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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73화 (73/161)

73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척고련의 이대 군사 해오가 전한 말은 이랬다.

-따로 전한 무공 외에는 여기 다 적어 두었다. 적임자를 찾아 잘 전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참! 련주님 무공은 대사형에게 직접 전하시겠죠?

-그건 전할 수 없느니라.

-예? 무슨 이유라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게다. 여휘 놈 것은 과정의 산물이니라. 따라 한들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없음이야. 구결 또한 사람마다 맞는 것이 달라 그 또한 남길 게 없다.

-……사부님, 그 무공이 전해지지 않은 걸 밖에서 알면 저흰 힘들어질 겁니다. 혹 대안이라도 있으신지?

-해오야, 내가 전한 무공도 익히는 자에 따라 그만큼 갈 그릇이다. 대신 밖에는 전해진 것처럼 하면 되겠지.

-그래도 사부님께서 전하시고자 한다면…….

-이놈아! 사홍이 그놈에게 전하려면 몇십 년이 걸릴지 몰라.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 거 같으냐? 게다가 전한다 해도 여휘 놈같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놈이기에 거기까지 간 것이거늘. 괜한 허상을 좇음이야. 이만큼 줬으면 이젠 네놈들이 알아서 해야지!

-……!

야율혁은 기록을 읽던 옛 생각에 피식 웃고 말았다.

“무륜께서 엄청 화를 내셨다더군요. 그 후론 아무것도 묻지 못했답니다.”

“그 말대로면 여휘 그분의 무공은 전해지지 않았다는 거군.”

“회고록이야 개인의 사적 기록인 데다 천 년 전 것이라 저도 여태껏 믿지 못했습니다. 한데 극히 일부분 빼고는 소문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젠 사실이란 전제하에서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한데 마후는 무슨 상관인가?”

“그 기록 중에 마후께서 남기신 것에 대해 적혀 있는데 은밀히 도와준 것이라 자신만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뭔가?”

“빙정과 천잠사를 구해 주셨답니다. 그걸로 뭘 만들어 남기셨다고 하더군요.”

“허! 그런 거라면 후손인 우리가 꼭 챙겨야지. 한데 찾을 단서는 있는가?”

“기록에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거기가 악양예관이라는 곳인데 주변 동굴에 그때 벽화나 조각이 여러 곳에 있답니다. 그러니 혹시 하는 마음에 안 가 볼 수가 없더군요.”

“허! 그 정도로는 찾기 어렵다고 봐야지. 그래도 가 보긴 해야겠구먼.”

순간 야율혁의 눈이 번득였다.

“가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뭔가?”

“그 죽간은 일급 천마서고에 있습니다. 대주급 이상은 다 들어갈 수 있죠. 한데 마후께서 남긴 게 있다면 조작하는 쪽에선 이것만큼 활용하기 좋은 재료가 없겠죠. 만약 이 소문이 세상에 나온다면 무슨 뜻이겠습니까?”

“……교내 기록인 데다 해오 그분만 아는 사실이라 했으니, 교에도 동조자가 있다는 거겠지. 소문이 나거나 거기에 최근 조작한 흔적이 있다면 그리 봐야겠군.”

“흔적이 있다면 분명 거길 이용한다는 거겠죠. 그럼 놈들의 꼬리를 잡을 기회입니다. 교내 동조자도요.”

“그렇겠지. 허! 한데 놈들이 그걸 찾았을 수도 있겠어.”

“아니길 바라야죠.”

“참! 악양예관이라 했나?”

“예, 기녀들 교육하는 곳인데 호북, 강서, 안휘에서 올 정도로 크답니다.”

“……!”

두 사람의 발길은 악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장사(長沙) 하오문 지부장실.

멀찍이 물러나 있는 무윤은 그저 웃을 뿐이다.

‘부전자전(父傳子傳), 딱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네.’

두 부자가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그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아버지, 아들이 오 년 만에 왔는데 알은체도 안 합니까!”

“바쁜 거 안 보이냐?”

“뭔데 그래요? 별거 아니기만 해 봐요!”

“이게 어디서 큰소리야! 악양에서 정, 사가 대치 상태지. 거기다 멸마단에 척마단까지 이 근처를 배회한다고! 이 정도면 됐냐?”

“나도 다 아는 건데 뭘 요란스럽게 그럴까. 참내!”

“응? 악양 일이야 그렇다 치고 다른 건 어떻게 알아?”

“오다가 척마단에 마인……. 아니, 하여간 알아요.”

“마인? 역시 그거였나? 아들아, 빨리 불어라. 뭔 일 있었지?”

“말하면 가만 안 둔다고 했는데. 아버지도요.”

“……누군데?”

“몰라요. 척마단 같긴 하던데. 하여간 모른 척하세요. 아버지 신조를 지키셔야죠. 모르는 게 장땡일 땐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럴 일이냐?”

“제 촉 아시잖아요. 거기까지.”

그제야 연대광의 시선이 무윤을 향했다.

한껏 온화해진 미소가 반가움을 알렸다. 물론 정보를 다루는 자의 호기심 더한 눈도 빛을 발했다.

“이제야 자넬 보는군. 반갑네.”

“진즉 찾아뵀어야 했는데 송구합니다. 무윤이라 합니다.”

“못난 자식 놈 가르치느라 고생했겠어. 고마우이.”

연대광에겐 은월청요검 전반부 주해만 있다고 알렸다. 그 이상 알리면 독이 될지 모른다.

“전 옆에서 도왔을 뿐, 길을 찾아간 건 아드님 스스로 한 겁니다.”

“저놈을 내 어찌 모를까. 혼자 그 기간에 초절정 벽을 넘을 순 없네. 뭐가 됐든 자네가 있어 가능했겠지.”

“같이하다 보니 저도 늘었습니다.”

“허허! 괜한 소린 줄 알지만 듣기는 좋군그래. 한데 저놈 어디까지 갈 수 있다고 보나? 전반부만이면 이후론 쉽지 않겠지?”

연사구는 껴들 수밖에 없다.

“아니, 그걸 왜 저놈한테 물어요? 내가 알아서 다…….”

연대광은 시선도 돌리지 않고 말을 잘랐다.

“솔직히 말해 주게. 더하지도 덜지도 말고 말일세.”

연대광은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궁금했다. 이 답 여하에 따라 하오문도로서 아들의 삶을 가늠할 수 있으니까.

무윤은 바라보는 눈에 솔직한 마음을 더했다. 지금은 그래야 할 때다.

“아시겠지만 갈 길은 아득히 높고 멉니다. 하지만 길은 제대로 잡았습니다. 정진 또 정진하면 못 오를 이유는 없습니다.”

연대광은 빤한 질문이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의 끝이 거기가 맞는가?”

이 답은 전음으로 해야 했다. 연사구가 거들먹거리는 꼴은 못 본다.

-화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러네.

-그걸 넘어서도 길은 열려 있습니다.

연대광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문득 아들이 오기 전 보냈던 짧은 글이 떠올랐다.

-하여간 보인 것보다 감춘 게 더 많은 건 제가 장담해요. 그런 놈이니까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까불어 대지만 허튼소린 안 하는 아들이다. 또한 자신도 몰래 조사한 게 있고.

그 짧은 시간에 초절정 중반을 이루고 그 이상도 감춘 것으로 여겨지는 자. 또한 침주에서 한 일을 조사하다 입을 떡 벌린 게 몇 번이던가.

무인이되 다른 것 또한 무서운 자다.

강호 사정은 누구보다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자신이지만.

‘강호에 알려지면 이자만큼 파란을 몰고 올 자가 또 있을까?’

그런 이가 화경을 넘어선 길을 언급했다. 벅차오른 가슴에 여는 입술이 부르르 떨려 왔다.

-자네…… 진정인가?

-혼자만 알고 계시지요. 헛바람 들어가면 이상한 짓을 하도 많이 해서요.

-허허! 왜 모르겠나. 알았네. 한데 자네가 옆에 있어 줘야 가능하겠지?

-길이 흐트러지진 않습니다. 속도만 차이 날 뿐이죠.

-……고맙다는 말밖에 안 떠오르는군.

-제 벗인데 이제 그런 말씀은 안 하셔도 됩니다.

-……!

연사구의 성난 입이 비틀어졌다.

“사람 앞에 두고 장난해 지금! 야, 넌 뭔 소리 했어! 빨리 안 불어?”

“그럴 거면 전음을 왜 해?”

“……!”

잠시 후,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던 중 무윤은 슬쩍 운을 뗐다.

“참! 그 소문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는데.”

한참 무윤의 설명이 끝나자 연대광의 눈이 빛을 발했다.

“기록을 비트는 자들이 있을지 모른다?”

“아직은 그냥 의심입니다. 어찌 보시는지?”

“이런 사안이면 조작도 의심해 봐야겠지. 한데 아직 짚이는 건 전혀 없다네. 뭔가 나오면 알려 주겠네.”

“부탁드립니다. 참! 지금 상황은 어떤지요?”

“처음엔 다들 웃고 말았지. 하나 지금은 거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일세.”

“소문만으로 그리되진 않았을 텐데요?”

“물론 개방에서 작정하고 퍼트린 게 컸지. 한데 오랜 전통의 세가나 무가에서 하나둘 기록이 더해졌어. 물론 각자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라 같진 않지만 척고련과 여휘란 자가 존재했다는 기록은 대동소이하네.”

“다들 지어낸 얘기라 여기고 말았는데, 다른 곳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니 그리된 거군요?”

“그런 셈이지.”

“개방은 왜 그랬을까요?”

“개방 입장에서야 호기지. 평상시야 맨날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데 이번 일로 정파 모두를 주도하고 있으니까. 위상도 그렇고 정파 내 발언권도 커지겠지. 물론 좀 과하긴 한데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네.”

특별히 의심할 건 없다는 얘기. 어쨌든 이 일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곳.

“혹 개방에서 잘 알 만한 자가 이 근처에 있습니까?”

“친하진 않지만 여기 분타주와 가끔 본다네. 한데 아는 게 전혀 없어. 총단 인물이나 돼야 들은 게 있을 게야. 아! 악양 싸움 때문에 개방 순의단(巡衣團)이 거기 와 있네. 거기 부단주라면 알지도 모르네.”

“순의단이라면?”

“정보 수집을 총괄하는 곳이네. 이번 일도 거기서 뿌리는 거겠지.”

“부단주라면 잘 알겠군요.”

“개중엔 그렇지만 개방의 생각은 개방의 방주도 모른다는 말이 있네. 인원도 많고 출신 성분도 제각각에 파벌도 여럿이라 거기만큼 복잡한 곳도 없어서 나온 말이야. 담당이 아니면 잘 모를 걸세.”

그래도 지금 더 알아볼 곳은 거기밖에 없다. 그렇다고 당장 그 일로 간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할 터.

“나중에 들리는 소식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어차피 내 일 아닌가.”

얘기가 마무리될 즈음 연사구가 화두를 돌렸다.

“저 유빈이 좀 보고 올게요.”

“그 아이 악양으로 표행 나갔다. 한참 걸릴 텐데.”

“그래요? 어쩌지, 이번엔 꼭 봐야 하는데.”

“다녀오거라. 표국주가 그리 말했다면 만나서 얘길 해 봐야지. 왔다가 그냥 간 거 알면 실망도 클 테고.

“어디 갔는지 아세요?”

“그 아이야 악양예관 일 전담이잖아. 거기로 가면 된다.”

“그럼 바로 갈게요.”

“그래라. 아! 가서 네 숙부 만나면 말은 조심해라. 악양예관 사정이 안 좋아서 내놓은 모양이더라.”

“예? 거긴 꾸려 가는 데 문제없던 곳이잖아요? 근데 왜?”

“차밭 사업에 투자했다가 홍수 때문에 다 망했어. 그 빚 때문에 고심하던 차에 봉천문에서 인수 제의를 한 모양이더라.”

“……!”

잠시 후, 악양으로 가는 길.

무윤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표국에 대해 알아야 도울 일도 찾는다.

“악양예관은 기녀 교육하는 곳이라며?”

“그래.”

“근데 표국이 전담해서 할 일이 뭐지?”

“여기저기서 기녀들이 오고 가잖아. 도망치는 애들도 있고 산적, 수적 들도 눈에 불을 켜고 노리지. 근데 장사야 호남 최고 도시인데 이동이 잦을 수밖에.”

“아까 거기 관주보고 숙부라고 하던데?”

“조 숙부님도 하오문 출신이셔. 전에 말했잖아, 거기 은야회가 있던 곳이라고. 예전엔 하오문주가 관리하다가 삼백 년 전부터 조 숙부님 집안이 운영해 왔거든. 근데 그렇게 됐다니 기분이 영 그러네.”

순간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참! 봉천문이 나섰다고 했지? 적운문에 오만 냥 빌려 간 게 혹시?”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인수 대금에다 개축 비용까지 들어가니까 돈이 엄청 필요했겠어.”

“개축은 왜?”

“숙부님이야 하오문 계열이니까 정, 사 가릴 것 없이 거래했지. 근데 사파가 인수하면 정파 쪽 기루는 대거 빠져나갈 거 아냐. 절반도 훨씬 넘을걸.”

“그래서 남는 건물을 개축한다?”

“거기 위치가 아주 좋아서 교육관을 기루로 바꾸고 주변을 손보면 대박이거든. 숙부님도 그 생각 하시다가 기루와 경쟁이라 못 하셨지.”

“그럼 인수할 만하네.”

“에휴! 거기 동굴에도 이번이 마지막이네. 그놈들이 인수하면 거기도 손볼 테니까.”

“뭐가 있는데 그래?”

“어? 내가 말 안 했나? 거기 벽화하고 석상 여러 개가 있다고.”

“했다. 오래됐다고.”

“그래. 천 년이야, 천 년. 그런 곳을 망가뜨리다니. 휴!”

순간 무윤은 그 자리에 발이 얼어붙어 버렸다. 놀람 어린 눈이 한순간 멍해졌다.

그동안 오래됐다는 말을 새겨듣지 않은 탓이다.

‘천 년이라고?’

바로 반문이 터져 나왔다.

“방금 천 년이라고 했지?”

“응, 은야회 조사가 계실 때 만든 거라고 했으니까.”

“……!”

은야회 조사라면 월소려다.

갑자기 밀어닥친 오만 가지 상상에 말문이 턱 하니 막혀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혹시 소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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