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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38화 (38/161)

38화

세 시진 후, 침주 시내의 태원 객잔.

하조 표국 국주 홍재율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그딴 놈 하나를 놓치다니!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해!”

확 치밀어 오른 부화를 쏟아 낼 건 전표를 가져온 홍문천밖에 없다.

“죄송합니다. 벼랑 끝에서 그럴 줄은…….”

“그래서? 바로 쫓긴 했고?”

“예. 이미 잡았을 겁니다. 형님 실력 아시잖습니까?”

그때 표두 악지문이 조심스레 껴들었다.

“저 국주님.”

“왜?”

“방금 나갔다 왔는데 저잣거리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놈이 공격당했다는 소문 때문에 다들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벌써 말이냐?”

“예. 여기 객잔 주변도 난립니다. 아무래도 움직이는 것이 어떨지.”

국주 홍재율은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더 있다가 적운문을 만나면 전표도 어찌 될지 모른다. 우선 침주를 뜨자. 빨리 준비해.”

“예.”

반 시진 후, 십여 명이 객잔 안으로 달려들었다.

국주 홍재율의 눈이 커다래졌다.

“아니! 왜 여기로 온 게야?”

홍태형은 머뭇거리다 말을 내뱉었다.

“놈이 침주 시내로 도망치는 바람에…….”

“그래서?”

“……놓쳤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 그렇다고 여기로 오면 어떡해!”

“놈이 이 객잔 쪽으로 향했습니다. 거의 따라잡았는데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그만.”

국주 홍재율은 격앙된 목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쉽지만 지금 급한 건 그놈이 아니다.

“이럴 때가 아니다. 적운문과 부딪히면 안 돼. 바로 움직이자.”

“예.”

그때 표두 악지문이 급히 뛰어왔다.

“국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노, 놈이 객잔 앞에 있습니다.”

“누구?”

악지문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처, 청호방주 말입니다.”

“뭐라? 그놈이 이 앞에 있다고?”

“정문에 떡하니 서서 우릴 찾고 있는데 주변에 흑도 놈들도 쫙 깔렸습니다. 수백, 아니 천 명은 족히 됩니다.”

“……?”

잠시 후, 태원 객잔 앞.

지나가던 사람들은 서로를 붙잡고 묻기 바빴다.

“이보게, 여기 무슨 일 있는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몰렸지?”

“이 사람. 얘기 못 들었나?”

“뭔 얘기?”

“아 글쎄, 소주의 하조문이란 놈들이 청호방주룰 죽이려고 했지 뭔가. 전표도 삼만 냥이나 훔쳐 갔다는 군.”

“뭐? 그래서? 청호방주는?”

“저기 있잖아. 간신히 도망쳤대. 그래서 부하들을 데리고 놈들을 포위한 걸세.”

“휴! 거참 다행이구먼. 하면 놈들은 저 안에 있고?”

“그래. 그래서 청호방에다 침도방, 그리고 하오문까지 저리 쫙 둘러싸고 있는 걸세. 저놈들이 전표를 가지고 어디로 도망칠지 모르잖아.”

“하! 그놈들 꼴좋다. 감히 청호방주를 건드리다니. 혹시 모르니 나도 한 힘 보태야겠네.”

“그러자고. 우리야 서 있기만 하면 되니까. 아마 현에서도 군사들이 곧 올 게야.”

“당연하겠지. 어서 가세나.”

주변을 둘러보던 연사구의 입꼬리가 쫙 올라갔다. 점점 늘어나는 인원에 콧바람이 절로 나왔다.

“야! 이젠 천 명도 훨씬 넘겠는데.”

옆에 있던 악무길이 거들었다.

“천 명이 뭔가. 반 각 후면 이천은 되겠어. 다른 흑도에다 무가 사람들까지 계속 튀어나오는데.”

“이 정도면 초절정 할아버지라도 못 빠져나가죠. 크크!”

악무길의 걱정스러운 시선은 무윤을 향했다.

“방주. 정말 혼자 할 거야?”

“아무도 못 움직이게 해. 껴들다간 다친다.”

“지시는 했지. 한데 저쪽은 표사들까지 하면 사십이 넘어.”

“안다.”

그래도 악무길은 어제부터 수십 번 했던 말을 또 꺼냈다.

“괜찮지?”

“입 아프다.”

“……!”

잠시 후, 하조표국 국주 홍재율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됐다.

순간 살짝 놀란 움찔거림이 눈가를 스쳤다.

‘온몸에 상처투성이라고 했는데.’

한데 갈아입은 경장 어디에도 핏기는 보이지 않는다.

홍재율은 짐짓 헛기침을 흘렸다.

“크흠! 날 보자 한 게 그대인가?”

“난 그런 적 없는데.”

“뭐라?”

무윤은 내력을 더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시작이다.

“날 공격했던 놈들 중에 당신은 없었어. 아닌가?”

“당최 뭔 소린지 모르겠군. 하면 누굴 찾는 겐가?”

“정확히 열셋! 날 공격한 놈 숫자야. 그놈들만 잡으면 돼.”

홍재율은 불쾌한 기색을 확연히 드러냈다.

“허!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객잔을 이리 둘러싸서 우리까지 이상한 눈초리를 받게 하다니!”

“갈 거면 빨리 가라. 안 붙잡는다.”

홍재율은 분노 가득 찬 눈에 불을 품었다.

“허!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게냐! 난 광동 소주의 하조 표국 국주 홍재율이다. 게다가 우린 적운문과는 사돈지간인 곳이거늘 감히 일개 흑도방주가 어딜 함부로 입을 놀려 대!”

“가기 싫으면 옆에서 구경하든가.”

“뭐라! 이놈이 감히 어디서!”

무윤은 대답 대신 좌중을 둘러보고는 웅혼한 목소리를 흘렸다.

이제 명분을 쌓을 때다.

“날 공격하고 전표 삼만 냥을 훔쳐 간 도적들이 저 안에 있습니다! 난 이제부터 저들을 잡을 겁니다.”

사방이 수군거렸다.

“허! 정말이구먼.”

“그럼 청호방주가 어디 거짓말하는 사람인가.”

“그럼. 당연히 아니지.”

무윤의 진중한 짧은 말이 이어졌다.

“난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일보의 진각을 홍재율 쪽으로 향했다.

탁!

“넌 아니다. 비켜라.”

“……!”

홍재율은 굳은 얼굴 속에 기꺼운 웃음을 감췄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게 됐다.

‘조금만 가까이 오거라. 그러면 죽여 주마!’

절정 끝자락에 다다른 자신이다. 동생들이 전한 놈의 경지는 들은 대로 절정 중반. 지분을 못 뺏은 게 아쉽지만, 더 욕심을 부릴 때가 아니다.

그래도 경고는 해야 한다.

“더는 오지 말거라. 내 적운문에 폐가 될까 지금껏 참았을 뿐이다.”

“…….”

무윤은 입을 닫았다. 이제 말은 필요 없다.

두 발이 천천히 대지를 스쳤다.

사삭!

소슬바람에 흩날리는 옷자락만이 폭풍 속의 고요를 알렸다.

마주선 자와의 거리가 석 장이 될 찰나.

“허! 어린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못 하는 짓이 없구나. 내 너를 벌하고 적운문에 양해를 구해야겠노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뽑은 검과 함께 대지를 박찼다.

파팟!

바람 탄 도약과 함께 물 흐르듯 뻗은 검이 무윤의 몸통을 향했다. 길게 끌 이유가 없다. 일격에 제압하는 게 최선.

섬전 같은 검격이 흰빛을 담아 허공을 갈랐다.

쇄애액!

대기를 떨린 예리한 기운이 묵묵히 걸어오는 상대의 어깨에 꽂히려던 찰나, 홍재율의 두 눈이 갈 곳을 잃었다.

놀란 탄성이 절로 흘렀다.

“헛!”

시야에 고정됐던 상대의 몸뚱이가 흐릿함을 안기던 순간, 검이 목표를 잃고 허공을 갈랐다.

슈욱!

어찌 된 영문인지 가늠할 사이도 없이 허망한 손끝이 뇌리에 전율을 불렀다.

‘위험!’

심상치 않은 진기 파동이 또다시 경종을 울렸다. 순간 일직선으로 공간을 접은 주먹이 어느새 흐린 눈가에 다가왔다.

슈우욱!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홍재율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 언제’

퍼억!

“커억!”

언제인지 모를 가슴 언저리의 격통이 현실을 알렸다. 전신으로 퍼지는 고통에 또다시 눈앞이 흐릿해졌다.

‘다, 당했어!’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릎이 꺾였다. 흐려진 눈자위는 이미 정신을 잃었음을 알렸다. 디딤 축을 잃은 몸이 볼썽사납게 축 늘어졌다.

터억!

“…….”

잠시 수천의 군중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무인들 또한 눈앞에 펼쳐진 결과를 제대로 이해한 이가 드물었다.

“어, 어떻게?”

“부, 분명 찔릴 상황이었는데?”

“근데 언제 주먹이 날아들었지?”

“모, 모르네. 보지 못했어.”

그때 뒤따랐던 표두 악지문의 성난 고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감히 국주님을 해하다니! 죽여라!”

“한꺼번에 덮쳐!”

“예!”

화살처럼 쏘아진 악지문의 검이 내질러졌다.

슈우욱!

“이놈!”

동시에 무윤의 팔이 허공을 날았다. 세찬 바람 소리와 함께 손끝에 무형의 불꽃이 일었다.

호선을 그린 궤적이 시퍼런 빛을 흘렸다. 분노의 색이다.

휘리릭!

순간 악지문은 귓전을 울리는 소리에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동시에 자신의 검이 목표를 잃고 허공을 갈랐음을 직감한 순간!

빠각! 퍽!

“커억! 우욱!”

강한 타격 소리와 함께, 얼굴과 복부를 동시에 얻어맞은 악지문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턱!

표사들의 악에 받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공격해!”

“놈은 하나야. 쫄지 마!”

하지만 그 누구도 앞서 나오지 못했다.

그사이 바람 탄 신형이 표사들 사이를 헤집었다.

휘리릭! 사라락!

표사들 사이로 너울거리는 나비 한 마리처럼 유유히 공간을 갈랐다. 하지만 사정없는 주먹은 연이은 파공성과 타격음을 울려 댔다.

퍽! 파팍! 빡!

여기저기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윽!”

“켁!”

“우욱!”

두 손이 휘날리듯 뻗어 나갔다.

슈우욱! 쇄액!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무사들을 쫓았다.

부드럽고 빠른 손이 수십 개의 잔영과 함께 휘날렸다.

휘리릭! 사삭!

그렇게 한 줄기 폭풍이 무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바라보던 좌중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거대한 무인의 존재감에 얼어붙은 입은 그저 부르르 떨리기만 했다.

군중 속에 있던 한 눈이 부릅떠졌다.

‘어떻게?’

앞선 홍재율은 절정 끝자락 고수, 거기에 표두를 모함한 표사 이십여 명이 눈 몇 번 깜짝할 사이에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 정도는 초절정 고수도 쉽지 않은 상황.

하후천기는 그 자리에 발이 얼어붙어 버렸다. 믿기지 않은 현실에 눈자위가 세차게 요동쳤다.

‘노, 놈이 초절정?’

오늘 이 자리에 나올 생각도 없었다. 숙부 하후모인이 강제로 끌고 나오다시피 해서 어쩔 수 없이 온 자리.

홍재율에게 다가갈 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오길 잘했다고. 깨지는 놈의 모습을 보면 답답했던 속도 조금은 풀릴 거라고.

한데 경악을 넘어선 놀람은 생각이란 자체를 막아 버릴 정도다.

그때 한 줄기 전음이 귓전을 울렸다.

-놀랐느냐?

하후천기는 놀람이 없는 숙부의 얼굴이 의아했다.

-아, 알고 계셨습니까?

-몰랐다. 알았다면 가만있었겠느냐?

-한데 어찌 놀라지 않으시는지?

-어제 찾아갔었다.

-……혹시?

-그래. 그 계약 내가 대신했지. 그 자리에서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다. 한데 오늘 일이 뭔지 슬쩍 떠봤더니 그러더구나.

-뭐라고?

-오늘은 아쉽지만 곁가지만 칠 거 같다고.

-그게 무슨?

-그 곁가지가 저 하조문이겠지. 그럼 줄기는 어딜까?

-……적운문?

-거기와 각을 세우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 자다. 그것도 지금 말이다.

-……!

-솔직히 어젠 나도 안 믿었다만, 이젠 허튼소린 아니지 싶다. 더 지켜보자꾸나.

한편, 지켜보던 홍태형은 솟구치는 화를 참지 못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치미는 욕지기를 더는 참지 못했다.

“개새끼! 작정하고 우릴 유인했어.”

둘째 홍문천의 눈은 분노로 뒤집어졌다.

“갑시다. 형님! 죽여 버리자고요!”

“잠깐! 기다려라.”

막 뛰어나가려던 셋째 홍대원이 입술을 짓씹어 댔다.

“설마 참으라는 개소리할 거면 난 못 들은 거요.”

형제 셋이서 힘들었지만 초절정 중상도 잡아 본 적이 있다. 거기에 수하 열 명까지. 놈 하나 죽이는 건 어렵지 않다.

“뒤에 있는 놈들이 안 보이냐? 숨통은 끊지 말란 소리다. 놈을 잡아야 빠져나갈 수 있어.”

둘째 홍문천의 눈이 번득였다.

“알겠소. 죽는 게 나을 정도까지만 하죠.”

셋은 수하 열 명과 함께 신형을 날렸다.

말 없는 무윤의 신형도 그대로 날아들었다.

휘익!

천마라 불린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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