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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60화 (60/161)

60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캉! 카앙! 콰쾅!

치고 빠짐을 섞는 자와 무작정 달려드는 자의 일진일퇴 공방이 시작됐다. 그 실체를 드러낸 신기심의공 호신막은 손끝의 푸른 빛과 어우러져 도에 맞부딪쳐 갔다.

휘이익! 쇄액!

호신막도 강기에 쌓인 도를 막진 못한다. 쇄도하는 속도와 강기의 위험을 줄이는 완충 작용 정도. 또한 사선으로 흘려 충격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그 미세한 차이가 준 찰나의 시간은 반 장 내에서 마음껏 권을 휘두르게 만든다. 초극의 감각이 있기에 가능한 수법.

그래도 강기의 도풍에 옷깃이 베이고 살갗이 찢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홍이암은 그런 피육의 상처를 걱정하며 상대할 이가 아니다.

무형의 진기파동이 만발했다. 연달아 공기가 터지면서 대기에 구멍이 났다.

팡! 파앙!

수십 초가 지나자 홍이암의 옷도 찢겨 나가고 몸에도 충격이 쌓여 갔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격렬한 공방이라 그럴 수밖에 없다.

도격을 뿌려 대던 홍이암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갔다.

검이 서투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몸이 깨달았다. 한데 시간이 갈수록 그 몸이 전한 위기감이 뇌리에 전율을 불렀다.

아랫입술을 와락 깨물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진다.’

처음엔 분명 자신의 우위였다. 한데 가면 갈수록 놈의 빠른 움직임이 간결해지고 유연해진다. 온 내력을 다한 도의 궤적을 반 장 이상 물러나지 않고 광풍처럼 몰아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한순간 방심에 목숨이 날아가는 격전인데, 수련하듯 그 단계를 올려 가는 흐름이 느껴진다.

게다가 초절정 극의 내력에도 강기를 뽑아내는 덴 한계가 있다. 한데 상대는 적절히 권강과 권기를 교환해 쓴다. 놀랄 만큼 빠른 몸놀림이 있기에 가능한 일.

깨달음이 더해진 신기심의공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과 마음의 일체를 가속화하는 걸 그가 알 리가 없다.

홍이암은 결의에 찬 눈빛을 뿜어냈다. 무인의 직감이 확신이 됐다.

‘승부를 본다.’

결심과 동시에 흑색 옷자락이 펄럭였다. 활짝 열린 단전이 전신을 내달리는 진기를 불렀다. 그 힘을 담은 시퍼런 도의 광망이 상대의 가슴으로 향했다.

슈우욱!

순간 회전의 발경을 실어 쭉 내밀었다. 환사염라도의 절초는 환영처럼 흐르는 궤적 속에 폭풍처럼 몰아치는 연환 공격.

슈우욱!

겹겹이 기파가 쌓인 새하얀 도신이 주먹을 관통하듯 몸부림치는 순간.

무윤의 눈이 번득였다. 갑자기 폭풍같이 터져 나오는 도세.

‘승부다!’

순간 짜릿한 전율과 쾌감, 뛰어 대는 가슴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무인의 흥을 일깨웠다.

그 격정 속에도 차가워진 머리는 마음에 전했다.

‘물러서면 진다.’

하나를 피해 물러서면 더 거세진 다음이 찾아오는 게 연환 공격. 그 중심에 올곧이 몸을 넣어야 흐름을 차단할 수 있다.

생각과 동시에 몸이 움직였다.

파팟!

홍이암의 눈가에 더할 수 없는 열기가 서렸다.

‘오너라.’

이미 예상한 움직임이다. 이제 중검의 묘리를 더해 거칠게 압도하는 강한 힘으로 찍어 눌러야 한다.

유성처럼 궤적을 그린 주먹이 휘둘러지는 순간, 홍이암의 도가 물결쳤다. 바람을 가른 도영이 공간을 점하려 밀려들었다.

쇄애액! 휘익!

강기 가득 두른 권이 격랑으로 물결치는 도격으로 향했다.

슈우욱! 콰쾅!

연달아 터진 파공성에 대기에 구멍이 났다. 대기를 찢어발긴 폭풍이 회오리를 만들었다.

불꽃같은 칼날이 간발의 차이로 몸을 휘감길 수십 차례, 도격의 파편에 무윤의 옷자락이 찢기고 피육엔 새빨간 선혈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물러섬은 없다. 일진광풍이 몰아치는 기의 비바람 속을 오연히 짓쳐 냈다.

광! 카앙! 쐐액! 콰쾅!

홍이암의 도강도 울부짖었다. 초극이 더해진 권강이 도격을 쳐 내도 연이어 다른 기운이 그 뒤를 맞섰다.

쿠웅! 콰쾅!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연사구의 가슴은 쿵쾅거렸다. 두려움과 흥분이 동시에 몰아닥쳤다.

‘저게 초고수의 싸움!’

검과 손이 너울댈 때마다 허공을 터트리는 진한 울림이 끝없이 이어진다.

무수한 도격 사이를 거침없이 누비는 자, 권강이 만들어 낸 거센 바람을 무참히 갈라 내는 자.

거칠 것이 없다. 물러섬이 없다. 살이 찢어지고 몰아치는 낙엽 바람에 선혈이 흩뿌려져도, 상대를 향해 피워 내는 불꽃은 점점 더 활활 타오른다.

오직 주인의 의지로 울부짖는 도와 권만이 넘치는 투기와 웅혼하고 패도적인 기세를 전한다.

다시 정신을 차린 선운은 벅찬 광휘의 탄성이 절로 입가에 흘렀다.

“하!”

저 밑에서 올라오는 벅찬 가슴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음을 알렸다. 시기와 질투가 왜 없을까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보고 싶을 뿐이다.

생사를 건 치열함과 무인의 투기, 그 자체가 격렬히 뿜어져 나오는 이 순간, 몰입하지 않으면 무인이 아니다.

가슴 한가득 밀려온 때늦은 후회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분노와 울분 또한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생의 마지막이 다가온 지금은 그저 느끼고 싶을 뿐이다. 간직하고 싶을 뿐이다.

무인으로 살기로 결심했던 그때, 그 꿈을 올곧이 보여 주는 모습엔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을 뿐이다.

어느새 딸려 든 흙바람이 사방으로 비산하자, 짙은 먼지구름이 둘 사이의 공간을 완전히 감춰 버렸다.

하지만 바라보는 연사구의 표정엔 불안과 초조함이 없다.

‘끝이야.’

그 흐릿한 잔영 속에서도 움직임의 차이가 서서히 드러났다. 허공을 누비는 주먹에 부서지는 도격의 파편도 그 수를 더해 갔다.

쾅! 카캉! 휘이익! 화라락!

그러던 어느 순간, 휘몰아치던 낙엽 바람이 서서히 하나둘 땅으로 내려앉았다.

사라락! 스르륵!

주먹에 머금어졌던 시퍼런 강기도, 폭풍을 불렀던 도격도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해처럼 그 빛을 감춰 버렸다.

툭!

“커억!”

몸을 주체하지 못한 홍이암의 무릎이 꺾였다.

털썩!

“하아!”

힘이 다한 무윤의 신형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울혈에 흘러내린 피가 홍이암의 앞섶을 검붉게 물들였다. 갈가리 찢긴 경장 사이로 기괴하게 꺾인 팔과 부서진 늑골이 튀어나왔다.

어느새 검은색으로 바뀐 입가의 선혈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렸다.

피거품 속에 허탈한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쿨럭! 하아! 쿠욱!”

연사구의 신형이 무윤에게로 향했다.

타다닥!

“괜찮아?”

“하아! 이게 괜찮아 보이냐?”

무윤의 몸을 살피던 연사구는 안도의 한숨을 흘려 냈다. 여기저기 선혈이 낭자하지만, 살을 파고든 상처는 깊지 않았다.

“겉은 괜찮은 거 같고. 속은 어때?”

무윤은 대답 대신 홍이암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복잡한 심사가 담긴 눈빛은 한동안 말문을 막아섰다.

연신 기침을 쏟아 내던 자의 입이 먼저 열렸다. 서서히 풀려 가는 눈은 멍하니 앞을 향했다. 가장 궁금한 게 있다.

“하아! 처음엔 감춘 것인가?”

초고수의 싸움에 작전은 있어도 눈속임은 어렵다. 한데 격전 중에도 무윤의 몸놀림과 기운은 아주 조금씩 그 깊이를 더했다. 미세했지만 그게 싸움의 승패를 갈랐다.

미미한 차이라도 기운이 다해 갈 때는 커다란 격차가 되니까.

무윤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대를 상대로 여유를 부릴 실력은 아니지.”

“하면?”

“어제 깨달음이 있었어. 내 무공은 중단전의 무학이라 몸이 근간인데, 생사의 사투 덕분에 조금씩 체득된 거지. 그대 덕이나 마찬가지야.”

홍이암의 입가에 씁쓰레한 미소가 흘렀다. 거짓이 아님은 직감했다.

“허허! 내가 날을 잘못 잡았군그래.”

“어제였다면 바뀌었을지도 모르지.”

홍이암은 허망함 가득 담은 한숨이 그대로 내뱉어졌다.

“허! 누굴 탓할까, 내 선택인 것을.”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도 될까?”

“답해 줄 건 많지 않네. 그래도 성심껏 주군을 모셨던지라.”

그가 답변할 수 있을 만한 걸 골랐다.

“날 아는 건 그쪽뿐인가?”

“난 혼자 움직이네. 무작정 온 것이라 걱정 안 해도 되네.”

“그 약, 두 군데만이 아니겠지?”

“아닌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네. 차이만 있을 뿐.”

“큰 차이일까?”

“우린 조금 앞섰을 뿐이네.”

“그쪽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곧 뿌려지겠군.”

“그럴 것이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남길 말이 있나?”

“……자네도 강호에 나서겠지?”

“정한 건 없는데 오늘처럼 자꾸 엮이네. 그럼 모르겠지.”

“그럼 혹 내 주군을 만날지 모르네. 전할지 여부는 자네가 판단하되 만약 상황이 된다면, 후회 없이 갔다고 전해 주시게. 이암이란 이름을 전하면 믿으실 걸세. 물론 자네가 그랬다는 말은 안 하는 게 좋겠지. 날 아끼신 분이니.”

“주군이라면?”

“웬만한 곳의 윗선들은 다 아니까 굳이 감출 것도 없네만, 길을 안 정했다면 지금은 모르는 게 낫겠지.”

“……!”

잠시 후.

떠난 사람을 뒤로하고 선운에게로 자리를 옮겼다.

무윤의 정황 설명이 대략 끝날 즈음.

선운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게 마단(魔丹)이었다니.’

복잡한 심사를 헤아릴 길 없지만, 그 또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가장 걱정되는 건 역시 사문인데 사실을 알릴 방법이 없다.

‘증거도 없고 흑도방주 말을 믿을 리 없지. 설사 믿는다 해도 사부께선 이들을 죽이려 들 것이고.’

부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때 무윤의 말문이 나직이 열렸다.

“사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아, 그랬었지! 뭔가? 말해 보게.”

“묘예라는 여인을 왜 찾습니까? 제가 아는 지인 같아서 묻는 겁니다.”

무윤의 설명이 끝나자 선운의 고민이 깊어졌다.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

‘딸일지도 몰라. 한데 사숙은 모르신다.’

딸을 낳자마자 어머니인 자경은 적만우라는 표두와 뇌양을 떠났다.

적만우는 형산의 속가 제자이자 건허의 오랜 친구.

속사정은 모르지만 두 사람은 아이를 가진 것부터 모든 사실을 숨긴 정황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당연한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이들에게 알려야 하나?’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사문의 안위를 걱정하다 바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건허 사숙이라면!’

선운은 조사한 내용을 사실대로 알리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조사한 건 이게 다일세. 한데 서신을 써 줄 테니 건허 사숙에게 몰래 전해 주면 안 되겠나? 이 일을 사심 없이 처리할 분이라 부탁하네.”

“서신이라면 알겠습니다. 대신 지금 전하는 건 일을 더 어렵게 만들 겁니다. 시기는 조율하겠습니다.”

“그러시게. 한데 딸 얘기는……. 일이 끝난 다음에 알려 드렸으면 하네. 사실이면 바로 그만둘 분이시라.”

“……!”

그렇게 또 한 사람이 떠나고 난 후.

“묘예한테는 어떡할 거야?”

“……알려 줘야지. 더 조사할지 모르는데.”

“그게 좋겠다. 그럼 서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줘 봤자 분란만 커질 텐데.”

“상황을 보다가 도움이 되면 주고 아니면 묻어야지.”

“……!”

깊고 무겁게 가라앉은 무윤의 시선이 저 먼 곳을 향했다.

어느새 어둠 뚫고 올라온 별 무리가 한가득 눈에 들어왔다.

저 수많은 별처럼 최근 며칠 사이에 정말 많은 일이 벌어졌다.

‘내게도 주변에도.’

문득 홍이암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네도 강호에 나서겠지?

정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조금씩 모인 물길은 이미 그리로 향하고 있음을 잘 안다. 자신의 의지에다 지금처럼 남이 터 준 부분이 더해진 결과.

그 길을 거부할 생각은 없다. 자신에게 닥칠 시련 또한.

하지만 주변의 아픔이 모인 물줄기가 차츰 늘어난다. 그게 겁이 난다. 천 년 전에 그런 물길에 몸을 실어 봤으니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아니까.

하지만 세월의 풍상이 알려 준 게 있다. 그래도 모인 강물은 바다로 향한다. 그 속에 뭐가 섞였건 간에.

자신도 흘러갈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

지금은 그 굽이굽이를 잘 헤쳐 가길 하늘에 바랄 뿐.

오늘따라 별 끝이 뾰족한 화살이 됐다. 그 빛 모아 우수수 쏟아져 가슴을 찔러 온다.

같은 시각, 호남 장사(長沙)의 서문가.

군사 서문신유의 보고가 이어졌다.

“당가와 제갈은 반박한다고 했고, 남궁과 팽가는 거론할 가치도 없다고 무시하겠답니다.”

가주 서문헌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 나오겠지. 여기 분위기는 어떤가?”

“장동백이 음약을 판 것과 건드린 여인들 내역까지 소상히 알렸습니다. 점차 잠잠해질 겁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소가주 서문백건은 격한 음성을 그대로 토해 냈다.

“아버님, 도대체 왜 이러신 겁니까? 이젠 소자도 알았으면 합니다.”

그로선 도저히 이해 못 할 상황이다. 몇 번을 물어도 나중에 알려 주겠다고만 했는데 더는 기다릴 수가 없다.

가주 서문헌의 시선이 아들 백건을 향했다. 이제 알려 줄 때가 됐다.

“궁금했겠지, 이 아비가 왜 그랬는지?”

“사야홀(私夜笏)이 장동백을 매수한 것도, 형산에 뇌호단을 뿌린 것도 왜 그냥 두신 겁니까? 가문이 곤경에 처할 게 빤한데도 그리하신 건 이유가 있을 터인데.”

“오랜 사정이 있느니라. 알려 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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