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173화 (173/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73화

[투표 종료 : 총 800억 개의 도토리코인 중에 22.6%가 투표권을 행사했으며, 그중 71.38%가 전쟁 개입 반대에 투표했습니다.]

[투표 결과에 따라 WHTS컴퍼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지 않기로 최종결정을 내립니다.]

투표 결과가 공개되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전쟁 개입 찬성이 적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은 개입 반대표가 무려 71%나 나왔다는 것이었다.

지원을 간절히 기다렸던 우크라이나는 비탄에 빠졌다.

처음부터 기대가 없었으면 몰라도, 지원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가 무산돼 버렸으니. 그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반대로 투표를 불편하게 여겼던 러시아 측은 즉각 태세를 전환하여, 외무부 대변인이 공식 성명까지 내놓게 된다.

-보라, 대중도 우리 러시아의 군사 작전을 지지했다!

러시아가 침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가상화폐 투표를 들먹이자 여론은 휘발유를 부은 것처럼 활활 타올랐다.

특히 전쟁 반대 의견이 주류였던 트윗이나 페북 등의 서구 SNS에서는 투표 과정을 의심하는 루머까지 쏟아지기 시작했다.

-Stevanovic77

전쟁 개입 반대가 70% 넘게 나왔다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과야!

-koros No999

투표가 조작된 게 틀림없어. 아니면 투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가상화폐 프로그램 버그가 생겼거나.

-juliaVi

러시아 정부가 개입했을 가능성은 없는 거야? 그들이 소련 시절부터 쌓아둔 검은돈이라면 충분할 것 같은데.

┖kame UP

도토리코인 시가총액은 20조 달러를 넘어섰어. 그걸 러시아 혼자서 감당한다고?

-SyaSya liuma

친구들, 이번 투표 참여자는 일반인이 아니라 가상화폐 투자자라는 사실을 잊지 마.

┖wing9916

그게 뭐가 다르다는 거야?

┖SyaSya liuma

투자자들의 목표는 세계 평화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소유한 가상화폐의 가치 보존이야. 그러니 승산도 없는 전쟁에 개입해서 러시아의 제재를 맞고 싶어 할 리가 없지.

┖Hyper dik

자기 나라에서 전쟁 난 게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다.

-SyaSya liuma

우리 솔직해지자고. 전쟁 결과에 전 재산을 걸어야 한다면 너희는 어디에 베팅할래?

┖BOB tumboy

군사력 세계 2위에 빛나는 러시아 vs 이미 땅을 잔뜩 빼앗긴 최약체 우크라이나.

┖bravery cowgirl

냉정하게 전 재산이 걸려있으면 무조건 러시아지.

┖BOB tumboy

나도 러시아.

┖disrespect1011

이건 어쩔 수 없네.

-kame UP

슬프게도 투표 결과를 납득하기 시작했어.

-Stevanovic77

우크라이나인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중이야. 그런데 너희는 돈 때문에 그들을 외면했다고?

┖SyaSya liuma

지구 반대편의 전쟁보다 내 지갑 속에 있는 100달러 지폐가 더 소중한 법인데 어쩌겠어.

┖Stevanovic77

엿 같은 세상. 차라리 싹 망해버렸으면.

* *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초창기만 해도 우크라이나군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상황이 계속됐다.

이 당시엔 군사전문가들도 우크라이나 수도 함락은 시간문제라고 여길 정도였다.

하지만 미국의 전폭적인 물자 지원이 시작되면서부터 전황은 다시 팽팽한 균형을 되찾았다.

러시아군이 밀고 들어가면 우크라이나군은 다른 지역을 쳐서 탈환했고, 러시아군이 막으러 돌아가면 우크라이나군도 회군하며 공방을 이어갔다.

말 그대로 일진일퇴가 거듭되는 상황.

그렇게 넉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전쟁도 장기전 양상을 띠게 된다.

“대표님! 대표님!”

이소영이 대표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뭐가 그리 급한지 숨을 헐떡거리는 와중에도 말을 내뱉는다.

“런던거래소 선물 차트 확인해 보셨어요?”

“소영아, 진정하고 숨부터 쉬어.”

“그럴 때가 아니에요! 런던거래소에서 천연가스가 227유로에 거래됐어요! 사상 최고치라고요!”

천연가스 1메가와트시당 227유로면 이소영의 말대로 런던거래소 개장 이래 최고치였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유가, 석탄은 물론이고 곡물까지 40% 넘게 폭등했어요.”

우크라이나 평야는 유럽의 대표적인 곡물 생산지다.

자원 비축분이 바닥을 드러내는 동안에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니 시세가 폭등할 수밖에.

“음…… 그런데 소영아.”

내가 뜸을 들여서 그런지 이소영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말씀하세요, 대표님.”

“아무리 회사라 해도 둘이서 있을 때까지 대표님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잖아.”

“공과 사는 확실히 해야 하는 법이에요.”

“그래도…….”

“아이, 참 한가한 말씀 하실 때가 아니에요. 얼른 이것도 보세요.”

이소영은 들고 왔던 서류 뭉텅이를 책상 위에 내려다 놓는다.

밤사이에 있었던 각국의 지수 변동과 수정된 경제 지표 예측치가 정리된 보고서였다.

“영국에서 올해 인플레이션 예상치를 14%로 발표했어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도 덩달아 인플레이션 예상치를 상향 조정했고요.”

“경제 성장률은?”

“역대 최악이에요. 4분기는 마이너스 24%라는 말까지 돌고 있어요.”

올해 유럽 지역은 팬데믹 사태를 해결하느라 셧다운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팬데믹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물가까지 역대급 폭등을 기록했다.

여기서 경제가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리라.

“다른 지역은 좀 어때?”

“세계적으로 비슷비슷해요. 굳이 꼽자면 에너지와 곡물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의 타격이 큰 편이에요.”

팬데믹과 전쟁은 아직 전반전도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경제 지표에서는 벌써 살려달라는 절규가 들려온다.

“대표님이 겪었던 미래에도 비슷한 경제 위기가 있었죠?”

“지금이 훨씬 심각해. 그땐 팬데믹이 거의 끝날 무렵에 전쟁이 터졌지만, 지금은 두 사건의 발생 시기가 겹쳐 버렸으니까.”

“이번 겨울은 혹독한 눈보라를 견뎌야겠네요.”

“더 끔찍한 건 눈보라가 내년은 물론이고, 내후년까지도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지.”

한숨을 연이어 내쉬던 이소영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낸다.

“저…… 대표님, 지금이라도 우리가 나서면 안 되나요? 제가 듣기론 병력 투입 준비가 거의 끝났다고 하던데요.”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가상화폐 투표 결과는 이미 전쟁 개입 반대쪽이 승리했다.

여기서 우리가 임의로 결정을 뒤엎고 전쟁에 개입해 버리면 투표 무용론이 제기될 것이다.

“참 어렵네요. 세계 각국에서 들어오는 압박을 피하려고 가상화폐 투표를 내세웠더니, 그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소영아, 네가 자책할 일이 아니야. 가상화폐를 이용한 투표 시스템은 완벽해.”

“하지만 결과가…….”

나는 축 늘어진 그녀의 어깨를 살짝 붙잡고서 끌어당긴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번 겨울이 지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혹독한 추위는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에서 깨우침을 가져다주기도 하거든.”

전쟁은 당사자만의 비극이 아니다. 전 세계의, 전 인류의 비극이다.

당연한 메시지지만 직접 고통을 겪어 보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는 메시지기도 하다.

만약 이번 겨울로 모두가 같은 교훈을 가슴속에 새길 수 있다면, 인류는 더 나은 미래로 향할 수 있을 것이다.

* * *

2020년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해를 넘겨서까지 계속됐다.

전쟁이 길어지자 초창기엔 소극적이던 유럽 국가들도 우크라이나를 돕기 시작했는데, 이에 러시아는 유럽으로 연결된 가스관을 잠그며 보복에 돌입했다.

에너지값의 폭등은 곧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성장률 감소, 실업자 증가, 소비 심리 위축이 더해지자 세계 경제는 파멸 직전까지 내몰리게 된다.

상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자 대중의 관심은 다시 WHTS컴퍼니로 향했다.

그들이 아제르바이잔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전쟁 수행 능력은 사람들을 지푸라기라도 움켜쥐는 심정으로 만들었다.

-도토리코인 백서에는 투표로 결정된 사안일지라도 6개월이 경과하고 전체 투자자의 10%가 동의하면 재투표가 가능하다는 내용이 존재한다.

SNS에서 시작된 재투표 운동을 메이저 언론사들이 보도하면서, 나흘 만에 전체 투자자의 10%를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진행된 재투표 결과는 전쟁 개입 찬성표가 86%.

6개월 만에 여론이 뒤집히면서 WHTS컴퍼니는 공식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을 선포하게 된다.

* * *

러시아 국방통제센터에서는 긴급작전 회의가 열렸다.

회의장에는 러시아 국방장관, 참모장, 육, 해, 공군 사령관. 그리고 푸틴 대통령까지 참석해 있었다.

“하르키우 지역으로 향하던 보급부대가 드론 공격에 괴멸했습니다. 다음 보급부대를 출발시키긴 했으나 뾰족한 대응책이 없는 실정입니다.”

“바하무트 지역 역시 극심한 보급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실탄이 부족해서 전투력 손실이 심각합니다.”

“조지아로 우회했던 특임대가 회군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우크라이나 접경지에 깔린 정찰 드론을 처리하지 않으면 외부 루트 진입은 힘들어 보입니다.”

푸틴이 참석한 회의임에도 현장에서 넘어오는 소식은 악재밖에 없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알렉산드로 보르니코프 사령관은 보고를 도중에 잘라내고 말했다.

“그놈의 드론이 뭐라고 전 군이 쩔쩔매는 거야? 미사일을 쏴서 격추시켜! 아니면 조종하는 놈을 잡으면 될 것 아냐!”

“사령관님, 외람된 말씀이오나 미사일로 드론을 제거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맞추기 어려워서 그래?”

“그보다 단가가 안 맞습니다. 미사일은 한 발 150만 루블이나 하지만, 전투 드론은 3만 루블이면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쏴! 지금은 수지타산을 따질 때가 아니다!”

드론을 잡는 데 50배나 비싼 미사일을 퍼붓는 것은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전장에 나간 병사들이 총알도 없이 싸우게 생겼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드론 방어용 미사일 배치는 공군 비행장이 우선입니다.”

“거긴 무슨 문제가 있지?”

“엥겔스와 댜질레보 비행장에 드론 공습이 있었습니다. Tu-22M3 폭격기 11대와 IL-78 공증급유기 2대가 파괴 됐으며…….”

공군 측에서 먼저 미사일 지원을 요청하자 육군과 해군 장교들도 벌떼처럼 일어난다.

“흑해의 상륙함대도 지원이 절실합니다. 수상 드론의 방해만 없으면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보급 없이 전쟁을 치를 생각입니까? 다른 곳보다 보급로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지난 열흘간 드론 공격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장교들은 먼저 미사일 지원을 받겠다고 드잡이질까지 할 기세다.

도중에 보르니코프 지휘관이 중재를 시도했으나 장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다 일순간 장내의 소리가 뚝 멎는다.

끼익.

상석에 앉아 있던 사내, 푸틴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못 봐주겠군.”

그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장교들을 노려보고는 회의장을 빠져나간다.

“대통령 각하!”

뒤늦게 니콜라이 총참모장이 허겁지겁 그를 따라나선다.

“사흘이면 수도까지 점령할 수 있다던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반년 넘게 빌빌대고 있는 이유를 이제 알겠어.”

“그건 서방의 방해가…….”

“아니, 사령관으로 저딴 무능력자들이 앉아 있어서다.”

푸틴은 노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씹어 뱉는다.

“보르니코프는 파면이다. 후임자는 내가 직접 고르겠다.”

“각하, 전시에 사령관 교체는 지휘부의 혼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혼선이 생겨도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푸틴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니콜라이를 돌아본다.

“니콜라이여, 그에게 전쟁을 맡겨두면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건…….”

“보르니코프는 안일한 인간이다. 평시라면 몰라도 전시에는 승리가 절실한 사령관이 필요하다. 빅토르 정도면 적당하겠군.”

차기 사령관으로 빅토르의 이름이 언급되자 니콜라이가 기겁하고 나선다.

“각하, 빅토르가 사령관에 오르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가 적임자라는 거다. 그동안은 우리가 신사적으로 대응해줬기에 이 꼴이 된 거야.”

전쟁에서 패배는 죽음과도 같다. 그건 독재정치로 임기를 억지로 늘려왔던 푸틴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그의 시퍼런 두 눈동자가 결의로 물든다.

“핵미사일을 준비해라. 서방에 우리의 의지를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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