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68화
JP모건이 출시한 새로운 가상화폐의 출시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경제 분야를 다루는 매체에선 하루가 멀다고 관련 소식을 다뤘고, 주식투자 채널에서는 아예 가상화폐 특집 방송이 편성될 정도였다.
-WHTS컴퍼니의 레버리지 상품을 겨냥하고 나온 월가의 야심작, JP코인의 출시가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분석가님은 이번 두 업체의 맞대결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저는 돈을 걸라면 JP코인 쪽에 걸겠습니다.
-역시 투자는 월가라는 말씀이실까요?
-그렇죠. 월가는 지난 수십 년간 투자 인프라를 쌓아왔습니다. WHTS컴퍼니도 좋은 회사는 맞지만 그래도 월가를 상대로는 이기기 힘들겠지요.
딸깍.
리모컨을 조작한다. 이번 채널에도 사람만 달라졌을 뿐, 역시 가상화폐 특집 방송이 나오는 중이다.
-WHTS컴퍼니가 가상화폐 기술에서는 앞서지만 그래도 월가의 신뢰성을 이기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8대2 정도로 나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월가가 8의 투자금을 확보하겠지요.
-월가의 가상화폐가 성공한다면 WHTS컴퍼니에 들어갔던 투자금이 대거 이탈할 수 있습니다.
방송에 나오는 전문 투자자들과 업계 종사자들은 미리 말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JP코인의 우세를 점쳤다.
이에 TV를 지켜보던 레너드는 한껏 들뜬 얼굴로 입을 연다.
“형님, 보셨습니까? 모두가 우리 JP코인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미 거래소에 뿌린 초도 물량도 매진이고요.”
레너드는 말을 던져 놓고 슬그머니 눈치를 살핀다. 옆에서 같이 TV를 보고 있던 그의 상관은 아까부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어디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면 다른 걱정거리가 있다든지…….”
에드워드는 안 그래도 깊게 파인 미간의 주름을 더 짙게 만들고서 말했다.
“나는 말이야. 아직도 그 가상화폐라는 물건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어떻게 매년 18%라는 이자를 투자자들에게 주고도 수익이 날 수 있지?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나 되는 상품인가?”
“말씀하신 부분이 알고리즘 기반 가상화폐의 특성입니다. JP코인의 시세가 오르면 그 상승효과로 스테이킹 보상을 지급할 수…….”
레너드가 설명을 맺기도 전에 에드워드가 말을 자르고 들어간다.
“자네는 내가 이 바닥에서 장사를 몇 년이나 했다고 생각하지?”
“20년이 조금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22년이야.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금융 상품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겠어?”
에드워드는 옛 생각을 떠올리는지 먼 곳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알고리즘, 스테이킹, 전부 쓸데없는 단어들이야. 핵심은 돈이 어디서 들어와서 어디로 흘러가냐는 거지.”
“자금 흐름이라면 염려 마십시오. 가상화폐만큼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 상품도 드뭅니다.”
“공개는 당연히 해뒀겠지. 내 말은 공개본을 보고도 납득이 안 된단 말이다! 납득이!”
에드워드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말을 쏟아낸다.
“가상화폐를 팔아서 가상화폐 예치자에게 이자를 지급하고, 규모가 커지면 더 많은 가상화폐를 팔아서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한다. 결국은 아랫돌 빼서 윗돌에 괴는 구조 아닌가.”
여기까지만 설명해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를 수 없었다.
에드워드와 레너드뿐만 아니라 금융권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그 단어.
폰지사기.
차이점이 있다면 IT와 블록체인 기술이라는 난해한 개념이 추가됐다는 것뿐이다.
“가상화폐와 폰지사기가 흡사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허나 가상화폐에는 명확한 성공 사례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WHTS컴퍼니를 말하나 보군.”
“그렇습니다. 그들은 벌써 3년 동안 가상화폐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자본 규모를 수만 배 성장시켰습니다. 투자자들은 그런 선례가 있기에 믿고 투자에 나서는 것이고요.”
분명히 가상화폐의 모든 구조는 폰지사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WHTS컴퍼니라는 이레귤러 하나가 존재하는 바람에 그 어떤 논리적인 의심도 부정당해 버린다.
에드워드의 표정이 풀어질 기미가 없자 레너드가 슬그머니 떡밥을 던진다.
“형님 말씀대로 가상화폐가 구조적인 하자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게 뭐가 문젭니까? 중요한 건 여기에 투자자들이 돈을 싸 들고 모여든다는 겁니다.”
무려 3조 달러의 자금이 상품 하나에 몰렸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국가의 채권 시장보다 큰 규모였다.
“보수적인 투자자들은 여전히 가상화폐를 못 미더워하고 있습니다. 이때 근본 있는 투자사인 우리가 시장에 진출하면 그들은 응당 우리를 택할 것입니다.”
이후에도 레너드의 가상화폐 예찬론이 이어졌다.
하나 같이 그럴싸한 이야기들인지라 에드워드도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지금은 WHTS컴퍼니가 선점 효과를 누리겠지만 그것도 한때입니다. 투자 시장은 결국 우리의 홈그라운드 아니겠습니까?”
“쉬운 상대가 아니다. 특히 가상화폐 운영 능력은 그들이 업계 톱이라고 들었다.”
“그건 가상화폐 쪽에서나 그렇고, 투자 업계에선 아직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그러니 형님은 마음 푹 놓으셔도 된다 이 말입니다.”
레너드는 이미 성공을 확신한 사람처럼 목소리에 자신감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회사의 성공이 아니라 레너드 개인의 성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자신감이었다.
* * *
세간의 관심이 쏠렸던 월가의 첫 가상화폐 JP코인이 정식 출시됐다.
판매 방식은 가상화폐 거래소에 위탁하는 형태로 이뤄졌는데, 개당 1달러에 판매를 시작한 JP코인은 거래 첫날 만에 90달러까지 치솟는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월가 최초의 가상화폐 JP코인 출시! 하루 만에 시가총액 2천만 달러 넘어서.]
[JP코인의 역대급 흥행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JP모간의 에드워드 CEO “IT와 금융의 집합체인 가상화폐는 매력적인 투자처. 회사 차원에서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월가의 때아닌 가상화폐 붐. JP모간을 시작으로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크레딧스위스…… 줄줄이 가상화폐 출시 준비에 박차.]
경제지는 물론이고 활자를 찍어내는 모든 언론사가 JP코인 소식을 보도했다.
뉴스가 홍보 효과를 불러온 탓인지 출시 이틀째엔 140달러까지 올랐다가, 사흘째인 오늘은 200달러 선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가상화폐 덕분에 회사 주가가 64%나 올랐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게 다 대표님의 과감하면서도 진취적인 결단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하핫!”
이른 아침부터 에드워드의 집무실로 찾아온 임원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를 칭송하는 말을 뽑아냈다.
평소엔 아부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에드워드였지만 오늘만큼은 그대로 두고 있었다.
‘가끔은 입에 발린 소리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군.’
임원들과 담소를 마친 뒤, 에드워드는 느긋하게 응접실로 걸음을 옮긴다.
응접실 문 앞에는 레너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왜 안 들어가고 서 있어?”
“흐흐흐.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에드워드는 조심스럽게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우!”
입에서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응접실에 마련된 좌석은 물론이고, 뒤쪽 빈자리까지 사람들이 꽉 차서 에드워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이게 다……?”
“예, 우리 상품과 계약하겠다고 새벽부터 찾아온 투자자들입니다.”
레너드는 입을 가린 채, 작게 속닥거린다.
“참 웃기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상화폐 상품을 만든다고 했을 땐 코빼기도 안 보이던 사람들이, 이젠 뭐라도 받아먹겠다고 이렇게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좋게 생각해. 우리가 그만큼 성공했다는 뜻이니까.”
그들이 대화하는 동안 응접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입구 쪽으로 우르르 몰려든다.
“골드만 삭스의 펀드 책임관리자입니다. 귀사의 상품 조건을 상세히 알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파생상품 판매 시점이 언제입니까? 정말 금리 18%가 확실합니까?”
“USA뱅크 펀드에서 JP코인 상품을 취급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주십시오!”
에드워드는 쏟아지는 반응을 한참 즐기다가 입을 뗀다.
“JP코인을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은 8일 뒤, 정확히 10월 10일에 정식으로 출시될 예정입니다.”
장내가 아까보다 더 웅성거린다. 그도 그럴 것이 10월 10일은 WHTS컴퍼니가 가상화폐 파생상품을 출시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대표님! 방금의 발언은 WHTS컴퍼니와 정면승부 하겠다는 뜻입니까?”
누군가의 질문을 받은 에드워드는 호기롭게 웃음을 터트린다.
“물론입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승부를 피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정면으로 싸워서 승리할 것입니다.”
JP코인이 상승세를 탔다곤 하지만, 시가총액 1위인 도토리코인과 정면 대결은 무모한 승부였다.
장내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슬금슬금 고갤 내민다.
“흠흠. 여러분이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에드워드가 다시금 목소릴 높여서 시선을 모은다.
“저희가 JP코인의 현 시세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가상화폐 연계 상품의 금리를 인상해도 된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투자자들의 눈이 커다랗게 떠진다. 이미 18%나 되는 금리를 더 올리겠다니 놀랄 수밖에.
“JP코인 레버리지 상품의 금리를 기존보다 3% 더 인상한 21%로 확정하겠습니다.”
* * *
금융권의 시선이 월가의 가상화폐 출시로 모여 있는 동안, 나는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 DC로 날아갔다.
내가 지구 반대편인 워싱턴까지 갈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오! 대니얼, 정말 반갑습니다!”
호텔 문을 열고 나를 맞이하는 커다란 덩치의 사내.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인 도날드 트럼프였다.
그의 커다란 덩치에 걸맞은 커다란 손이 내 손을 맞잡는다.
“그간에 별일 없으셨습니까, 대통령님?”
“어휴. 골치 아픈 일이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요즘은 대통령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돕니다.”
트럼프는 너스레를 떨면서 나를 거실로 안내한다.
거실엔 그의 개인 물품이 가득 차 있어서 호텔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대니얼이 나를 찾아온 걸 보면 그쪽에도 골칫거리가 있나 봅니다?”
“골칫거리가 아니라 대통령님께 좋은 건수가 하나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려던 그의 손이 멈칫거린다.
“좋은 건수?”
“들으시면 귀가 번쩍 뜨이실 겁니다.”
“이거 참. 대니얼이 그렇게 말하니까 기대가 너무 커진단 말이지.”
그는 냉장고에서 하나만 꺼내려던 콜라를 하나 더 꺼내서 내 앞에 내려놓는다.
“무슨 일이오? 빨리 들어봅시다.”
“최근 금융가에 가상화폐 소식이 잦아진 건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트럼프는 내가 말을 맺기도 전에 손사래를 친다.
“가상화폐와 관련된 일이라면 내가 돕기가 힘듭니다.”
“알고 있습니다. 의회에서 내놓는 규제안을 막느라 유착 논란이 생기셨더군요.”
“그걸 알면서 부탁하는 거요?”
“아닙니다. 저는 반대로 규제책을 내달란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트럼프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한국에서 출시한 K스타코인이라는 가상화폐가 있었습니다. 개발사 측에서 미공개 가상화폐를 팔아먹다가, 수백만 명의 피해자가 나온 가상화폐지요.”
“그래서 한국의 가상화폐가 규제책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이번에 월가에서 출시한 가상화폐가 그 K스타코인과 똑같은 알고리즘 구조입니다.”
콜라를 입에 가져다 댔던 트럼프는 콜록거리며 기침을 토해낸다. 너무 놀라서 사레가 들린 모양이다.
“K스타코인과 같은 방식이니 월가 쪽에서도 미공개 코인을 굴리고 있을 겁니다.”
“그걸 내가 파헤쳐 달라?”
“예. 전방위적인 수사를 지시하면 유착 논란도 잠잠해질 것이고, 월가에 복수도 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일거양득 아니겠습니까?”
“복수라…… 흠…….”
미국 대선 당시, 월가는 힐러리에게만 막대한 후원금을 몰아줬었기에, 트럼프는 아직도 그 일로 앙심을 품고 있었다.
“어흠. 나도 마음 같아선 대니얼을 돕고 싶습니다. 그러나 월가를 직접적으로 건드렸다간 이후 선거에서 후원금이 쪼그라들 수 있어서…….”
“대통령님의 큰 뜻이 돈처럼 사소한 것에 발목 잡혀선 안 되지요.”
미리 준비해 온 보안 USB를 꺼내 탁자에 늘어놓는다.
USB의 개수는 총 5개.
트럼프는 곁눈질로 USB를 내려다본다.
“하나에 도토리 10만 개가 들었습니다.”
총 5천만 달러가 눈앞에 놓인 셈이다. 트럼프는 뒤탈이 없는 말끔한 돈을 마다할 정도로 미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USB를 싹 쓸어서 품에 갈무리한 뒤, 대통령이 아니라 사업가처럼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대표님, 어디부터 털어 드리면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