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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77화 (77/161)

77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무윤은 각운에게 다가갔다.

“궁금한 게 많아서 이거저거 여쭈러 왔습니다.”

“그러게. 선배가 도울 일이 그런 거지.”

멸마단을 살피고 의아했던 것부터 꺼냈다.

“멸마단 초고수가 많이 왔더군요. 혹 알려 주실 게 있으신지?”

“악양 싸움이나 이 일과는 전혀 상관없네. 신경 안 써도 될 게야.”

“그렇습니까. 한데 척마단이 누굴 찾으러 다니던데요?”

“……만난 게로군.”

“우연히 그리됐습니다.”

“혹 누굴 찾은 거 같던가?”

“꽁무니 쫓아가는 것까지는 봤습니다.”

순간 각운의 눈이 빛을 더했다. 말에 담긴 뜻이 있다.

“허! 꽁무니라? 그럼 저들도 봤단 말이군.”

“표국 일행에 숨어 있더군요. 천마교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한참 물었습니다.”

“물었다? 허허! 자네가 먼저 찾아간 게로군. 그래, 만나 보니 뭐라던가?”

“뭐 나름 성의 있게 답변해 주더군요. 도움이 됐습니다.”

“……자네가 누군지 밝혔는가?”

“대사님처럼 절 알아본 것도 아닌데 그럴 이유가 없죠. 그냥 좋게 헤어졌습니다.”

각운의 너털웃음이 나직이 산야에 흘렀다.

“허허! 갈수록 자네 실력보다 그 넉살이 더 무서워지네그려.”

“대사님만 하겠습니까. 절 알아보시고도 표정 하나 안 변하시던데.”

“이 사람아, 그러느라 얼굴에 힘 꽉 주고 있지 않나. 아직도 속은 엄청 쿵쾅거린다네.”

무윤의 입가에 싱그러운 미소가 흘렀다. 아직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감이 알려 줬다.

‘말이 잘 통해.’

의구심을 가질 만한 얘기에다 자신도 궁금할 텐데, 부드러운 화두 속엔 고승의 속 깊은 연륜만 가득 보인다.

과거 친했던 영흥사의 반각을 떠올리게 하는 자.

가볍게 끝날 인연 같지 않다.

얼마 후, 길 가던 두 사람의 얘기는 점점 더 깊어져 갔다.

정파에서 각운만큼 마인을 잘 아는 이도 없다.

두 마인 얘기에서 출발한 대화는 전반적인 강호의 마인 상황에까지 폭넓게 이어졌다. 물론 대부분 무윤의 물음에 각운이 답하는 방식으로.

각운은 꼭 감출 걸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상황을 알렸다. 무윤에게서 느낀 기운은 물론 보인 행동에 신뢰가 가서다.

마인 얘기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무윤은 잠시 갈등이 일었다.

‘공야의숙 일도 물어볼까?’

공야성과 주손학에 더해 최근 같이한 곽호산 때문이다. 언제까지 숨어 살게 할 순 없으니.

짧은 시간이지만 무윤 또한 각운의 대한 신뢰는 확실해졌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오대세가가 아니면 풀 수 없지. 괜히 일만 더 꼬인다.’

무윤은 화제를 돌렸다. 다음 궁금한 것으로.

“최근 천마 소문 말인데 어찌 보시는지?”

“워낙 큰일이라 관심 있게 보고 있네만. 뭐 아는 거라도 있는가?”

“제 스승님부터 말씀드려야겠네요.”

무윤은 연대광에게 했던 말 그대로 전했다. 또한 그 속에 도가 쪽의 훌륭한 스승이시고 그 내력을 전수받았다는 말도 은근슬쩍 넣었다. 지금의 경지를 납득시키기엔 그만한 핑계가 없다.

잠시 생각하던 각운의 말문이 열렸다.

“향후 이걸 이용할 자들이 나올 건 누구나 예상하지. 나 또한 그래서 주시하는 거고. 한데 근원적인 조작에 배포라! 허, 거기까진 생각 못 해 봤네.”

멸마단주라면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듣는 자. 그런 그도 이럴 정도면.

‘의심하는 자가 거의 없다는 거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 지금 사람들이야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잣대가 없는데.

이러면 더 알아볼 게 없다. 자신 또한 의심뿐인데.

“저도 추측뿐이라 혹시 해서 여쭤봤습니다.”

“어쨌든 자료가 그렇다니 신중히 살펴보겠네.”

“참! 다른 것도 궁금해서 그런데 혹 개방에 여쭐 만한 분이 있을까요?”

“마침 잘 아는 이가 여기 와 있네. 섭고량이라고 순의단 부단주지. 필요하면 소개해 줌세.”

연대광이 말했던 그자다. 슬쩍 더 캐야 한다.

“아시겠지만 어디다 함부로 떠들 얘기가 아니라서. 믿을 만한 분인지?”

“내가 보증하지. 이러면 되겠나?”

다른 어떤 말도 필요 없다.

“충분합니다.”

그때 각운이 화두를 돌렸다.

“혹 형산 일에 나서려는 겐가? 가서는 떠날 줄 알았는데 있겠다고 해서 묻는 것이네.”

무윤은 에둘러 알리기로 했다. 그래야 나설 상황이 됐을 때 우군으로 만들 수 있다.

“스승님이 남기신 게 있습니다. 전할 곳을 찾고 있는데, 있는 곳이 여기다 보니 형산 먼저 살펴보려고요.”

“그럼 도경이겠군, 허허! 그런 일이면 고민할 게 없지 않나. 전하면 좋은 일인 것을.”

“귀한 건 물론이고 존재의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가벼이 전할 수가 없는 것들이라.”

“그런가? 그러면 아끼고 가꿀 자들을 잘 찾아야지. 무슨 말인지 알겠네.”

무윤은 문득 여휘가 남긴 불경이 떠올랐다. 언제고 불가에 전하려던 것인데, 그중 몇 개는 지금 전할 가치가 있다.

‘인연을 다지는 덴 그만한 선물이 없지.’

생각과 동시에 입가에 환한 미소가 담뿍 담겼다. 좋은 이에게 선물을 줄 때는 그럴 수밖에 없다.

“참! 그런 불경도 몇 개 있습니다만.”

“오! 혹 전해 줄 만한 게 있는가?”

“들어 보시겠습니까?”

“그러세. 가는 길이 짧진 않다네.”

무윤은 기억 속의 불경을 꺼내 읊기 시작했다. 물론 이럴 땐 익숙한 범어(산스크리트어)가 낫다.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호로호로 전나라 마등기 사바하, 옴 바아라 바훔, 나모 사만다 못다남 아바라디 삼미 아아나 삼미 사만다 놀아디바라아리디 미슈디 달마다도 미슈다니 사바하∼∼!”

하나둘 이어지던 낭독이 어느새 반 시진이 다 되어 갈 무렵.

뒤따라오던 연사구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크크! 거참, 언제 들어도 좋단 말이지.”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가던 다섯 도인의 놀람도 극에 달했다.

‘어찌!’

고대의 언어인 범어(梵語)를 오래 읊어 대서만이 아니다. 낭랑한 음성에 담긴 은은한 떨림은 어느새 가슴 저 안쪽의 불안을 씻어 내리고 온몸 가득 따스함까지 불러온다.

거기에 더해 지금껏 잊어버렸던 싱그러운 미소까지.

선청은 연사구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불문의 제자 같은데, 혹 어디?”

“아닌데요. 어디 문파에 속한 데 없어요.”

“……그게 정말인가? 내 불문 제자 여럿을 아는데 이만한 울림을 주는 독경은 들어 본 적이 없네만.”

“도경을 읊을 때도 그래요. 물론 그땐 불경하고 색이 좀 다르지만.”

“도경도 많이 아는가?”

“전 잘 모르지만 유명한 도인들은 저놈 도사인 줄 알아요. 나중에 얘기해 보세요. 아! 이건 말씀드려야겠구나. 괜한 논쟁은 하지 마세요.”

“그건 왜?”

“이긴 적도 없지만 지는 것도 못 봤어요. 승려건 도인이건.”

도(道)가 깊은 이들의 논쟁에 승자란 거의 없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면 서로를 인정할 뿐. 하지만 상대의 깊이를 헤아리면 마음으로 승복하는 법인데.

“설마?”

“내가 이래서 마지막에 꼭 이 말을 해요. 저놈이 보타문주님하고도 한 시진 동안 설전을 벌인 놈이에요. 이제 됐죠?”

선청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아까 사부 놈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실력을 못 봤다면 모를까, 이젠 거의 확신이라 여겨졌다.

“자네 사부란 분, 혹시?”

“그건 알아서 생각하시고. 참! 각운 대사님은 독경 소리가 어떻게 들리시는지 궁금하네요.”

“……!”

대놓고 찔러 대던 자가 말을 돌렸다. 시인이나 마찬가지.

다섯 무인의 눈에 서린 호기심이 점점 더 빛을 발했다.

‘어떤 자일까?’

거기에 선청은 또 다른 의구심이 더해졌다. 출발하기 전 무윤은 사제 선운에게 있었던 일을 알려 주고는 서신을 건넸다.

의아함에 바로 물었다.

-이걸 왜 날 주는가? 자네라면 건허 사숙에게 조용히 건넬 수 있을 텐데.

-선운 그분이 사부가 아닌 사숙에게 전해 달란 뜻이 짐작되지 않습니까? 지금 그대들 뜻과 같다고 여겨지는데.

-그럴 거 같네만.

-만약 그걸 다 있는 곳에서 알리면 그대들에게 힘이 될 겁니다. 물론 갈등은 더 첨예해질 수도 있고. 선택은 그쪽이 하세요. 다만 선운 그분의 뜻을 잘 헤아려 보시길 바랍니다.

-……!

또 다른 고민을 던져 주고는 은은한 미소를 짓던 자.

받을 당시엔 그 여파가 두려워 꺼내지 않을 생각이 더 컸다. 한데 심연의 울림을 주는 저 독경 소리는 서신을 건넨 의도가 삿되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또한 죽음 앞에 섰던 사제 선운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가는 걸음 내내 깊어지는 고민은 양날의 검이 된 품속의 서신을 자꾸 어루만지게 했다.

한편 각운의 은은한 미소 또한 그 색을 더해 갔다. 독경의 낭랑함 속에 담긴 울림의 진체를 모를 수가 없다.

‘허허! 마음이 그대로 담겼어. 그러니 마인들도 움직인 게지.’

무윤에 대한 궁금함은 아직 많이 남았다. 하지만 확실해진 것도 적지 않다.

‘가는 길이 어딘지는 몰라도 그 뜻을 물을 필요 없는 자. 허허! 가끔가다 동행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각운은 다른 상념을 잊어버렸다. 지금은 그저 은은히 흐르는 독경에 마음을 싣고 흘러가면 족했다.

굽이굽이 산길 오르내리는 발걸음 모두가 한결 가벼워졌다.

가는 길은 다르지만 만나고 헤어짐에 반겨지는 인연은 그저 바람 따르는 구름처럼 흘러가기만 해도 즐겁다.

두 시진 후, 악양 외곽의 산속.

대주 정원을 따라온 형산의 장문인과 장로들이 시야에 들어올 즈음, 단주 각운은 멸마단 일행을 두고 홀로 걸어 나왔다.

터덕!

민감한 내용이라 아직 멸마단 대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숲 안쪽에 다섯 제자와 무윤 일행이 있는 것 또한, 대주 정원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각운의 예를 갖춘 합장이 일행을 맞았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소이다.”

형산파 장문인 건수의 복잡한 표정이 그 심사를 알렸다.

“제가 불민하여 단주께 괜한 수고를 끼쳤습니다. 송구하오이다.”

“아닙니다. 귀한 걸음 하게 해서 저 또한 그렇지요.”

“제자들은 어디에?”

“숲 안에 있습니다. 소승이 먼저 드릴 말씀이 있어 앞걸음했습니다.”

장문인 건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각운이 제자들 상태를 못 알아봤을 리 없으니.

“말씀해 주시지요.”

“먼저 사정부터 알리지요. 제자분들이 남하하다 일이 있었습니다.”

“……?”

각운은 무윤과 연사구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실대로 알렸다.

“일이 그리돼서 소승이 저들을 데리고 오게 됐지요.”

“한데 제자들이 공격한 게 맞습니까? 또 둘에게 제압당한 것도?”

“그건 직접 물으시면 될 일. 이제 멸마단주로서 말씀드려야겠군요.”

“……하시지요.”

“귀 파에 충분한 시간을 드렸다 여겼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유감입니다. 하나 몰랐다면 모를까 안 이상, 감출 수 없다는 건 잘 아실 것이외다.”

그때 장로 건천이 급히 나섰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대사,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소만 본 파에 국한된 문제였다면 우리도 이리하지 않았소. 일이 알려지면 호남 정파 전체의 세가 줄어들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소 문파에 미칠 게요. 그 때문에 부득이한 선택이었는데 그 점 혜량해 줄 순 없겠소? 제자들을 못 만난 것으로 해 주시면…….”

단호한 불호는 이럴 때 필요하다.

“나미아미타불! 소승의 재량권 밖인 데다 감추고 덮고 할 단계를 지나 버렸소이다. 현명한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건천도 멸마단주 각운이 어떤 자인지 잘 안다. 세심히 배려하되 절대 도를 넘는 자가 아니다. 더 말해 봤자 구차해지기만 할 뿐. 이제 답은 달리 찾아야 한다.

“하면 생각하신 바라도?”

“알리되 누가 하느냐, 그 결정만 남았지요. 소승은 물론 귀 파가 낫다 여겨집니다만 의견에 따르겠소이다.”

순간 건천의 눈이 번득였다. 그렇다면 활용할 틈이 있다.

“우리가 꼭 알려야 할 게 무엇이오?”

“소승의 임무는 마단을 먹은 자와 그 경위를 밝히는 것. 거기에 거짓만 없으면 되오이다.”

“알겠소. 나머진 우리가 알아서 하겠소이다.”

“그럼 제자들을 만나 보시지요.”

잠시 후, 일행은 둘로 나뉘었다.

숲속엔 장로들이 가세한 형산파가, 숲 밖엔 멸마단이 자리했다.

그때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한 두 사람이 숲 밖으로 나오는 순간.

멸마단 삼대 당서하, 그리고 진서연.

두 여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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