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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70화 (70/161)

70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연사구의 시선이 산 아래를 향했다.

‘혼자네.’

한데 바람 안고 서서히 올라오는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경공도 아니고 그저 터벅터벅 걸을 뿐인데, 전신에 두른 기세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바로 답을 줄 이가 옆에 있다.

-어떠냐?

-입방정 떨지 마. 그러다 뒈지게 맞는다.

-……너는?

-너 바보지?

-……!

하수(下手)가 상수(上手)를 알아보는 법은 없다.

가까이 다가오던 이의 시선이 그대로 연사구를 마주했다. 찰나의 순간 불꽃같은 빛이 눈가를 스치고 사라졌다.

다시 무심해진 표정에서 담담한 말문이 열렸다.

“선객이 있었군.”

“식사 중인데 같이하시겠습니까? 고기는 넉넉합니다.”

“이 산중에 둘만 있는가?”

“장사(長沙)로 가는 지름길이잖습니까.”

“거기 사람인가?”

“오랜만에 집에 가는 길이죠.”

“누군지 물어도 되겠나?”

“하오문 사람입니다만.”

사도련 척마단 부단주 척조산의 눈이 번득였다.

“하오문이라!”

“예, 근데 왜 그러시는지?”

“내가 거길 좀 알지. 한데 자네 같은 자가 있다는 얘긴 듣지 못했어. 갑자기 이 자리가 부담스러워지네만.”

초절정 중상이면 자신을 알아볼 정도다.

“하하, 제가 좀 하는 편이죠. 최근에 늘어서 잘 모르실 겁니다.”

“늘었다? 하오문에 서른 초반에 자네같이 될 무공이 있던가?”

“저 이상한 놈 아녜요. 잘난 스승님이 계셔서 그런 거지.”

“솔직히 난 미심쩍네. 자넬 믿을 방법이 있으면 좋겠군.”

“뭐든 물어보세요. 그 수밖에 없죠. 아! 제 아버님은 장사(長沙) 지부장 연대광이란 분이십니다.”

“연대광? 얼마 전에 본 적이 있네만.”

“그러세요? 그럼 제 아버지 우측 볼에 점 있는 거 보셨어요? 거기 털이 하나 있는데 제가 자르라고 그렇게 말해도 복 털이라고 그냥 두셨거든요. 지금도 있을 거 같은데.”

“……!”

잠시 후, 척조산은 연달아 이어진 연사구의 수다에 의심을 말끔히 씻어 냈다. 가만히 손을 내저었다.

“그만하면 됐네. 내 일이 있어 질문이 과했네.”

“그럴까요. 근데 누구신지?”

“자네가 하오문도라 말하기가 좀 그렇군. 조용히 움직일 일이라 그러네.”

“하하! 제 입 무겁다고 해도 안 믿으실 거죠?”

“내 정보는 돈이 좀 되지. 미안하네.”

“뭐 알겠습니다. 다음에 인연이 되면 그때 알려 주시죠.”

척조산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한데 오 년 만에 찾아간다니 무슨 사정이 있는가?”

“제가 사고를 좀 쳤거든요. 누굴 좀 팼는데 얍삽한 놈이 아버지한테 일렀지 뭡니까. 게다가 개방 놈들이 소문도 다 내 버리고. 그 바람에 쫓겨났죠.”

“누굴 팼기에 지부장 아들이 오 년을 그런단 말인가? 정파 서문가나 사파 비천문 정도가 아니고서야.”

“서문진성이라고 가주 둘째 아들요.”

“뭐라? 허허, 그럴 만했군. 한데 뒤탈이 있을 줄 빤히 알 텐데 왜 그랬는가? 아! 이런 내가 괜한 질문을 했군.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감출 일도 아닌데요, 뭐. 아버지가 절 장사학관에 처넣는 바람에 그놈들하고 같이 수학했거든요. 근데 그 새끼하고 개방 놈 둘이서 속을 긁어 대는 바람에 그냥 확 해 버렸죠. 에고! 그때 참았어야 하는 건데.”

“그런 거였나? 한데 젊은 치기에 한 일 치고는 처분이 좀 심했군그래.”

“저도 저지만 제 아버님을 못마땅해합니다. 그 참에 제가 딱 건수를 던져 준 거죠.”

“하긴 자네 아버지야 정, 사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으니 그럴 만했겠어.”

“어! 아버지를 잘 아세요?”

“안면만 있는 정도일세.”

한참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 간 후, 척조산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일이 있어 가 봐야겠네.”

“아, 그러십니까.”

“얘기 잘 들었네. 간만에 편한 자리였어.”

“인연이 되면 다시 뵙겠습니다.”

척조산은 꼭 해 줄 말이 있었다. 나름 연대광과는 친분이 있다.

“그러세. 한데 이제 능선 지름길로는 가지 마시게.”

“예?”

“위험한 자들이 이 근처에 있네. 자넬 알아본 내 경지는 대략 짐작하겠지? 한데 나도 혼자선 추적만 할 뿐이네.”

“누구기에?”

“그리만 알게. 내 노파심에 당부하네만 딴생각 마시게. 집까지 몸 성히 가려면.”

“……!”

잠시 후, 척조산이 떠나자 연사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 듣고 나니 영 찜찜하네.”

“위험한 자라면?”

“빤한 걸 왜 물어? 정, 사 어느 쪽도 상대를 위험한 자라고 표현 안 해. 현상금 걸린 새끼들 아니면 무림공적이나 마인들이겠지.”

궁금하긴 해도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시급한 일도 있고.

“길로 가야겠지?”

“크크! 그 말 안 나오면 가만 안 두려고 했는데.”

“사서 고생을 왜 해.”

“당연하지! 너 오랜만에 맘에 든다. 가자.”

그렇게 큰 산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갈 즈음, 연사구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 저건 금월 표국 깃발이네!”

“아는 데야?”

“당연하지. 장인어른 될 분이 저기 표국주신데.”

“가 봐야겠네.”

“같이 가자. 인사드리게.”

“그래야지.”

그런데 표국 뒤 행렬을 거의 따라붙을 즈음, 일행 끝머리의 두 사람을 유심히 살피던 무윤의 눈이 가늘어졌다.

‘기운을 차단했어.’

험한 산길을 가는 표국엔 매번 뒤따르는 상인들이나 여행자들이 있다. 그만큼 안전한 게 없으니까.

한데 습관적으로 가볍게 흘려 낸 신기심의공 기운이 의아함을 전했다.

무윤보다 고수가 작정하고 감추면 모르고 지나갈 뿐이다. 한데 두 사람은 몸 안의 내력이 일절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차단시켰다. 아무것도 담긴 게 없이 돌아왔으니 알 수밖에.

강호에 나와 처음 겪는 일. 한데 그런 무공이 있다고 듣긴 했다.

‘잠은공(潛隱功)이라 했었지. 주로 마인들이 익힌다는.’

아까 만났던 중년 무인이 위험한 자라고 했던 이들.

‘이자들 같은데.’

바로 연사구에게 전음을 보냈다.

-잠깐만!

무윤이 상황을 알리자 연사구의 표정이 우뚝 굳어 버렸다.

바로 돌아온 질문.

-아까 그분이 찾던 위험한 자?

-나도 처음이라 확실치 않다만 저게 잠은공이라면 마인이겠지.

-가능성은?

-거의.

갑자기 오만 가지 상상이 연사구의 뇌리를 휩쓸었다. 절로 마른침이 꿀꺽 삼켜지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럴 이유가 있다.

-야, 여기서 저자들이 밝혀지면 안 돼!

-왜?

-그만한 고수가 찾을 정도면 대단한 마인이겠지. 근데 표국 행렬에서 그런 자들이 나오면?

-숨긴 건데 표국이 뭐가 문제야? 조사하면 다 알 텐데.

-이 멍청아! 내가 여기 있잖아. 근데 장사에서 누가 먼저 조사하겠냐?

-……서문가겠네.

-그래, 나나 아버지야 괜찮지만, 이런 꼬투리면 표국주님까지 싸잡아 괴롭힐 거라고. 그게 다 나 때문인 거잖아.

이미 표국주가 연사구를 알아본 상황이라 돌아갈 수도 없다.

이러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내가 뒤에서 살필게. 넌 나하고 모르는 사이로 하고.

-몰래 제압할 순 없겠냐?

-어려울 거 같은데. 한 명은 나도 전력을 다할 상대야. 질 거 같진 않지만.

-휴! 내일이면 장사에 도착하는데 그때까지 조용히 있다 떠나 주는 게 상책이네.

-넌 우선 표국주님부터 만나. 이 얘긴 안 할 거지?

-놀라 자빠지신다. 소심한 분이라 저놈들이 알아챌 거야.

이럴 땐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다.

-내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여차하면 죽이면 되는데.

-그건 그런데. 그러면 너 엄청 귀찮아……. 아, 역용! 그렇구나, 크크!

-빨리 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래, 너만 믿는다. ……참! 사고 칠 거면 그 전에 나랑 꼭 상의하는 거 알지? 넌 그것만 고치면 나한테 혼날 게 없어.

-꺼져라. 눈치챈다.

-……!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연사구는 쌩하니 내달렸다.

파파팟!

활짝 핀 웃음이 미래의 장인어른을 향했다. 방금까지 심각했던 자라고는 상상도 안 될 싱그러운 미소다.

“하하! 국주님,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가는 길에 깃발을 보고 온 겁니다.”

“그랬는가. 반갑네. 정말 오랜만이군.”

한참 표국주 하욱현과 인사말이 오고 간 후, 연사구의 말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이제 연인인 하유빈의 아버지로서 대해야 할 때.

“저, 유빈이는 잘 있죠?”

“그러네. 한데 자네는 어쩔 셈인가? 내 두 사람 사이를 알기에 그간 기다렸네만 유빈이도 이제 서른일세. 기약 없이 기다리는 딸년 보기가 힘이 드는군.”

“침주 일이 거의 끝나 갑니다. 조만간 올라오겠습니다.”

“올라오면? 서문가 문제는 해결할 방안이 있는가?”

“그건 아직…….”

“이보게, 자네도 알지만 우린 오십 명밖에 안 되는 작은 표국일세. 정, 사 어디에 속하지 않는다 해도 서문가와 불편해지면 장사에서 버틸 수 있겠나?”

“……압니다.”

“어떻게든 서문가와 화해하시게. 아니면 나로서는 이 혼사를 찬성하기 어렵네.”

“저, 시간은 어느 정도?”

“오래는 어렵네. 일 년 정도 줌세.”

“……알겠습니다.”

멀찍이 떨어져 듣던 무윤의 심사가 복잡해졌다. 안도와 씁쓸함이 동시에 찾아들어서다.

‘역시 그런 거였어.’

안도감은 오 년이란 세월에도 연인이 변치 않았다는 것.

씁쓸함은 남은 문제가 쉽지 않아서다.

‘저놈만 굽힌다고 될 일이 아니지.’

서문가가 원하는 건 하오문 정보의 우선권. 지부장 연대광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답답한 마음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돈을 빌려주고 표국에 다른 사업을 권해 볼까?’

하지만 무턱대고 던질 사안이 아니다. 연사구도 그렇고 오랜 세월 이곳에 터전을 잡은 이들의 사정도 있을 텐데. 자존심이란 것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은 나설 시점이 아니라 더 알아보고 심사숙고할 때다.

물론 저 뒤에 있는 낯선 두 사람 또한. 다만 여긴 결정을 빨리 내려야 한다.

‘찾는 게 아까 그자뿐일까?’

말과 행동은 사파로 보이던 자, 그런 경지에 마인을 추적한다면 사도련 척마단일 가능성이 높다.

‘위험한 자고 혼자선 추적만 한다고 했어. 누군지 안다는 거네. 그 실력도.’

고로 찾는 건 혼자가 아니란 뜻. 척마단이 사방에 쫙 깔렸을 수 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살피자 신기심의공 초감각이 알려 줬다. 둘 중 중년인은 역시 단숨에 제압할 수 없는 자다. 전력을 끌어내도 단기간 공방은 불가피한 정도.

‘몰래 제압은 힘들어.’

그 때문에 고민이 깊어졌다.

그렇게 해답을 못 찾고 고민이 깊어질 즈음, 문득 꼬리에 꼬리를 이은 상념이 던진 고민이 떠올랐다.

‘만약 천마교라면, 저들을 내 후인으로 여겨야 할까?’

천 년을 건너온 자로서, 현재의 몸뚱이를 가진 자로서, 실체적 자아의 본질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다. 즉 누구의 기억에 더 방점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그 고민이 던진 화두다.

물론 몇 달 전에 오랜 고민의 방점을 찍었다. 지금 무윤의 입장에서만 살기로. 과거는 오직 머릿속에 추억만으로 간직하기로.

한데 과거의 자신이 악마가 돼 가는 지금,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 화두가 던진 첫 번째 고민이 천마교다. 먼저 깊은 한숨부터 나오게 하는 고민거리.

‘휴!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지.’

그래서 머리가 지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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