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72화
트럼프와 통화는 대략 20분 정도,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는 대통령 재선이 반년도 남지 않은 시기였기에, 이번 사태가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우려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정석적으로 그의 물음에 답해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예상되는 국제적 반응, 변동되는 경제 상황, 그리고 미국 내 여론 변화까지.
-오우! 역시 대니얼입니다. 참모들에게 물었을 때보다 훨씬 명쾌한 대답이 돌아오는군요.
트럼프는 내 대답을 만족스러워했지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나 역시 이번 상황이 미칠 듯이 당황스럽다는 것.
‘러시아가 벌써 전쟁을 시작하려는 이유가 뭐지? 원래 역사의 흐름이라면 코비드 사태가 잠잠해질 무렵에나 군대를 움직였을 텐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로 진격하는 시점은 정확히 2022년 2월 24일이다. 이날은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나흘이 지난 뒤였기에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2년이나 빨리 전쟁이 시작될 줄이야.
‘시기가 고작 2년 앞당겨졌을 뿐이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변수가 너무 많아.’
우선 팬데믹이 한창인 시기라는 점이 중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 대통령도 그 당시엔 바이든이었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젤렌스키가 1년도 안 된 신임 대통령이라는 것도 변수다.
-이번 통화가 제게 많은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그럼 남은 이야기는 만나서 마저 하도록 합시다.
어느새 트럼프는 제 할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을 기세였다.
나는 급하게 그를 붙잡는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통령님.”
-무슨 할 말이 남았습니까?
속에서 수십, 수백 가지의 생각들이 솟구친다.
그러나 내 한 마디로 생겨날 나비효과를 생각하면 최대한 신중해져야 했다.
“아닙니다. 남은 이야기는 워싱턴에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럽시다.
툭.
통화가 끝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린다. 소파에 힘겹게 걸터앉은 채로 참았던 숨을 토해낸다.
“망할. 어째서…….”
당황해서 그런지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 땐 아이템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가 담배를 어디 뒀더라? 분명히 이쯤 있었던 것 같은데…….”
거실 주변의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지고 있던 차에,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밤에 뭘 찾으시는 거예요?”
이소영이었다. 캐미솔 차림의 그녀는 잠이 덜 깼는지 입을 가린 채 하품을 내뱉는다.
“언제 깼어?”
“벨소리 울릴 때부터요. 안 깨고는 못 배기겠던데요. 아, 그보다 담배 찾으시는 거라면 거기 없어요. 여보가 저번 달에 다 버렸잖아요.”
“내가?”
아, 맞다. 이제 기억난다. 건강에 안 좋다고 집에 있는 담배란 담배는 몽땅 다 내다 버렸었지.
이렇게 간단한 걸 기억 못 할 정도라니, 나도 어지간히 당황했나 보다.
“트럼프 대통령이랑 통화로 무슨 이야길 하셨어요? 분위기가 심각해 보이던데요.”
“어, 그게…….”
“혹시 제가 알면 안 되는 내용인가요?”
“아니야. 네가 알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그냥 좀 당황스러워서 생각 정리부터 하고 싶었던 거야.”
나는 소파에 앉아서 그녀에게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해 준다.
트럼프에게 들은 러시아의 동향 정보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래에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지까지.
“정말 놀랍네요. 21세기에 그 정도로 큰 전쟁이 터질 줄은…….”
“조짐이 없었던 건 아니야. 이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014년부터 돈바스 지역을 두고 전쟁 중이었거든.”
“이번 공격은 수도인 키예프를 노린다면서요? 그럼 전면전이잖아요.”
내가 고개를 끄덕여 주자 이소영은 뒤늦게 뭔가를 떠올린 듯 질문을 덧붙인다.
“러시아 하면 유명한 군사 강국이잖아요.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그 강력한 러시아의 공격을 어떻게 방어한 거예요?”
“나도 디테일한 내용은 몰라. 아는 거라곤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 수도에서 결사 항전을 택했고, 그 결단이 서방의 지원으로 이어졌다는 것 정도지.”
“대단하네요. 러시아 군대가 밀려오는데 버틸 생각을 하다니요.”
젤렌스키 대통령의 다른 행적에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지라도, 수도를 끝까지 지킨 공로만큼은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그가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해주냐는 거다.
‘하다못해 일 년만 시간이 더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내가 머릴 쥐어짜 내는 동안, 등에서부터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진다.
“저랑 약속했죠? 혼자서 다 해내려고 무리하지 않기로요. 세상의 많고 많은 일을 여보가 전부 해낼 순 없어요.”
“나도 알아, 아는데…… 이번 일만큼은 꼭 해결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
“어째서요?”
“우크라이나가 손쉽게 러시아 손에 넘어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야. 아시아에는 러시아와 흡사한 야욕을 지닌 독재 국가가 한 곳 더 있었잖아.”
이소영은 단박에 정답을 내놓는다.
“중국이요?”
“맞아. 러시아의 행보에 미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해 버리면, 중국도 대만을 침공할 수 있어.”
“대만이 전쟁터가 되면 한국도 참전하는 건가요?”
“미국의 요청이 있다면 그래야겠지. 그리고 전황이 거기까지 흘러가면…… 북한도 움직이게 될 거야.”
북한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이소영은 몸을 흠칫 떨었다. 북한에서 전쟁의 공포를 겪은 당사자인 만큼, 두려움 또한 크게 밀려오는 것이리라.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가볍게 팔을 잡아당겨서 품으로 감싸준다.
“괜찮아. 이럴 때를 대비해서 착실하게 준비해왔잖아.”
“하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이…….”
나는 검지를 들어서 그녀의 입을 가로막는다.
“이번에도 날 믿어 줘. 언제나처럼.”
* * *
미국 백악관에서는 오후에 시작된 회의가 밤을 넘어, 새벽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회의 주제는 전쟁 대응 방침으로, CIA의 보고에 따르면 이틀 내에 우크라이나 침공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국무부 장관은 침공이 시작되면 키예프가 몇 시간 만에 함락되는지로 열변을 토해냈고, 백악관 참모진은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이 득이냐, 실이냐를 두고 저울질하기 바빴다.
그러나 정작 상석에 앉은 트럼프는 회의에 관심이 없는지, 턱을 괸 채로 멍하니 딴생각에 빠져 있었다.
‘대니얼은 우크라이나를 돕는 게 이득이라고 했다. 논리적으로 그의 조언에 하자는 없었어. 오히려 놀라울 따름이었지.’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했을 때 얻는 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는 세계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의 위상과 트럼프 개인의 인기가 상승한다.
둘째는 우크라이나를 앞세워서 경쟁국인 러시아의 국력을 소모 시킬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산 가스값이 치솟으면, 인플레이션으로 유럽까지 경제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전쟁 소식을 듣자마자 이런 생각을 줄줄이 떠올릴 수 있는 거지? 다른 건 몰라도 유럽의 경제적 여파까지 예측해 낸다는 것은 그 방면의 전문가라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
트럼프는 눈을 가늘 게 뜨고 회의장을 쓱 둘러본다.
목소리만 큰 장관과 숫자놀음이나 하는 참모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니얼과 하늘과 땅만큼의 역량 차이가 느껴졌다.
어느 쪽의 의견을 따라야 할지는 명확했다. 마음을 굳힌 트럼프는 책상을 툭툭 내리쳐서 시선을 모은다.
“모두의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제가 대통령으로서 최종 결단을 내리겠습니다.”
장관과 참모진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들도 이미 반나절 가까이 떠들어댔기에 슬슬 결정이 나길 바라고 있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전쟁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우리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트럼프답지 않은 결론이 나오자 국무부 장관과 참모진이 잇따라 그에게 재고를 요청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결단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했다.
“나는 확신합니다. 이것이 미국이 더 위대해지는 길입니다.”
* * *
2020년 7월 20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 ‘특수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
그의 지시가 떨어진 직후 우크라이나에 미사일 공격이 퍼부어졌고,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로 진군을 개시했다.
러시아의 침공 소식을 들은 각국의 정상들은 푸틴의 행보를 강력하게 규탄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들의 메시지는 공허한 메아리였을 뿐. 우크라이나에는 그 어떤 물질적 지원도 이뤄지지 않았다.
침공 하루 만에 러시아군은 키예프 코앞인 디메르까지 진격했으며, 공항도 줄줄이 함락되기에 이른다.
막강한 러시아의 기갑부대 앞에 우크라이나는 풍전등화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크라이나는 이제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틀째 해가 떨어질 무렵, 이번 전쟁의 유일무이한 변수가 발생한다.
-여러분, 좋은 저녁입니다. 이곳 키예프에는 아직 우리 시민들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군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저 젤렌스키도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끝까지 남아서 조국을 수호할 것입니다.
국외로 피신한 줄 알았던 젤렌스키 대통령이 키예프에서 찍은 동영상이 공개됐다.
대통령이 수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그가 이후에 언급한 내용은 더 큰 바람을 몰고 왔다.
-아울러 이 자리에서 WHTS컴퍼니에 공식적으로 지원 병력을 요청하겠습니다. 아르메니아를 지켜낸 그 힘을 우크라이나에도 빌려주십시오.
전쟁을 치르는 국가의 수장이 타국의 정상이 아니라, 일개 기업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주변국은 러시아의 보복이 두려워서 이미 우크라이나의 지원 요청을 거절했고, EU는 이견 조율로 어영부영 시간만 끌고 있었으니.
그나마 우크라이나가 믿을 만한 곳은 최근 전쟁에서 활약을 보여준 WHTS컴퍼니가 유일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메시지가 발표된 이후부터 세계의 모든 관심은 WHTS컴퍼니로 쏠렸다.
WHTS컴퍼니가 아르메니아를 지원해서 성과를 거둔 것은 맞지만, 이번 상대는 무려 세계 군사력 2위인 러시아 아닌가.
전문가들은 WHTS컴퍼니가 이번만큼은 한발 물러서리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1시간 뒤에 발표된 WHTS컴퍼니의 선택은 후퇴가 아니라 정면 돌파였다.
-WHTS컴퍼니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군사 개입의 최종결정은 저희가 아니라 투자자들의 몫이니, 지금부터 정확히 12시간 동안 전쟁 찬반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
지원 여부를 투표로 결정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자 우크라이나 측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고, 반대로 러시아 측은 강력 제재까지 언급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 여론은 전쟁 반대쪽이 압도적이었기에, 우크라이나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12시간이 지나고 뚜껑을 열어보자,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