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171화 (171/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71화

-세계보건기구 WHO의 집계에 따르면 세계 코비드 신규 확진자 수는 4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 중 미국에서만 12만 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발생해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코비드 감염자가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미국인 52%는 감염 방지를 이유로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답변했으며…….

-일부 음모론자들이 바이러스 관련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있습니다.

-“코비드는 감기와 마찬가집니다. 언론과 부자들이 만들어낸 사기죠.”

-“백신을 절대 맞으면 안 돼! 마이크로칩을 피부에 넣어서 우릴 조종하려는 빌 게이츠의 음모라고!”

TV에서는 오늘도 전염병 특집 방송이 보도된다. 뉴스가 이어질수록 옆에서 한숨 소리가 나오는 빈도가 잦아진다.

“대체 저런 헛소리는 누가 퍼트리는 거예요? 백신으로 마이크로칩을 심어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마스크를 쓴 이소영은 질렸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박태식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제수씨, 미국은 순한 맛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유럽 다녀온 거 아시죠? 그쪽은 그냥 끔찍함 그 자체였어요.”

“어떻길래 그러세요?”

“거긴 병원에 자리가 없어서 환자를 복도 바닥에 그냥 눕혀둬요. 전쟁영화에서나 보여주던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니까요.”

박태식은 손짓, 발짓에 생생한 표정 연기까지 더해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좁은 통로 사이로 의료진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보겠다고 방호복까지 입고 뛰어다니는데, 그 와중에 병원 앞에서는 격리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더군요.”

“너무해요. 사람들이 왜 그러는 거예요?”

“셧다운이 길어지니까 벌이가 없잖아요. 당장 굶어 죽을 판인데 전염병이 대수겠습니까?”

“저런…….”

분노에 차올라서 솟아올랐던 이소영의 눈썹이 다시 내려앉는다.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 정답이 없는 거겠지요. 빨리 이번 사태가 끝났으면 좋으련만.”

마지막 말을 흐리던 박태식의 시선이 슬그머니 내 쪽으로 넘어온다.

“왜 그렇게 쳐다봐?”

“이 지긋지긋한 역병이 언제 사라지는지 궁금해서 그런다. 너라면 알고 있을 거 아니냐.”

어느새 이소영까지 가세해서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저번에 말해주지 않았었나? 나도 이번 전염병 사태가 언제 끝나는지 모른다고.”

“설마, 영영 끝나지 않는 다거나?”

“음……. 그럴 가능성도 있지.”

“안 돼요. 평생 이렇게 마스크 쓰고, 집에 갇혀서 살아야 한다니. 아니죠? 아니라고 해줘요.”

인류 최악의 바이러스 사태.

그 끝을 모르는 사람에겐 미지의 공포로 느껴질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언제나 그랬듯 인류는 답을 찾을 거야.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나는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뒤덮이는 미래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편적인 기억만으론 한계가 명확했다.

전염병의 근원지가 어딘지, 발생 시기가 언젠지, 누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방역해야 하는지 등등.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아낸다 해도 중국 정부가 방역에 협조해 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나는 전염병이 퍼지는 것은 상수로 두고, 빠른 종식을 위해 백신 제작이 가능한 제약회사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백신 개발 속도는 어쩔 수 없어. 하지만 백신 제조 설비를 수백억 달러나 들여가며 증설해 뒀으니, 보급 속도에서 큰 차이가 날 거다.’

이 정도면 ‘미리 아는 자’로서 할 만큼은 했다고 본다.

사실, 이번 코비드 사태는 인류의 힘으로 해결 불가능한 자연재해에 가깝지 않던가. 그러니 나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류가 해결해야 하는 재앙에 집중하기로 했다.

* * *

-평화방위팀 로어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대표실 문 너머에서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가 넘어온다.

“예,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곰을 닮은 우락부락한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와 고갤 숙인다.

마크 로어. 한때는 사내 보안팀장으로 있었다가, 지금은 작년에 설립된 자회사 소속 용병부대를 총괄하고 있었다.

“이라크에서 훈련 중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군요.”

“호출이 내려오면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이동 수단을 준비해두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래서 로어 팀장을 좋아한다니까요. 자, 일단 앉으세요.”

나와 로어는 소파로 자리를 옮겨서 마주 앉는다.

소파 테이블에는 서류와 다양한 곳에서 찍은 사진이 가득 쌓여 있었다. 나는 그중 특정 지역의 지도 사진을 그에게 건넨다.

“여기가 어딘지 알겠습니까?”

그는 지도 사진을 슬쩍 훑어보고는 답을 내놓는다.

“러시아와 조지아 아래에 있는 아르차흐 공화국 지도 같습니다.”

“바로 알아보셨군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국경 분쟁으로 항상 잡음이 나오는 지역이라, 평소에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수백 년간 국경을 마주하며 다퉈온 원수 관계다.

단순히 국경 분쟁 정도만 있었던 사이가 아니라, 상대국의 국민을 백만 명 단위로 학살했다가, 보복으로 다시 학살당하기도 하는 등. 역사 자체가 피로 얼룩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저희 측에 공식적으로 군사 파견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곳이라면 정확히 어느 쪽입니까? 아르메니아입니까? 아니면 아제르바이잔?”

“양쪽 다입니다.”

지금껏 표정 변화가 없던 로어였지만, 이번엔 안색이 확연히 어두워진다.

“대표님,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제 생각엔 이번 분쟁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양쪽 국가 모두 명분은 충분하니, 섣불리 지원했다간 후폭풍이 있겠지요.”

약소국으로 분류되는 두 국가의 원한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분쟁의 뒤편에는 러시아, 터키, 프랑스 등의 쟁쟁한 나라까지 엮여 있어서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직접적인 개입이 부담이면 물자 지원 정도만 해주는 건 어떻습니까? 저희 방위팀의 장비라면 전황을 순식간에 뒤집을 수 있습니다.”

“제가 사설 용병부대를 창설한 이유는 전쟁에 직접 개입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방위팀을 창설할 때부터 몇 번이나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로어도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데, 어느 국가를 지원하실지는 결정하셨습니까?”

“우리가 용병부대를 운영하는 돈은 모두 가상화폐 투자자들 주머니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중대한 결정은 그들이 하는 것이 옳겠지요.”

계획은 이미 오래전에 마련해 뒀다. 남은 것은 실행과 그 이후에 맞이할 결과였다.

“로어 팀장, 우리가 가진 군사력이라면 분쟁을 끝낼 수 있습니까?”

“아르메니아가 상대라면 발트 3국에 주둔 중인 무인기 소대 하나면 충분합니다.”

“평범한 승리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상대의 전쟁 의지가 상실될 정도의 압도적인 승리를 원합니다.”

로어는 이번 질문에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가능합니다. 어른이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틀어 버리듯, 압도적인 힘으로 제압할 수 있습니다.”

“좋군요. 그게 제가 원하는 대답이었습니다.”

* * *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소련 해체 시기부터 아르차흐 지역을 두고 지속적인 분쟁을 벌여왔다.

그러다 최근에는 군대끼리 무력 충돌까지 벌어지면서 사실상 전쟁이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양국이 이토록 긴박한 상황임에도 타국의 관심은 시들했다.

인구 300만도 안 되는 소국의 전쟁보다는 당장 현실이 된 팬데믹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이들의 전쟁은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WHTS컴퍼니,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분쟁 개입 여부 투표 실시.]

[투표 참여 조건은 도토리코인을 소유한 사람이면 누구나 가능하며 DT페이 앱에서 코인 1개당 1개의 투표권 행사 가능.]

역사상 최초로 가상화폐를 사용해서 진행되는 전쟁 찬반 투표였다.

이에 전쟁을 모르거나, 알아도 무관심하던 사람까지 이번 투표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투표 종료 : 총 800억 개의 도토리코인 중에 18.9%가 투표권을 행사했으며, 그중 62.44%가 아르메니아를 지지했습니다.]

결과가 발표되자 대중의 관심은 WHTS컴퍼니의 향후 행보에 집중됐다.

수년 전부터 WHTS컴퍼니가 방산 분야에 투자해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기에, 이번에 무엇으로, 얼마나, 어떻게 보여줄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가상화폐 투표 결과가 나오고 약 2시간 정도가 흘렀을 무렵.

예고도 없이 아제르바이잔 외무부의 공식 성명이 발표된다.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은 현 시각부터 모든 교전 행위를 중단하며, 아르메니아 공화국의 국민, 차량, 물품의 이동 자유를 보장한다.

-점령했던 아르차흐 지역 3곳은 아르메니아 공화국에 반환된다.

-지속적인 분쟁 억제를 위해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수도에는 제3국의 평화협의군을 주둔한다.

아제르바이잔의 공식 성명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들에게 굴욕적인 내용이었다.

어째서 아제르바이잔이 이 같은 성명을 발표했는지로 모두가 의아해하던 차에, 인터넷에 아제르바이잔 현지 사진이 공개된다.

사진 속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궁은 활활 불타고 있었다.

시커먼 연기가 치솟는 상공에는 수백 대의 공격 드론과 강습 헬기가 떠다녔고, 그 주변으로 중무장한 보병부대와 군사용 로봇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 * *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궁 점령 사건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단 2시간 만에 대통령 궁을 점령한 WHTS컴퍼니의 군사력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주목받은 점은 이번 공격이 투자자들의 투표로 이뤄졌다는 것이었다.

만약 가상화폐 투표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승리했다면 결과는 반대가 됐을 터.

앞으로 약소국의 전쟁은 군사력이 아니라, 가상화폐 보유 숫자로 승패가 갈리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EU에 소속된 몇몇 국가에서는 WHTS컴퍼니가 전시 국제법을 어겼다며,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이어지는 파도에 의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거센 파도였다. 이번 분쟁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더 크고, 더 파괴적인 격랑이었다.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새벽 4시에 휴대폰이 울어댄다. 평소라면 짜증이 먼저 났겠지만, 지금 울리는 벨소리는 달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받아야 하는 비상 벨소리다.

얼른 잠을 쫓아버리고 휴대폰을 집어 든다.

-대니얼? 지금 통화할 수 있습니까?

수화기로 넘어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트럼프였다. 나는 잠긴 목을 억지로 가다듬고 입을 연다.

“물론입니다, 대통령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 그게 말입니다. 혹시…… 지금 통화를 어디서 엿들을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상시 보안 채널을 쓰고 있기에,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자부합니다.”

-오케이. 그럼 말하겠습니다.

트럼프는 그 뒤에도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을 내뱉는다.

-러시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CIA의 보고에 따르면 곧 전쟁을 일으킬 것 같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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