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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67화 (67/161)

67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슈우욱!

몰아치는 도강의 파도, 그 정면을 향해 쭉 내뻗은 주먹이 웅혼함을 알렸다. 손끝에 맺힌 강기가 소용돌이 흐름으로 요동쳤다.

위이잉!

둔중한 울림과 함께 일직선으로 날아간 권이 도의 궤적을 들이받는 순간.

쾅! 콰앙!

물러섬 없는 일격, 창천을 닮은 짙푸른 권강이 쏟아지는 도강을 뚫어 냈다.

찢어발겨진 도강이 흩뿌려질 찰나, 잔불꽃 일렁이는 기파가 방양의 가슴 언저리에 시퍼런 광망으로 번뜩였다.

파팟!

“크아악!”

우두둑! 빠각!

살점을 찢고 뼈마디를 뒤튼 손끝에 육편이 휘날렸다. 다른 손끝이 거칠 것 없는 힘으로 옆구리를 향했다.

퍼억! 두둑!

“커억!”

공중을 허우적거리던 신형이 휘청거렸다. 기괴하게 꺾인 팔이 먼저 대지를 쓸었다.

투욱!

늑골이 다 부서진 채 역류하던 피가 검붉은 흙을 사방에 만들 즈음, 방양의 멍하게 풀린 눈엔 의아함이 가득했다.

생을 마감하는 이 순간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

‘도강을 그대로 뚫었어. ……화경!’

강기(罡氣) 또한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검기가 뭉쳐져 유형화되는 순간부터 강기라 부를 수 있다. 대략 초절정 중반이 되면 가능한 수준.

하나 진정한 강기라 함은 검기를 응축해 더 날카롭고 견고하게 만드는 걸 뛰어넘어야 한다. 그 자체로 더 조밀해질 수 없는 기의 응집체. 그걸 발현하는 경지를 절대자, 화경이라 부른다.

사라지는 의식 속에 방양의 확신은 짙어져 갔다.

‘절대자!’

그렇다면 이 죽음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억울함을 덜 수 있다.

얼마 후.

중년 미부의 아혈이 풀리자 복면인의 말문이 열렸다.

“쉽게 갔으면 좋겠는데.”

“……질문도 그러길.”

이미 생을 체념한 그녀지만 상대가 궁금하긴 했다. 사야홀도 혈교도 아닌 건 당연지사.

우선 떠오르는 건 정파 아니면 천마교. 하지만 드넓은 강호에 미지의 세력이 어찌 한둘일까. 어쨌든 그 어떤 곳도 사야홀의 친구는 아니다.

거기에 초절정 상의 방양을 정면으로 부딪쳐 두 수로 끝낸 자.

‘화경일지 몰라.’

하지만 자신의 의문을 풀 자리가 아니다. 그저 생을 편안히 마무리할 기회만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무공 어디서 났지?”

“……소수마공 말인가요?”

“원래 이름인가?”

순간 선우가영의 눈이 껌벅였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

“그게 무슨?”

“말이 어려운가? 소수마공, 그게 원래 이름인지 물었다.”

문득 오라버니 선우단엽이 알려 준 게 생각났다.

“그건 모르겠어요. 다만 혈교의 전신인 극천련에 잠시 계시던 분이 전했다는 말만 들었어요. 천 년 전 얘기지만.”

극천련.

여휘는 마의라 불린 선우진, 그놈이 강호대전에서 패하고 따로 나가 만든 곳이라 했다.

속 깊은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혈교의 뿌리가 그놈이었어.’

천마교가 악의 종주라 불린다면, 혈교는 그보다 더 사악한 악의 화신들이 모인 곳이라 세상에 회자된다. 그런 곳을 만든 게 선우진 그놈이라니.

우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월소려가 왜 극천련에 있었을까.

“극천련에 잠시 있던 여인?”

“초대 련주와 친분이 있었는데 잠시 머물 때 전했다는 것밖에 몰라요.”

“자세한 내용이 혈교에 있나?”

“그것까진……. 그렇게 전해 오는 것만 알아요.”

“더 알 만한 자는?”

“가문에 몰래 전해져 오던 건데 제가 이어받았어요. 저보다 더 아는 이는 없을 거 같은데.”

이건 더 물을 게 없다.

“너만 소수마공을 아나?”

“천마교에도 있다고 들었어요. 완전히 같은지는 모르지만.”

“거기선 누가 알지?”

“이백 년 전 나온 게 마지막이에요. 제가 알 수가 없죠.”

“내용은 다 알고 있겠지?”

이 말이 왜 안 나오나 했다. 선우가영은 내걸 조건이 있다.

“알려 드리죠. 대신 제게 마무리할 시간은 주세요. 그게 조건이에요.”

“그러지.”

잠시 후, 선우가영은 구절 낭독이 끝나자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이제 가장 중요한 운기법과 풀이가 남았다. 그 전에 확답을 받아야 한다.

“저, 풀이를 하기 전에.”

“됐다, 필요 없어.”

“예? ……그게 무슨.”

“관심 없다.”

“……?”

무윤은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속으로 삼켜 냈다. 구절만으로 파악은 대략 끝났다.

‘소려 걸 감히 이따위로 망쳐 놔! 역혈(逆血)을 이리 많이 갖다 쓰다니. 거기다 빙공까지.’

마공의 근간 중 하나는 역혈.

물론 천 년 전에도 많이 활용했던 방법이다. 순간 최대의 힘을 뽑아내는 방법이니까.

무인이 아니더라도 힘을 쓸 때 숨을 참는 것 또한 달리 보면 역혈의 한 갈래다. 그러니 무공엔 많이 쓰일 수밖에.

하나 그만큼 몸의 위험이 커진다.

당연히 소려를 위해 만든 빙옥섬수엔 역혈이 없다. 몸에 조금이라도 부작용이 있는 건 철저히 배제했으니.

한데 소려가 보인 힘을 끌어내기 위해 연구하던 놈들이 빙공에 역혈까지 섞었고, 그걸 이겨 낼 극음지체만이 극에 다다를 수 있게 변형해 버렸다.

즉 기운과 색은 유사했지만, 그 본질은 완전히 바꿔 버렸다.

‘이건 빙옥섬수라 할 수 없어.’

더 관심 가질 이유가 없다.

선우가영은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구절만 아는 건 껍데기만 가진 것인데.

“정말 운기와 풀이는 필요 없단 말인가요?”

“됐다고 했을 텐데.”

“……?”

이제 다른 걸 물어야 한다. 오빠가 선우단엽이라 했다.

“그대는 마의 선우진의 후손인가?”

“그래요. 선우가는 혈교의 의가를 쭉 맡아 왔어요. 전 그 직계 중 한 명이고.”

“혈교는 왜 나왔지? 아까 도망쳤다고 한 거 같은데.”

“큰 세력이라 당연히 여러 파벌이 있고, 우리 선우가도 물론 여러 갈래죠. 그 싸움에 밀렸다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사도련으로 도망친 거고? 아! 아까 사야홀이라 했지?”

선우가영은 더 감출 생각이 없다.

“마공을 연구하는 사도련의 비밀단체예요. 전 거기서 의각주를 맡고 있고.”

“마단 연구를 주로 했겠군.”

“혈교에서부터 그 연구를 했으니까요.”

“사야홀은 어떤 곳이지?”

“전 외부인이나 마찬가지라 의각 빼고는 아는 게 많지 않아요.”

이후 사야홀과 마단에 대한 대화가 한참 오고 갔다. 혈교에서 도망친 사연까지.

그제야 궁금했던 많은 것들이 해소됐다.

더 물어볼 것이 없을 즈음, 무윤은 문득 여휘가 남긴 말의 이후를 묻고 싶었다. 여휘가 마공 연구를 중단할 수 없다던 선우진에게 했던 말.

-그 길이 틀렸다면 너 스스로 모든 것을 접어라. 네 대가 아니더라도 후손들에게 그 뜻을 남기란 말이다.

어쨌든 선우가는 천 년 동안 그 길을 걸은 셈.

‘지금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 말을 안다는 자체를 꺼낼 수가 없어 말을 에둘렀다.

“그대는 의술로 마공을 연구하는 데 거리낌이 없나?”

“……없지 않아요. 하지만 선조 때부터 걸어온 길이죠. 그걸 탓한다면 할 말은 없어요. 선우가의 일족인 이상 운명이자 숙명이니까.”

무윤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 답에 따라 마음의 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 점혈을 풀어 몸과 생각에 자유로움을 더해 줬다.

“그대 스스로는 어떤가?”

짧은 정적이 흐르고 난 후, 선우가영의 시선이 석양이 저물어 가는 산 너머를 향했다.

이 질문은 평생 스스로에게 던져 왔던 것. 그 수많은 나날 번뇌 속에 고민했던 답을 담담히 흘려 냈다.

“옳다고 생각지 않아요. 하지만 전 누군가의 딸이죠. 제 가족과 혈족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말했듯이 운명이라 받아들였으니까. 그 죄를 묻는다면 달게 받아야겠죠.”

“내가 그 죄를 묻는다면?”

“답은 드렸어요. 그 이유라면…….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

그때 묵묵히 듣기만 하던 연사구가 나섰다.

탁!

고민하는 무윤의 표정에 짐작 가는 게 있다. 이럴 땐 초장에 싹을 잘라야 한다. 단호한 전음을 보내야 할 때.

-야! 너 딴생각하면 가만 안 둬. 무조건 죽여야 해. 안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이 새끼가 고민할 게 따로 있지.

연사구의 말이 백번 맞다. 그런데 망설여진다.

‘휴! 선우진, 그놈을 조금만 더 살피고 다독였다면.’

그럼 이 상황은 많이 달라졌으리라. 물론 책임이라 여기진 않지만 아쉬움은 금할 수 없다.

고아였던 놈을 거둬들여 키운 게 자신이니까. 그 인과의 연으로 이어진 이 자리. 그런 놈의 후손을 내 손으로 처리해야 할 시점.

또 완전하진 않지만 소려의 맥을 이어 온 거나 마찬가지인 여인.

그 아련함이 결정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연사구는 결단을 내렸다. 언제나 오는 촉이 무윤이 살리는 쪽으로 기우는 게 느껴진다.

이젠 전음이고 뭐고 없다.

“야, 넌 꺼져, 내가 할 테니까!”

“잠깐만…….”

연사구의 눈썹 양 끝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 새끼가 정말! 이번엔 안 돼! 절대! 무조건!’

무조건 반대는 무윤을 만난 후 처음이다. 말은 톡톡 쏘아 댔지만, 매번 놈의 의견이 더 타당한 걸 알았다. 언제나 신중하고 명석한 판단을 내리는 놈이라, 끌려가도 몇 마디 이죽거림으로 끝냈다. 하지만.

‘이건 아냐.’

지금은 뭐라고 씨불이건 걷어차 버려야 한다. 무조건!

있는 대로 눈을 부라렸다. 핏대와 목청은 절로 따라왔다.

“이 새끼가 미쳤나! 이 여자 누군지 까먹었어? 혈교에다 사도련까지 수십 년 마단(魔丹)만 주야장천 연구한 년이라고!”

“안다.”

“알긴 개뿔! 그런 놈이 엉뚱한 생각을 해! 이년 놓아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거 몰라? 세상에 해악만 끼칠 년인데 고민 따위가 왜 필요해!”

“……!”

연사구는 여인에게 단호히 시선을 돌리고는 칼을 빼 들었다.

“댁도 사정은 있겠지. 근데 해선 안 될 짓 한 거 알잖아. 어쩔 수 없다는 거 알아줬으면 해.”

“당신들 정파군요?”

“내가 어딜 봐서 그 역겨운 새끼들하고 같은 족속……. 복면 벗으면 안 그래.”

“그럼?”

“뭐, 그렇게 좋은 곳도 아닌데, 그래도 나쁜 짓 안 하려고 노력은 해. 마단 같은 그딴 짓 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선우가영은 그제야 알았다. 묻는 질문과 하는 행동이 알려 준 것.

“그대들, 여기 우연히 왔군요?”

“그래. 지나가다 우연히. 그래서 저놈들한테 죽는 거보단 나을 거야.”

“……그러네요. 알겠어요.”

선우가영의 눈이 사르르 감겼다. 떨리는 입가엔 그래도 옅은 미소만은 잔잔히 흘렀다.

‘……그래도 다행이야.’

마음 정리도 했고 최악인 혈교의 손도 피했다. 거기에 죽이려는 이유도 스스로 항변할 수 없다. 아니, 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자들에게는.

입술을 꽉 다문 연사구의 칼이 하늘을 향하던 순간.

무윤의 눈이 반짝였다.

“야! 잠깐!”

“아우, 이 새끼가 진짜! 간 떨어질 뻔했잖아! 한 번만 더 그러면 너부터 죽여 버린다!”

“곽 의원 연구실 만들기로 했잖아.”

“……그게 뭐?”

이번에 데려온 의원 곽호산이 부탁한 것.

-어차피 세상에 나가긴 글렀으니 산속에서 평생 약초 연구나 하고 싶군. 연구실을 만들어 줄 수 있겠나.

-어렵지 않죠. 그러겠습니다. 참! 제가 가진 약초서도 몇 개 있는데 가져다드리죠. 보실 만할 겁니다.

-오! 그런가. 자네가 그럴 정도면 궁금하구먼.

무윤은 나직이 말을 이었다.

“의원님 보조가 있으면 어떨까?”

“이 우라질 새끼가 정말! 야, 이 여자 나보다 세! 소수마공 익힌 무인이라고!”

“그건 내가 없앨 수 있거든. 무공 다 못 쓰게 할 수 있어.”

“응? 소수마공은 단전을 없애도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나 못 믿어?”

연사구는 무윤의 눈 바로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젠 정말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왜냐?”

“뭐가?”

“세상에 도움 될 게 하나 없는 여자다. 그뿐이냐. 데리고 있는 게 알려지면? 사파에 혈교에 정파까지, 아니 천마교도 나설걸. 그럼 너와 우리 사람들, 가족까지 다 위험해져. 아니야?”

“그건…….”

“그걸 모를 너도 아니고. 근데 왜 그래? 살릴 가치는커녕 해악만 되는 여잔데. 이유가 뭐야?”

“…….”

그때 무윤의 시선이 급격히 돌아갔다.

휙!

동시에 선우가영의 몸이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투욱!

연사구는 눈을 껌벅였다.

“왜 저래? ……혹시?”

“스스로 심맥을 끊고 있다.”

“……!”

“결정해.”

“뭘?”

“우선 살려, 말아? 네 결정에 따른다.”

“아우, 이 새끼! 점혈을 왜 풀어 줘 가지고!”

“…….”

“하여간 넌 정말 골 아픈 새끼야. 아, 시팔! 이럴 때 왜 이런 촉이 오지?”

“……무슨?”

“평생 이럴 거 같아서 그런다. 왜!”

“…….”

지금은 무언(無言)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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