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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62화 (162/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62화

새벽 3시.

도시가 암흑으로 잠길 시간이지만 JP모간 뉴욕 본사 건물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서류 뭉치를 들고 뛰어다니는 직원,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소릴 지르는 직원, 모니터 앞에서 머릴 감싸 쥔 직원.

이들이 이토록 분주한 이유는 지구 반대편에서 발표된 뉴스 때문이었다.

[도토리코인 예치 이자율 5.6% 확정. 올해만 벌써 세 번째 하향 조정.]

연초에 7.9%였던 예치 이자율을 6.2%로 내린 것도 충격적이었는데.

WHTS컴퍼니는 그 후로 5.9%에서 다시 5.6%로, 두 번이나 더 하향 조정해버렸다.

“JF6671 종목의 매도 물량이 너무 많이 쌓였습니다! 이걸 다 소화하기엔 우리 측 손실이 너무 큽니다!”

“한국 지사에 연락 넣어서 데이터 넘겨달라고 해! 꾸물댈 시간 없다! 빨리 움직여!”

연이은 가상화폐 이자율 하락은 관련 파생상품을 잔뜩 팔았던 JP모간의 재앙이었다.

파생상품은 레버리지가 기본으로 깔려있었기에 이자율 0.1%만 움직여도 수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한다.

그런데 올해만 무려 2.3%가 하락했으니. 손실액은 산 위에서 굴린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이자율을 또 내린 이유가 뭐지? 이미 도토리코인에 들어왔던 투자금은 절반이 넘게 빠져나갔잖아. 그런데 어째서?’

이번 사태의 책임자인 레너드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모니터를 응시 중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끝나지 않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그때 전담 직원이 그에게 다가간다.

“부사장님, 결단을 내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직원들의 시선이 전부 이쪽으로 향한다.

레너드는 귀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쭉 둘러본다. 그의 눈동자는 정말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초점이 흐릿했다.

“지급 계좌 동결시켜.”

그의 지시가 떨어지는 순간, 사무실에 있던 모든 직원의 움직임이 멎었다.

“진심이십니까?”

“내가 농담하는 것처럼 보이나?”

“아, 아니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니라…….”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레너드의 휴대폰은 쉼 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그의 말을 믿고 예치 이자율 상승에 베팅한 지인과 투자자들의 연락이었다.

‘젠장, 리먼 사태가 터졌을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그러다 마지막엔 절대 오지 않길 바랐던 번호가 화면에 뜬다.

JP모간의 CEO 에드워드 슈밋이었다.

레너드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쉰 뒤에 통화 버튼을 누른다.

“형님, 잠시만 제 이야길 들어주십시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정말 잠시면 됩니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

-레너드, 넌 운이 좋은 놈이야.

예상치 못한 단어가 나오자 레너드는 당황해서 눈을 깜빡거린다.

“제가 운이 좋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WHTS컴퍼니에 심어둔 정보통이 내부 정보를 물어왔다. 놈들은 3분기에 대형 프로젝트를 발표한다고 하더군.

“전기차와 관련된 프로젝트입니까? 아니면 북한 투자 건?”

-자네가 거기까지 알 필요는 없어.

“…….”

-곧 언론사에서 뉴스를 풀어댈 거다. 그때가 기회야. 우리가 보유한 가상화폐 아이템을 싹 정리하도록 해. 알겠나?

프로젝트에 대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면, 어지간한 프로젝트가 아닐 터.

그런 대형 아이템이 예고되면 죽었던 시장 분위기는 한순간에 뒤집힐 수 있었다.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WHTS컴퍼니의 발표날까지는 쥐고 있다가 정리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프로젝트가 제대로 된 놈이라면 기대감 때문이라도 투자자들이 몰릴 텐데요.”

휴대폰 너머에서 에드워드의 코웃음 소리가 넘어온다.

-이번 주 내에 시카고선물거래소에 올라갔던 가상화폐 관련 모든 상품이 퇴출될 거다.

“퇴, 퇴출?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이미 내부적으로 확정된 사안이다. 그러니 앞으로 가상화폐 판에 투자자가 더 몰릴 일은 없고 봐야겠지.

선물거래소 퇴출은 가상화폐를 투자상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기관 투자자들의 이탈은 물론이고 일반 투자자까지 빠져나가는 ‘가상화폐 뱅크런’이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 * *

화상회의는 공간의 제약을 없애주는 놀라운 기술이다. 상대가 지구 반대편에 있더라도 집무실에 앉아서 편하게 모든 회의 참석이 가능했다.

하지만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다고 시간의 제약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해외 쪽과 시차가 나는 터라 저녁 늦게 회의를 시작하면 새벽에 퇴근하거나, 아예 회사에서 날밤을 새워야 할 때도 있었다.

오늘도 저녁 느지막한 시간이 돼서야 화상회의가 시작된다.

회의 참석자는 일본 소프트포우의 신정의 회장, 사우디 국부펀드의 압둘하비, 런던의 존 소로스.

여기에 본사가 캐나다에 있는 다국적 은행 HSBK의 폰 테너 CEO가 함께였다.

평소라면 회의 전에 가벼운 인사나 잡담이 오가기도 했지만, 오늘은 그럴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굳게 닫힌 진중한 분위기 속에 내가 먼저 원격 마이크를 켠다.

“여러분, 오늘 회의에서는 앞서 예고한 대로 조금 무거운 주제를 다룰까 합니다.”

모니터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한다. 그들 역시 들을 준비가 됐다는 뜻으로 고갤 끄덕인다.

“우리의 공동 프로젝트는 본디 8월 중순, 그러니까 창립기념일에 맞춰서 공개할 예정이었습니다만, 그 일정을 조금 당겨야 할 것 같습니다.”

HSBK의 폰 테너 CEO가 마이크를 켠다.

-지금도 현장에선 일정이 빠듯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정을 더 당기다뇨?

“저도 내키진 않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슈가 생겼습니다.”

-어떤 이슈기에 어쩔 수 없단 말이 나옵니까?

“우리의 프로젝트 정보가 월가 쪽에 유출됐습니다.”

대화 중이던 폰 테너뿐만 아니라 다른 회의 참석자들도 표정이 굳어진다.

“너무 심각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프로젝트 규모가 클수록 유출 가능성도 올라가는 건 당연한 거니까요.”

-허어…… 그래도 정보가 월가까지 흘러 들어간 것은 문제가 큽니다.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대책이 일정 단축입니다. 제 생각엔 이달 말쯤에 프로젝트를 공개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이달 말이면 열흘도 채 남지 않았잖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일정을 갑자기 두 달이나 줄여 달라고 했으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정을 당겨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저도 느긋하게 일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월가에서 그러도록 두질 않는군요.”

이번은 존 소로스가 마이크를 켠다.

-설마, 증권가에 도는 그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미친 것들! 멋대로 판을 쥐락펴락한다 해도 정도라는 게 있어야지!

대화에 언급된 ‘그 소문’이 뭔지 모르는 다른 세 사람은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 입을 뗀다.

“시카고선물거래소에서 가상화폐와 관련된 모든 상품을 퇴출한다고 합니다.”

신정의 회장과 폰 테너 대표는 말도 안 된다는 제스쳐를 취했고, 압둘하비는 아예 쌍욕을 내뱉는다.

-빌어먹을 결정의 이유가 뭡니까? 난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시장 생태계 교란이라고 하더군요. 이번에 이자율을 연달아서 인하한 것을 문제 삼는 듯합니다.”

-그게 뭔 말 같잖은 소리요? 가상화폐 이자율을 조정하는 것은 운영사인 WHTS컴퍼니의 권한이건만!

“그 권한을 막는 것이 이번 퇴출의 목적입니다. 다시 금융권에 들어오고 싶으면 자신들의 룰을 따르라는 협박이죠.”

동시에 모든 마이크가 켜지며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특히 업계의 최고참이었던 존 소로스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고성까지 내지른다.

-이건 부당한 행태요! 애초에 멋대로 파생상품의 범위를 늘려나간 것은 월가의 독단이었잖소!

-맞습니다. 이번 일은 심판이 경기 도중에 룰을 바꾼 거나 마찬가집니다.

-내가 직접 연준에 이의제기해 보겠소.

-연준도 월가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텐데요. 차라리 국제기구에 압박을 넣어서 공론화하는 건 어떻습니까?

심각하게 대응 논의가 오간다. 그러나 상대는 전 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한 월가였기에 마땅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 분위기가 진정됐을 때쯤, 내가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저도 이번 사태를 겪으며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이 정도 반발은 당연한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더군요.”

-멋대로 룰을 바꾸는 게 당연하다고?

신정의 회장이 당혹감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그들이 조성한 생태계를 거부하고 독자 행보를 추진하는 중입니다. 그러니 기존 기득권 세력인 월가에서 견제가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죠.”

-견제도 어지간히 해야지. 이번 건은 명백한 투자 증권법 위반이야.

“시시비비를 따지는 판사가 그들 편인데 위법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공허한 외침이 될 게 뻔합니다.”

-그럼 자넨 어쩌겠다는 건가?

“맞서 싸워야죠. 선전포고로 정식 전쟁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 투자자들의 선택으로 판결을 받을 생각입니다.”

신정의 회장은 내 말의 뜻을 곧장 이해하고 손가락을 딱 튕긴다.

-옳거니. 상품거래소 퇴출 뉴스가 떠도 독자 프로젝트 발표로 맞불을 놓으면 악재가 희석될 수 있겠군.

“희석 정도가 아닙니다. 월가와 대립 이슈가 부각 되면 오히려 홍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흠…… 그럴지도 모르지. 어쨌든, 기회를 잡으려면 열흘 내에 준비를 끝내둬야겠구먼.

모두의 시선이 HSBK의 폰 테너 CEO 쪽으로 향한다.

HSBK는 이번 공동 프로젝트에 필요한 금융 솔루션을 제공하기로 했기에, 그의 오케이 사인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열흘 동안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범적으로 가상화폐와 연동된 계좌 몇 개만이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됩니다.”

-그 몇 개가 대략 어느 정도입니까?

“홍보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음…… 최소한 5천 개 정도는 필요할 듯합니다.”

그는 5천 개라는 말을 되뇌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계좌 5천 개 정도를 준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한데, 그 정도로는 투자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울 텐데요.

“괜찮습니다. 때로는 욕구를 해소하는 것보다 결핍 상태가 더 효과적일 때도 있으니까요.”

* * *

얼마 전부터 증권가에는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소문이란 바로 가상화폐가 시카고선물거래소에서 퇴출된다는 것.

소문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이미 가상화폐는 번듯한 투자상품으로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규모도 상당했던 탓이다.

그러나 사흘 만에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뉴스가 공식적으로 발표된다.

[시카고선물거래소, 월요일부터 가상화폐와 관련된 모든 상품 퇴출.]

휴일 직전에 터진 핵폭탄급 뉴스에 가상화폐와 가상화폐 관련 모든 상품의 시세가 일제히 하락을 맞이했다.

특히 테슬라모터스는 시간 외 거래에서 주가가 30% 가까이 급락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가상화폐 퇴출 뉴스가 뜨고 5분도 안 돼서 새로운 뉴스가 속보란에 도배된다.

[WHTS컴퍼니, 새로운 방식의 투자상품 발표 예정. CEO 대니얼 신 “이번 발표는 월가에 대한 전쟁 선포. 그들의 오랜 기득권을 무너트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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