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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66화 (166/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66화

나 신우혁은 2023년에 죽었다. 정확한 표현으론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탄 차를 덤프트럭이 정면으로 밀어 버렸으니까.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무려 8년 전인 과거의 신우혁이 돼 있었다.

이 사실을 말한다고 믿어줄 사람이 있긴 할까? 솔직히 내가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나조차 믿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진실을 알리지 않았다.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는 물론이고, 태식이에게도 예지몽이라는 핑계만 댔을 뿐이다.

‘그녀는 내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농담으로 여기고 웃어넘길까? 아니면 단순 장난으로? 그도 아니면 내게 속았다고 화를 낼지도 모르지.’

입술이 바싹 마른다. 수백억 달러짜리 투자를 앞뒀을 때도 이만큼 긴장되지 않았다.

“…….”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내 눈동자를 응시한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짐작조차 안 된다.

내 머릿속에서 걱정과 두려움의 실타래가 엉망으로 뒤엉켜서 더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돼서야 그녀의 입이 열렸다.

“참 이상하네요.”

대체 뭐가, 어떻게 이상하다는 걸까?

목구멍에서 질문이 넘어오기 전에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저, 원래 종교나 외계인, 초자연 현상은 안 믿거든요. 그런데 대표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어째선지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그녀는 사업가 신우혁의 인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러니 무언가 특별한 게 있을 거라는 생각쯤은 진즉에 하고 있었을 거다.

“실망했습니까?”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그냥 좀…… 얼떨떨하네요.”

그녀의 고개가 살짝 사선으로 기울었다가 돌아온다.

“미래에서 온 신우혁 씨는 제게 왜 이런 사실을 고백한 건가요? 쭉 비밀로 했어도 아무 문제 없었을 텐데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진실을 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어, 음…… 제가 얼마나 대단한 개발자가 되는지 모르겠지만요. 그래 봤자 저 혼자 할 수 있는 거라곤…….”

나는 그녀의 말을 도중에 자르고 들어간다.

“세계 6위까지 올라갔습니다.”

“6위? 뭐가요?”

“소영 씨가 독자 개발했던 가상화폐의 시가총액 순위입니다. 님블코인이라는 이름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코인 이름이 나오자 이소영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을 틀어막는다. 내가 미래인이라고 고백했을 때보다 더 극적인 반응이다.

“맞아요. 제가 테스트로 만든 가상화폐 이름이 님블이었어요. 전송속도가 비트코인보다 수만 배 빨랐거든요. 그런데 님블은 공개하지 않고 폐기했을 텐데…….”

“님블코인이 정식 출시됐다면 시가총액 400억 달러짜리 가상화폐가 됐을 겁니다.”

“4, 400억 달러요?”

“어쩌면 그보다 더 성장했을지도 모릅니다. 끝까지 본 게 아니거든요.”

하지만 내가 이소영을 스카우트하는 바람에, 님블코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화폐가 돼버렸다.

“믿기 힘든 이야기네요. 제가 만든 가상화폐가 400억 달러가 된다니요.”

“이미 그만한 성과를 내고 있잖습니까. 이름만 님블에서 도토리로 바뀐 채로요.”

“도토리코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표님과 직원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 혼자서는 도저히 무리라고요.”

“혼자서 해냈든, 아니면 다른 조력자와 함께했든 간에, 소영 씨는 성공했을 사람입니다. 저는 거기에 편승했을 뿐이죠.”

엄밀히 따지면 편승보다는 강탈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거다.

내가 도토리코인을 만들어달라고 접근해서 그녀의 몫인 님블코인이 이번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래서 저는 더 절실하게 사업에 몰두했습니다. 적어도 소영 씨가 가질 몫은 다시 돌려드려야 했으니까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게 정확한 미래인지도 확실치 않잖아요.”

“제가 지금까지 성공 가도를 달린 결과물을 보고도 못 믿으시겠습니까?”

나는 성큼성큼 그녀 앞으로 다가간다. 기세에 놀란 그녀가 움찔 몸을 떨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간다.

“처음엔 WHST컴퍼니의 지분으로 갚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소영 씨가 이뤄낸 것을 다 메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저는 진짜 괜찮아요!”

“제가 안 괜찮습니다. 만약 이번에 갚지 못한다면 저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야 할 겁니다. 그러니 부디, 꼭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부족해서 더 많이 가졌을 때, 더 안정적인 상태가 됐을 때 말하려고 계속 미뤄두기만 했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그래서 이번은 처음부터 커밍아웃으로 퇴로를 불태우고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스윽.

재킷 안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낸다. 그녀가 놀란 토끼 눈이 된 걸 보니, 이게 뭔지 대강 짐작한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뻔뻔하게 상자를 열어서 그녀 앞으로 내민다.

안에는 아름답게 세공된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 있었다.

“소영 씨,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그 어느 때보다 떨리는 시간이다. 짧은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심장이 수만 번은 철렁하고 내려앉은 것 같다.

“왜죠? 왜 이제야…… 왜 이렇게 늦게 말한 거예요.”

“소영 씨가 홀로 이뤄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룬 뒤에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제가 생각한 최소한의 자격이었습니다.”

“바보같이,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는 대표님이 계속 아무 말도 안 하길래…… 내가 여자로 매력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잖아요.”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던 그녀였으나 결국은 둑이 터지고 말았다.

“너무해요. 흑…… 진짜 너무해. 왜 그랬어요. 말이라도 빨리, 흑…… 빨리 해줬으면…….”

이소영이 나를 붙잡고 울음을 터트린다. 거의 오열 직전 단계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막무가내로 그녀의 팔목을 잡고 끌어당긴다.

“앗!”

그녀는 당황한 듯했지만, 저항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 틈에 반지를 꺼내서 그녀의 손가락으로 가져간다.

“뭐, 뭐예요. 저 아직 대답 안 했어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거절입니까?”

“거절은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정식으로 사귀기도 전에 프러포즈라니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나는 그녀의 귓가에 바짝 다가가서 숨결과 함께 목소릴 불어 넣는다.

“소영아, 결혼하자.”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나는 그때를 틈타서 손가락 안으로 반지를 쏙 밀어 넣는다.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요. 이건 반칙이에요.”

“반칙이면 무를까요?”

내가 다시 반지를 빼려고 손을 뻗자 그녀는 잽싸게 손을 뒤로 숨긴다.

그리고는 다람쥐처럼 품에서 쪼르르 빠져나가더니, 저만치 도망가서는 반지를 보고 히쭉 웃는다.

“승낙할게요. 절대 무르기 없어요.”

* * *

JP모간 뉴욕 본사의 최상층.

모두가 퇴근했을 늦은 밤이지만 CEO 집무실 안에서는 격노한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쉼 없이 흘러나온다.

“레너드, 너라면 이번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네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줬던 거야. 그런데 뭐? 계좌 확보율이 24%밖에 안 된다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월가의 다른 증권사들도 DT파이낸셜의 계좌를 모으려고 혈안이 돼 있어서, 계좌 시세가 천정부지로 뛰고 있습니다.”

“그럼 이 모양 이 꼴이 나기 전에 네가 알아서 처리했어야지!”

레너드는 고양이를 마주한 쥐처럼 몸을 잔뜩 움츠린다. 여기서 변명으로 그의 심기를 건드려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

“투자자들이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전화가 오고 있어. 그 망할 가상화폐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게 맞냐고! 이걸 나한테 왜 물어보겠어?”

“그건…….”

“우리가 WHTS컴퍼니와 사이가 틀어진 걸 아니까 불안해서 그러는 거야! 불안해서!”

에드워드는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집어 던지고는 황소처럼 씩씩 콧김을 내뿜는다.

“이대로 있다간 우리 펀드 환매 요구가 빗발칠 거다. 그땐 너는 물론이고 나까지 옷 벗는 거야. 알고 있어?”

“남은 기한 동안 최대한 계좌를 확보해보겠습니다.”

“목표량의 반의반도 확보를 못 했으면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그러지 말고 투자자들에게 제안할 다른 포트폴리오나 찾아봐.”

“그놈들이 출시한 레버리지 투자상품의 이율이 17%입니다. 일반 투자상품으론 죽었다 깨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에드워드는 깊은 한숨을 쏟아냈다. 그의 말처럼 일반 금융 상품으로는 연 7%의 수익률을 넘기는 것도 버거웠다.

“그것들은 어떻게 17%나 되는 이율을 주고도 회사가 멀쩡한 거야? 당최 이해가 안 되는군.”

“연준에서 달러를 찍어내듯이, 그들도 가상화폐를 무제한으로 찍어낼 수 있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그만한 금액을 계속 찍어내는데 어째서 데이터 쪼가리의 가치가 유지되냔 말이다.”

“그 역시 달러와 마찬가지입니다. 발행처에서 돈을 환전해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야. 일개 기업이 돈을 마음대로 찍어내서 푸는데 그걸 좋다고 투자하는 꼴이라니.”

레너드는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슬그머니 운을 띄운다.

“가상화폐 전체 시가총액이 5조 달러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시대적 흐름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우리도 그 흐름에 따라가는 건 어떻습니까? 월가의 금융사들과 연합해서 가상화폐를 출시하는 겁니다.”

가상화폐라는 단어만 나와도 치를 떠는 에드워드였지만 그게 자신의 소유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흠흠, 그 가상화폐라는 거. 쉽게 만들 수 있는 게야?”

“개발자 몇 명만 앉혀두면 개나 소나 만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가상화폐를 운용하는 주체의 신용도지요.”

“신용도라면 우리가 꿇릴 게 없지.”

“그렇습니다. 월가의 이름값이면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자그마치 5조 달러짜리 시장을 꿀꺽 삼킬 기회다. 귀가 솔깃하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출시 초기에 투자사들을 잘 설득할 수 있으면 괜찮은 그림이 나오겠군.”

모든 금융사가 WHTS컴퍼니의 레버리지 상품을 구하러 다니느라 난리인 지금, 월가의 가상화폐 상품이 출시되면 열렬한 환영을 받을 것이다.

“고놈들의 레버리지 상품 정식 출시가 언제였지?”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10월 중순 무렵이 될 거라는 예측이 많습니다.”

“10월이면 두 달 정도 남은 셈인가. 시간을 맞추려면 서둘러야겠군.”

사실상 허가가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레너드는 혹시라도 그의 마음이 변할까 봐 서둘러 말을 꺼낸다.

“그럼 관심이 있을 만한 투자사와 접촉해보겠습니다.”

“아니야. 투자사 쪽은 내가 직접 챙길 테니까, 너는 가상화폐 출시만 신경 써서 진행해 봐.”

저 말의 의미는 프로젝트의 모든 공로를 그가 가져가겠다는 뜻이었다.

평소라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을 상황이지만 레너드는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가상화폐는 개발 쪽이 핵심 꿀통이다. 미공개로 코인을 미리 발행해 뒀다가 상장한 뒤에 팔아치우면 막대한 돈을 빼돌릴 수 있었다.

‘월가의 이름을 앞세운 가상화폐다. 잘만하면 수십억 달러를 챙기는 것도 꿈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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