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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라 불린 내 친구-25화 (25/161)

25화

한동안 아픈 머리를 매만지던 연사구는 입을 삐죽였다.

“언제 알았냐?”

“언제더라……. 아! 하후진이 살수한테 당할 뻔했을 때.”

“……오래됐네.”

“너도 지붕에서 오래 버텼지. 보기보단 인내심이 있어.”

연사구의 눈이 살짝 커졌다.

“보기보다? 내 뒤라도 캤냐?”

“개뿔! 지부하고 주점, 집만 왔다 갔다 하는 놈을 무슨! 며칠 훑으니 볼 것도 없던데.”

“우리 집에도?”

“잠버릇 심한 거 안다고 했잖아.”

“……날 설명할 필요는 없겠네.”

“그나저나 왜 내려왔어?”

“궁금해서.”

무윤은 싱긋 미소 지었다.

“한참 조사하더니 짚이는 게 없나 보네.”

“그래서 왔잖아. 너 누구냐?”

“조사한 것부터 풀어 봐. 궁금하네.”

연사구의 눈이 번득였다.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될 때.

“몇 놈 있는데 가장 유력한 건 뇌양의 무윤!”

“누군데?”

“뇌양 천가 몰라?”

“또 맞고 싶냐? 빨리 풀기나 해.”

연사구는 짜증스럽게 얼굴을 구겼다. 상대는 눈가의 떨림 하나 없다.

‘잘못 짚었나?’

아까 싸움에서 마인이 아닌 건 직감했다. 마공을 익힌 자와 몇 번 상대한 적이 있는데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으니까.

“천가장주가 몰래 아들을 찾고 있는데 탐문하는 자 체격이랑 행적이 너랑 비슷해. 마공을 익혀서 쫓기는 놈이거든.”

무윤의 가슴이 갑자기 아려 왔다.

‘아직도.’

근 사 년이 지났는데 아버지란 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러고 있다는 건…….

하지만 지금은 티를 낼 때가 아니다. 무심한 표정 그대로 약간 놀란 듯 물었다.

“마공? 이 근처에도 마인이 있나?”

“호남 북쪽이면 몰라도 여긴 거의 없지. 나도 여기 와선 한 번도 못 봤으니까.”

무윤은 티 나게 피식 웃었다.

“이거 보기보다 멍청한 놈일세. 내가 마인으로 보여?”

“그놈 마인이 아닐 수도 있거든. 그땐 어수룩했던 놈이라 뭔가 뒤집어썼을 수도 있어. 그 가정으로 널 의심한 거지.”

무윤은 손을 휘저었다. 더 묻고 싶지만 지금은 의심만 키운다.

“쓸데없는 소린 됐고. 그나저나 널 어떡할까? 남의 무공 훔쳐보면 어떻게 되지?”

“에이! 이거 왜 이러실까? 잘 알면서. 난 그럴 땐 잤어.”

“그건 모르겠는데.”

“야!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나 알아봤잖아. 그럼 알 거 아냐? 우리 아버지가 누구…….”

스스로 말을 끊은 연사구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

연사구는 짜증스럽게 얼굴을 구기며 벌컥 역정을 냈다.

“참내 세상에! 내가 어쩌다 또 아버지 이름을 팔아서……. 뭐야 시팔! 나 진짜 병신 새끼인 거야! 하! 씨부랄!”

“무슨 말인지 알아먹게…….”

연사구는 하늘을 향해 악을 바락 썼다.

“야! 나 지금 기분 더럽다고! 말 좀 이따 해!”

“…….”

그 한마디에 주객이 전도돼 버렸다. 무윤은 피식 웃음이 올라왔다.

‘하여간 재밌는 놈이라니까.’

겉으로 보인 눈빛은 정말 죽일 듯 보였다. 그런데도 전혀 다른 이유로 심각하다니. 나름의 여유가 정말 대단한 놈이다.

잠시 후, 무윤은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내가 정말 안 죽일 거 같냐?”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연사구의 입가를 비틀었다.

“넌 죽일 놈하고는 입 아프게 안 떠들잖아. 그럴 거면 아까 죽였겠지.”

“……많이도 조사했네.”

순간 연사구의 눈이 반짝였다.

“참! 진짜 목숨값 할 만한 정보 하나 챙겨 왔지.”

그래도 하오문 당주인데 쓸모 있음을 알릴 요량에 준비한 게 있다.

“뭔데?”

“얘기하면 알지? 다 없던 걸로 하는 거다.”

“들어 보고.”

“야! 괜한 말싸움하지 말자고. 너 조사하다 우연히 얻은 건데 이건 지부에서도 몰라. 나만 아는 거니까 믿어 봐.”

“네 숙부도 못 믿는 널 나보고 믿으라고?”

“그거야 다 이유가 있다니까! 내가 장사에서 서문가 새끼들 패 버리는 바람에 우리 아버지가 거기 가주 앞에서 싹싹 빌고 여기로 온 거야. 여기선 숨죽이고 살아야 한다고.”

“언제까지?”

“초절정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

“오래 걸리겠다.”

“우라질 놈! 하여간 그때까진 이러고 살아야 된다고.”

“알았다. 말해 봐.”

연사구의 눈이 번득였다.

“침도방 부방주 있지. 아무래도 그자 주손학일지 몰라.”

“그게 누군데?”

“이런 시팔! 주손학도 몰라? 도대체 아는 게 뭐야?”

“말이나 해.”

“이십오 년 전에 장사 공야의숙 장주가 피살당한 적이 있어. 그 범인이 의동생 주손학인데 마공을 익혔다고 알려졌지. 그게 들통나서 도망쳤고.”

무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자가 마인이라고?’

몇 달 전 침도방에 갔을 때 초절정 정도의 내기를 뿌리던 자.

“확실해?”

“거의. 내가 장사에 있을 때 서문가는 그때도 조사하고 있었어. 그래서 상세히 알지.”

바로 의문이 떠오른다.

“그럼 하후가에 알리면 간단하잖아?”

“그러다 아니면?”

“확실하다며?”

“야! 확률이 그렇다는 거지. 그러다 아니면 나만 좆되잖아. 그냥 첩보로 알고 있으라고 한 말이지. 말귀를 못 알아들어.”

무윤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시 패 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우선 물어야 하니까.

“어느 정도 확실한데?”

“내 촉으론 확실해.”

“네 촉대로면 나도 무윤이겠네?”

“…….”

이제 알아볼 건 얼추 끝났다. 앞으로 은광과 시전 사업 관련해서는 연사구도 그렇고 하오문과도 일할 게 있다. 여길 엮어야 귀찮은 일이 많이 사라진다.

“우선 알았어. 가 봐라. 앞으론 정문으로 다니고.”

연사구는 이건 물어야 했다.

“누군지 물으면 내가 바보겠지?”

“잘 찾아봐. 어디서 나오긴 할 거야.”

“아우! 시팔! 내가 찾아내고 만다. 꼭!”

“열심히 해.”

투덜대던 연사구가 떠난 후.

무윤의 눈이 깊어졌다.

‘마인이라!’

과거는 다 잊기로 했지만 마인은 자신도 엮여 있는 일.

아직 마인을 접해 본 적이 없어, 침주 일이 정리되면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의외의 변수가 생겼다.

‘우선 닥친 일부터.’

최근 고리대 전장 일은 침도방 조직원들도 같이하는 걸로 협의 중인데 이러면 재고해야 한다.

자신을 무윤으로 점찍은 연사구의 촉이라 스쳐 들을 순 없다.

우선 일을 추진하는 공야성과 의논하는 게 급선무.

잠시 후, 여곽 상단 회의실.

“……지금 누구라고 했지?”

공야성의 세차게 떨리는 눈은 마음의 격동을 알렸다. 당혹감 서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의아한 무윤은 다시 한번 내용을 정확히 알렸다.

“주손학. 오래전 일인데 장사(長沙)에 있는 공야의숙 장주를 죽이고 도망친 마인이라고 했다.”

“……!”

한참의 정적이 방 안에 흐를 무렵.

무윤은 말을 꺼낼 상황이 아님을 알았다. 계속해서 내쉬는 묵직한 숨만이 공야성의 복잡한 심사를 알리는 상황.

‘뭔가 있어.’

공야성과 보낸 시간은 이제 약 넉 달. 넉넉한 시간이라 할 순 없지만,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뜻을 같이하기엔 충분했다.

아니, 나이를 떠나 며칠 만에 개인사를 제외하고는 못 할 얘기가 없는 지우(知友)가 됐다.

그런 이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아연해진 지금은 그저 묵묵히 신뢰의 표정으로 바라만 봐야 한다.

예전 친구들에게 그랬듯이.

한참 후, 더듬더듬 떨리는 말이 공야성의 입가를 헤쳐 나왔다.

“그 하오문 친구 말 믿을 수 있나?”

“헛소리 지껄일 놈은 아니야. 어느 정도 확신이 있으니까 말했겠지.”

“더 알아볼 수 없나?”

“그놈한테? 그럴 순 있는데 좋은 방법 같진 않은데.”

“새어 나갈까 봐?”

“지금이야 혼자 아는데 더 조사하면 지부가 다 알겠지. 뭔지 모르지만 그러면 안 될 일 아니야?”

“후! 그럼 다른 방법은?”

“내가 알아볼까?”

“그자 초절정은 된다며?”

“가까이는 몰라도 적당한 거리에선 괜찮아.”

공야성도 무윤이 감춘 실력이 있다는 정도는 안다.

“그럼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부탁 좀 하자.”

“뭘 알아보면 되는데?”

“우선 생김새하고 움직이는 동선, 따로 만날 수 있는지, 뭐 그런 거.”

그때 무윤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참고가 될 만하다 싶어 말을 더했다.

“참! 서문가도 침도방하고 뭔 일이 있는 거 같던데.”

순간 공야성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서문가? 거기가 왜?”

“하후가를 움직여서 침도방을 궁지에 몰려다가 실패했지. 이유는 나도 몰라. 하후가도 모르는 거 같고.”

서문가가 나섰다면 끌 일이 아니다.

“그자를 만나 봐야겠다.”

“네가?”

“그래, 지금 당장.”

“뭔 일인지 물어도 돼?”

“그자가 주손학이면 말해 주마.”

“만난다고 알 수 있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러지 말고 내가 조사해 보고…….”

“보면 안다.”

“……네가?”

“조용히 만나게만 해 줘.”

잠시 생각하던 무윤은 하나는 물어야 했다.

“이거만 말해. 적이나 원수 뭐 그런 거야?”

“그자라면 싸울 일 없어.”

“마인인데도?”

공야성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주손학은 마인이 아니다.”

“……?”

이틀 후, 망산(莽山)의 한 사찰, 연화사.

산문을 나와 천천히 내려가던 이의 눈이 번득였다.

죽립을 눌러쓴 시선 그대로 숲속을 향했다.

“내게 볼일이 있나?”

사라락!

천천히 걸어 나온 무윤은 가볍게 고개 숙였다.

“조용히 뵈려고 왔습니다.”

주손학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청호방주! 이자가 왜?’

최근 자신의 방주와 시전 일을 같이 의논한다고 들었다. 조직원도 그렇고 민초들의 삶도 나아질 일이라 좋게 보고 있었는데.

어쨌든 선자불래 래자불선(善者不來 來者不善)이라, 이리 찾아온 건 좋은 일은 아닐 터.

“우리 방주와 하는 일은 눈가림이었나?”

“아뇨. 오늘 논의만 문제없으면 진행합니다.”

“논의라? 방 일은 하나도 모르는 나와 말인가?”

“여쭐 것이 그건 아닌 모양입니다.”

주손학의 시선이 죽립을 쓰고 걸어 나오는 다른 자를 향했다.

“용무는 자네가 아니라 저자라?”

“예.”

주손학의 시선에 의아함이 가득해졌다. 무인이 아닌 자의 걸음이 떨리는 게 확연히 보인다.

‘누구기에?’

공야성의 고개가 천천히 숙여졌다.

“이리 찾아봬서 송구합니다.”

“왜 날 보자 했나?”

“여쭐 게 있습니다.”

“……뭔가?”

공야성은 격한 흥분에 솟아오르는 숨을 그대로 입에 실었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것과 비슷한 체형이다.

“혹, 아주 오래전에 사행산에 오르신 적이 있습니까?”

주손학은 눈 가득 터져 나오는 살기를 감추지 않았다. 사행산이라는 말이 나온 이상 살려 두기 어렵다.

그전에 묻기는 해야 할 터.

“누구냐?”

공야성은 어느 정도 확신이 들자 죽립을 벗었다.

“전 기억에 없지만 제 아버님이 거길 알려 주셨습니다.”

순간 주손학의 커다래진 눈망울이 파르르 떨렸다.

‘설마!’

달빛에 보이는 얼굴 윤곽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절로 뛰는 심장의 고동과 맥박이 흥분과 설렘을 알렸다.

“아버님 함자가?”

“지 자 명 자를 쓰셨습니다. 밝은 세상을 가라고 할아버님이 지어 주셨답니다.”

“……!”

공야성은 품에서 비도를 꺼내 건넸다. 입술이 부르르 떨려 왔다.

“막내 의숙부께서 숙부님께 선물로 준 거라고 하시던데, 마지막에 이걸 건네주셨답니다. 더는 지켜 줄 수 없다고, 어떻게든 꼭 살라고 하시면서…….”

주손학은 벅차오른 가슴에 터질 것 같은 숨을 몰아쉬었다. 비도와 그 말이면 더 의심할 게 없다.

“후! ……형님께선?”

“오 년 전에 귀천하셨습니다. 편히 가셨습니다.”

“……그랬느냐?”

공야성은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를 흘렸다.

“조카 공야성, 숙부님께 인사드립니다.”

조카의 등과 어깨를 향한 주손학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근 이십 년 만이다. 어렸던 조카의 등을 다시 어루만지는 건.

울렁인 가슴에 금세 촉촉한 물기가 눈가에 아른거렸다.

“살았구나. 살았어. 그거면 됐다.”

“…….”

둘의 억누른 울음소리가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에 묻힐 즈음.

내력 가득 끌어올린 무윤의 발걸음이 나직이 숲을 향했다.

지금은 조용히 자리를 비켜 줄 때다.

천마라 불린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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