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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45화 (45/161)

45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며칠 후, 침주 하오문.

툭!

묵직한 전낭 소리가 탁자에 울렸다.

“전부 은자다.”

“……!”

조장 진여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절로 침이 꿀꺽 삼켜질 만한 무게.

이럴 땐 티 나게 입을 쫙 벌려 줘야 한다.

“하하! 잘 오셨소. 오면서 소문 들었을 게요. 우리 침주 하오문은 다른 데와 비교가 안 된다는 걸. 오랜 전통에다 실력, 인원까지…….”

사내는 말을 끊었다.

“정보만 확실하면 돼.”

“그래, 뭘 알고 싶어서 오셨소?”

“보타문에서 온 여인이 두 달 전에 여길 왔다. 여기 있는지, 떠났는지 행적을 알고 싶다. 또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진여락은 눈을 껌벅였다. 우선 모르는 일.

“바로 알아보겠소. 어디 묵을 게요?”

“모르는군.”

“걱정 붙들어 매시오. 오늘 안에 갖다드릴 테니.”

우선 질러야 한다. 없으면 다른 핑계로 시간 끌면 될 일이고.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운객잔에 있겠다.”

“알겠소. 금방 갖다드리리다.”

“그리고 청호방이 어디에 있지?”

순간 진여락의 미간이 좁혀졌다. 느껴지는 기세가 범상치 않은 자. 청호방 일이라면 슬쩍이라도 물어야 한다.

“거긴 왜 찾소?”

“돈 받기 싫은가?”

“……!”

우선 돈은 받고 봐야 한다.

얼마 후, 사내가 나가자 진여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대로 알려 줄 걸 그랬나?’

큰 손님이라 넌지시 알려 주기는 했다. 청호방에 가서 조심하라고. 듣는 둥 마는 둥 한 거야 알 바 아니지만.

‘그나저나 보고는 해야지.’

연사구에게 알리는 건 필수다. 안 그러다 뒈지게 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반 시진 후, 청호방 정문.

경비 조장 곽양은 눈을 부라렸다.

“거참! 좋게 말할 때 가라. 더 나불대다 어디 하나 부러지지 말고.”

“시비 걸러 온 게 아니다. 만나기만 하면 된다.”

“야! 몇 번을 말해! 여긴 흑도방파야. 너 흑도가 어떤 곳인지 몰라?”

“잘 알지.”

“근데 이런데 기녀가 살겠어? 잠시 왔다 가면 몰라도.”

“안에 물어봐라. 난 그렇게 들었다.”

“하!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그때 지나가던 염중탁이 껴들었다. 기녀라는 말, 그리고 상대에게서 풍기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이 그리 만들었다.

“누구냐?”

남궁사현은 씁쓸한 미소가 절로 흘렀다. 작은 후회 때문이다.

‘조용히 들어갈 걸 그랬나.’

어쨌든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 용건부터 밝혔다.

“유선이란 기녀를 찾아왔다. 물어볼 게 있을 뿐 다른 용무는 없어.”

순간 염중탁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떻게 알았지?’

유선이 여기 있었던 건 청호방에서 네 의남매밖에 모른다.

거기에 진서연에 대해선 적묘예만 안다. 밖에 출입하지 않는 그녀에게 필요한 걸 갖다주다가, 동갑내기인 둘이 친해진 것도.

조용한 데로 끌고 갈까 하던 염중탁의 몸이 움찔거렸다. 일 년 전 절정을 넘은 무인의 직감이 알리는 경고다.

‘보통 놈이 아닌데.’

우선 묻기로 했다.

“누군지부터 밝히지?”

남궁사현은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다. 행적이 알려져서 좋을 게 없으니까. 자신은 물론, 마음에 가득 담은 진서연도.

특히 그런 그녀가 이런 흑도와 자그마한 소문이라도 나는 건 자신이 용납할 수가 없다.

내력을 더해 나직이 말을 흘렸다.

“내가 누군지 알면 너희도 곤란해져. 그냥 안내만 해 주면 된다.”

이게 안 통하면 그다음은 말이 필요 없다. 어차피 입단속차 방주에게 하려던 걸 대상을 넓히면 그만이다.

염중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부하들이 다 있는 자리. 평소 성질치고 이 정도면 많이 참았다.

‘조지고 본다.’

굳게 마음먹은 신형이 바로 대지를 박찼다.

파박!

절정은 넘은 이후 밖에서는 거칠 것이 없던 주먹이다. 놈의 어깨와 몸통을 향해 쭉 내지르는 순간, 한 줄기 바람이 귓가에 전율을 불렀다.

쉬이익!

염중탁의 눈이 부릅떠졌다.

‘손이 안 보여!

직감이 뒤통수를 짜르르하게 했다. 연사구나 방주에게서 느꼈던 것 그대로다. 아니 전신에 소름 끼치는 살기만큼은 그 이상이다.

찌릿한 전율에도 욕은 터져 나왔다.

“이런 시팔!”

무심한 놈의 얼굴이 오히려 웃어 대는 악귀같이 느껴진다.

마주쳐 갈 생각은 이미 버렸다. 몸을 뒤로 날려 황급히 방어 자세를 취했다.

쉬익!

순간 우직하고 강력한 권격이 옆구리를 쓸었다.

슈욱! 퍽!

“크윽!”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급히 숙여 요혈은 피했지만 속까지 저린 충격. 허리와 무릎까지 흔들렸다.

‘강자!’

본능이 몸을 움직였다. 피할 곳은 땅바닥밖에 없다. 땅에 몸을 던진 그대로 옆으로 굴러 댔다.

타닥! 파파팍!

순간 등 언저리에 울린 둔탁한 충격.

퍼억!

“커억!”

엄청난 격통에 눈이 멍해졌다. 무심한 말이 귓전을 울렸다.

“흑도란 놈들은 어디나 똑같지. 꼭 손을 써야 말귀를 알아먹거든.”

염중탁의 목 뒤를 발로 짓누른 채 남궁사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섬뜩한 미소를 입가에 가득 담았다.

“안 올 건가?”

경직된 모두의 시선이 파르르 떨리기만 했다.

“…….”

“이럴 때 다른 덴 떼거리로 달려오던데. 여긴 아닌가?”

“……이, 이 새끼가 정말!”

남궁사현은 손을 까닥거렸다.

“그래. 그래야 흑도지. 빨리 오라고.”

그때 대답은 밖에서 들렸다.

“어디서 개 뼈다귀 같은 놈이 나대고 지랄이야! 확 눈에서 먹물을 뽑아 버릴까 보다!”

파팟!

공기를 가르는 굉음이 검 끝에서 울렸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검격이 남궁사현의 몸을 쪼개 버릴 듯 날아들었다.

쇄애액!

순간 유유히 몸을 돌리던 남궁사현의 표정이 돌변했다. 얼굴이 우뚝 굳어졌다.

‘이건!’

생각과 동시에 폭풍 같은 기세가 터져 나왔다.

우우웅!

흰빛을 담아 허공을 가르는 섬전 같은 검격, 그 강맹함엔 그래야 했다.

동시에 땅을 박찬 신형이 화살처럼 튕겨 나갔다. 온몸의 털을 바짝 세우는 살기가 알려 줬다. 적당히 상대할 자가 아님을.

파팟!

맞서 달려가는 남궁사현의 검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짧게 울리는 칼바람 소리에 서늘한 예기가 뿜어졌다.

사아악!

가히 바위를 가를만한 힘이 실린 검격. 검극에서 뻗어 나온 검기가 상대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연사구의 비릿한 웃음이 입을 비틀었다. 인정할 건 하는 성격이다.

“입만 산 새끼는 아니네.”

남궁사현의 검은 단호하고 망설임이 없었다. 멸마단에서의 오랜 실전 감각, 그 경험이 그대로 묻어난 검이 공간을 헤집었다.

샤아악! 쉬이익!

서릿발 같은 검기가 줄기줄기 뿌려지는 순간.

연사구의 검에도 시퍼런 기운이 솟구쳤다. 대기의 흐름도 거세게 요동치며 파도쳤다.

쇄애액!

순간 남궁사현의 눈 가득 놀람이 서렸다.

‘검기가 두 치!’

최소 절정 상임을 알리는 경지다. 순간 하오문 조장 마영개가 등 뒤에 흘렸던 말이 떠올랐다.

-혹 청호방에 가면 힘자랑하지 마시오.

-……무슨 의미지.

-거기 방주가 좀 한단 소리요. 못 믿겠으면 아무나 잡고 물어보든가. 침주 사람이면 다 아니까.

피식 웃음과 함께 스쳐 들었던 말이 헛소리가 아니다.

남궁사현의 눈매가 한차례 꿈틀거렸다.

‘청호방주!’

무인으로서 전력을 다할 상대. 그런 자를 향해 이글거리는 눈빛은 당연했다.

한데 그 안엔 불쾌함에 더해 가볍지 않은 적의까지 담겼다. 사정은 자세히 모르지만.

‘서연이를 아프게 하는 놈은 절대 가만두지 않아.’

남궁사현은 눈 가득 터져 나오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절강에서 들은 얘기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연과 가장 친한 동생 은위경이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말.

-언니는 여기 없어요.

-없다니? 소검후 경쟁에 안 나서더라도 참석은 의무 아니냐? 그래서 멸마단에 보고하고 여기로 간 건데.

-사문에 보고하고 어디 갔어요.

-어디?

-더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여기 없다는 것밖에는.

-그럼 어디 갔는지는 알려 다오.

-부대주님. 언니는 일이 끝나면 멸마단으로 복귀해요. 그때 만나시면 되잖아요.

남궁사현은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다. 급박한 마음에 에둘러 상황을 알렸다.

-위경아. 난 지금 아니면 어려울지 몰라. 바로 만나야 한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멸마단을 그만두시나요?

-사정이 좀 있다. 어쨌든 사실이다. 넌 알지 않느냐? 내가 서연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은위경 또한 잘 안다. 세 사람은 멸마단 같은 대에서 생활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대략 알리기로 했다. 부대주인 남궁사현의 말이 진심임을 알기에 내린 결정이다.

-언니는 침주에 갔어요.

-거긴 왜?

-우연치 않게 벌어진 일이 있는데 언니는 그걸 사과하러 갔어요.

-사과? 서연이가 뭘 잘못했단 말이냐?

-어찌 보면 별일 아닌데 언니는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간 거고.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지?

-침주에 청호방이라고 있는데 거기 유선이란 기녀가 있어요. 그녀를 찾아가시면 돼요.

-청호방? 혹시 흑도?

은위경은 노파심에 당부했다.

-맞아요. 근데 그쪽도 잘못한 건 없어요. 서로 일이 꼬였을 뿐이니까.

-……?

그래서 찾아온 길.

한데 자신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마인에게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 그 흔적이 없어지기 전에 빨리 쫓아야 한다.

모든 일에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제압하고 본다.’

여기 사정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남궁사현이 봐 온 흑도 파락호는 다 거기서 거기. 여기라고 다를 리 없다.

그 결의에 솟구친 기운이 뿜어 나와 검기의 크기를 키웠다.

우우웅!

연사구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야! 이 새끼!’

근 세 치에 가까운 시퍼런 검기. 자신도 모든 걸 꺼내야 가능한 수준이다.

조장 마영개에게 보고를 받고는 혹시나 해서 달려온 길인데.

연사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시팔! 어디 해보자고!

이를 악다물 수밖에 없다. 이젠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서 용을 써야 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대니까. 물론 그런 놈이라고 물러설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두 개의 시퍼런 기운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콰쾅! 콰앙!

귀청을 찢는 폭발과 함께 부서진 기의 파편이 사방으로 난무했다.

파팟! 파파팍!

검과 검이 어우러질 때마다 근원을 떠난 불꽃처럼 잘린 기파가 허공에 아스러졌다.

그러길 수십 합.

방내의 모든 이들이 다 몰려나왔다.

상황을 파악한 악무길의 시선이 적묘예를 향했다.

방주가 없는 상황.

“혹시 모르니 알리는 게 좋겠다.”

“예.”

적묘예의 신형이 담 너머를 향했다. 진서연에게로.

쉬익!

한 치의 물러섬 없는 공방은 계속됐다.

먼지 속에 뒤엉킨 두 사람의 돌진은 끝없이 주변을 휘감았다.

검신에 비춰진 빛이 번적일 때마다 대지가 울리고 주변은 들썩거렸다.

남궁사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십여 년 사선을 넘나들었던 멸마단의 경험이 알렸다.

‘이대론 안 된다.’

이 상황이면 수십 초를 더 겨뤄도 어찌 될지 모른다.

남궁사현은 결국 가문의 절초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상대 또한 그럴 표정이다.

양쪽 다 전력을 다한 기운이 그 위세를 드러낼 찰나.

쾌속한 신형 하나가 날아들었다.

쉬익!

젊은 여인의 고성에 웅혼한 내력이 담겼다.

“그만! 멈춰요!”

“……?”

순간 죽일 듯 달려들던 두 신형이 동시에 멈춰 버렸다.

타탁!

서로를 노려보던 시선이 한순간 멍해졌다.

남궁사현의 의아한 입이 먼저 열렸다.

“서연아?”

점점 더 매섭게 꿈틀거린 여인의 시선이 두 남자를 번 갈았다.

“둘 다 뭐 하는 거예요? 지금!”

불안한 얼굴에서 동시에 대답이 터져 나왔다.

“이자가…….”

“이놈이…….”

진서연의 입에서 커다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안 봐도 빤한 상황.

“휴! 자리부터 옮기죠.”

“……!”

어정쩡한 몸짓의 두 남자가 한 여인을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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