섞인 기침은 재기 불능을 알린다.

다행인 건 동생 와호야와 사제 파루타가 낭인 셋을 폭풍 중심에 떠밀고 물러났기에 다른 이들은 무사하다는 것.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함께 있었어야 했는데.’

설사 화경이라 해도 자신이 있었다면 저리되지 않았다. 단 한 수에 저 꼴인 건 강기의 파괴력보다는 대처가 미숙한 탓.

상대를 제대로 몰랐기에 벌어진 일.

그때 두 사제에게 향하는 놈이 눈에 들어왔다. 인지와 동시에 발끝이 대지를 박찼다.

파팟!

꿈틀거리는 눈동자가 분노를 흘려 냈다.

‘승부는 이제부터다.’

어차피 승부는 초고수의 싸움에서 갈린다.

급히 사제 파루타에게 전음을 보냈다. 나유양과 야율혁은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

-천마교도를 맡아라. 빨리 끝내야 한다.

-예.

사제 파루타가 둘을 처리하고 돌아올 때까지 저놈을 잡고 있으면 승산이 있다. 이 셋이면 화경도 못 잡으란 법이 없다.

두 여인은 낭인들이 충분히 상대한다.

한편 야율혁은 구사일생이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위험했어.’

격한 숨을 몰아쉬고는 나유양을 살폈다. 한층 더 심해진 내, 외상이 확연하지만 눈빛은 아직 변함없다.

“괜찮으십니까?”

“쿨럭! 버틸 만하네.”

긴박한 와중에도 야율혁의 시선이 저절로 낯선 이를 향했다.

“저자 화경 같은데 혹 짐작되는 이라도?”

“없네. 무공도 처음 보고. 알려지지 않은 자 같네.”

“그 친구 사부면 어디 속한 자 같진 않은데.”

그때 자신들에게 쇄도하는 파루타가 눈 가득 들어왔다.

“저자부터 해결하세.”

“……!”

한편 무윤 후미에 있던 두 여인의 놀람도 극에 달했다. 한 자 가까이 되는 권강을 못 볼 수가 없다.

“저 새끼 도대체 뭐냐? 나 참!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오네.”

진서연의 찢어질 듯 커진 두 눈은 멍한 시선을 그대로 담았다.

“……화경인 거죠?”

“우리 둘 다 눈이 삐지 않았다면.”

“……!”

진서연의 놀란 가슴은 아직도 두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도대체?’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게 많아지는 이. 첫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매번 예상이란 범주를 벗어난 일뿐이다.

그럼에도 상상 못 했다. 한때 검후를 꿈꾸며 그 마지막에 이루길 바랐던 그 경지. 거기까지 갔을 줄이야.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갔다.

그러다 문득 한 곳에서 영상이 멈춰 버렸다.

‘바라타나티암심법!’

이젠 그녀 자신이 안다.

‘사문의 어떤 심법도 여기에 비할 수 있을까?’

그런 가치가 담긴 걸 인연이라며 선뜻 건네준 이.

순간 저미는 가슴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오만 가지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도 이것만큼은 어떤 의심도 없다.

뭉클해진 마음은 안다.

유선과 소려를 아끼는 마음에 그런 것임을. 둘에게 진정을 보인 자신에 대한 감사로 준 것임을.

순간 머리를 휘휘 내저었다. 눈앞의 현실을 자각했다.

‘이럴 때가 아니잖아.’

자신들을 향한 낭인부터 해결해야 한다.

당서하의 눈가에 더할 수 없는 열기가 서렸다.

“이제 우리 차례지?”

“끌 거 있나요. 빨리 끝내고 도우러 가죠.”

당서하는 문득 장난기가 올라왔다. 가장 급해 보이는 쪽으로 턱짓했다.

“마인 쪽?”

“미쳤어요!”

“……!”

전장은 세 곳으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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