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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29화 (29/161)

29화

연사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뇌양의 무윤을 살펴보면서 마인이 아니란 촉은 이미 왔었다. 거기에 그간 살펴본 놈이 하는 짓도 흥미롭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왠지 마음이 당기는 놈이란 말이지.’

느낌을 중시하는 연사구에게 그만큼 확실한 건 없다.

마음을 정했지만 그래도 다시 묻긴 해야 했다. 상대의 입으로 직접 들어야 하니까.

“너! 아니지?”

“그래. 마인 아니다.”

연사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참 이상해. 너같이 약은 놈이 어떻게 그런 걸 당했냐?”

“그땐 아니었지. 세상 물정 하나도 몰랐으니까.”

“누군지는 알고?”

“대충.”

“복수 안 해? 네 실력에 그 잔머리면 지금도 충분할 텐데.”

“그 일뿐이면 지금도 무림맹 멸마단에 몰래 가면 되지.”

“그럼?”

“부모님 뵐 낯이 없잖아. 어리숙하게 당하고 걱정만 끼쳤는데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찾아봬야지. 나 없어도 가문은 무리 없으니까.”

이제 연사구가 궁금한 건 하나 남았다.

“무공은 어떻게 된 거야?”

“남 밑천은 왜 건드려?”

“궁금하잖아. 뭐 말해 주기 싫으면 말고.”

이건 둘러댈 수밖에 없다.

“딴 게 있겠냐. 좋은 스승님을 만났다.”

“대단한 분이겠네?”

“날 보면 알잖아.”

이제 의문은 거의 풀렸다. 무공이야 당장 더 묻기도 뭐하고.

연사구는 평소 시선 그대로 무윤을 직시했다. 그게 자신의 신뢰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럼 됐네. 아까 그 이야기나 계속해 봐.”

무윤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흘렀다.

‘역시!’

봐 온 대로 공야성처럼 믿고 같이 갈 자다. 즐겁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줄 스승이기도 하고.

주손학이야 내 일이 아니니 감췄을 뿐. 위험해질 수도 있고.

이제 이 세상에도 나이를 떠나 친구가 셋 생겼다.

하후진, 공야성, 그리고 연사구.

아직 예전 친구만큼은 아니지만, 그 싹을 키워 갈 만한 이들.

그러자면 비바람을 같이 맞아 봐야 한다.

벗이라는 하늘이 준 고귀한 선물인지 알려면.

무윤은 담담히 말을 풀어냈다.

“여기 터전을 잡을 생각이다. 힘이 있어야 뇌양 일도 복수하기 좋으니까.”

“그래서 하오문도 껴들라 이건가?”

“관련된 모든 일은 여곽 상단에서 한다. 대외적으로 나나 청호방과 엮일 건 없지. 너와 나 사이 빼고는.”

“좋아. 그건 알았고. 그래서 어디까지 하려고?”

“우선 이삼 년은 조용히 힘을 키운다. 그다음은 나중에.”

연사구는 이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몇 년 안에 적운문과 부딪히겠지. 그땐 어쩌려고?”

지금은 이 말이 적당하다.

“조심하겠지만 꼬랑지 내릴 생각도 없다.”

연사구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중에 무력은 제외다. 무윤이 좀 뛰어나다 해도 혼자 상대할 세력이 아니니까. 그럼 버티고 싸울 방법은 하나뿐.

‘시전의 상당 부분을 장악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게 있다.

“시전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러자면 은광 하나 가지곤 부족해. 조금씩 키워 간다 해도 몇 년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

이젠 알릴 일이다. 두 은광 중 하나만 개발한 걸.

“은광이 하나 더 있어. 내 측근 몇 사람만 알지. 이젠 너까지.”

“얼마나 되는데?”

“지금 것의 두세 배는 넘는다.”

연사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이젠 너도 가 봐야지. 언제 갈래?”

그럼 더 의심할 일은 없고 궁금한 것만 남았다.

“그럼 그것도?”

“똑같이 이 할!”

연사구는 절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 이런 기회를 놓치는 건 바보다. 이미 마음이 가는 놈이기도 하고.

하지만 분명히 선을 그을 게 있다.

바로 무윤과 눈을 마주했다.

“좋아. 난 끝까지 너와 함께한다. 하지만 하오문은 그럴 수 없어. 만약 적운문과 충돌하면 그땐 상황에 맞게 움직인다. 이건 양보할 수 있는 게 아냐. 알지?”

“당연하겠지. 좋다.”

“그럼 잘해 보자고. ……친구.”

“그러자고. 이제 시전 사업을 알려 주지.”

“꺼내 봐. 무슨 잔대가리를 굴렸는지.”

“한 번만 설명할 거니까 이해나 똑바로 해.”

“이거 왜 이래? 하오문에서 나만큼 대가리 굴리는 놈 없다니까!”

“보면 알겠지.”

그날 회의는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그제야 돌아가던 연사구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새끼 뭐 하러 강호에 있지? 과거 보면 딱인데.’

며칠 후, 침주 저잣거리엔 소문이 짝 퍼졌다.

“이보게 자네, 소식 들었나?”

“뭐?”

“글쎄, 침도방 부방주 놈이 음적이었다지 뭔가.”

“헉! 그럼 당장 잡아야지!”

“벌써 잡아 죽였어.”

“휴! 난 또. 다행일세. 근데 침도방은 몰랐단 말인가?”

“방주가 우연히 알고는 하오문과 같이 죽인 거야.”

“그래! 에이! 이참에 침도방까지 무너지면 좋았는데.”

“응? 그건 왜?”

“요즘 청호방이 좋은 일 많이 하잖아. 그놈들 없어지면 청호방이 거길 먹을 거 아니냔 말이야.”

“듣고 보니 그러네. 뭐 그거야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이번 일에 책임이 있다고 당분간 자숙하겠대. 그럼 조금은 나아지겠지.”

“그래! 그나마 다행이네.”

두 달 후, 여곽 상단 심처.

침주 하오문 지부방 연대보는 연신 웃음을 흘려 냈다.

방금 수결한 문서의 숫자가 눈에 아른거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크크! 이 할이라니.’

수결 한 번에 앞으로 늙어 죽을 때까지 돈 걱정은 훨훨 날려 보내도 된다. 그 횡재를 안겨 준 조카 연사구에게 눈이 갔다.

‘흐흐! 골칫덩어리가 아니라 복덩이야.’

하지만 바라보는 인상은 일그러졌다.

“야! 아직 안 온 사람도 있는데 먼저 먹으면 어떡해!”

연사구는 고개도 안 들고 주절거렸다.

“늦는다고 먼저 먹으라고 했잖아요.”

“야 인마! 그래도…….”

여곽 상단 단주 진유송이 껴들었다.

“우리 먼저 먹어야겠습니다. 늦는 모양이네요.”

지부장 연대보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크흠! 더 기다려 보죠. 다른 일도 아니고…….”

그때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무윤은 좌중을 향해 급히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연사구의 고개가 확 들려졌다. 말은 무덤덤하게 했어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야! 어떻게 됐어?”

같이 들어온 공야성의 미소가 답을 더했다.

“딸입니다. 순산이고 산모도 무탈합니다.”

“야! 정말 다행이네요. 하하! 이거 오늘 축하할 게 많네요.”

은밀히 모이긴 했지만 여곽 상단에 하오문이 참여하는 걸 공식화하는 자리.

마침 그런 날에 유선이 출산하게 됐다. 그 때문에 무윤과 공야성이 늦게 온 것이고.

곽유양은 잔을 높이 들고는 주변을 둘렀다. 흡족한 미소가 만면에 흘렀다.

“시작하기 전에 좋은 일 하나 더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부장 연대보는 눈을 껌벅였다.

“어떤?”

“두 번째 은광 맥을 다 살폈는데, 맥의 굵기도 크고 거의 땅 가까이 깔렸습니다.”

“헉! 그럼 채굴 비용도 그렇고 생산량도?”

“예. 생각보다 수익이 배는 늘 거 같습니다. 허허!”

“야! 그런 일이. 이거 오늘 밤새 술 마셔야겠습니다.”

“그러시죠. 오늘 같은 날 안 그러면 언제 그래 보겠습니까.”

“자! 다들 드시죠. 하하!”

한참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 무렵.

슬며시 밖으로 나온 무윤은 먼 하늘로 시선을 향했다. 어둠 뚫고 올라온 별 무리가 한가득 눈에 들어왔다.

그 빛 향한 아련한 미소에 남모를 감회가 담겼다.

‘소려(昭麗)야!’

오늘 태어난 유선의 아기 이름은 그녀 청대로 자신이 지었다.

과거 자신이 딸로 키웠던 아이의 이름 그대로. 소려라고.

당초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다른 좋은 이름 몇 개를 머리에 떠올리고 있었는데.

막 태어난 아이를 보는 순간 생각이 바뀌어 버렸다.

‘이리 아쉬움이 많은 줄 몰랐구나. 미안하다 소려야.’

여휘의 글에 안부라도 있었으면 덜했을 텐데.

마지막으로 빙옥섬수를 전해 준 걸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아쉽고 후회된다. 그 허탈함이 밀물처럼 몰아닥쳤다.

‘왜 그리 속이 좁았을까. 후!’

소려가 떠나던 날, 입에서 맴돌던 그 말은 결국 하지 못했다.

딸이 돼 줘서 고맙다는 그 말.

그런데 태어난 여아를 보는 순간, 처음 월소려를 딸로 받아들였을 때 그 격정과 흥분이 다시 휘몰아쳤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이제 곧 떠날 유선 대신 그 아이의 아버지가 돼 주기로.

월소려에 대한 미안함이 만든 새로운 인연이다.

그렇게 과거의 아쉬움과 새로운 각오를 정리할 때쯤, 한 사람이 다가왔다.

연사구는 입술을 실룩거렸다.

“뭐야? 혼자 웬 청승?”

“그냥 옛 생각이 나서.”

“뇌양?”

그렇다고 할 수밖에.

“거기 말고 더 있겠어.”

연사구의 손이 어깨에 올라왔다. 나름 고민한 말을 툭 뱉어 냈다.

“이 정도 했으면 슬슬 가 봐도 되지 않아?”

“아직. 이제 시작이잖아. 뭐 좀 만들고 나서.”

“그러자면 시간 꽤 걸릴 텐데.”

“그러겠지.”

“언제 가 보려고? 일이 년?”

과거든 현재든 당장 급한 일은 없다.

살아갈 방향을 다 정하진 못했지만 이건 시간이 필요한 일.

지금은 준비할 때다.

과거에도 그랬듯, 최소한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생길 때, 당당히 내 삶을 살아가면 된다.

그때까지는 조용히, 묵묵히 지금 길만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삼 년 정도.”

“너무 긴 거 아니야?”

“동생이 알아서 잘하잖아. 아버지도.”

연사구도 자기 생각에 떨떠름한 목소리가 절로 나왔다.

“에고! 내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닌데. 나도 아버지 보려면 한참 남았지.”

“넌 좀 걸리지. 한 십 년 정도?”

연사구는 부아가 확 치밀어 올랐다. 그동안 남몰래 쌓인 울화가 술김에 터져 나왔다.

“이 새끼가! 남은 위로해 줬더니 염장을 질러 대? 내가 은월청요검(隱月靑雲劍)만 제대로 익혔으면 너 같은 건 진즉에 뼈다귀를 추렸어, 이거 왜 이래!”

순간 무윤의 눈이 부릅떠졌다.

‘은월청요검? 그게 왜?’

월 소려를 떠나보낼 때 따라 보낸 도천이라는 놈이 있었다.

나중에 소려가 문주이던 은야문의 호법이 됐던 자.

소려를 마음에 품은 놈이라, 혼인할 남자에게 주려고 만든 무공을 그에게 건넸었다. 그걸로 소려를 지켜 주라고.

무륜이 만든 절대의 무공 중 하나, 그게 은월청요검이다. 소려의 빙옥섬수에서 나는 푸른빛을 남몰래 잘 감싸 주라고 지은 이름.

그걸 여기서 듣게 되다니.

“방금 은월청요검이라고 했지?”

“어? 내가 그랬나. 에이! 뭐 썩 중요한 건 아닌데 못 들은 걸로 해.”

“그게 네 무공이냐?”

“신경 끄라니까.”

“어디서 들은 이름 같아서 그래. 말해 봐.”

“그래? 뭐 그렇다면. 다 듣고 어디 가서 떠들지는 마라.”

“알았어.”

“그건 내 무공이라기보다 하오문에 대대로 내려오던 거야.”

“언제부터?”

“그건 모르지. 한 삼백 년 전까지는 강호 전체 하오문주가 있던 시절인데 당시 문주가 각 지부장들한테 알려 줬어. 그게 나까지 전해진 거고. 원래 문주만 알던 건데 워낙 우리 무공이 시답잖으니까 그랬다고 하더라고.”

무윤의 눈이 커다래졌다.

“아무리 그렇다고 절대의 무공을 지부장까지 푼다고?”

“뭔 개소리야! 잘해야 끝이 초절정인데.”

“뭐?”

“너 어디서 이상한 얘길 들은 모양인데. 예전엔 아주 대단했다는 말도 있는데 그거 다 거짓이야. 뭐, 그래도 끝이 초절정은 되니까 우리 입장에선 감지덕지지만.”

오랜 세월에 일부 소실이나 변형됐을 수 있다.

우선 확인할 게 있다.

‘은야문(隱野門)이 하오문의 전신인가?’

지금 기억 어디에도, 봤던 자료에도 월소려가 만들었던 정보 단체 은야문은 없다.

그래서 긴 세월 속에 사라진 줄 알았는데.

하오문도인 연사구라면 혹시 알지 모른다.

“너 혹시 은야문이라고 알아?”

연사구의 눈이 살짝 커졌다.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는 모양이네.”

“당연히 알지. 우리 하오문 뿌리가 거긴데.”

무윤의 눈이 깊어졌다.

‘역시!’

또 다른 인연이 남아 있었다.

천마라 불린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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