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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44화 (44/161)

44화

천마라 불린 내 친구

무윤 또한 머릿속은 복잡했다.

쓰러진 내내 살핀 덕에 이상한 기운이 뭔지 대략 감은 왔다. 머리 꼭대기 백회혈(百会穴)에서 흘러나온다.

‘상단전 기운. 그래서 몰랐던 거야.’

과거 무륜 시절에 상단전 기운은 접하지 못했다. 여휘가 상단전을 열었을 때는 몸이 허약해져 감지할 수 없었으니까.

몸의 전율을 불러오는 이유도 확실히 알았다.

그건 두려움이다.

상단전 기운은 중단전의 무공, 신기심의공이 아우르지 못한다. 그 경계심과 위기감이 알려 주는 신호였다.

이제 알아볼 건 두 가지다. 우선 놈의 정체.

살펴본 내력은 분명 정파의 내공이라 먼저 의심되는 건 하후가, 그리고 하후태의 외가 서문가.

‘우선 서문가부터.’

반응을 떠볼 말을 골랐다.

“침주까지 욕심내는 건 좀 심했어. 호남 세 번째 도시라고 해 봤자, 비교도 안 되잖아.”

“……?”

“장사(長砂)하고는!”

서문염호의 눈자위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서문세가가 있는 북쪽 장사를 언급하자 나온 반응.

무윤은 싱긋 미소 지었다.

“고마워, 알려 줘서.”

“……!”

서문염호는 눈꺼풀을 닫았다. 꽉 깨문 입술을 짓씹었다.

스스로 생을 마칠 방법이 없다.

“죽여라. 들을 말은 없을 게다.”

“보낸 건 하후태, 아! 아니겠구나. 너 정도 무인을 움직이려면 그 독사 계집이겠네. 서문채령!”

“…….”

신분에 대해 더 물은 건 없다.

이제 남은 건 어떻게 설도승과 이자가 유사한 기운을 뿌리는지 알아보는 것.

슬쩍 운을 떼었다.

“이러면 어때? 모든 건 이 자리에서 끝내지. 나도 지금은 하후가나 너희하고 부딪치고 싶지 않아. 대신 다른 게 궁금해.”

서문염호는 살짝 열린 눈으로만 물었다.

“……?”

“상단전을 어떻게 열었지?”

“……?”

“약인가?”

“……!”

순간 감은 눈 위로 미약한 움찔거림이 확연했다. 놀란 게 확실하다.

‘역시 그거였나?’

대략 짐작이 됐다.

오대세가가 공야의숙에서 했던 연구. 그중 가장 핵심이 상단전을 여는 것이라 했으니.

물론 공야성이 단언했듯이 완벽할 리는 없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본 가정.

‘상단전 일부를 여는 덴 성공했겠지. 한데 약으론 한시적으로 상단전을 열 수밖에 없을 거야. 그때만 신기심의공이 기운을 느끼는 거고.’

설도승이 약을 먹은 지 오래라면 이 모든 가정이 성립된다.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이놈은 정파, 설도승은 사파. 물론 사파도 연구를 안 할 리가 없긴 한데.

‘기운이 너무 유사하단 말이지.’

정, 사가 함께 연구할 리는 없다. 가정이란 자체도 어불성설.

서로 따로 연구했는데 비슷한 성과가 나올 순 있다. 어쨌든 목표는 비슷하니까.

그래도 무윤 입장에선 납득 안 되는 게 있다.

이제 더 파 볼 때다.

“내가 옛날얘기 하나 해 줄까?”

“……?”

“예전에 여러 가지 약 만든다고 약초 연구를 좀 했지. 우린 가난해서 있는 걸 살 형편이 안됐거든. 그렇게 수십 년 했으니 어떻게 됐겠어? 약초만큼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게 됐지.”

“……?”

“진짜야. 같이 있는 놈이 대단한 의원인데 약초는 나한테 안 되거든.”

서문염호의 입이 비틀어졌다. 이런 대꾸는 하고 싶었다.

“이런 촌구석에서 대단해 봤자 거기서 거기지.”

“그럴 리가. 예전에 공야의숙에서 신동으로 불렸던 놈인데?”

순간 서문염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 이놈이 어떻게?’

한동안 다물어지지 않는 입 그대로 놀란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무윤의 눈이 번득였다. 알아볼 게 있다.

“뭐 때문에 놀랐지? 공야의숙? 아니면 공야성?”

서문염호의 입이 파르르 떨렸다. 신동이란 놈은 모른다. 하지만 약을 만들어 준 곳이 바로 공야의숙이다. 궁금한 건 오직 하나.

“……누구냐 넌?”

무윤은 대략 감이 왔다.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아직 풀어낼 말이 남았다.

“공야성은 모른다 이거지? 알았어. 그건 그렇고 얘기나 마저 하지. 내가 너처럼 상단전 기운을 흘리는 놈 하나를 알아. 근데 그놈은 사파야. 누군지 궁금하지?”

“……?”

“적운문주 설도승! 그놈도 아주 유사하더란 말이지.”

서문염호는 입을 비틀었다. 웃기지도 않은 말이다.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끝내라.”

무윤을 얼굴을 들이밀었다. 옛날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아까 말했지? 약도 약초도 잘 안다고. 덕분에 난 말이야. 약을 먹었을 때 나는 기운도, 그 약초 성분도 대략 느껴져. 네 약 기운도 그래서 알아낸 거고.”

“……!”

서문염호의 얼굴에 핏기가 조금씩 사라져 갔다. 이제 놈이 말하려는 게 뭔지 감이 왔다.

무윤은 티 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도 이상하지? 비슷한 약효까진 그렇다 쳐. 근데 약초 성분에 배합 비율까지 거의 유사해. 이게 무슨 뜻일까?”

“……!”

무윤의 눈이 깊어졌다.

“미치지 않고서야 오대세가가 사파와 같이 연구했을 리는 없겠지. 그럼 답은 하나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남의 연구를 아주 잘 알고 있고 지켜보고 있다는 거. 그럼 조작도 가능하겠지. 그게 어딜까?”

서문염호의 눈이 세차게 떨려 왔다. 이것만은 부정하고 싶었다.

“그, 그럴 리 없다.”

“오대세가와 그럴 정도면 큰 곳일 테고. 아마도 사도련이겠지. 아! 이건 추측이지 확실한 건 아니야.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무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놈에게 더 알아볼 건 없다.

장난스러운 표정은 지웠다. 적어도 이 시점에는 그래야 한다.

“끝낼까 하는데. 할 말 있나?”

서문염호의 떨리는 입이 나직이 열렸다. 정말 궁금했다.

“청호방주 맞나?”

“맞다.”

“……넌 강기를 썼다. 게다가 네가 한 말도 그렇고. 너 같으면 믿을 수 있겠나?”

무윤은 하늘을 가리켰다.

“곧 갈 놈한테 거짓말을 왜 해? 다 사실이다. 저기 가면 자세히 알려 줄지도 몰라.”

“……”

“잘 가라.”

얼마 후, 무윤은 산을 내려왔다.

그날 밤, 청호방 방주실.

공야성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 그렇게 비슷하단 말이냐?”

“내 기운 알잖아. 확실해.”

“……!”

옆에 있던 주손학은 착잡한 심사를 가눌 수가 없었다. 씁쓸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허! 그것 참! 심사가 복잡하구먼. 원한만 생각하면 이용하는 쪽이 사파이길 바라야 하니 말일세.”

공야의숙 일은 직접 나서서 해결될 게 아니다. 나서서 떠들어 봤자 오대세가의 힘이면 뒤엎는 건 식은 죽 먹기. 오히려 주변 사람들만 위험해진다.

한데 사파가 밝히면 일의 양상이 어찌 될지 모른다.

잠시 생각하던 공야성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숙부님. 어느 쪽도 우리한테 좋을 게 없습니다. 설사 사파라도.”

“어째서?”

“그 일이 어떻게 들춰지건 우린 양쪽 모두에게 표적입니다. 오대세가는 없애려 하고, 사파는 이용하려고 할 테니까요.”

주손학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허! 듣고 보니 그렇구나. 내가 원한 때문에 잘못 생각했어.”

“지금은 더 몸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휴! 그래. 그러자꾸나.”

공야성의 시선이 무윤을 향했다.

“적운문주 쪽도 그래야겠지?”

“티 낼 이유 없잖아. 원래 계획대로 가면 돼. 수작을 부릴 때 응징하는 걸로. 그럼 사도련도 의심할 게 없어.”

“하후가는?”

“답답한 건 그쪽이지.”

눈앞의 일이 정리되자 공야성은 속 깊은 한숨이 절로 흘렀다.

“허!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건지!”

“……!”

무윤도 씁쓰레한 미소만 짓고 말았다. 자신도 생각이 비슷했다.

‘너무 복잡하게 얽혔어. 푸는 게 쉽지 않아.’

오대세가와 사파만 이럴 리가 없다.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모든 곳들이 난마(亂麻)처럼 얽히고설켰으리라. 그 실타래에 말려드는 순간 살아날 곳이 몇 개나 될까.

무윤의 눈이 깊어졌다.

이제 곧 본가가 있는 뇌양(耒陽)에 가 볼 참이다.

‘살펴보고 신중하게 결정한다.’

자신의 일 또한 마찬가지. 이제 마인이 아님을 밝히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뒤가 어찌 될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자신이야 밝히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

그들에게 뇌양은 삶의 터전이니까.

그 전에 처리할 게 있다.

유선의 부탁을 들어 주는 것.

청호방 뒤편 장원.

진서연의 커다란 눈이 동그래졌다. 생각하고 자시고 없이 손사래부터 쳤다.

“전 받을 수 없어요.”

“전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약속했으니까요.”

이미 길을 정한 그녀다.

“언니 마음은 충분히 알지만 저도 한 사람의 무인이에요. 이미 제 길을 갈 만큼 배웠으면, 그다음은 스스로 가는 게 언니와 소려를 위해서도 옳다고 생각해요.”

“제 역할은 드릴 뿐, 익힐지 말지 판단은 그쪽 몫입니다.”

진서연은 이 말을 더할 수밖에 없다.

“아시잖아요? 제겐 사문이 있다는 거. 그게 귀한 심법인 거 잘 알아요. 하찮다고 여겨서 이러는 게 아녜요.”

그 답은 이미 준비해 뒀다. 약간 거짓을 섞어 말을 풀어냈다.

“전한 스님께선 처음부터 이 춤에 무공이 담긴 걸 아셨습니다. 당연히 심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시고 몇 년을 찾다가 구하신 겁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절로 반문이 튀어나왔다.

“그게 정말인가요?”

“예. 보타문에 진경이 있는 이상 잃어버린 심법을 찾은 겁니다. 사문의 법도에 위배되는 게 아니죠.”

진서연은 잠시 멍했던 머리를 휘휘 내저었다.

‘원래 있던 심법이라고?’

이러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녀가 할 일은 유선의 진전을 딸 소려에게 보여 주고 전해 주는 것.

심법은 그저 춤과 상생이 맞는 것이라 여겨 고민조차 하지 않았는데, 원래 있던 심법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결론은 빤했다.

‘제대로 전하자면 알아야 하는데.’

한동안 고민하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물어야 할 게 있다.

“그 노스님이 전한 것이면 의심은 안 해요. 하지만 그쪽 거나 마찬가진데 제가 배워도 되는 건지?”

“한 가지 약속만 해 주시면 됩니다.”

“어떤?”

“다른 이에게 전하지는 마세요. 저도 따로 전할 사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진서연은 문득 유선에게 들은 게 떠올랐다.

‘줄 사람이 따로 있다고 했었어.’

당연히 여인의 심법이라 상대가 짐작이 된다. 그런 심법을 약속이라며 선뜻 건네는 이.

어떤 의심도 들지 않는다. 유선이 무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했는지 잘 아니까. 또한 무윤도.

그 진정이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 뿐이다.

한 점 흔들림 없는 결정이 내려졌다.

다만 무인으로서 확인은 해야 한다.

“좋아요. 다만 익힐지는 보고 결정할게요. 만약 아니면 다시 돌려드리고요.”

무윤은 싱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럴 일이 없다.

‘어떤 놈이 만든 건데.’

문득 떠오른 궁금함이 생겼다.

‘어느 길까지 풀어낼까?’

유선 때문에 심법을 세세히 살피다 안 게 있다. 그걸 떠올리자 실소가 절로 흘렀다.

‘하여간 엉뚱한 놈이라니까.’

여휘는 심법을 아주 쉽게 만들었다. 어떤 경지의 여인에게 전해질지 몰랐으니까.

대신 그 눈높이에 맞게 찾아갈 각기 다른 길을 안배해 뒀다.

실력에 따라 처음 길을 쉽게 가도록. 한데 그 상위의 길을 가려면 스스로는 어렵게 해 놓았다. 대안은 무윤이 유선에게 했던 것처럼 직접 몸으로 전하는 것.

여휘의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꼼수다.

특히 마지막엔 중단전 무학을 풀어 가는 길까지 슬며시 섞어 놓았다.

무윤의 여인이 될 이에게 전한다고 나름 신경 쓴 티가 역력했다.

무윤은 심법을 건네고는 물었다.

“바로 떠나실 건지? 아니면 여기서?”

“돌려드릴지 모르니까 며칠 더 있었으면 해요.”

“그러시죠.”

며칠일 리가 없다. 특히 진서연 정도의 자질이면.

무윤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감돌았다.

‘궁금하네.’

지켜보면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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