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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48화 (48/161)

48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어떻게?’

당서하의 떨리는 눈은 무윤을 향했다. 남아 있던 자의 목도 순식간에 떨어뜨리고 돌아서는 이를.

‘초절정 둘을 단숨에 처리했어.’

침주를 떠나기 전 무윤의 경지는 잘해야 절정 중반으로 짐작했다. 한데 몇 달 사이에 너무나 달라진 모습.

지금 물을 자는 눈앞에 있는 놈뿐이다.

“방주는 ……어떻게 된 거지?”

연사구는 떨떠름한 목소리가 절로 나왔다. 매번 두들겨 팬 놈을 치켜세우는 건 짜증이다.

“뭐가요? 실력?”

“그래.”

“원래 저런 놈이에요. 그쪽이 몰랐던 거지.”

“……넌 누구지?”

“침주 하오문 당주인데요.”

“근데 방주 실력을 어떻게 알지?”

“저 새끼한테 삼 년 동안 얻어터진 게 수백 번이에요. 모르면 바보죠.”

“왜 숨겼지?”

“묻기나 했어요? 이제 침주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다 안다고?”

“아! 물론 저 경지까지는 아니고. 하여간 그럴 일이 있었어요.”

“……?”

일을 끝내고 온 무윤은 바로 물을 게 있다.

“다른 대원은 어디 있습니까? 왜 혼자?”

묻고 싶은 건 당서하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궁금하다.

“너……. 뭐야?”

“뭐가요?”

“저자들 초절정이잖아.”

의아한 무윤의 시선이 연사구를 향했다.

“쓸데없는 소리만 떠들어 댔냐?”

“……!”

잠시 서로 간에 개략적인 설명이 오고 갔다.

한동안 멍했던 당서하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참! 뇌양으로 간다고 했지?”

“예.”

“잘됐다. 대원들도 거기서 만나기로 했어. 같이 가자.”

“그분들은 괜찮습니까?”

“놈들은 쪽수만 많을 뿐이라 따라잡히진 않아. 뇌양까지만 가면 안전해. 미리 형산파에 전서를 보내서 거기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알겠습니다. 가시죠.”

얼마 후.

침주를 완전히 벗어날 무렵, 당서하는 슬며시 말을 꺼냈다. 대략 들었지만 물어볼 게 너무나 많다.

“그 진경을 전해 준 분께 배웠다고?”

“예. 사정이 있어서 그동안 감췄습니다.”

“……물어도 돼?”

무윤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뇌양에서 멸마단을 만나면?’

당초엔 멸마단과 같이 가서 마인이 아닌 걸 밝힐 생각이었다. 이들이 오지 않아서 이번엔 살피려고만 했던 거고.

한데 이러면 생각이 달라진다.

우선 그녀에겐 적당히 알릴 필요가 있다. 믿을 만한 여인이니까.

“뇌양에 제 본가가 있습니다.”

“응? 그래? 근데 왜 침주에 있었어?”

“문제가 있어서 그랬는데 이번에 해결할까 합니다.”

“어떤 건데?”

“상황 보고 말씀드리죠. 근데 부탁할 게 있을지 모르겠네요.”

“나한테?”

“예.”

당서하는 흐뭇한 미소가 절로 올라왔다.

“나야 빚 갚을 일이 빨리 생기면 좋지. 뭐든 말해, 생명의 은인 부탁인데 뭐든 도울 테니까.”

“부담 갈 일은 아닐 겁니다.”

당서하는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그럼 더 좋고. 참! 서연이는 다녀갔어?”

“예. 잘 마무리됐고 오늘 떠났습니다.”

“오늘? 그럼 같이……. 아! 이런 내가 뭔 소릴! 하여간 잘됐다니 다행이네.”

무윤은 부탁할 게 남았다.

“대원들을 만나면 아까 일은…….”

“감춰 달라고?”

“전 흑도니까요.”

“알았어. 혹 말할 일이 생기면 먼저 물어볼게.”

“예. 부탁드립니다.”

여인의 눈빛은 새로운 호기심을 담아 반짝거렸다.

무윤의 나이는 대략 삼십 대 초반으로 알고 있다.

‘그 나이에 초절정 중반이라니?’

연사구가 떠들어 댄 대로, 내외공을 섞었다 해도 강호의 상식 밖이다. 가문인 당가, 아니 정파는 물론 강호를 통틀어도 비슷한 자가 잘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런 자가 흑도방주라! 사연이 있어.’

당서하는 머리를 휘휘 내저었다. 매사 털털한 그녀 또한 일을 단순화시키는 성격이다. 연사구처럼.

‘알아보면 되지.’

그렇게 세 사람의 동행이 시작됐다.

비슷한 두 사람이 연신 떠들어 대는 동안, 무윤의 눈은 더 깊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직도 마음의 결정을 못 내린 탓이다.

가족에 대해서.

가는 내내 옅은 한숨과 함께 허공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데 같이 가는 둘 때문에 짓게 되는 싱그러운 미소도 늘어났다. 티격태격하다가도 어느 순간 깔깔대는 두 사람.

하루가 지나자마자 그렇게 됐다.

“풋! 오 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기다린다고? 웃기고 있네.”

“아! 정말! 유빈이는 그런 애라니까요!”

“야! 남자들 눈은 다 똑같아. 네 말대로 그렇게 예쁘면 남자들이 가만뒀겠냐?”

“아우 씨! 정말이라니까! 못 믿겠으면 같이 장사(長沙)에 가 보면 되잖아요!”

“그래! 가자. 우린 어차피 거기 들를 거니까.”

“말했잖아요! 지금은 못 간다고!”

“그러니까 왜?”

“그런 게 있어요. 하여간 침주 일 해결하면 바로 갈 거예요.”

“이 새끼 정말 멍청하네. 야 인마! 혼인하고 싶다며? 그러다 늦으면 어쩌려고?”

“기다려 줄 거예요.”

“하! 병신 육갑하고 자빠졌네. 여자는 말이야. 눈에 안 보이면 마음도 멀어져. 있을 때랑 달라. 같은 여자 말을 믿으라니까.”

“……그쪽 여자로 안 보이는데.”

“이 새끼가 정말! 야! 나도 애인 있는 여자야!”

“좀 심했나? 그래요 있다고 해 줄게요.”

“……너 정말 뒈져 볼래?

“이거 왜 이래요! 나 신룡이랑 맞먹은 무인이라니까!”

“그 헛소린 이제 그만하지?”

“참내! 물어봐요. 저 새끼한테.”

당서하의 시선이 무윤을 향했다.

“정말이야?”

“모릅니다. 못 봤으니까요.”

바로 무윤의 귓가에 욕지기가 날아들었다.

“야! 이 개새끼야! 너 똑바로 말 안 해!”

“내가 봤냐? 싸우는 것도, 남궁사현이란 놈도?”

“……!”

매번 이런 식이다.

저들이라고 고민과 걱정이 없을 리 없다.

유빈이란 여인을 연사구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고 싶어 하는지도 안다. 이번 여정에 같이 가 주겠다고 했는데 본인이 거절했다. 침주 일 해결하고 가겠다고.

그런 일들을 농에 섞어 슬며시 드러내면서 속을 풀어낸다.

무윤에게는 아직도 어려운 일이다.

문득 저들의 삐죽거리는 입이 오늘따라 달리 보인다.

웬만한 걱정이나 시름 정도는 스스로를 묻어갈 미소로.

무윤의 눈엔 세상 다 가진 듯 밝은 미소로 보인다.

그 덕에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다른 걸 잊었다. 그 미소가 가슴 가득 꽂혀 드니까.

그래서 꼭 있어야 할 존재인 모양이다. 친구란 이들은.

오늘도 저들의 투정은 가슴 멍울을 조금이나마 씻어 내리는 빗줄기다.

그 청량함이 옮겨 온다.

며칠 후, 뇌양 인근의 산속.

형산파, 형주 무림맹 지부, 멸마단 삼대의 숙영지.

“대주, 이번 일은 신중하지 못했소.”

형주 무림맹 지부장, 남일도는 그리 말할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그랬으니까.

형산파 장로 건천의 고개도 슬며시 끄덕여졌다.

“나 또한 입장이 그렇구려. 아무리 살펴도 마기는 찾지 못하겠으니.”

두 사람을 마주한 대주 정원의 눈빛엔 한 점 흔들림도 없었다.

“그때는 확실했습니다. 제 사문을 걸고 맹세하지요.”

“하나 보고할 내 입장에선 지금 입증할 사실이 있어야 하오. 한데 보시오. 대주 또한 지금은 못 밝히지 않소이까?”

“더 개량된 마공 같소이다. 해서 본부로 데리고 가서 확인해야 합니다.”

지부장 남일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잔 월검문 소문주요. 광동 북부 최고 사파의 장손인데 만약 아니면? 뒷감당할 수 있으리라 보오?”

“책임은 제가 져야지요.”

“이보시오 대주. 일이 틀어지면 월검문은 물론 사도련도 나설 게요. 그땐 대주 사문은 물론 무림맹까지 싸잡아 공격하겠지요. 이 일의 여파가 어디까지 갈지 아직도 모르시겠소?”

“이곳의 책임자는 지부장이시니 어떤 결정을 하건 따르지요. 하나 제 확신은 변함이 없소이다.”

그때 형산파 장로 건천이 슬며시 나섰다.

“이렇게 하십시다. 그자가 겁간하려던 증좌는 확실하니 관아에 넘기는 게 최선 같소. 여인 또한 무사하니 가벼운 처분만 내릴 터. 그럼 월검문도 가만있을 게요.”

지부장 남일도의 단호한 음성이 흘렀다.

“나 또한 그리 생각하오. 오늘까지 살펴보고 이상이 없으면 그리 결정하겠소. 또한 대주와 삼대는 상부의 지시가 올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오. 이건 명령이오.”

“…….”

같은 시각, 멸마단 숙영지.

부대주 팽중호의 환한 미소가 한 여인을 향했다. 며칠 가슴 졸였는데 뛰어오는 모습 어디에도 어색함이 없다.

‘다행이야.’

바로 달려온 당서하의 말문이 열렸다.

“다들 괜찮으신 거죠?”

“그래. 너도 별일 없었고?”

“월검문에서 쫓아오긴 했는데 잘 넘겼어요.”

“그래? 다행이구나.”

“대주님은요?”

“회의 중인데 잠깐 인사는 드리자. 걱정이 많으셨어.”

“알겠어요. 근데 일행이 있어요. 같이 오긴 그래서 저 먼저 올라왔는데.”

“……?”

잠시 후, 대주 정원의 천막.

“허허! 자네를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 반가우이.”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얘기는 들었네. 뇌양에 볼일이 있다고?”

“예. 인사드리려고 잠시 들렀습니다.”

“잘했네.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혹 더 알아본 게 있는가?”

“진언이 효과가 있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대주 정원의 눈이 반짝였다.

“어느 정도 같은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 후론 마인을 접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때 당서하가 껴들었다.

“대주님. 잡은 그놈 확인해 보면 어때요?”

정원의 깊은 한숨에 지금 걱정이 담겼다.

“해 보는 거야 어렵지 않지. 한데 문제가 좀 생겼네.”

“어떤?”

“분명 그때는 마인이라 여겼네. 한데 지금은 나는 물론이고 형산파 장로도 판정하지 못했어.”

당서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때는 분명 광기가 있었는데?”

“그랬지. 한데 갈수록 사라지더니 지금은 제정신으로 보인다네. 이러면 겁간한 죄만 묻는 수밖에 없어.”

당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풍세백을 잡은 게 자신이다. 그때의 광기는 숱한 경험을 다시 되짚어도 확실한 마인의 것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대주 정원의 시선이 무윤을 향했다. 밑져야 본전이다.

“그래도 해 보겠나?”

“그러죠. 저도 더 알아보고 싶습니다.”

무윤의 눈이 깊어졌다.

‘광기가 사라진다?’

본능이 이성을 잠식한 혼마의 단계, 그 이후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잠시 그랬고 서서히 사라진다는 건.

‘그 약 같은데.’

설도승과 서문가 무인이 먹었던 약.

이제 살펴보면 알 일이다. 그 다음 어떻게 할지도.

“또 알아볼 게 남았습니까?”

“잠시만 살펴보겠네.”

광동 소주(韶州)의 월검문 소문주, 풍세백은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론 코웃음이 쳐졌다.

‘아무리 찾아봐라. 뭐가 나오나.’

약효는 보통 보름 정도 간다. 아버지 경고를 무시하고 세 배를 동시에 먹은 건, 떠오를락 말락 하는 영감 때문이었다. 그때 확 올라온 색욕 탓에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가지만 않았어도.

‘하필 그년이 거기 있을 게 뭐람.’

그년이란 둘 다다. 겁간하던 여인과 거기에 나타난 당서하.

풍세백은 팔을 툭 내밀었다. 예의 차가운 미소와 함께 독설을 쏟아 냈다.

“또 해 보시죠. 비록 제가 술김에 실수했다고 하나, 엄연히 사파 가문의 장자입니다. 처벌 또한 소주 관아에서 할 일인데 무림맹이 나서다니요. 돌아가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규율과 법도에 따라 처결한 뿐이네.”

“아! 됐습니다. 빨리 하고 나가 주시죠. 이번엔 뭡니까?”

“가만있으면 되네.”

“……?”

무윤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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