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산에서 내려오는 길, 주손학은 한동안 허탈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 정도였다니.’
물론 모든 걸 꺼낸 싸움이 아니다. 하지만 무인의 직감이 알린다. 그렇다 해도 쉽지 않은 상대임을.
젊은 나이에 실력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슴을 뛰게 하는 것.
‘일 년 전에 절정이던 자가 어찌!’
그 앞길이 가늠이 안 되는 무인. 거기에 자신만의 길을 걷는 자. 그런 자와 함께하는 가슴에 흥분과 설렘이 없을 수 없다.
“이젠 자네 확신을 믿어 보고 싶구먼.”
“그러셔도 될 겁니다.”
“한데 자네 무공, 정말 특이해. 그냥 외공이라 하긴 좀…….”
“궤가 다른 무공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초면에 더 묻는 건 예의가 아니다. 앞으로 살펴보면 될 일.
“그런가. 다음에 부탁하지.”
“제가 드릴 말씀이죠.”
이제 마공과 오대세가 일을 알아볼 차례. 무윤은 가장 궁금한 걸 먼저 꺼냈다.
“오대세가가 왜 마공을 연구하지? 무공에 있어선 부족한 자들이 아닌데.”
서문세가를 제외하고 남궁, 팽가, 당문, 제갈은 천 년 이전부터 이어진 문파다. 그때 무공도 절대 부족하지 않았는데, 천 년이 지난 지금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신기심의공이 최고라 자부하지만, 과거에 경험한 그들 무공 또한 극의에 다다르면 큰 차이가 없다. 익힌 자의 자질에 따라 얼마든 뒤집을 수 있는 정도.
“처음엔 마공을 견제하려고 그랬겠지. 그러다 마공도 발전하니까 그중에 탐나는 게 생긴 거고.”
무윤은 실소부터 올라왔다.
“자기 것만 파도 충분한 놈들이 무슨!”
“그걸 위해 마공을 연구하는 거야.”
무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교, 분석이야 당연한데 그 정도가 아니다?”
“가장 원하는 건 상단전 일부를 활용할 약물이지. 그걸 자기들 무공에 접목하려고.”
무윤의 눈이 커다래졌다.
‘약물로 상단전을?’
무윤은 누구보다 많은 무공에다 앵속 같은 약물의 효능도 잘 안다. 하지만 상단전을 인위적으로 건드리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엄두가 안 난다. 거기다 약물은 특히 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게 가능해?”
“그렇게 물으면 아니다가 답이지.”
“그럼?”
“설명하자면 마공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부터 해야 하는데.”
“해 봐.”
“그걸 다?”
“간단히 줄여 봐.”
잠시 생각하던 공야성은 나직이 한숨부터 흘렸다.
“이 얘기부터 하는 게 좋겠네. 산속에서도 아버님은 어떻게든 치료 약 하나라도 더 만들려고 하셨지. 그게 속죄라고 생각하셨거든. 근데 난 처음엔 같이하다 커서는 반대했어.”
“왜?”
“대부분 마공은 결국엔 뇌를 건드려. 근데 너도 알겠지만, 현재 의술로 뇌, 곧 정신세계는 미지의 영역이지. 아주 한정된 부분에 효과를 보이는 약물밖에는 불가능해.”
“그런데?”
“어쨌든 그걸 치료에만 쓴다면 문제없지. 근데 무인이란 족속들이 그러겠어? 치료만 할까? 그 마공이 없어지고 끝날까?”
빤한 답이 무윤에게서 흘렀다.
“부작용이 없어졌으니 더 위험한 짓을 하겠지. 딱 거기에만 쓸 수 있는 약물인데.”
“그래. 만들면 뭐 하냐고. 뻔히 악용할 놈들이 있는데.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야. 치료 약이 더 흉측한 마공을 부르는 마중물인 셈이지.”
무윤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앵속을 치료제로 쓰면서 비슷한 상황을 수도 없이 경험했었다.
“그래도 어쩌다 성공하는 놈들도 있으니 안 없어지는 거고.”
공야성은 다음 화제를 꺼내 들었다.
“오대세가도 그걸 잘 알아. 근데 심상 수련만큼은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 거지.”
무윤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환각은 고정된 의식을 일시적으로 풀어 버리지. 그러다 생각의 벽을 허물 수도 있을 것이고. 그걸 원하는 건가?”
“그래. 근데 그것도 마찬가지야. 조금 성과가 나오면 욕심이 생기고 과하게 쓰게 되지. 그런 약 대부분은 중독성이 있잖아.”
“조절은 불가능한가? 예를 들면 옆에서 강제로 한다거나.”
“오대세가도 그렇고 정파, 사파, 천마교 할 것 없이 요즘 가장 몰두하는 연구가 그런 거야. 물론 거의 다 실패지만.”
“왜?”
“조절이나 적절히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되잖아. 상단전은 의식의 세계라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른데 무슨 재주로 약을 조절해?”
“그러네.”
“근데 실험자가 많으면 어설프게라도 기준을 세울 수 있지. 천마교가 간혹 성공하는 이유가 그거야. 같은 무공을 익힌 실험자가 많으니까. 근데 정파나 사파야 그런 표본 자체를 모을 수 없으니 무조건 실패하는 거고.”
순간 무윤의 눈이 번득였다.
‘표본이라!’
이렇게 탐욕을 꺼낸 자들이 더한 짓도 생각 안 할 리 없다.
속 깊은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파고들면 들수록 복마전이겠구나.’
무윤은 그때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이럴 땐 역지사지로 묻는 게 효과적이다.
“만약 네가 그런 문파 입장이라면 어떡할래? 아주 냉정한 입장에서.”
답은 바로 나왔다.
“빤하지. 첫째, 중독성을 최대한 줄인 약을 만들어서 실험자에게 몰래 먹인다. 그러다 결과가 나오면 좋고, 아니더라도 중독되면 하수인으로 쓰면 되고.”
“둘째는?”
“은밀히 없애고 싶은 곳은 약이나 마공서를 써서 마인으로 몰아 버린다. 저들에겐 쉬운 일이지.”
그 말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오대세가 중에 주도한 게 누구야?”
“동의는 다 했지. 근데 내가 알기론 당시 남궁과 팽가는 미온적이었어. 나중엔 빠진 거 같기도 하고. 제갈과 당문, 그리고 서문가가 주축이었지.”
“서문가가 앞장섰겠네. 공야의숙을 이용한 걸 보면.”
“그중에 가장 세가 약하다 보니 그랬을 거야.”
“지금도 하고 있을까?”
“당시 연구하던 의원들은 사고 직후에 다 사라졌어. 그땐 중단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아는 게 없다.”
“네 생각은?”
“빤한 질문이다.”
“……!”
무윤은 마지막으로 무식한 화두 하나를 던졌다. 그래도 궁금했으니까.
“언제쯤 완치제가 나올까?”
공야성의 입가에 실소가 흘렀다.
“언제쯤? 아마 천 년이 지나도 안 나올걸.”
“그렇게나?”
“사람의 정신세계는 그 하나로 작은 소우주야. 그걸 천 년 안에 파헤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아! 이렇게 비유하면 이해하겠네.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저 넓은 바닷속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짐작하는 거랑 똑같은 짓이지.”
“……!”
무윤은 산길을 내려오는 내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런 상황이면 오대세가뿐일 리 없지.’
온갖 점잔은 다 떨어 대는 곳이 이러는 판인데.
정, 사 가릴 것 없이 거대 문파는 물론 무인이라면 누구나 혹할 만한 사안이다.
아련한 눈빛이 잠시 눈가를 스쳤다.
‘선우진, 그놈 말대로 누구든 씨앗을 뿌렸을 일이야. 또 무림이 존재하는 한, 없어질 일도 아니고.’
물론 그 덕분에 마음의 짐도 완전히 덜어 냈다.
알게 모르게 발단을 만든 부담감이 있었는데 이제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다.
남은 건 자신의 문제뿐. 그 또한 쉬운 답을 찾았다.
‘무림맹 멸마단.’
주손학과 달리 자신은 거기를 이용할 수 있다.
존재야 알고 있었지만, 마인 척살만 담당하는 줄 알았던 곳.
‘그런 줄만 알았지.’
억울하게 마인으로 몰린 자 대부분은 이미 만들어진 판 위의 장기말이나 마찬가지. 거기까지 가서 판별을 요청하는 자체가 어려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나야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 놓고 가면 된다.’
내려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 * *
며칠 후, 청호방.
연사구는 입을 삐죽였다.
“왜 불렀어?”
“네 헛소리 때문에 일이 좀 생겼다.”
“응?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해?”
“침도방 부방주가 주손학이라며?”
“그거야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하여간 그게 왜?”
“만약 진짜 마인이면 이참에 침도방을 먹을 수 있잖아.”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어제 뒤를 쫓다가 걸렸다.”
연사구의 눈이 커다래졌다. 바로 짐작 가는 상황이 있다.
“주손학이면 네가 여기 있을 리는 없고.”
“종자귀라는 음적이더군.”
순간 연사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새끼? 그놈 목에 걸린 게 은자 이백 냥인데. 어쨌냐?”
“어디다 떠들 일이 아니잖아. 죽여서 태워 버렸다.”
이건 정말 성을 낼 일이다.
“야! 이 멍청한 놈아! 은자 이백 냥 날아갔잖아!”
무윤은 미리 나눈 얘기대로 말을 풀어냈다.
“그때야 몰랐지. 침도방주한테 듣고 알았는데.”
“뭐? 침도방주를 만났다고?”
“몰래 찾아가서 담판 지었다.”
“어떻게.”
“무릎 꿇렸다. 대신 당분간은 방주도, 영역도 지켜 주기로 했고.”
순간 의아했던 연사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참에 확 쓸어버리지 못할 이유는 하나뿐이다.
“적운문 때문에?”
“다른 일로 눈치 볼 것도 있어. 너와 상의할 것도 그거고.”
“나랑?”
무윤은 주손학으로부터 받은 것을 건넸다.
“이 일부터 마무리하자. 종자귀 그놈 도하고 색공서다. 하오문에서 처리한 거로 해 줘. 갈 방주하고도 그렇게 얘기했다.”
“끙! 근데 목이 없으니 이거 가지곤 현상금 절반도 못 받아.”
“그건 수고비.”
연사구는 냉큼 앞에 있는 걸 쓸어 넣었다.
“뭐 그러면 알아서 하지. 그건 그렇고 일이란 게 뭐야?”
“은광 일이다.”
연사구는 눈을 껌벅였다. 아는 척하기도 그런 상황.
“그건 또 뭐야?”
“나 조사했다며 몰라? 그 정도 정보력이면 이 얘긴 없던 걸로 하지.”
“아, 아니. 누가 모른대? 또 지랄할까 봐 그런 거지.”
“그 일 같이할 생각 없냐?”
“……?”
잠시 후, 연사구의 입이 확 비틀어졌다.
말없이 무윤을 뚫어지게 바라본 지 일각 만이다.
“하! 이 새끼 진짜 대가리에 쥐 나게 하네. 그러니까 은광 지분 이 할을 우리 하오문에 준다 이거지?”
“단, 십 년은 매각 못 해. 그 후 우선 매입권은 곽가에 있고.”
“어쨌든 우릴 준다는 거잖아.”
“여러 번 말했다.”
연사구는 여곽 상단 은광에 대해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솔직히 내가 조사 좀 했지. 근데 거기 앞으로 족히 오십 년은 거뜬한 은광이잖아, 그 이 할 지분이면 월에 은자 백 냥은 족히 떨어져. 그럼 쌀이 오백 석이야! 그것도 한 달에!”
“정확하네. 그 정도 정보력이면 됐어.”
“야! 대박 건이 없을 때 우리 월수입이 은자 오십 냥 정도다. 그것도 이것저것 빼고 나면 수익은 일 할도 안 돼. 근데 월 은자 백 냥을 공짜로 준다고?”
“그것도 오십 년 동안 꼬박꼬박.”
연사구는 미간을 찡그렸다.
‘이 새끼가 왜 이러지?’
눈앞에 있는 놈은 그런 걸 절대 공짜로 줄 놈이 아니다. 하지만 빈말 또한 절대 안 하는 놈.
쉽게 생각하고 덥석 물 게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했다.
“소문 하나 내 주는 조건은 아닐 테고. 그럼 지나가던 똥개가 웃겠지. 솔직히 말해. 무슨 꿍꿍이야?”
무윤은 그동안 연사구에 대해 살핀 것도 그렇고 만나 본 이후 모습에 마음을 굳혔다.
자신을 알리기로.
여차하면 무림맹 멸마단을 부르면 되는 것도 결정에 한몫했다.
위험부담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앞으로 같이할 일은 그만한 신뢰 없이는 더 힘든 상황이 올 수 있다.
진솔한 눈빛 그대로 담아 상대를 마주했다.
“솔직히?”
“그래. 솔직히.”
“좋아. 그럼 그 전에 하나 묻자.”
“뭐?”
“내가 마공을 익힌 거 같으냐?”
순간 등줄기를 서늘하게 내리는 전율이 연사구의 뇌리를 때렸다. 생각지도 못한 반문이 절로 터져 나왔다.
“너! 혹시?”
“그 촉 엉터리는 아녔어.”
“……!”
“신고할래?”
멍한 연사구의 시선이 한동안 허공을 맴돌았다.
천마라 불린 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