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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67화 (167/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67화

쏴아아아아아…….

판교로 새로 이전한 WHTS컴퍼니 본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물소리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단순한 빗소리가 아니었다. 로비 중앙에 깔린 초대형 인공폭포가 물을 바닥으로 떨어트리며 나는 폭포수 소리였다.

“진짜. 볼 때마다 기가 막힌다니까.”

빌딩 내부에 인공폭포를 깔아둔 것은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다.

폭포수가 1, 2미터 높이에서 떨어졌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이곳 인공폭포는 무려 6층 높이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 정도 규모면 물 관리하는 데만 수천은 우습게 나가겠지?”

박태식이 중얼거리는 말을 옆에서 누군가 받아서 답해준다.

“수천이 아니라 수십억이 사용된다고 들었습니다.”

언제 왔는지 정장 차림의 여인이 옆에 다가와 있었다. 대표실 소속의 김 비서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박 대표님.”

“아, 예. 일찍 나오셨네요. 그런데 이…… 폭포 관리에 진짜 수십억이 쓰입니까?”

“수질만 관리하는 게 아니라 수조 안쪽과 격벽, 그리고 곰팡이나 결로 방지 차원에서 주변 습도까지 관리하는 비용이 포함돼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시설물 하나 관리하는 데 쓰이는 비용이 수십억이라니.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방문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효과는 있겠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돈 낭비 같은데요.”

“그러라고 만든 시설물입니다.”

“진짜요?”

“WHTS컴퍼니는 IT 회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투자 회사다. 더 많은 투자자를 포섭하려면 회사에 돈이 썩어 넘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저희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박태식은 납득할 수 없는 논리였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언제나 그가 벌인 기행은 결과적으로 성공에 가장 근접한 결과를 냈기 때문이다.

“그보다 김 비서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지금쯤이면 오전 회의 준비로 바쁘실 시간일 텐데요.”

“말씀하신 오전 회의 때문에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김 비서는 난처한 표정으로 주변을 한 번 살피고는 입을 연다.

“저희 대표님이 부재중이셔서 오전 회의가 올스톱 상태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박 대표님께서 대신 회의에 참석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요즘 오전 회의 주제가 신규 파생상품 건이었죠? 그거라면 저보다는 이소영 이사에게 부탁하는 게 나을 겁니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서요. 이소영 이사님은 그제 저녁에 조퇴하시고 어젠 병가를 내셨습니다.”

“어디 많이 안 좋답니까?”

박태식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김 비서가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속삭인다.

“박 대표님, 목소리가 너무 크십니다.”

“누가 들으면 어때서요? 사람이 지내다 보면 아플 수도 있는 거죠.”

“아픈 건 그렇습니다만, 이소영 이사님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 대표님이 급하게 뛰어나가셨습니다.”

“설마, 그때 나가서 아직도 연락이 없는 겁니까?”

김 비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한창 좋을 때네요.”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눈빛으로 교감을 나눈 뒤, 거의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면 두 분께 연락이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계속 전화하기도 난처한 상황인지라…….”

“에이 됐습니다. 제가 오전 회의에 대신 들어가면 되는 거죠?”

“앗! 감사합니다.”

김 비서는 한 번 인사하는 것으로 부족했는지 재차, 삼차까지 고개를 숙이고 자릴 떠났다.

* * *

감긴 눈 사이로 햇살이 내리쬔다.

평소였다면 인상을 잔뜩 찌푸렸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살짝 땀에 젖은 이불도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의 평온을 찾아서인지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대표님. 대표님.”

내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준 목소리다. 듣기 좋은 소리에 반응해서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나는 일부러 잠에서 덜 깬 것처럼 몸을 돌린다.

“대표님, 이젠 일어나셔야 할 것 같아요. 대표님?”

목소리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잽싸게 손을 뻗어서 그녀를 끌어당긴다.

자연스럽게 품으로 쏙 들어오는 작은 몸.

축축한 머리카락이 피부에 닿는다. 벌써 일어나서 머리까지 감았나 보다. 부지런도 하셔라.

“잘 잤어?”

“오랜만에 푹 잤어요.”

“나도 그래.”

수면제의 도움 없이 이렇게 푹 자고 일어난 게 거의 1년 만이다.

그녀가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녀에겐 숨길 거리가 없다. 내 오랜 과거도, 앞으로의 미래도, 모든 것을 편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잠시만요. 저 휴대폰 좀…….”

품에서 벗어나려는 그녀를 꽉 끌어안아서 붙잡는다. 잠시 버둥거림이 느껴졌지만 이내 포기한 건지 저항이 잦아들었다.

“오늘은 그냥 이대로 있자. 밥이나 커피도 시켜 먹고.”

“안 돼요. 출근하셔야죠. 어제 아침 회의도 빠지셨다면서요.”

이소영은 말을 하는 동안에도 필사적으로 내 팔을 치우려고 힘을 쓴다. 그러나 나는 절대 놔줄 생각이 없었다.

“나 하나 없다고 회사에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잘됐네. 이참에 열흘 정도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 아니면 침대에 계속 누워서 지내도 좋고.”

“대표님!”

“아니다. 그 전에 우리 주민센터부터 다녀오자. 혼인신고부터 해둬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원래 커다랗던 이소영의 눈이 곱절은 더 크게 떠진다.

“뭘 그리 놀라? 프러포즈도 승낙했잖아.”

“아, 아니 그래도 혼인신고는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원래 좋은 계약은 도장부터 찍고 보는 거야. 그래야 나중에 무르자는 소리를 못 하거든.”

“아이참. 지금 농담하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

이소영은 내 팔을 억지로 풀어내고서 휴대폰을 가져온다.

“이거 보세요. 지금 큰일 났다니까요.”

휴대폰을 강제로 내 앞에 들이민다. 화면엔 금융권 뉴스를 메인으로 다루는 경제지 사이트가 띄워져 있었다.

[월스트리트의 첫 공식 가상화폐 ‘JP코인’ 출시 임박! JP모간의 에드워드 CEO “가상화폐의 혁신성과 금융권의 안정성이 더해진 신개념 상품이 출시될 것”]

기사를 요약하자면 JP모간에서 새로운 가상화폐를 출시하고, 동시에 관련 파생상품을 출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DT파이낸셜에서 내놓는 레버리지 상품에 대응하려고 급하게 출시하는 건가?”

“무조건이에요. 기사 말미에 보시면 예상 이자율이 18%로 잡혀 있어요. 이건 우리가 17%대로 출시하니까 노골적으로 1%를 더 얹어주겠다는 거잖아요.”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이라니 음…… 곤란하게 됐어.”

“우리도 빨리 대응하려면 출근부터 하셔야 해요. 저는 머리만 말리면 되니까…….”

일어나려는 이소영의 팔을 잡아당겨서 다시 침대로 끌어 내린다.

“저…… 대표님? 얼른 준비하고 회사에 나가셔야죠. 긴급 상황이잖아요.”

“서두를 필요 없어. 배고프니까 간단하게 아침부터 먹고 커피까지 한 잔씩 마시고 움직이자.”

“그래도 괜찮은 거예요?”

“걱정하지 마. 월가에서 가상화폐를 만든다고 달라질 것도 없어.”

“그럼 아깐 왜 곤란하다고 하셨나요?”

나는 배게 아래에 처박아둔 내 휴대폰을 꺼낸다.

무음으로 해뒀던 휴대폰에는 수십 통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해 있었고, 지금은 전화까지 울리는 중이다.

“이렇게 방해받고 싶지 않았거든.”

* * *

박태식이 생각한 오전 회의는 팀장들의 보고를 받고, 가벼운 서류 결재만 오가는 정도였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회의에 대리 참석하겠다고 말했었건만, 실제로 도착한 회의장은 그가 생각한 모습과 수백 광년 정도는 떨어진 모습이었다.

“지금부터 WHTS컴퍼니 긴급화상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수십 개의 모니터가 주렁주렁 달린 회의장엔 신우혁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투자자들이 잔뜩 참석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나타난 것은 신우혁이 아니라 얼굴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써놓은 박태식이었으니.

‘이런 회의일 줄 알았으면 안 오는 건데.’

회의 참석자들이 평범한 투자자였으면 이러지도 않았을 거다.

하나같이 어디의 그룹 총수나, 투자사 CEO, 펀드 책임자가 앉아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먼저 월가에서 출시한 가상화폐를 분석한 보고서입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스테이블 방식과 섞인 복합형 가상화폐가 될 것이며, 초기 발행량은 약 2억 개 수준…….”

회의는 가상화폐 부서 직원들이 보고를 내놓으면, 투자자들이 질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최고 책임자는 박태식이었기에, 그에게도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들었다.

-WHTS컴퍼니는 어떤 대응을 준비 중입니까?

-이대론 월가 쪽 상품으로 투자금이 대거 이탈될 수 있습니다.

-펀드 투자자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우리 상품의 매리트를 강화할 방안을 마련해 주십시오.

박태식은 쭉 해외사업만 담당했던 터라 가상화폐나 파생상품 쪽은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 그가 할 수 있는 답변이라곤 형식적이거나 두루뭉술한 것이 고작이었다.

-박태식 대표님, 그런 말씀으론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어째서 이 중요한 대책 회의에 신우혁 대표님은 불참한 겁니까? 하다못해 이소영 이사님이라도 참석하셨어야죠.

실시간으로 머리가 피가 마르는 느낌이다. 여기 앉아 있어봤자 투자자들의 화만 돋울 뿐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박태식은 책상 아래로 슬며시 휴대폰을 꺼낸다.

‘신우혁, 제발 전화 좀 받아라. 부탁이다.’

문자메시지를 채워 넣고 전송 버튼을 누르려던 차에, 놀랍게도 기다리던 전화가 울린다.

“헛!”

박태식은 당황해서 휴대폰을 끈다는 것이 통화 연결 버튼을 눌러 버렸다.

-여보세요. 태식아. 지금 어디야?

그토록 찾던 신우혁의 목소리가 들리자 모두의 이목이 이쪽으로 몰린다.

박태식은 어색한 웃음으로 양해를 구하고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어…… 나, 지금 회의실.”

-통화 가능한 거 맞고?

“가능은 하지. 참고로 주변에 사람은 많다.”

-괜찮아. 간단한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되는 거니까.

“뭔데?”

-서류에 네 이름 좀 올리자. 보증이나 이상한 거 절대 아니고, 그냥 연락처랑 이름만 있으면 돼.

이상한 게 아니라니까 더 불안하다. 박태식은 나가서 전화를 마저 할 생각으로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서류길래 내 연락처가 필요해?”

그러나 그가 나가기도 전에 폭탄이 떨어진다.

-혼인신고 신청서.

박태식의 걸음이 뚝 멎었다. 동시에 회의실 내부의 공기 흐름도 그의 움직임처럼 멎은 듯했다.

-이거 쓰려면 성인 두 명이 증인으로 이름을 올려야 한다네? 그래서 물어본 거야.

“아, 아니 잠깐만. 하…… 당황스럽네. 상대는 그래서…… 소영 씨 맞고?”

-맞아. 어제 프러포즈했고 오늘 도장 찍는다.

“너네, 너무 빠른 거 아니냐. 아니지, 일단은…… 그래. 축하한다.”

한 박자 늦게 회의실 직원들이 가세해서 축하 인사를 건넨다.

그러자 화상으로 연결된 투자자들도 어리둥절해 있다가 분위기에 휩쓸려서 같이 손뼉을 쳐줬다.

“그런데 말이야. 너…… 지금 상황이 어떤 줄은 알고 있지?”

-월가에서 가상화폐 내놓는 거?

“그래 그거. 어떻게 할 생각이야? 투자 금액도 상당하고, 이자도 꽤 공격적으로 책정한 것 같던데.”

-신경 쓰지 마. 가상화폐 판은 어쭙잖은 주식쟁이들이 기웃거릴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야.

월가는 세계 정상급 투자집단이다. 그런 곳을 얕보는 듯한 표현을 내놓자 회의실이 술렁거린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월가야. 투자에는 이골이 난 만큼, 쉽게 생각했다간 우리가 당할 수 있어.”

-그건 얌전한 주식 시장일 때나 통용되는 말이지. 가상화폐 판은 하루에 30% 등락은 기본에 마이너스 99.99%도 심심찮게 나오는 야생이야.

주식 투자의 리스크가 크다고 해도 가상화폐와 비교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가상화폐 투자는 법이라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조차 없었기에, 야생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JP코인? 내가 장담하는데 그거 일주일도 못 버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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