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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39화 (39/161)

39화

“우릴 우롱한 죗값은 죽음이다!”

홍태형의 신형이 땅을 박차고 화살처럼 쏘아졌다.

파파팟!

쾌의 극을 쫓는 검이 무윤의 어깨 요혈을 노리고 짓쳐 들었다. 강자라 생각되는 이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선택.

두 형제의 검도 쾌속하게 날아들었다.

슈우욱!

무윤의 신형은 일도양단의 기세로 달려오는 검을 마주했다. 나머지 두 개의 벼린 날까지 합쳐진 곳을 피하지 않았다.

쇄애액! 슈욱!

놀란 셋의 눈이 움찔거렸다.

‘이놈이 왜?’

몇 치의 간격밖에 안 남았는데 검날에 몸을 들이댄다. 자신들을 무시하거나 살을 주고 뼈를 취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

홍태형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있어.’

실린 경력과 세기, 빠름의 신호가 무윤의 몸 가득 경고를 울릴 찰나, 직선이던 신형이 용틀임하듯 길을 바꿨다.

휘릭!

그 흐름 탄 몸도 틀어졌다. 초감각이 이끄는 대로 손은 칼날을 향했다.

순간 우직했던 세 칼날에 회전이 가미됐다. 삼각 대형을 유지한 채 뒤틀린 검로가 정확히 무윤의 몸통을 향했다.

휘익! 화락! 사락!

그 끝이 온몸을 짓뭉개려고 쏘아지던 찰나, 셋의 눈동자가 동시에 흔들거렸다.

찰나를 초월한 움직임이 눈앞에 흐림을 가져왔다. 아까 국주 홍재율 앞에서 보였던 그것.

그제야 홍태형은 직감했다. 절정 중반인 놈이 근접전에서 저런 움직임이라면.

‘외공을 익혔어.’

놈과 겨룰 방법이 명확해졌다.

‘거리를 둔다.’

그렇게 결정한 순간, 퇴보를 밟으려던 홍태형은 화들짝 놀랐다.

‘어, 언제!’

주먹 쥔 손이 어느새 얼굴 관자놀이로 다가왔다. 생각하고 자시고도 없었다. 본능이 시킨 대로 몸을 뒤로 젖혔다.

화락!

하지만 호선을 그린 주먹이 다시 그를 향했다.

‘위험해!’

순간 다른 두 개의 칼날이 비틀렸다. 우선 대형을 구하는 게 급선무. 바뀐 검로가 무윤의 다른 요혈을 노렸다. 물러나지 않으면 놈도 다칠 상황.

슈우욱!

급한 퇴보와 옆으로 튼 놈의 몸이 공간으로 물러남을 알렸다.

홍태형은 짧은 안도의 한숨을 흘려 냈다.

‘위험했어.’

무인의 직감이 뒷골에 소름을 불렀다. 내공과 외공을 동시에 익힌 놈. 그 더해진 힘이 초절정인 자신을 전율케 한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수하 열은 그 자리에서 발도 못 뗐다.

너무 빠른 공세 전환에 들어설 틈이 없다.

홍태형의 전음이 두 동생을 향했다. 아까 했던 말을 번복하기 위해서다.

-죽여야 한다. 아니면 우리가 죽어.

두 동생의 표정에 이미 답이 있었다. 몇 번의 부딪침이 알려 줬다.

-알고 있소. 외공을 익혀 놓고는 감쪽같이 숨기다니.

-거리를 둬라.

-빤한 거 아니오.

-원거리에서도 놈이 빨라. 변환 진으로 간다.

-알겠소.

포위망을 좁혀 오던 검격이 복잡한 선을 그려 냈다. 귀를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갈랐다.

날붙이 사이로 매서운 기파가 빛을 뿌려 댔다.

쇄애액! 슈욱!

무윤은 초감각이 일깨운 대로 다가오는 칼날을 향했다. 땅을 박찬 도약에 빠름이 공간을 접었다.

쉬이익! 파앙!

순간 무윤의 입가에 옅은 아쉬움이 스쳐 갔다.

‘보이는 건 여기까지.’

무인의 투기를 낮춰야 할 때다.

조금 더 끌어내면 세 놈의 숨통을 일격에 끊을 수 있지만, 여기서 더 보이면 득보다 실이 많다.

지금 군중은 더 불어나 삼천여 명.

상인들은 물론이고 정, 사 가릴 것 없이 침주의 웬만한 무인들은 다 나왔다. 적운문주 설도승에 하후가의 장로 몇도 눈을 번득이고 있다.

오늘 목표는 두 가지.

시전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고, 무가 쪽엔 끌어들일 대상으로 인식시키는 것.

그래서 외공을 익힌 것처럼 과하게 티를 냈다. 지금은 내외공을 합쳐 초절정이 넘은 정도, 딱 거기까지 보이는 게 답이다.

지금 알려진 무윤의 나이는 삼십 대 초반.

강호를 통틀어도 그 나이에 초절정은 몇 되지 않는다.

만약 무윤이 내력만으로 초절정을 넘었다면 거대 무가는 반드시 죽일 대상으로 여긴다. 외공 탓에 앞으로 성장은 미미하게 보여야 한다.

같이하면 좋고 적이 되면 곤란한 자. 오늘은 그 정도가 좋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

세 놈은 천천히 요리할 수밖에.

권과 도가 얽히며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슈욱! 쇄액!

흐름 탄 무윤의 권이 검격을 쳐 내도 연이어 다른 검이 그 뒤를 이었다. 주변을 휘도는 바람도 점점 거세져 갔다.

사방팔방 뻗어 가는 권격은 뱀이 춤추듯 칼날을 스쳐 갔다. 검 또한 간발의 차이로 어깨 위를 스쳐 지나 허공을 때렸다.

콰앙! 콰쾅!

몰아치는 먼지바람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전신에 바람을 휘감은 권기와 줄기줄기 뻗어 오는 서릿발 같은 검기가 대기에 회오리를 만들었다.

휘이잉! 휘릭!

선명한 칼날이 간발의 차이로 몸을 휘감길 수십 차례. 무윤의 권 또한 시원스러운 풍압 소리가 함께 상대의 귓전을 울려 댔다.

점점 더 빠르고 격렬한 공방이 이어졌다.

놀란 좌중의 입에선 연신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인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 흑도방주가 저런 실력이라니!”

“저 정도면 분명 초절정 아닌가?”

“아니야. 외공을 같이 익혔어. 자세히 보게.”

“오! 자세히 보니 그렇군. 떨어져선 오히려 밀리는 걸 보니.”

“그러니 저 셋도 가까이 접근을 못 하는 게지.”

“허! 그래도 대단하군. 그 나이에 내외공을 저 수준까지 익히다니.”

“청호방주에게 사부가 있다는 말이 맞는 모양일세.”

“그렇겠지. 아니고서야 혼자 저럴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저기 보게”

“응? 어디?”

“적운문주 설도승도 나왔어.”

“그래? 근데 왜 가만있지?”

“살펴보다 나서겠지. 정리는 저쪽이 하지 않겠나.”

“하긴!”

그때 적운문주 설도승의 옆에 있던 노인이 전음을 흘렸다.

-누군가?

설도승은 전음에 공손함을 담았다.

-여기 있는 흑도방주 놈입니다.

-뭐라? 저런 놈이 말인가?

-저도 절정 중반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속고 있었네요.

-허허! 약은 놈이군그래.

설도승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찌 보이시는지?

이 노인에겐 이런 질문을 던져도 된다. 몸을 살피는 데 있어선 누구보다 뛰어난 자이니.

이번에도 자신의 몸을 살피러 이 년 만에 잠시 들른 자.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이 노인의 존재를 알아서는 안 된다.

사파의 연합체인 사도련의 비밀 조직 사야홀(私夜笏).

그 존재를 아는 이는 침주에선 자신밖에 없다.

아들인 설진광에게도 아직 발설하면 안 된다.

한동안 무윤을 살피던 노인의 눈이 번득였다.

-외공이라 하나 내공과 잘 어울리네. 한 단계는 무리 없이 올라갈 게야. 그 이후론 어렵겠지만.

-그 말씀은?

-초절정은 노려 볼 수 있는 자일세.

자신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 내린 판단.

설도승의 눈에 성난 맹수의 눈동자가 꿈틀거렸다. 이미 무윤에 대해선 판단을 내렸다.

-더 끌 일이 아니었군요.

-……버릴 패란 말인가? 저런 놈인데?

-머리가 비상해서 거뒀다간 우릴 삼킬 놈입니다.

-뭐라? 한데 왜 그냥 뒀는가?

-뺏을 게 계속 커져 오늘내일하고 있었습니다.

-끌지 마시게. 빨리 결정하는 게 최선이네.

-알겠습니다.

-참! 자네는 나서야 하지 않나?

-외곽까지는 바래다 드리고…….

-그럴 필요 없네. 싸움도 곧 끝날 텐데.

-그래도 귀한 걸음 하셨는데…….

노인은 노파심에 다시 한번 말을 꺼냈다.

-됐네. 그보다 내 다시 말하지만 약은 이제 그만 쓰시게. 여기까지가 자네 한계야. 내 말뜻 알겠지?

순간 설도승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예.

-명심하시게. 과욕은 곧 모든 걸 잃게 된다는 걸.

-……!

한편, 홍태형은 급격히 찾아온 불안함이 온 뇌리를 휘저었다.

‘이러다 당한다.’

막내 홍대원의 손발이 점차 흔들렸다. 검신을 타고 내려오는 충격에 내지르는 탄성도 잦아진다.

아니나 다를까.

짓쳐 들던 놈이 날아오르듯 막내를 덮쳐 갔다. 엄청난 발돋움에 흙먼지가 위로 치솟았다.

팟! 휘익!

‘위험해!’

순간 일직선이던 무윤의 신형이 갑자기 버들가지처럼 휘어졌다.

휘익!

빠름에 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각도. 놀란 막내 홍문천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런!’

두 형이 도울 시간이 없다.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말아 쥔 놈의 주먹은 이미 명치에 날아들었다.

슈우욱!

‘몸을 빼긴 늦었다.’

홍대원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 시점.

모든 내력을 끌어올려 정면에 검을 찔러 넣는 순간, 무윤의 권이 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쇄애액!

홍대원은 직감했다. 이미 눈앞을 가득 채운 주먹.

‘늦었어.’

본능이 저절로 눈을 감기는 순간 번갯불이 튀었다. 새하얀 광망이 안면에 작렬했다.

빡! 빠각!

“커억!”

무윤의 몸놀림이 더 빨라졌다. 다가오다 주춤한 둘째 홍문천과의 공간을 접었다.

쇄액!

소스라친 비명이 다급함을 알렸다.

“헉!”

급히 젖힌 머리에 주먹이 틀어박혔다.

쉬익! 빡!

“컥!”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이 주저앉으려는 순간, 고개 숙인 턱으로 다른 주먹이 날아들었다.

슈욱! 퍼억!

“커억!”

거친 기침과 함께 울혈이 토해졌다. 엄청난 격통에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주저앉은 무릎에 몸이 무너져 내렸다.

투욱!

이제 남은 건 하나.

뒷걸음치던 홍태형에게 쇄도하던 찰나.

“그만! 모두 멈춰라!”

객잔 앞을 울리는 거대한 음성이 귀를 파고들었다.

‘설도승!’

모인 자들에게 각인시킬 기회다. 설도승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무윤은 쇄도하던 발에 빠름을 더했다. 묵직한 파공성과 함께 시퍼런 빛이 홍태형의 안면에 작렬했다.

빠각!

“켁!”

엄청난 격통에 홍태형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래도 떠오르는 분노.

‘이런 개새끼!’

순간의 판단 착오다. 적운문주가 나섰기에 놈이 멈출 줄 알았는데. 그 탓에 속도를 줄이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진 않았을 텐데.

그 아쉬움 담은 의식이 스르륵 사라져 갔다.

툭!

“…….”

순간 고요한 정적만이 싸움의 결과를 알렸다.

잠시 후, 설도승의 묵직한 입이 반문했다.

“그게 사실인가?”

수천 명의 시선이 긴 설명을 풀어낸 이를 향했다.

무윤은 표국주 홍재율을 가리켰다.

“하후 전장에서 발행한 전표가 저놈 품에 있을 겁니다.”

“……없다면?”

“찾아보고 말씀하시죠.”

전표에 은은한 향을 미리 발라 뒀었다.

홍재율의 품을 뒤지던 소문주 설진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있습니다.”

“하후 전장이 발행한 삼만 냥이 맞느냐? 날짜도 어제고?”

“예.”

적운문주 설도승은 확신에 찬 눈빛을 뿜어냈다.

‘놈은 알고 있었어. 그래서 유인했고.’

둘만 있다면 달리 풀 방안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삼천 명의 눈과 귀가 몰려 있다. 물론 하후가도.

어떻게든 일을 줄이고 빨리 이 자리를 파하는 게 최선.

그러자면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

“산에서 도망쳤을 때 넌 우릴 찾았어야 했다.”

“죽다 살아났는데 그럴 정신이 있겠습니까?”

“매일 그렇게 사는 게 흑도다. 그런 정신머리라면 넌 여기에 서 있지도 못했지.”

무윤의 야릇한 미소가 색을 더했다.

“상대가 바뀐 거 같네요.”

“상대?”

“심문이라면 저쪽을 하셔야죠. 전 피해자인데.”

순간 좌중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크! 그 말이 맞지. 도둑은 저놈들인데.”

“그보다 방주 말에 뼈가 있는 거 같은데.”

“왜 안 그러겠나. 하조문과 적운문이 사돈지간인데.”

“헉! 뭐야? 그럼 혹시 적운문이?”

“허! 이 사람. 입조심하게. 그러다 큰일 나네.”

“……!”

좌중의 수군거림은 커져만 갔다.

“그래서 방주가 날을 세웠군그래.”

“의심할 수밖에 없겠지.”

“근데 적운문이 왜 남의 손을 빌려? 혼자 해도 충분한데.”

“남의 눈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겠지.”

“아! 하긴 그러네.”

떠들어 대는 소리는 연신 설도승의 귓가를 울려 댔다.

그 소리만큼 굳어 가는 얼굴엔 남모를 결심이 차곡차곡 담겼다.

‘슬슬 가져올 때가 됐어.’

천마라 불린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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