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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49화 (49/161)

49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설도승과 같은 약이야.’

무윤은 살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너무나 확연한 기운.

이러면 약의 공급자는 사도련이 확실해 보인다.

‘한두 군데 뿌린 게 아니겠지. 그만큼 약의 안정성에 자신이 있다는 거고.’

어쨌든 멸마단에 알릴 수도, 납득시킬 방법도 없다.

이제 그때보다 증가한 신기심의공 반응만 살피면 된다.

낭랑한 진언과 함께 은은한 기운이 풍세백을 향했다.

우우웅!

“다냐타 옴 아나레 비사제 비라 바아라 다리 반다반다니 바아라 바니반 호훔 다로웅박 사바하∼!”

풍세백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짙어졌다. 약을 준 곳은 물론 아버지와 자신 또한 검증했다.

‘큭큭! 염병하고 있네. 범패(梵唄), 범음(梵音)이야 수백 번도 더 시험했지. 그 정도도 안 해 보고 먹었겠냐. 이 멍청한 놈들아!’

불타(佛陀)의 공덕을 찬양하는 진언과 노래를 통틀어 범패, 범음이라 한다. 사마(邪魔)의 힘을 물리치고 마기(魔氣)를 뿌리 뽑는 이 근원을 이용한 음공은 여러 불가 문파에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림의 항마후(降魔吼)다.

한동안 어떤 반응도 못 느낀 풍세백의 짜증은 무윤을 향했다.

‘중도 아닌 새끼가 무슨 지랄이래?’

얼마 후, 그것도 지겨워져 오만 가지 잡생각만 떠올리던 즈음, 풍세백의 미간이 점점 더 조밀해졌다. 가볍게 여겼던 짜증이 조금씩 쌓여 가더니 어느 순간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든다.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리던 풍세백은 원인을 찾아냈다.

‘저 읊조리는 소리, 정말 거슬리네.’

화를 낼 자리가 아니다. 두 주먹을 꽉 쥐고는 속을 다스렸다.

‘참자. 하루 이틀만 견디면 된다.’

하지만 잠시 후, 그것도 힘들어졌다. 절로 비틀어진 입이 치민 화를 알릴 즈음, 다시 머리를 휘저었다.

‘아니지. 아직 약효가 남아 있어. 참자. 참으면 이긴다.’

그러다 문득 저 눈앞에 있는 년 때문에 끝을 못 낸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순간 야릇한 미소가 입가를 적셨다.

‘그래. 이럴 땐 야들야들한 속살 생각이 제격이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점차 거슬리던 소리가 작아지더니 쾌락의 흥분이 심장의 울림을 더해 갔다.

쿠웅! 쿵!

‘그래 이게 최고지! 암!’

어느새 진언의 울림이 멀어지며 야릇한 여인의 살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 희열에 가슴이 벌렁거리고 눈가엔 열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러길 한참, 진언이 점차 그 기운을 더해 갈 즈음, 자신도 모르게 절정의 환희에 가까워진 풍세백은 알지 못했다.

꽉 쥐었던 손이 풀린 것도, 헤벌쭉 벌어진 입도, 그 사이로 질질 흘러내리는 침도, 해롱해롱거리는 눈 사이로 슬며시 광기가 새어 나온 것도.

순간 좌중의 시선이 번득였다.

‘광기가 나왔다!’

정원의 심유한 눈도 빛을 발했다.

‘대불정 여래밀인이 광기를 끌어냈어.’

무윤이 반복해 읊는 건, 여인의 유혹에 넘어간 스님을 구하려고 불타께서 하셨다는 ‘대불정 여래밀인 제보살만행 수능엄신주’라는 진언이다.

풍세백은 색계를 범하지 않게 하는 범음을 계속 거부하고 피했다. 그러다 부지불식간에 속에 있던 본능을 열어젖혔고, 나갈 곳을 찾아 몸부림치던 마기는 옳다구나 그 틈 사이로 제 몸을 들이밀었다.

풍세백 스스로 마기를 끌어낸 셈이다.

그때 진언이 바뀌었다.

죄업을 참회하게 하는 지장보살 츰부 다라니로.

신기심의공 기운엔 큰 악업을 꾸짖는 준엄함이 담겼다.

“츰부츰부 츰츰부 아가셔츰부 바결랍츱부 암벌랍츰부 비러츰부 발절랍츰부∼.”

몽롱하게 홀린 듯했던 풍세백의 눈빛이 서서히 타올랐다. 눈동자엔 핏발이 돋아 오르고 무지막지한 핏빛 분노가 꾸짖음에 맞서 갔다.

며칠간 당했던 참을 수 없는 모멸감도 용암처럼 들끓었다. 감히 하찮은 계집 하나 건드렸다고 자신을 능멸하는 자들이 눈앞에 있다. 순간 자신을 쥐 잡듯 두들겨 팬 년, 당서하가 눈 가득 들어왔다.

들끓는 귀화가 뇌리를 쥐어뜯었다. 나서라고.

‘다 죽여 버린다!’

순간 흘릴 수 있는 가장 섬뜩한 미소가 절로 흘렀다. 넘실넘실 솟구치는 광기엔 진득한 살의가 뿜어져 나왔다.

“크르륵! 크륵!”

심연에 감춰 두었던 마기가 제 기운을 드러냈다.

좌중의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저, 정말 마인이오!”

“허! 저런 광기라니! 분명 마인이 맞소!”

“저런 마기를 숨겼을 줄이야!”

마인을 확인한 시선들이 다른 곳을 향했다.

“허! 진언만으로 마기를 끌어내다니! 정말 대단하구려.”

“불심이 얼마나 깊은 자이기에!”

“그러게 말이오. 항마후도 그러질 못하거늘!”

“한데 저자는 누구기에 저런 범음을 낸단 말이오?”

“처음 보는 자요.”

“불가의 인물 같진 않은데.”

“저놈부터 처리하고 물어봅시다.”

모두의 놀람이 자신을 향한 그 순간, 무윤의 눈도 세차게 떨려 왔다. 신기심의공이 알렸다.

‘또 있다!’

뒷골을 시린 후 뇌리를 타고 오르는 싸한 기운. 한데 풍세백의 것이 아니다. 미세하지만 분명 묘한 차이가 있고 방향도 등 뒤다.

슬며시 뒤를 살피던 시야가 한 곳에 고정됐다. 의아했던 시선은 점차 확신에 찬 눈빛을 뿜어냈다.

‘저자야.’

수군거리는 소란에 어느새 들어온 형산파 무인들. 그중 멋들어진 흰 수염을 휘날리는 자.

한데 또 다른 의아함이 뇌리를 때렸다.

‘저잔 아까 들어왔는데?’

분명 진언을 시작할 때쯤 들어온 자다. 신기심의공을 운용한 뒤라 이 정도 거리에선 그 기운을 놓칠 리 없다.

한데 어느 순간 갑자기 밀어닥치다니.

바로 몇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마기에 반응했거나, 탄식 중에 저도 몰래 흘렸을 거야.’

곧바로 따라오는 의문.

‘누구지?’

동시에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적을 알려면 나를 감추는 게 좋다.

일어나는 순간 몸을 휘청거렸다.

휘익!

대주 정원이 뛰어왔다.

타닥!

“자네 괜찮은가?”

“몸이…….”

“허! 무리한 게로군. 내 거처로 가세나.”

“예.”

잠시 후, 대주 정원의 천막.

“형산파 장로라고요?”

“그러네. 건천이라는 분일세. 형산파 외부 일을 도맡아 하는 분이시지. 한데 왜 그러는가?”

“아, 아닙니다. 기운이 남다르다 했는데 역시 장로셨군요.”

대주 정원은 흡족한 웃음을 그대로 흘렸다.

“허허! 그나저나 정말 고맙네. 이제야 하는 말이네만 밝히지 못했다면 우린 곤경에 처할 뻔했었네.”

부대주 팽중호가 솔직하게 털어놨다.

“중징계가 불가피했는데 다 자네 덕일세.”

당서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대주에게 뭘 요구할 때마다 하는 습관이다.

“대주님, 제가 데리고 온 거 아시죠?”

“이 사람! 이참에도 술타령인가? 허허! 알았네. 침주로 가면 그리하지.”

“이번엔 많이 사셔야 해요.”

“알았네.”

무윤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알려야 할 일이다.

“마기가 골수에 미친 게 아니라서 금방 사라질 겁니다. 데리고 가셔도 다시 끄집어내기는…….”

대주 정원의 눈이 깊어졌다. 소림의 무승인 그라 대략 짐작 가는 게 있다. 무윤이 어떻게 했는지.

“그리 보이더군. 자네 말대로 가서도 어려울 것이고.”

부대주 팽중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압송은 어렵다는 말씀입니까?”

대주 정원도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이쯤에서 접는 게 좋겠네. 나야 상관없지만 자네들까지 다치게 할 순 없지. 그자 또한 풀어놓고 살피는 게 낫겠어.”

팽중호의 시선은 당연히 무윤을 향했다.

“차후엔 자네도 어려운가?”

“일시적인 마기 같아서 점차 사라질 겁니다. 이번엔 운이 좋았고 또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

약을 알릴 수 없으니 둘러댈 수밖에 없다.

무윤도 예측 못한 상황이라 우선 부탁할 게 있다.

“대주님. 제 신분은 감춰 주셨으면 합니다.”

정원은 안타까운 눈빛을 그대로 흘렸다. 왜 그러는지 아니까.

“허! 그것참! 전부 자네 공이거늘. 한데 밝히면 자네만 곤란해지겠어. 월검문에다 다른 사파까지 가만있지 않겠지.”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휴! 어쩔 수 없지. 그리하세. 대신 도와준 은혜는 차후에 꼭 갚음세.”

무윤은 눈을 빛냈다.

“그 말씀 기억하겠습니다.”

“허허! 그러시게. 내 딴 건 몰라도 약속은 잘 지키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때 당서하가 껴들었다.

“참! 나한테 부탁할 거 있다며?”

“언제 시내로 오실 겁니까?”

“뭐 이렇게 결정됐으니 여기 있을 필요 없어. 저녁쯤에 가야지.”

“그럼 시내에서 뵙죠. 찾아가겠습니다.”

“그래.”

무윤이 조용히 떠나고 얼마 후.

멸마단 삼대 조장 반고헌은 슬며시 말을 꺼냈다.

“저 대주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말해 보시게.”

“전 방주란 자를 의심하진 않습니다. 진언엔 저 또한 마음이 울렸으니까요. 한데 범음(梵音)만으로 마기를 찾아냈다는 건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데…….”

대원 모두의 시선이 정원을 향했다. 같은 생각이니까.

대주 정원의 눈이 깊어졌다.

“나도 그리 생각하네. 분명 다른 기운이 있겠지.”

“그게 뭔지?”

“내가 어찌 알겠나. 하나 느껴지는 건 있었네. 마치 말하듯이 풍세백 그자의 심기를 건드렸어. 살살 꼬드겨서 욱하게 했다고 할까.”

“그럼 다른 마인에겐?”

“방주도 마인 둘밖에 못 만나 봤네. 더 경험이 쌓여야 알 수 있겠지. 물론 우리 또한.”

“……!”

그때 당서하의 미간이 좁혀졌다.

‘말할까?’

무윤과 약속을 벗어나지 않는 선. 침주 사람들이 다 아는 정도까지는 알려도 된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지금은 괜한 분란만 만들지.’

나중에 말해도 된다. 속이는 건 아니니까.

뇌양 외곽의 산 어귀.

“야! 어떻게 한 거야?”

“뭐?”

“마인 찾아낸 거.”

“운이 좋았다. 놈이 당 조장을 보고 흥분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야. 진언만으론 쉽지 않았어.”

연사구도 무윤의 기운을 어렴풋이는 안다.

“그래? 근데 그놈 참 이상하네. 광기가 사라진다니.”

“설도승하고 같은 약이야. 그래서 약효가 사라지는 거고.”

연사구의 눈이 커다래졌다. 바로 떠오르는 확신.

“……그럼 사도련 짓이 확실하네?”

“그렇게 봐야지.”

“……!”

연사구의 표정도 오랜만에 심각해졌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그의 혈족은 호남 도처에 흩어져 있다. 장사엔 아버지, 침주엔 작은 숙부, 그리고 형주엔 큰 숙부, 그 외에도 서너 곳이 더 있다.

‘어떻게든 알리긴 해야 할 텐데.’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다. 아직 무윤을 알릴 순 없으니.

하지만 그답게 답은 쉽게 나왔다.

‘침주부터 해결하고 보자. 그다음에.’

무윤의 고민 또한 깊어져 갔다. 생각지 않은 일이 더해졌다.

‘형산파라!’

장로 건천이란 자의 기운은 같으면서도 또 달랐다.

‘정제되지 않은 느낌. 딱 그건데.’

설도승이나 서문가 무인의 기운은 여기에 비하면 환각 성분을 많이 덜어 냈다. 그렇지 않다는 건 곧 부작용과 위험성이 크다는 뜻.

‘공야의숙 것이 아닌가?’

지금으로선 더 분석할 게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가문 천가장의 일은 더 복잡해졌다.

무윤의 시선은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도시로 향했다.

‘뇌양(耒陽)!’

호남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형주(衡州)에서 동남쪽으로 백오십 리 떨어진 곳.

호남의 수십 개, 그저 그런 소도시 중 하나가 뇌양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형산파(衡山派) 영향력 안에 있고.

그게 무윤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문파의 핵심인 장로란 자가 그런 위험한 약을 먹었다.

북쪽 서문가는 그렇다 쳐도, 남쪽의 일개 사파인 적운문도 정제된 약이다. 한데 호남의 두 번째 정파무가가 그런 약이라니.

‘이용당하는 걸 수도 있어. 누구 짓인지 모르지만.’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형산파에 문제가 생기면.

‘뇌양도 여파가 미치지.’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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