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160화 (160/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60화

북한 쿠데타 사태는 모든 국제 이슈를 집어삼켰다.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만 보면 흔한 후진국 중 하나였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라는 초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점, 그리고 자체 개발했다던 장거리 핵미사일의 여부도 국제적인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그러나 단연 최고의 관심사는 북한에 대규모 투자를 천명했던 WHTS컴퍼니의 향후 행보였다.

WHTS컴퍼니는 이미 베네수엘라 투자를 성공한 전례가 있었기에, 이번에도 국가 투자로 대박을 치는 게 아니냐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쿠데타가 터지면서 김정은과 맺었던 모든 투자 계획은 물거품이 돼 버렸다.

향후 투자도 북한 내부 정세가 불안정해짐에 따라 기약이 없는 상황.

사실상 WHTS컴퍼니의 북한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자, 평소 WHTS컴퍼니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세력은 축하의 샴페인을 터트렸다.

“핫핫핫! 소식 들으셨습니까? 테슬라모터스 주가가 장외 거래에서도 빠졌답니다. 저번 주부터 쭉 내려갔으니까 벌써 8일 연속 하락입니다.”

“8일 연속 하락이면 신기록이군요. 이러다 작년 주가로 돌아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흐흐. 작년이 뭡니까. 북한 투자가 완전히 실패했으니 재작년 수준까진 내려가야죠.”

노인들은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웃음을 터트린다.

흔히 월가의 큰손이라 불리는 이들은 작년 테슬라 공매도 사태 당시, 천문학적인 돈을 잃은 이후부터 WHTS컴퍼니에 복수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그런데 타격이 큰 게 맞긴 합니까? 북한에는 아직 투자를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들었는데요.”

“투자 손실이야 얼마 안 되겠지만, 매번 잘난 척하던 대니얼 신이 실패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의 팬보이들이 투자의 신이라며 추앙하는 게 어찌나 꼴 보기 싫던지.”

“저도 그 말을 듣고 실소가 나오더군요. 자신의 포트폴리오조차 공개하지 못하는 시골 촌뜨기일 뿐인데 말이죠.”

“시골보다 아시아 촌뜨기 정도로 하는 게 어떻습니까?”

“오호. 아시아 촌뜨기 좋군요. 내일 경제지 헤드라인으로 아시아 촌뜨기가 아시아 후진국에게 뒤통수를 얻어맞다는 어떻습니까?”

“하하하핫! 아주 멋집니다.”

이후에도 샴페인 잔이 몇 번이나 다시 채워지며 이야기가 오간다.

그러다 대화 주제가 자연스럽게 주가에서 가상화폐 쪽으로 넘어오게 되는데.

“WHTS컴퍼니 관련 주식들이 많이 빠진 건 좋은데 정작 가상화폐 쪽은 별 반응이 없더군요.”

“가상화폐는 이미 안정적인 투자상품으로 정착해서 크게 변동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는 겁니다. 더 크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할 텐데요.”

그때 JP모간 소속의 레너드 부사장이 샴페인 잔을 ‘챙!’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말만 하지 말고 행동에 나서야지요! 우리가 가상화폐를 계속 쥐고 있는데, 일반 투자자들이 먼저 던지려 하겠습니까?”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같은 저금리 시대에 연 7%를 따박따박 챙겨주는 상품이 어디 흔합니까?”

“그런 해이한 정신으론 안 된단 말입니다!”

취기와 흥분으로 얼굴이 불그스름해진 레너드는 목소릴 높여간다.

“놈을 잡으려면 우리가 먼저 보유한 가상화폐를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언론과 증권사를 동원해서 시장에 충격을 주면 필시 패닉셀이 터질 겁니다.”

평소라면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으나 분위기가 흉흉한 지금이라면 충분히 먹힐 만한 작전이었다.

경청하고 있던 이들도 하나둘 고개를 끄덕거린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근본도 없는 데이터 쪼가리가 금융시장 파이를 먹게 둬선 안 되지요.”

“저 역시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헤리티지 펀드도 계획에 동참하겠습니다.”

순식간에 동의가 3표나 나왔다. 과반엔 미달이지만 분위기가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리다 보니 다른 의견을 내기 힘들어졌다.

“반대 의견 있으십니까?”

절차상 필요한 형식적인 물음이다. 의견을 표하지 않았던 이들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레너드 부사장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전원 동의한 사안인 만큼, 확실한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 * *

WHTS컴퍼니 본사에선 요 며칠간 연속해서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회의 주제는 가상화폐 투자자 이탈 대응.

본디 투자금은 유입이 있으면 빠짐도 있어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은 비정상적으로 투자금 이탈 속도가 빨랐다.

“단 일주일 만에 30%가 넘는 자본이 이탈했습니다. 이에 가상화폐 관리팀에선 이자율 0.25%p 올리며 대응했으나 시장 반응은 여전히 냉담합니다.”

관리팀장의 보고가 나오는 동안 회의장 분위기는 축 가라앉은 채다.

최근 들어오는 소식이라곤 악재밖에 없으니 회의 분위기가 좋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리라.

회의에 진척이 없자 이소영이 나서서 대화를 끌고 나간다.

“이자율을 올린다고 능사가 아니에요. 이탈 원인을 먼저 파악하고 그것에 맞게 대응해야죠.”

“저는 JP모간에서 발행한 투자 리포트가 원인이라고 봅니다. 리포트 첫 꼭지부터 가상화폐 뱅크런 사태를 경고하는 바람에, 시장에 충격이 간 듯합니다.”

“기관의 부정적인 투자 리포트는 그동안 많았었잖아요? 분명히 다른 이유가 더 있을 거예요.”

“그 외에 원인으로는…… 아직 확실한 사안은 아닙니다만 증권가에 도는 찌라시가 하나 있습니다.”

관리팀장은 입을 우물거리며 내 눈치를 본다. 나는 괜찮으니까 말해보라는 뜻으로 손짓을 해줬다.

“그…… 저희 대표님께서 북한으로 송금한 돈이 어마어마해서, 곧 WHTS컴퍼니의 돈이 마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니, 그딴 걸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이소영이 먼저 흥분해서 목소릴 높인다.

“부사장님 진정하십시오. 진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증권가에 도는 찌라시일 뿐입니다.”

“아무리 찌라시라도 경우에 맞는 걸 들고 와야죠!”

이번 북한 사태 때 WHTS컴퍼니가 투입할 투자금은 현금성 자산의 3%도 안 되는 적은 금액이었다.

게다가 투자가 도중에 엎어지는 바람에 실제 집행된 금액은 0.5%가 채 안 됐다.

그런데 회사에 돈이 마른다는 헛소릴 해대니 이소영이 열받은 것이다.

“찌라시 외에도 악재가 연이어 터지는 바람에 투자자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자율 추가 인상으로 대응하심이…….”

“그건 절대 안 돼요. 여기서 이자율을 올리면 우리가 돈이 부족하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이대로는 투자금 이탈을 막을 수 없습니다.”

가상화폐 이자율 조정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그렇다 보니 이번 회의에서도 이자율을 소폭만 올려보자는 수준에서 논의가 오간다.

더는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사락.

서류를 대충 챙겨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 소릴 들은 직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본다.

“회의 마저 하세요. 저는 일정이 있어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회의실 문을 나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주도적으로 회의를 끌고 갔을 텐데, 최근엔 나도 확신이 없어서 말을 아끼게 된다.

‘이젠 내가 아는 정보가 거의 없다. 앞으로는 정말 신중히 결정해야 해.’

내 근심만큼이나 무거워진 몸뚱이를 이끌고 복도를 걸었다.

그런 내 뒤로 부산한 걸음 소리가 따라온다.

“대표님 같이 가요!”

이소영이었다. 그녀는 급하게 회의실에서 나왔는지 서류철에서 서류가 엉망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헉…… 헉……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대표님은 걸음이 너무 빨라요. 보폭이 커서 그런가요?”

“군대 다닐 때부터 몸에 밴 습관입니다.”

“아하. 그렇구나.”

그녀는 곁눈질로 내 손에 들린 서류 뭉치를 살핀다.

“오후에 잡힌 투자자 미팅 준비하러 가시는 거죠?”

“예. 거물급이 몇 명 온다고 하더군요.”

“그럼 제가 제안했던 그 계획은요? 이번에 오픈하실 생각이세요?”

그녀가 언급한 ‘그 계획’이란 도토리코인 시가 총액을 한 방에 10배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비책을 뜻했다.

아니, 정확히는 비책보다 도박수에 더 가까울 것이다.

“솔직히 아직 결정을 못 내렸습니다. 이걸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째서요?”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요. 까딱 잘못했다간 시장의 신뢰를 잃을 것이고, 그땐 진짜 가상화폐 판 전체의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이소영은 대뜸 내 손을 붙잡는다.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대표님이라면 꼭 성공할 거예요.”

“어디서 그런 근거 없는 믿음이 나오는 겁니까?”

“제 경험이라는 빅 데이터에서 도출한 결괏값이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번 북한 사태 때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대표님이 구하러 와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였어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본다. 한 치의 의심도, 망설임도 없는 순도 100%의 믿음이 담긴 눈빛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 준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내겐 그녀의 믿음이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저는 소영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까진…… 요행에 기댔을 뿐이죠.”

“그래서 이번은 실패할 것 같으세요?”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땐 복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에이. 방법이 왜 없어요. 모아둔 돈도 많겠다, 해외로 도망가면 되잖아요.”

이번엔 내가 어이가 없어서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는 그런 내 얼굴 앞에 대고 헤실거리며 두 손가락으로 ‘V’를 그린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땐 저도 따라가 드릴게요.”

“아니, 그게 무슨…….”

“스톱!”

방금까지 V를 그렸던 집게손가락이 내 입술을 막아선다.

“가만 보면 대표님은 지나치게 부담을 짊어지고 계신 것 같아요. 세상을 구하러 다니는 슈퍼 히어로처럼요.”

“제가…… 말입니까?”

“맞잖아요. 절대 실패해선 안 된다.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저 말을 듣자마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말이 맞다. 나는 신의 선택을 받은 선지자도 아니고, 숙명을 짊어진 영웅도 아니다.

그저 행운이 따라서 우연히 과거로 왔을 뿐, 그것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꼭 이룬다거나 해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소영 씨.”

나는 이소영을 힘주어서 끌어안았다. 품에 안긴 그녀의 당황한 몸부림이 느껴졌지만, 오히려 양팔에 더 힘을 준다.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쌓여 있던 고민거리가 말끔하게 해결됐습니다.”

“벼, 별말씀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스킨십을 한 터라 뒤늦게 머쓱함이 밀려온다. 나는 그녀를 감쌌던 양손을 살며시 풀어주며 헛기침 소릴 냈다.

“흠흠. 아무튼, 짐부터 미리 싸두세요.”

“갑자기 짐은 왜요?”

“제가 해외로 도망가면 소영 씨도 따라와 준다면서요. 혹시 의리로 해준 말이었습니까?”

이소영은 뭐가 그리 웃긴지, 입을 가린 채 한참이나 쿡쿡거리며 웃는다.

“농담입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니까 최대한 서포트 부탁드리겠습니다.”

* * *

북한 사태를 기점으로 가상화폐 시가 총액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한때 3조 달러에 육박했던 가상화폐 전체 시가 총액은 한 달 만에 42%가 증발했다. 여기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WHTS컴퍼니가 운영 중인 도토리코인이었다.

이에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WHTS컴퍼니가 도토리코인의 이자율을 다시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에 지급했던 10%대 이자율이라면 이탈했던 투자자들도 복귀를 고려할 테니까.

하지만 며칠 뒤, 언론사 헤드라인을 장식한 WHTS컴퍼니 소식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속보/ WHTS컴퍼니 도토리코인 예치 이자율 변동 발표. 현행 7.9%에서 6.2%로 1.7%p 대폭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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