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61화
[WHTS컴퍼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 도토리코인 예치 이자율 6.2%로 하향 조정]
[가상화폐 대장주 도토리코인. 하루 사이에 이자율 1.7%p 인하. 가상화폐 투자 엑소더스 본격화되나?]
[도토리코인 이자율 전격 인하. 자신감일까, 아니면 오만일까? 업계에선 가상화폐 투자 매력이 사라졌다고 보는 시각도…….]
보도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자 가장 당황한 곳은 이번 가상화폐 사태를 주도한 월가의 큰손들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이자율 동결도 아니고 인하라니?”
JP모간의 부사장 레너드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이자율 인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기에, 그는 미팅 장소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이나 언론사에 연락해서 기사의 진위를 확인했다.
끼익.
차에서 내린 레너드는 허겁지겁 약속 장소인 별장으로 향했다.
이미 별장 내부에는 먼저 도착한 월가 큰손들의 대화가 한창이었다.
“요즘처럼 가상화폐 업계가 불안정한 시기에 이자율을 1.7%p나 인하하다뇨? 이건 자살행위입니다.”
“후…… 그런데 그 자살행위를 실제로 했잖습니까. 누가 이런 결과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WHTS컴퍼니 대표가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레너드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별장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헛숨을 들이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레너드의 얼굴색이 산송장처럼 시퍼렇게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레너드 씨,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오.”
레너드는 답을 피했지만 여기 모인 사람이라면 이유를 모를 수가 없었다.
자리에 삐딱하게 앉아 있던 F&L펀드의 회장이 이유를 끄집어낸다.
“가상화폐 파생상품을 열심히 팔아 재끼더니 탈이 났나 보구려.”
JP모간은 올해 초부터 도토리코인과 연계된 파생상품을 열심히 팔았는데, 대부분 예치 이자율이 내려가면 수익을 내는 상품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예치 이자율이 1.7%p나 내려가 버렸으니.
“쯧쯧. 작업을 하려면 확실히 할 것이지. 이게 다 무슨 꼴이오?”
“지금 시비 거시는 겁니까?”
“시비가 아니라 책임을 묻는 거요. 우리뿐만 아니라, 여기에 모인 모두가 당신의 작전만 믿고 파생상품을 샀단 말이오!”
“나도 억울합니다. 투자금이 빠지는 데 이자율을 내리는 미친놈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다른 이들도 이번 결과가 황당한 건 마찬가지였기에 더 추궁하지 않고 한숨만 내뱉을 뿐이다.
그러다 슬그머니 헤리티지 펀드의 존 프리드 대표가 입을 연다.
“실망입니다. 다들 이렇게 소식이 늦으시다니요.”
모두의 이목이 존의 입으로 쏠린다. 특히 레너드는 눈알이 빠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이 커져 있었다.
“소식이라뇨? 뭔가 나온 게 있습니까?”
“소프트포우의 신정의 회장과 존 소로스, 그리고 사우디 국부펀드 담당자가 한국으로 날아가고 있답니다.”
언급된 세 사람은 도토리코인의 핵심 투자자였다. 그들이 이런 타이밍에 한국으로 날아가서 할 일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예치 이자율 인하를 막을 생각일까요?”
“막으러 가는 게 아니라 막는 척만 하러 가는 겁니다.”
“막는 척을 왜 합니까?”
그는 길게 자란 염소수염을 매만지며 클클 거리는 웃음을 흘린다.
“지금 WHTS컴퍼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린 예치 이자율을 인하해도 버틸 자신이 있다. 하지만 고래 투자자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하는 보류하겠다. 딱 이런 그림을 노리는 거겠죠.”
“그 말인즉슨 처음부터 이자율 인하는 연극이었단 말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혹시 다른 의견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의견을 내놓는 사람은 없었다. 짜고 치는 연극이 아니라면 이번 WHTS컴퍼니의 기행을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까.
“허허…… 이것 참.”
그가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면 도토리코인의 이자율은 곧 원상 복귀될 터.
이 정보를 바탕으로 미리 유리한 포지션을 선점할 수 있다면 돈을 갈퀴로 쓸어 담을 수 있었다.
“어흠. 어흠. 나는 이만 가봐야겠소.”
“저도 급한 약속이 있어서…….”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릴 뜨기 시작했다. 아예 몇몇은 별장에서 나가기도 전에 전화를 걸어서 특정 상품의 매수를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정보를 푼 사람은 느긋하게 앉아서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 * *
도토리코인 이자율 하향 조정 발표가 나온 바로 다음 날.
WHTS컴퍼니 본사로 거물급 투자자 세 명이 나란히 방문했다.
소프트포우의 신정의 회장, 사우디 국부펀드 총책임자 무함마드 압둘하비, 소로스 펀드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존 소로스.
한 명만 찾아와도 상대하기 버거운 거물을 홀로 세 명이나 상대하려니까 압박감이 장난 아니다.
특히 무함마드 압둘하비는 나를 뚫어버릴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먼 길을 오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뭐라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좋겠군요. 커피면 되겠습니까?”
내가 인터폰으로 커피를 주문하는 동안 소로스가 고갤 젓는다.
“우린 느긋하게 커피나 마시러 온 게 아니오. 얼른 말해보시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자율 하향을 발표한 거요?”
인사치레 따윈 생략하고 본론이 먼저 튀어나온다. 그의 불같은 성격에 어울리는 화법이었다.
“나는 이자율 인하 소식을 처음 듣고 회사가 해킹이라도 당한 줄 알았네. 그만큼 상식 밖의 일이었단 말이지.”
신정의 회장 역시 첫마디부터 목소리 톤이 높다.
자칫 잘못하면 수백억 달러의 손실이 날 수 있는 건이다 보니 다들 민감해진 것이리라.
이럴 때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같이 흥분하면 신뢰를 잃을 뿐이다. 냉정하면서도 강하게 나가야 했다.
“저는 왜 이리 조급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회사 자본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여러분들이라면 흔들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우린 알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모르니까 하는 말 아니오. 이대로 대규모 투자 이탈이 발생하면 어찌 될 줄 알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이자율 인하는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일 뿐이니까요.”
“예치 이자율을 내렸다가 한 방에 올리기라도 하겠단 게요?”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이번엔 압둘하비가 언성을 높인다.
“당신 말장난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닙니다! 명확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우린 손 털고 빠지겠습니다.”
“그러셔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실 텐데요.”
“뭐라?”
압둘하비는 아까보다 더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본다. 그러나 이번엔 나도 지지 않고 그의 눈빛에 대응했다.
한동안 무언의 눈싸움이 이어진다.
그러다 옆에서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지금껏 말을 아끼고 있던 신정의 회장이었다.
“자네 말이 맞아. 우리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구먼.”
압둘하비와 소로스는 동시에 미간을 찌푸린다. 그가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뜻이었다.
“저 흔들림이 없는 눈빛을 보게나. 우리가 처음 투자를 결정했을 때 봤던 그 당돌한 눈빛 아닌가.”
그는 다시 내 쪽을 쳐다보더니 부처님 같은 미소를 머금는다.
“나는 자네를 믿네. 하지만 한 팀인 우리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일을 벌인 건 너무했어.”
“그만큼 이번 건은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회장님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니 더 궁금해지는구먼. 이제 슬슬 가르쳐 줄 때도 되지 않았나.”
타이밍 좋게 응접실 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넘어온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이소영이 들어온다. 그녀의 손엔 커피가 아니라 두툼한 서류 봉투가 3장 들려 있었다.
“찬찬히 읽어보시고 궁금한 점은 프로젝트 담당자인 이소영 부사장에게 질문하면 됩니다.”
서류 봉투를 넘겨받기가 무섭게 뜯어서 읽어 내려가는 사람들.
내용이 다소 복잡하고 난해했지만, 투자 경험이 풍부한 소로스는 단숨에 핵심을 짚어낸다.
“파생상품? 이걸 WHTS컴퍼니가 직접 팔겠다는 거요?”
* * *
흩어졌던 월가의 거물 투자자들이 다시 프라이빗 별장에 모였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가상화폐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서였지만, 실제론 별장 거실에 모여 앉아서 지구 반대편 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은 WHTS컴퍼니의 본사 정문 앞입니다. 이미 건물 로비에는 취재를 나온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박 기자, 취재진이 몰린 이유가 손정의 회장과 존 소로스 대표의 긴급 방문 때문이라죠?
-두 사람뿐만 아니라 사우디 국부펀드 운용 총책임자인 무함마드 압둘하비 사장도 함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분들이군요. 그런데 그분들이 한자리 모인 이유가 뭔가요?
-아무래도 WHTS컴퍼니가 얼마 전에 발표한 도토리코인 예치 이자율 인하 때문으로 예상됩니다.
화면이 잠시 자료 화면으로 전환되면서 가상화폐 이자율 변동의 간단한 설명이 이어진다.
-이미 투자자가 빠지고 있는데 이자율을 내리는 건 상당히 의아한 결정이군요.
-그렇습니다. 만약 가상화폐 이자율 인하가 이대로 확정된다면, 투자금액이 큰 세 업체의 손실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때 로비 입구 쪽으로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게 보인다.
-앗! 엘리베이터를 타고 누군가 내려온 것 같습니다. 소프트포우의 손정의 회장입니다!
기자는 카메라와 함께 헐레벌떡 엘리베이터로 뛰어간다.
-손 회장님! 정확한 방문 목적이 무엇입니까? 가상화폐 투자 건이 맞습니까?
-WHTS컴퍼니의 이자율 인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짧게라도 코멘트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자들이 좀비 떼처럼 엘리베이터 앞으로 밀고 들어간다. 그 숫자가 워낙 많은 터라 경호원이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손정의 회장은 무리하게 뚫고 가기보다 마이크를 넘겨받는 선택을 했다.
-제가 자세한 이야긴 해드릴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나올 말은 다 나온 셈이다.
별장에서 TV를 지켜보던 월가 투자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거나, 박수를 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처음부터 꾸며진 연극이었다니까.”
“상식적으로 투자금이 빠지는 데 이자율을 낮춘다는 게 말이 안 됐습니다.”
“자자,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축하주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합시다. 어서 샴페인 가져오라고 해요.”
주방에선 샴페인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속옷 차림의 여자 서버들이 같이 등장한다. 덕분에 거실 분위기는 한순간에 시끌벅적해졌다.
“…….”
존 프리드는 소란을 틈타서 조용히 화장실로 자릴 옮긴다.
그는 화장실에 도착하자마자 품 안에 숨겨뒀던 휴대폰을 켜고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낸다.
P : 방금 손정의 회장 인터뷰 확인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답장이 돌아온다.
W : 현장 상황은 어떻습니까?
P : 이미 여자까지 불러서 술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보고 이자율 인상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W : 수고하셨습니다. 약속한 보수는 오늘과 디데이에 나눠서 입금될 겁니다.
상대가 대화방을 나가기 전에 얼른 다음 메시지를 전송한다.
P : 예치 이자율은 6.2%로 동결입니까?
W : 그게 왜 궁금하신지? 혹시 그쪽으로 투자하셨습니까?
존은 뜨끔해서 빠르게 손을 놀린다.
P : 그럴 리가요.
W : 투자했다면 지금이라도 포지션 청산하세요. 곧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