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망산(莽山) 은광 어귀.
사사삭! 파팟!
숲속을 헤치며 다급히 신형을 날리는 둘의 대화가 이어졌다.
“진관아. 우측으로 틀자. 앞은 광산 마을이야.”
“……그냥 가자.”
단목종영은 순간 침음을 삼켰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진관아. 그건…….”
“삼대도 아직 안 왔고 우리 힘으론 절대 못 막아. 근데 여기서 어디로 방향을 바꿔도 침주 시내야. 더 피해가 큰 걸 몰라?”
“그래도…….”
일각 전, 보타문 일행과 같이 침주로 향하던 길에 광마인과 우연히 조우했다.
바로 달려들었지만 금세 깨달았다. 다섯으론 상대할 수 없음을.
결국 차선책으로 둘로 갈라져 도시 밖으로 유인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런데 하필 광마인은 자신들을 쫓았다.
그러길 일각, 이젠 숨이 턱에 차올라 더 도망가기도 힘든 지경.
단목진관은 매섭게 뜬 눈을 꿈틀거렸다.
“나도 이렇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 지금은 마음을 독하게 먹을 때다.”
“나도 알아. 근데 작은 마을이 아니잖아. 몇백은 있을 거 같은데.”
순간 단목진관의 눈이 번득였다.
“그러니까 저놈을 잡을 수도 있잖아.”
단목종영의 눈이 부릅떠졌다.
“……너 설마?”
“저자! 가문이 멸문 직전까지 대협이라고 불렸던 놈이다. 살육 중에 정신이 돌아오면 분명 폭주할 거야. 그럼 우리 공으로 만들 수 있어.”
“……진관아. 마을은 한 곳에 몰려 있어. 저 광마인이면 못 해도 사오십은 족히 죽인다고. 그걸 어떻게…….”
“그럼 시내로 가면? 수백이 되는 건 생각 안 해?”
“……!”
친구가 흔들리는 게 보인다. 단목진관은 쐐기를 박기로 했다.
“대를 위한 희생이야. 우리가 죄책감 가질 이유가…….”
순간, 세찬 바람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쇄애액! 파아앙!
흠칫한 시선이 돌아가려던 찰나, 환영처럼 흐른 잔상이 둘의 눈가를 어지럽혔다.
아찔해진 시야가 뇌리에 경종을 울렸다. 지금 이런 공격을 해 올 자는 하나뿐.
‘언제 여기까지!’
쇄도한 자에게서 하늘빛 권격이 번뜩였다. 벼락같이 덮친 내기의 파동이 그대로 전해졌다.
사아악!
‘위험…….’
퍽! 파팍!
“켁!”
터덕!
순간 단목종영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인이 아니다.
‘누, 누구?’
단발의 비명과 함께 바닥에 꼬꾸라진 친우 단목진관.
핏기를 잃은 얼굴로 축 늘어진 모습. 거친 기침과 함께 토해 낸 울혈, 입가에 끊이지 않는 비릿한 혈향.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어 보이지만 치명적인 내상은 확실하다.
하지만 지금은 친구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급히 내력을 끌어올려 대응하려는 찰나, 의아함이 먼저 앞섰다.
‘왜?’
급습했으니 자신에게도 그럴 줄 알았다.
한데 절정 초반인 친우를 단 두 방에 저리 만들고는 천천히 걸어온다. 오히려 그것이 무자비한 전율로 뇌리를 휘감는다.
보지도 못한 움직임만으로 차이를 알린 자. 적이 아니고선 저럴 리 없다. 가까워지는 걸음 하나하나가 온몸의 털을 바짝 세운다. 몸이 얼어붙었다. 눈조차 껌뻑거릴 수 없다.
그저 본능이 뒷걸음과 함께 입을 쥐어짜 냈다.
“누, 누구?”
순간 유려한 손이 잔영과 함께 휘날렸다.
사라락!
단목종영은 피하고 자시고 할 새도 없었다. 얼굴 앞을 스치듯 다가온 손길을 느끼자마자 몸이 알려 준 사실.
팟! 파팟! 팟!
‘점혈!’
마혈이 잡혔다. 그리고 아혈에 이어 수혈까지.
천천히 감기는 눈에 의문이 가득 담겼다.
‘왜?’
친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자. 한데 자신에겐 이러다니.
그때 한 줄기 전음이 귓전을 울렸다.
-너희의 정의는 알겠어. 그리고 이게 내 정의다. 따질 거면 언제든 와.
-……?
-저 마을엔 내 사람들이 있다.
-……!
단목종영의 두 눈이 멍하게 풀리고 몸이 스르륵 무너질 찰나, 마지막 남은 이성이 입가에 씁쓸함을 담았다.
‘다 들었어!’
끓어 대는 울분은커녕, 아득한 어둠만이 눈앞을 덮쳤다. 멸마단에서 했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이러려고 그 세월을……. 큭큭큭!’
의와 협의 기치를 걸고 당당히 나섰던 그 시간들. 돌아가면 가문에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려던 그 기억들.
그런데 단 한 번의 망설임이 모든 걸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처량하게 떨린 눈에 저절로 무릎이 무너졌다.
툭!
턱 하니 막힌 가슴에 눈이 저절로 감겼다. 아니, 지금은 빨리 감고 싶었다. 형언할 수 없이 밀려드는 아픔과 허탈함을 잊어버리기엔 그게 더 낫다.
무윤은 나직한 숨을 흘려 냈다.
‘후!’
급히 은광으로 향하던 중 앞에 광마인과 무인 둘을 보게 됐다. 도망치는 무인 둘을 마인이 쫓는 형국.
한데 도우려 달려들던 귓가에 들린 대화.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을로 길을 종용하던 자는 단전을 부숴 버렸다. 말리던 자는 기절만 시켰고.
그 대화와 행동에 대한 자신의 답을 알렸다.
잠시 씁쓸함이 올라왔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그사이 마을로 막 향하는 광마인을 쫓아야 한다.
바로 신형을 날렸다.
파팟!
한편 뒤로 삼십여 장 떨어진 구릉.
단목가 무인을 쫓아간 광마인을 추적하던 은위경의 눈에 의아함이 가득 담겼다.
“누구죠? 단목가 무인을 공격하는 거 같은데?”
“마인 편일지도 몰라. 가 보자.”
“예.”
쉬익!
앞서 신형을 날리던 진서연의 미간이 좁혀졌다.
‘분명 혼자라고 했는데.’
정파 출신임에도 멸문지화에 처한 가족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마공을 선택한 자. 십여 년 다른 방법을 찾다 안 돼서 결국 그걸 선택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따라온 동료가 있다면, 흑막이 있을지 모른다.
진서연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니길 바랄 수밖에.’
* * *
언덕 너머.
“크르륵! 크륵!”
마인의 눈자위는 돌아가고 온몸엔 굳은 피가 덕지덕지 묻었다. 벌어진 입에선 연신 거친 괴성이 쏟아진다.
무윤을 확인하고는 맛있는 먹이를 찾은 듯 혀를 날름거린다.
안타까운 눈빛이 잠시 무윤의 눈가를 스쳤다.
‘저런 모습인가!’
처음으로 마인을 대하는 순간.
이제 마인을 세상에 내놓은 죄책감 같은 건 없다. 그간 알아본 사실과 여휘 말대로 언젠간 벌어질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선우진이 백여 년간 앵속을 단속하고 위험한 약물임을 알려, 세상에 그 피해를 줄인 게 더 크기도 하다.
지금의 씁쓸함은 바로 저 마인의 모습이다. 광기에 찬 눈빛이 알려 준다. 인간이되 이젠 다시 인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자.
자신을 버린 선택의 말로가 결국 저런 모습이다.
무윤은 상념을 접었다. 지금 할 일은 하나뿐이다.
‘끝내야지.’
끌어올린 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위이잉!
지난 이 년간 무윤은 자신만의 신기심의공 방향을 정했다.
‘칠정(七情)!’
여휘가 무심(無心)을 선택했다면 자신은 유심(有心)을 선택했다.
인간의 칠정을 다 담아 보기로 했다.
여휘 또한 무심의 이면엔 유심이 있었다. 그것 없이 무심이란 말은 존재도 자각도 할 수 없으니까.
그 모든 감정을 담아 수련했고 성과를 만들어 냈다.
걱정했던 희(喜), 낙(樂), 애(愛)도 적정 수준에 이르렀다. 주변의 도움도 컸지만, 특히 유선의 딸 소려, 이젠 자신의 딸이나 마찬가지인 두 살 여아의 도움이 가장 컸다.
그 세 가지 감정을 한꺼번에 다 가져다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
광마인을 상대하는 지금, 굳이 어떤 감정을 고르지 않았다. 그저 심상에 떠오르는 마음 그대로 끌어낼 뿐.
지금 떠오른 건 분노와 애잔함이다.
‘빨리 끝낸다.’
그 마음 담은 웅혼한 기세와 함께 대지를 박찼다.
파팟!
화살처럼 쏘아진 몸이 마인을 향해 쇄도했다. 지척까지 날아들어 정권을 내지르려던 순간.
“카르르! 크르릉!”
따라 달려들던 마인이 순간 주춤거렸다.
무윤의 눈가에 의아함이 서렸다.
‘왜?’
빨리 끝내려고 온 내력을 감추지 않고 개방했다. 그 때문인지 본능적인 두려움이 보인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아까와 뭔가 다르다.
분노와 흉성만 있던 표정이 이상하게 구겨졌다. 잠시 주변을 돌던 무윤은 그제야 깨달았다.
‘저건?’
단 한 톨의 인간적인 감정도 보이지 않던 자다. 광기가 부른 흉성만 가득했던 자. 그런데 두려움 속에 섞인 불쾌함과 짜증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성이 남아 있단 말인가?’
본능에 불쾌함과 짜증 또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살인의 광기가 골수까지 미쳤는데 그런 약한 감정이 분노보다 더 도드라진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먼저 달려들지도 않고.
무윤은 생각을 바꿨다. 우선 알아보기로.
‘주변만 공격해 본다.’
말아 쥔 주먹에 거무튀튀한 회색빛이 서렸다. 감정에 따라 색이 변하는데 분노면 붉거나 푸른색, 즐거움이면 하얀색이 더 빛을 발한다.
여러 감정이 섞일 때는 지금처럼 회색일 때가 많다.
주춤하는 마인의 팔뚝에 일부러 주먹을 부딪쳤다.
투욱!
그제야 마인도 양 주먹을 연달아 내지르며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슈우욱!
“크르륵! 카악!”
무윤은 공격 대신 방향을 틀며 상대의 공격을 유도했다. 성난 마인의 전신에 핏줄이 오르고 근육이 부풀었다. 사정없이 날아든 주먹이 무윤의 팔뚝 벽을 연신 두들겼다.
파팡! 콰쾅! 퍽!
주먹질마다 허공에 강렬한 파열음이 울렸다. 가히 초절정은 족히 되는 권격.
파상적인 공세를 막아 내던 즈음, 무윤은 슬쩍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파팟!
순간 짓쳐 들던 마인도 제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공격에는 흉성을 바로 드러냈는데 물러서자 곧 아까의 짜증과 불쾌감이 떠오른다.
‘뭐지?’
무윤은 다가서지 않고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마인 또한 다가오지 않은 채 주변만 이리저리 살폈다.
무윤은 다시 몸을 파고들었다. 공격을 깨달은 마인도 바로 달려들었다.
파앗!
순간 다시 퇴보를 밟자 마인 또한 멈춰 서 버렸다.
무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격하면 대응하는데 상대하기는 싫다? 광마인이 상대를 가린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그때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마인을 상대했던 여휘가 남긴 말.
-내 기운을 마인들이 싫어하더구나. 광기가 극에 달했는데도 전부 두려워 떨기만 했지. 덕분에 발이 얼어붙어서 죽이긴 편했다.
‘혹시 신기심의공 때문에?’
바로 시험해 보면 된다.
무윤은 신기심의공을 거두고 가문의 비류단혼검 내력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그와 동시에 마인이 달려들었다. 멀리서 처음 봤을 때의 표정 그대로다.
파팟!
곧바로 신기심의공으로 기운을 바꾸자, 또 마인이 주춤거렸다.
그렇게 한동안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무윤은 뒤로 물러섰다.
칠정의 기운을 번갈아 써 보면서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된 사실.
‘확실히 신기심의공 기운에 반응해.’
그 이유도 대략 유추가 됐다.
‘심장을 울리는 기운, 그 때문이야.’
각기 다른 감정의 기운에 따라, 마인의 표정 또한 달리 변했다.
그게 알려 준 사실.
뇌, 곧 의식 세계는 광기에 빠졌지만, 인간 본연의 울림을 간직한 심장은 그걸 기반으로 하는 신기심의공에 반응했다.
여휘는 당시 분노만을 가졌기에 마인은 두려움만 보였던 것이고.
생각을 정리한 무윤에게서 씁쓸한 미소가 흘렀다.
‘하지만 그뿐, 돌아올 기미는 전혀 없어.’
향후 기운이 더 커진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온몸의 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빨리 끝내는 게 상대를 위해서도 최선.
우우웅!
무윤의 권이 몰아치듯 거대한 바람을 갈랐다. 연환 공격이 시작됐다.
콰쾅! 파팟! 퍼퍽!
연이은 충격에 마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시퍼런 빛의 주먹이 온몸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퍽! 우둑! 빠각!
주먹이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굴을 가격하자 뿜어진 핏물이 허공을 수놓았다.
파팟!
마인의 두 눈이 점점 멍하게 풀리며 의식을 잃어 갔다.
순간 무윤의 눈이 깊어졌다.
‘마지막.’
끌어올린 내기 가득 복부를 향해 내지르던 순간, 마인의 눈을 보던 무윤의 눈이 부릅떠졌다.
‘눈동자!’
흰자위만 가득했던 눈에 어느새 검은 눈동자가 확연히 보였다.
급히 방향을 틀어 신형을 뒤로 물렸다.
휘익!
잠시 후, 괴성만 난무하던 마인의 입이 부르르 떨렸다.
“……왜? 여긴?”
무윤의 눈이 번득였다.
‘돌아왔어.’
마지막 수가 아니더라도 이미 생은 결정된 상황.
남은 시간은 길어야 반 각 정도.
하지만 광마인이 저런 식으로 이성을 차린다는 건 들어 보지 못했다.
그 의아함 가득한 시선이 마인을 향했다.
“……?”
상대의 시선 또한, 다른 의미의 의문이 가득 담겼다.
“……?”
순간의 정적에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만 귓가를 스쳤다.
천마라 불린 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