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64화
[DT코인 레버리지 x4]
행사의 주인공이 등장하자 객석에선 놀람과 당황, 그리고 경악이 뒤섞인 목소리가 쏟아진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미국 국채 금리가 3%밖에 안 되는 시기에 17%를 주는 상품이 나왔으니까.
나는 객석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입을 뗀다.
“왜 이렇게 놀라십니까? 우리 회사 투자자분들에겐 익숙한 상품일 줄 알았는데요.”
행사 참석자들은 뒤늦게 내 말의 뜻을 이해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도토리코인은 재작년에 이미 17.9%의 예치 이자를 지급했습니다. 그랬던 회사가 지금은 어떻게 됐나요? 회사 덩치는 200배 이상 커졌고, 세계 최고의 기업을 인수하는 성과까지 거뒀습니다.”
타이밍 맞게 스크린이 전환됐다. 이번엔 사진이 나타났는데, 산더미처럼 쌓인 금괴 앞에서 어떤 노인이 서류를 펼쳐 들고 있었다.
“이미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이분은 영란은행(英蘭銀行 : 영국의 중앙은행) 총재 앤드류 씨입니다. 그가 내민 서류는 WHTS컴퍼니와 DT파이낸셜이 금괴 240톤을 예치했다는 보관증이죠.”
금괴 1톤 시세가 4,600만 달러였으니 단순 계산으로 1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예치한 셈이다.
단 1분 만에 객석에서 맴돌던 의심의 눈빛이 싹 사라졌다. 그만큼 실물 자산에서 금의 신뢰도는 절대적이었다.
“기존 금융사들은 가상화폐를 담보로 인정하는데 굉장히 인색했습니다. 가상화폐라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거나, 아예 취급을 거부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우리가 왜 이런 불합리함을 받아들여야 합니까?”
내 목소리 톤이 높아질수록 객석에서 넘어오는 반응도 격양된다.
“이제는 우리가 만든 금융사에서! 우리만의 신용평가 기준으로! 우리의 상품을 거래하고자 합니다!”
스크린에 마지막으로 준비된 멘트가 나타났다.
[DT코인 레버리지 x4! 올해 하반기 출시 확정!]
더욱더 커진 함성이 귀를 찌른다. 그때 객석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내 이름을 크게 외쳤다.
-대니얼! 대니얼! 대니얼!
이것을 시작으로 다른 참석자들까지 덩달아 흥분해서 내 이름을 연호한다.
혹시라도 분위기가 안 좋을까 봐 객석에 바람잡이 직원들을 준비시켜뒀는데 괜한 짓을 한 것 같다.
‘내일까지 반응을 볼 필요도 없겠어. 이건 성공이다.’
* * *
원래부터 도토리코인 예치 이자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파생상품을 더해서 자그마치 17%를 준다는 소식에, 기존 투자사들은 이탈하려는 고객들을 달래느라 머리털을 쥐어뜯어야 했다.
세계적인 은행이자 투자사인 JP모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WHTS컴퍼니의 발표가 끝나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건만, 뉴욕 본사는 벌써 긴급대책회의를 4번째 소집하고 있었다.
“WHTS컴퍼니의 발표가 있고부터 포트폴리오 변경 문의가 600% 넘게 폭증했습니다. 문의는 대부분 가상화폐 파생상품 관련 내용으로…….”
실무자 보고가 이어질수록 회의실의 한숨 농도도 짙어진다.
상석에 앉은 JP모간의 대표 이사 에드워드 슈밋은 그만 보고하라는 뜻으로 손을 휘젓는다.
“그래서 우리 회원의 펀드 환매율은 얼마나 되지?”
“아직 환매까지 이어진 경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장 분위기가 워낙 과열된 터라 환매 요청이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골치 아프게 됐군. 괜히 벌집을 쑤시는 바람에…….”
에드워드의 시선이 벌집을 쑤신 장본인 쪽으로 돌아간다. 부사장인 레너드는 억울하다는 듯 두 손을 펼쳐 들었다.
“형님, 그놈들의 발표는 기만행위나 마찬가집니다. 가상화폐에 돈을 5년이나 묶어둬야 연 17%의 이자를 주는 상품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발표했잖습니까.”
“그게 뭐 어때서? 자사 상품을 최대 이율로 홍보를 하는 것은 투자사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고위험 자산인 가상화폐에 레버리지까지 얹은 상품입니다. 우리가 파는 안정적인 채권과는 결이 다릅니다. 그 위험성을 알리면 투자자들도 필시…….”
“이 멍청한 놈! 투자자들이 그걸 모르고 가상화폐 파생상품에 열광하는 줄 아느냐?”
레너드는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거린다.
“이미 WHTS컴퍼니는 10%가 넘는 고금리로 회사를 3년 넘게 운영했다. 그럼에도 회사가 망하긴커녕 수백 배나 성장한 성과를 보여줬어.”
“앞으로도 계속 성장한다는 보장이 없잖습니까.”
“그래서 너는 펀드를 환매하러 온 투자자들에게 WHTS컴퍼니가 망할 거니까 기다리라고 할 거냐? 영란은행에 금괴 240톤을 쌓아둔 걸 다 봤는데?”
할 말이 없는지 레너드는 입을 우물우물한다.
“그뿐만 아니다. 이미 월가에선 우리가 WHTS컴퍼니와 척을 졌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게 다 네가 저지른 짓거리 덕분이지.”
“저는 절대 그럴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형님.”
“시끄럽다! 의도가 어쨌든 간에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결과다! 결과!”
에드워드는 흥분해서 삿대질까지 해가며 소릴 지른다.
“이대로 있다간 투자자들의 펀드런이 터져도 이상치 않다. 그 전에 네가 책임지고 이번 일을 수습하도록 해. 알겠나?”
“제, 제가 어떻게 말입니까?”
“내달까지 DT파이낸셜 레버리지 상품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해 놔. 그게 성공하면 펀드 투자자들도 안심할 수 있겠지.”
레너드는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아직 출시도 하지 않은 투자상품을 어떻게 가져온단 말인가.
그때 실무진에서 해결책을 제시한다.
“저…… 대표님, 이번에 풀린 레버리지 투자상품 접근 코드를 구매하면 어떻습니까?”
“접근 코드? 그게 뭔가?”
“매주 추첨으로 뿌리는 일종의 암호 코드입니다. 그걸 받아서 계좌에 입력하면 레버리지 투자상품에 미리 투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추첨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레너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드러낸다.
“계좌를 열어주면 열어주는 거지, 그걸 왜 추첨으로 뿌려?”
“마케팅 수단입니다. 코드에 당첨되면 고가에 내다 팔 수 있어서, 추첨하는 주말 밤만 되면 SNS에 전부 관련 메시지가 도배되고 있습니다.”
투자상품을 복권 형식으로 홍보하는 회사가 있을 줄이야.
레너드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으나 최고 책임자인 에드워드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접근 코드만 있으면 금액이 얼마든 투자할 수 있단 말인가?”
“계좌 하나당 250만 달러의 한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펀드 포트폴리오에 이름을 올려서 구색을 갖추려면 최소 200개는 확보해야겠군.”
이야기가 깊어질 낌새가 보이자 레너드가 급하게 끼어들어서 대화를 끊는다.
“형님! 진짜 추첨 코드를 사서 투자할 생각이십니까?”
“그게 싫으면 네가 WHTS컴퍼니 본사에 가서 무릎 꿇고 싹싹 빌어서 받아 오던가.”
“그런 뜻이 아니라…… 몇 달만 기다리면 정식으로 계좌를 열 텐데, 그때 투자하시죠. 급하게 갈 이유가 없잖습니까.”
“올해 하반기면 11월이 될 수도 있고, 12월이 될 수도 있어. 그러다 타 업체 펀드에 가상화폐 레버리지 상품이 추가되면? 너는 우리 투자자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나?”
무려 17%짜리 상품이 포트폴리오에 올라간다면 펀드 수익률에서 상대가 안 될 터.
연말에 늦게나마 상품을 추가하고 홍보한다 한들, 이탈한 투자자들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지금쯤 월가의 다른 업체도 우리와 비슷한 방안을 논의 중일 거다. 놈들보다 먼저 추첨 코드를 확보해. 그게 유일한 해결 방안이다.”
* * *
세르게이 라진스키는 광적인 가상화폐 신봉자다.
그는 가상화폐 폭등기 전부터 비트코인에 투자했었고, 이후엔 에더리움, 리플리, 알트코인 등의 다양한 가상화폐를 사고팔았다.
5년 가까이 가상화폐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세르게이.
그의 수중에 남은 것은 90만 루블의 대출금과 낡은 중고차 한 대가 전부였다.
“분명히 차트상으론 올라갈 타이밍이 확실했는데, 어째서 반대로 움직인 거지? 내가 너무 빨리 들어갔나? 그게 아니면…….”
매번 그가 매수한 코인은 귀신같이 하향곡선을 그린다.
그것도 그냥 내려가는 게 아니다. 희망 고문이라도 하는 건지, 살짝 반등하나 싶다가 내려가고, 다시 살짝 위로 솟았다가 더 깊이 내려간다.
“어째서! 왜? 염병할!”
계속 방에 처박혀서 시세 창을 보고 있다간 정신병이 걸릴 것 같았다.
세르게이는 태블릿과 함께 외투를 챙겨 들었다.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들어올 생각이었다.
끼익.
방문을 열고 나가자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불러세운다.
“얘야. 아까부터 휴대폰이 계속 울리는 것 같던데…… 안 받아도 되는 거니?”
“쓸모없는 전화예요.”
보나 마나 은행에서 대출금 상환으로 걸었을 거다. 아니면 연체된 자동차 할부금 독촉이거나.
노모는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흘깃 쳐다봤지만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잔소릴 퍼부었으면 마음이 더 편했을 텐데.
세르게이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집을 나선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그의 눈은 태블릿의 가상화폐 시세 창을 떠나지 못한다.
“씁…… 젠장.”
그가 매수한 코인은 반등의 기미 없다. 가만히 차트를 응시하며, 세 번째 담배를 꺼내던 도중.
우웅-
우웅-
우웅-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한다. 안 그래도 기분이 더러운데 독촉 연락까지 오니까 화가 더 치솟는다.
세르게이는 욕이라도 퍼부을 생각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어?”
평소에 연락 오던 번호가 아니었다. 번호 상세정보를 보니 [이베이 고객센터]라는 글귀가 박혀 있었다.
“이베이? 아! 그게 있었지!”
며칠 전, WHTS컴퍼니 이벤트로 추첨 코드라는 걸 받았었다. 어제 자기 전에 이베이에 올려뒀었는데 그게 팔린 것 같다.
-세르게이 라진스키 고객님 맞으십니까?
“맞습니다.”
-여긴 이베이 고객센터입니다. 귀하가 등록한 상품 [DT코인 레버리지 x4 접근 코드] 경매가 정상적으로 완료됐음을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아, 예. 그런데 원래 이베이에서 물건이 팔리면 연락을 했었나요?”
-이번 상품은 금액이 커서 예외적으로 연락을 드린 겁니다.
금액이 크다는 말에, 세르게이의 굽었던 등이 쭉 펴진다.
“얼마에 낙찰됐습니까?”
-1,840만 루블입니다. 중개 수수료와 환전 수수료, 세금을 제하면 최종적으로 1,460만 루블이 됩니다.
세르게이의 입이 쫙 벌어졌다.
은행에서 90만 루블을 대출 낸 것도 못 갚아서 전전긍긍했었는데 무려 1,460만 루블을 받게 될 줄이야.
“그, 그, 그래서 그 돈은 언제 받을 수 있습니까? 최대한 빨리 받고 싶은데요.”
-간단한 본인 확인 절차가 끝나면 바로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해주십시오. 지금 당장.”
상담원과 통화하는 동안 세르게이의 두뇌는 1,460만 루블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떠올렸다.
‘낡은 중고차를 대신할 SUV부터 뽑자. 엄마 선물도 하나 사 드려야지. 그리고 대출금 상환과 밀린 집세, 또 뭐가 있더라…….’
그러나 세르게이가 통화를 끝내자마자 한 일은 자동차를 고르거나, 쇼핑몰에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태블릿에 코를 박고 가상화폐 시세를 확인한다.
슬금슬금 휴대폰으로 손이 올라간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본능은 이미 오르내리는 차트와 숫자를 쫓고 있었다.
[코인피버_14,000,000루블_입금_확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